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석 단편 모음

연기 끝, 연애 시작

"그냥 내 허리에 팔 두르고 내가 무슨 말 할 때마다 웃는 척 좀 해줘," 지석이가 북적이는 파티장 구석을 슬쩍 살피며 나직하게 속삭였어. "고등학교 동창 녀석이 새 여자친구 데리고 이쪽으로 오고 있거든. 밤새 자랑질하려는데 한 번만 나 좀 도와주라, 어?"

나는 그의 유난스러운 한숨에 장난스레 눈을 흘겼지만, 그래도 그에게 한 걸음 바짝 다가섰어. "알았어. 대신 이번 일은 나한테 크게 빚진 거다, 김지석."

"콜!" 지석이가 즉시 깊은 보조개를 드러내며 활짝 웃었어. 그러고는 자연스럽게 길고 단단한 팔을 내 어깨 위로 둘러 나를 자신의 옆구리 쪽으로 밀착시켰지.

동창이 다가오자, 지석이는 순식간에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남자친구로 빙의했어. 고개를 내 쪽으로 숙이고, 대화를 나누는 내내 얼굴에 눈부신 미소를 가득 띄웠지. 완벽하게 진짜처럼 보이려고 했는지, 그는 남은 한 손으로 내 손가락 사이사이를 촘촘하게 얽어매며 손을 꽉 맞잡았어.

그의 손바닥은 엄청나게 따뜻했고, 내 어깨를 감싼 그의 팔 무게감이 고스란히 느껴져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어. 이건 그냥 연기야, 속으로 단호하게 주문을 외웠지. 순전히 보여주기식 쇼일 뿐이라고.

"와, 김지석. 만나는 사람 있었어? 몰랐네," 동창이 우리의 밀착된 모습을 보고 눈에 띄게 놀란 표정으로 말했어.

"어, 조용히 만나고 있었어," 지석이가 다정하고 자랑스러운 목소리로 부드럽게 대답했어. 그러고는 나를 내려다보는데, 그 눈빛이 말도 안 되게 달콤한 거야. "사실 오늘 밤 이 자리에 얘 말고 다른 사람이랑 같이 있는 건 상상도 할 수 없거든."

동창은 고개를 끄덕이며 몇 마디 의례적인 인사를 더 나누더니, 이내 인파 속으로 사라졌어. 이제 완전히 상황이 끝난 거지.

"자, 다 갔어,"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보며 속삭였어. "이제 손 놓아도 돼."

하지만 지석이는 움직이지 않았어. 그의 팔은 여전히 내 어깨를 단단히 감싸고 있었고, 손가락은 여전히 내 손과 단단히 얽혀 있었지. 오히려 내 손을 아주 조금 더 힘주어 꽉 쥐는 것 같았어. 파티장의 시끄러운 소음이 순식간에 배경으로 멀어지며, 지석이가 나를 뚫어지게 내려다보고 있다는 걸 깨달았어. 그의 얼굴에서 장난기 가득했던 표정은 완전히 지워져 있었지.

파티장의 어스름한 조명 아래, 지석이는 숨이 턱 막힐 만큼 진지하고 솔직한 눈빛으로 내 눈을 들여다보았어.

"지석아?" 내 심장이 갈비뼈를 두드리듯 거세게 뛰기 시작해서, 조심스레 그를 불렀어.

그는 나직하게 숨 가쁜 웃음을 터뜨리더니, 내 손을 잡지 않은 다른 쪽 손으로 뒷목을 긁적였어. 맞잡은 손은 절대로 놓아줄 생각이 없어 보였지. 기분 좋게 상기된 붉은 기가 그의 목덜미를 타고 올라와 두 뺨을 물들였어.

"사실은..." 지석이가 낮고 진심 어린 속삭임으로 입을 열었어. 그가 한 걸음 더 다가오면서 우리 사이의 거리가 완전히 사라졌고, 그의 가슴이 규칙적으로 오르내리는 게 고스란히 느껴졌지. "너한테 이거 부탁할 때만 해도 그냥 장난인 줄 알았어. 잠깐 도와달라고 하는 가벼운 일인 줄 알았거든."

그는 말을 잠시 멈추고, 엄지손가락으로 내 손등을 부드럽게 쓸어내렸어.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지.

"근데 너를 내 품으로 당겨 안는 순간...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네가 들을까 봐 겁나더라," 지석이는 자신의 긴장감을 숨기지 않고 바짝 상기된 미소를 지으며 고백했어. 그리고 내 눈을 흔들림 없는 진심으로 똑바로 바라보았지. "나 방금 연기한 거 아닌 것 같아. 이 손 계속 안 놓고 싶어. 우리... 이거 진짜로 하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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