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석 단편 모음

울타리 위의 백년가약

붉게 타오르는 일몰이 마른 대지와 우리의 얼굴 위로 따스한 온기를 남기며 내려앉는다. 오랜 시간 동안 그저 편안한 친구라는 이름 뒤에 숨겨두었던 마음이, 주황빛 노을 아래서 발갛게 익어간다. 울타리 위에 나란히 걸터앉아 먼 하늘을 바라보던 중, 나는 벅차오르는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지석이를 향해 기쁘게 외친다.

"우리 서약하자!"

"어...? 갑자기 결혼 서약이라도 하자는 거야?"

순간 당황한 지석이의 볼이 노을빛보다 더 붉게 물들어간다. 그 순진한 반응이 귀여워 나도 모르게 나지막한 웃음소리를 터트린다.

"아, 아니! 그 서약 말고! '서로 약속'하자고. 이건 그냥 말뿐인 다짐이 아니라, 항상 진짜가 될 거라는 우리만의 약속이야."

"쳇, 아... 그런 의미였어? 그래, 서약하자 그럼. 근데... 나랑 진짜 결혼하고 싶었던 거면 난 반대 안 하는데."

짐짓 태연한 척 툴툴거리는 말투 속에 숨겨진 묵직한 진심. 예상치 못한 직진 고백에 심장이 터질 것처럼 쿵쾅거리기 시작한다. 부끄러움을 감추려 나는 장난스레 지석이의 어깨를 툭 찌른다.

"야~ 김지석, 왜 그래 진짜!"

"네가 먼저 시작했어."

어깨를 문지르며 나를 돌아보는 지석이의 입가에 숨길 수 없는 커다란 미소가 번져간다. 침묵의 마지막 빈틈을 채우는 지석이의 환한 미소와 눈부신 약속이, 시린 내 어깨를 포근하게 감싸 안아주는 듯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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