죽이는 대신 지켜드립니다

5화 - 세 번째 습격

눈을 떴을 때는 방 안이 어둑해진 뒤였다. 몸을 일으키자 가슴에 안고 있던 육아일기가 옆으로 미끄러졌다. 황급히 노트를 받아 소파 위에 내려놓았다. 나 언제 잠에 든거지? 피곤할만하긴 했다. 장례식으로도 지쳤는데, 습격까지 당했으니.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피곤했다. 정말, 너무나도….

말라붙은 눈물이 눈가를 따끔하게 찔렀다. 손바닥으로 비비적거리며 주위를 둘러본다. 우진은 창가에 서서 밖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가 깨어난 걸 알아챘는지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말했다.

 

 

“다 잤으면 내려가봐. 가족이 찾던데.”

“……얼마나 잤어요?”

“한 시간 정도.”

 

 

몸을 일으키며 바지 주머니를 확인했다. 은빛 2G폰이 손끝에 걸렸다. 그대로 있었다. 아빠 방까지 찾아봤지만 비밀번호에 관한 단서는 발견하지 못했다. 남은 숫자를 아무렇게나 입력했다가 안에 든 내용까지 사라질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핸드폰 말고도 금고 비밀번호가 있다는 말부터 거짓말이었다. 금고 비밀번호도 만들어내야하는데, 핸드폰 비밀번호조차 모른다. 머리가 깨질듯이 아파왔다. 핸드폰 비밀번호도 모르는데, 금고 비밀번호까지 만들어내는 건 무리였다. 언젠가는 들킬 거짓말. 하나만이라도 줄여보는게 낫지 않을까. 사실 금고는 비밀번호가 없고, 핸드폰은 명의가 아빠 명의가 아닐 수 있으니 같이 찾아달라고. 그래, 차라리 가족들이 전부 아래층에 있는 지금 말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아. 아무리 킬러라도 사람들이 가득한 별장에서 대놓고 나를 죽이지는 못할 테니까. 심지어 얼굴이 공개된 상태에서.

 

우진이 문 쪽으로 향했고, 나도 따라서 방을 나섰다. 무거운 문이 닫히고, 우리는 나란히 복도를 걸었다. 계단이 가까워질수록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가족들의 말소리가 선명해졌다.

지금 말해야 해.

 

 

“저기.”

“왜.”

“금고 비밀번호 말인데요. 아, 아니. 금고 비밀번호 말인데.”

 

 

앞서 걷던 우진의 발이 멈췄다.

 

 

“잠깐.”

“…사실 나도 몰라. 비밀번호가 있는지도.”

 

 

우진이 곧바로 돌아섰다. 성큼 다가온 손이 내 손목을 붙잡았다. 갑작스레 잡힌 손목에 두 눈이 커졌다. 아프지도 않고 제법 섬세하게 잡아서 놀란 건지, 아니면 당황하는 모습을 처음 봐서인지는 모르겠다.

 

 

“그런 건 여기서 말하지 마.”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내가 뭐라고 되묻기도 전에 우진은 내 주머니에서 2G폰을 꺼냈다. 그러곤 언제 당황했냐는 듯 차갑게 말했다.

 

 

“비밀번호도 모른다면 휴대전화는 내가 가져간다.”

“잠깐만.”

“넌 여기서 나오지 마.”

 

 

우진이 내 손목을 잡아끌고 아빠 방으로 돌아갔다. 문을 열어 나를 안으로 밀어 넣고는 복도에 선 채 덧붙였다.

 

 

“아직 쓸모가 있을지도 모르니 당장은 죽이지 않겠어.”

 

 

그 말을 끝으로 문이 닫혔다.

혼자 무슨 생쇼를 하는 거야?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말하지 말라며 다급히 막았다. 그런데 갑자기 사람이 달라진 것처럼 휴대전화를 빼앗고 나를 방에 가둬버렸다. 비밀번호가 거짓말이라는 걸 알았으면서도 왜 나를 죽이지 않는지도 의문이었다.

 

문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책상 쪽으로 걸어갔다. 얌전히 있으라고 했지만 그럴 생각은 없었다. 기왕 들어온 김에 아까 보지 못한 곳이나 더 찾아볼 생각이었다. 책상 아래쪽 서랍은 잠겨 있었다. 손잡이를 몇 번 잡아당기다가 옆에 놓인 묵직한 문진으로 자물쇠를 내리쳤다. 몇 번 두드리자 잠금쇠가 비틀리며 서랍이 열렸다.

 

안에는 낡은 서류철 몇 개가 들어 있었다. 가장 위에 놓인 서류철을 꺼내 펼쳤다. 처음 보는 남자의 사진과 신상 정보가 붙어 있었다. 문서 위쪽에는 붉은 글씨가 찍혀 있었다.

사망 처리 완료.

 

다음 장에는 같은 남자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머리 모양과 옷차림은 달랐지만 분명 같은 사람이었다. 이름과 주소는 전부 바뀌어 있었다.

신분 변경 완료. 이동 완료.

 

다른 서류도 마찬가지였다. 죽었다고 적힌 사람들은 모두 새로운 이름을 받아 다른 곳으로 떠났다. 몇몇 문서에는 같은 이름이 반복해서 적혀 있었다.

 

차우진.

청부 대상 인계 완료.

사망 처리.

신분 변경 완료.

 

서류를 넘기던 손이 멈췄다. 청부살인인데, 사람을 안 죽였어? 그런데 이게 왜 아빠 방에 있는 거야?

 

한참 서류를 들여다보다가 목이 타는 걸 느꼈다. 물이라도 마셔야겠다는 생각에 서류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진은 나오지 말라고 했지만, 바로 아래층 부엌에 다녀오는 정도는 괜찮을 것이다. 애초에 자기가 뭐라고. 여긴 우리 아빠의 별장인데.

 

문을 열고 복도로 나왔다. 아래층으로 이어진 계단 앞에 다다랐을 때였다. 등 뒤에서 옷깃이 스치는 소리가 났다. 뒤를 돌아보기도 전에 검은 그림자가 달려들었다. 복면을 쓴 남자가 내 몸을 벽으로 밀쳤다. 등뼈가 단단한 벽에 부딪혔다.

 

 

“윽……!”

 

 

소리를 내기도 전에 손이 목을 조여왔다. 숨이 막혀 입만 벌어졌다. 손에 들고 있던 서류가 바닥으로 흩어졌다. 남자의 손목을 붙잡고 밀어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발끝이 바닥에서 미끄러졌다. 눈앞이 점점 흐려졌다.

 

그 순간, 목을 조르던 손이 떨어져 나갔다.

우진이 남자의 뒷덜미를 잡아 벽으로 처박았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남자의 몸이 휘청였다. 미처 자세를 바로잡기도 전에 우진의 주먹이 얼굴을 후려쳤다. 남자가 바닥에 쓰러졌다.

 

나는 벽에 기대 주저앉아 목을 감쌌다. 막혀 있던 숨이 한꺼번에 들어오며 거친 기침이 터졌다. 우진이 쓰러진 남자를 내려다보다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내가 방에서 잠자코 있으랬잖아.”

“물…… 마시려고…….”

“그새를 못 참아서?”

“윽… 목아파….”

 

 

갈라진 목소리로 대꾸하자 우진이 짧게 숨을 내쉬었다. 바닥에 떨어진 서류를 발견한 그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일어나.”

 

 

우진의 손을 붙잡고 몸을 일으켰다. 우리는 쓰러진 남자를 복도에 둔 채 다시 아빠 방으로 돌아왔다. 우진은 문을 닫은 뒤에야 내 손에 2G폰을 돌려줬다.

 

 

“이 방에서는 말해도 돼.”

“아까는 왜 안 된다고 한 건데?”

“도청당하고 있으니까.”

“뭐?”

“네가 자는 동안 이 방에 있던 건 전부 찾아서 부쉈어.”

 

 

우진이 책상 아래와 커튼 뒤쪽을 가리켰다. 자세히 보니 망가진 검은 장치들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이 방만 안전해. 바깥은 어디에 더 있는지 몰라.”

“그러면 아까 내가 말한 것도…….”

“들었겠지. 네가 비밀번호를 모른다는 거.”

 

 

뒤늦게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래서 갑자기 그런 연기를 한 거야?”

“밖에서 듣는 놈들은 내가 아직 의뢰를 수행하고 있다고 믿어야 하니까.”

“그럼 방금 그 사람은…….”

“비밀번호가 거짓말이라는 걸 확인했으니 널 살려둘 이유가 없어진 거겠지.”

 

 

목을 조르던 손의 감각이 다시 살아나는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목덜미를 문질렀다. 이젠 습격이 그렇게 놀랍지도 않다. 아빠 별장까지 쫓아온 줄은 몰랐지만, 별장이라 안 알려져서 그런지 공범은 또 없는 것 같아. 얘도 공범을 찾을 기색은 안 보이고. 두 번째의 습격과는 다르게 조금 빠르게 심호흡을 되찾은 나는 빠르게 회복되는 목을 문지르다가, 바닥에 떨어진 서류로 시선을 옮겼다.

맞다. 이걸 보고있었지. 허리를 굽혀 서류를 들어올렸다. 그리곤 차우진의 이름이 적힌 페이지를 펼쳐들어 그에게 들이밀었다.

 

 

“이건 뭐야?”

“…….”

“당신이 맡았던 사람들이지?”

 

 

우진은 대답이 없었다. 서류를 보고 꽤 놀란 모양이었다. 그대로 굳어있었으니까. 내가 이 서류를 찾아서 놀란건지, 아니면 이 서류의 존재 자체에 놀란 건지는 알 길이 없었다.

나는 침을 한 번 더 삼키곤 말을 이었다. 그래, 처음부터 이상했어. 날 왜 안 죽여? 집에서도, 여기에서도. 계속 습격당할때마다 살려주잖아. 비밀번호가 아니더라도 넌 날 살려줬을거란 착각이 들 만큼. 회장은 피도 눈물도 없어서 비밀번호가 없어도 날 죽일거라면서, 날 왜 살려두는거야. 이 서류의 의미는 뭐야. 넌 대체 뭐냐고.

속사포로 궁금한 말들을 이어붙였다.

 

 

“전부 죽었다고 되어 있는데 다른 이름으로 살아 있잖아. 당신, 사람을 안 죽였어?”

“…….”

“그런데 이게 왜 아빠 방에 있어?”

 

 

따박따박 쏘아붙이는 나를 가만히 바라본다. 그러더니 내 손에 들려있는 서류를 또 한동안 조용히 내려다보았다. 나는 재촉하지않고 기다렸다. 한참을 가만히 있던 우진이 입을 열었다.

 

 

“난 네 아버지한테 목숨을 구원받은 사람이야.”

“뭐?”

“그래서 네 아버지를 도왔어.”

“…….”

“정확히는, 도왔었지. 과거에.”

 

 

우진의 시선이 서류 속 붉은 글씨 위에 내려앉았다.

 

 

“죽어야만 살 수 있는 사람들을 빼돌리는 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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