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ección de cuen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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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조금씩.


말랑공 씀.




*본 글의 소재는 영광스럽게도 이제약간김태형사랑해 님께서 주신 소재입니다.




 그림을 그리다 보니 어느새 나른해진 오후가 찾아오고, 입에선 하염없이 하품이 쏟아져 나온다. 그리다 만 도화지를 치워놓고 무거워진 눈꺼풀에 눈을 감는다. 잠에 들려고 하는 순간 누군가 병실 문을 열고 들어온다. 잠에 든 나를 한 번 쓱 쳐다보는 듯한 시선이 눈을 감고 있음에도 느껴진다. 그 시선은 이내 민윤기 쪽으로 향하는 듯하다.


 “또 조금밖에 안 드셨네요. 이러면 건강에 안 좋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윤기 환자님.”


 민윤기를 담당하는 간호사인 것 같다.


 “입맛이 없는 걸 어떡해요.”


 “그래도 좀 드셔야 오래 살죠.”


 “어차피 전 시한부인데, 오래 살아 봤자 얼마나 더 오래 살겠어요.”


 부정적인 기운이 그의 몸을 에워싼다. 간호사님은 할 말을 잃은 듯하다. 간호사님의 한숨 소리만이 이 병실에 외로이 울려퍼진다. 간호사님께서는 푹 쉬라는 말만 남기고 병실을 나가신다. 나는 간호사님이 나가자마자 실눈을 떠 그를 쳐다본다. 지금 일어나면 타이밍이 좀 그런데, 그렇다고 자기에는 잠도 다 깼고. 어쩌지. 고민하는 사이에 그와 눈이 마주친다.


 나는 어색한 웃음만 지으며 일어난다. 그러곤 괜히 아무것도 없는 도화지에 연필로 끄적인다. 그는 여전히 내 쪽을 바라보고 있다. 아무 말도 없이. 차라리 무슨 말이라도 하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니 자꾸 어색해져만 간다. 나는 그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는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다. 아까까지만 해도 내 시선을 피했으면서 이제서야 내 시선과 마주하고 있다.


 “엿들은 건 아니구요, 그냥 같은 병실이다 보니 들렸을 뿐이에요. 너무 기분 나빠하진 마세요.”


 “…딱히 상관없어요.”


 “…”


 “…”


 그와 나 사이에 어색한 정적이 흘러간다. 나는 또 다시 내게서 시선을 돌리려는 그를 조심스레 붙잡으려 입을 연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한테 정을 안 주려는 거예요?”


 그는 정곡이 찔렸는지 꽤 당황스러워하며 나를 쳐다본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그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


 “정을 주는 게 무섭나 보네요. 그래서 저한테 일부러 차갑게 대한 거고?”


 그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대답한다. 아니에요, 라고. 하지만 나는 그 아니에요 속에 맞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걸 안다. 그는 지금 누구보다도 두려워 보이고, 그 누구보다도 주변 사람들을 잃기 싫어하는 게 보인다. 그러니 차라리 주변 사람들을 만들지 않는 게 낫다고 판단을 내린 듯하다. 그들을 떠나는 게 무섭지 않게, 떠나는 저를 위해 마음 아파할 사람들이 없도록.


 “저도 시한부예요.”


 그는 내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날 쳐다본다.


 “근데 전 그 두려움이 좋은 것 같아요. 제가 누군가들을 떠나는 게 두렵다면 그 누군가들이 제게 소중한 존재였다는 의미고, 제가 떠나는 게 두려운 누군가들이 있다면 저 또한 그들에게 소중한 존재였다는 의미니까요.”


 “…”


 “윤기 씨도 그걸 받아들이는 게 어때요?”


 “너무 두려워요.”


 “제가 계속 옆에 있을게요. 두렵지 않게 해 줄게요.”


 “……동정심인가요?”


 “어쩌면 그럴 수도 있죠.”


 그는 힘없는 웃음을 피식 흘려보낸다.


 “참 솔직하시네요. 동백 씨.”


 나는 싱그러운 웃음을 지으며 그를 바라본다.


 그와 내가 처음으로 마주하며 웃고, 대화를 나눈다.


 그와 내가 조금씩,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