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침묵속에
묻혀버렸다/
눈물인지 땀인지 정체모를 액체로 얼굴이 잔뜩 젖어있는 이여주는 방금 이별을 통보받고 오는 길이었다. 하늘도 이여주의 슬픔을 아는지 아니면 일부러 감정을 북받치게 하려하는건지 차디찬 빗방울이 투두둑- 이여주의 옷을 적셨다. 입술을 너무 세게 깨문 탓인지 살짝 찢긴 상처로 피가 스물스물 나왔지만 아랑곳하지않고 달렸다. 어디로 가는지 자신조차 모르는 채 그저 계속 달렸다. 어쩌면, 목적지가 그리 좋지 않은곳이 되어버릴거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계속해서 맴돌았다. 뭐 어떡해- 이미 그가 없이는 버틸 수 없는 몸인데. 달리고 달리는 발자국이 끊임없이 흐르는 눈물에 박차를 가하는건지 그와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얼굴은 더더욱 젖어만갔다. 조금의 소리도 내지 않는 폭포가 그녀의 눈에서 쏟아져만갔다. 그렇게 스스로를 묻어버릴 침묵을 눈물로 파내며 서서히 침묵속으로 묻혀갔다. 이따금 깜빡이는 가로등만이 그녀의 목적지를 알려주는듯 했다. 그 거대한 침묵속으로, 아무도 찾지 못할 어둠속으로.
침묵속에 묻혀지는 와중에도
그의 미소만이 머릿속을 맴돌뿐이었다

얼마나 달린것인지, 체력은 바닥날대로 바닥나버렸고 옆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벤치에 쓰러져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띠리리리리리리리링'
소리를 내며 울리는 핸드폰을 바라보자 제일 친한 친구였던 김태형에게 전화가 오고있었다. 말없이 전화벨소리가 끊기기를 기다려도 끊기지 않는 소리에 결국 전화를 받아버렸다.
"야 이여주 너 헤어져서 힘든거 알겠는ㄷ"
"씨발 존나 미안하다"
욕지거리와 함께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전화를 끊었다. 다시금 벨이 울렸지만 받지 않았다.
다시 받아버리면, 지금의 미쳐버린 정신과 놓아버린 삶의 의욕을 다시 붙잡아버릴것 같아서.
전화를 끊고나니 이내 호흡도 정상적으로 바뀌었다. 젠장, 더러운 세상아 오늘로 끝이구나. 그 전에 열심히 봐두겠다 라는 심정으로 천천히 숨을 느끼며 주변을 살폈다. 밤이라 그런지 몇 없는 사람과 해가 다 졌음에도 그 여운에 아직 빛이 희미하게 남아있지만 먹구름이 낀 탓에 어둑어둑한 하늘. 꼿꼿이 서있는 건물 층마다 켜져있는 불빛. 주위를 둘러보니 삶의 의욕이 다시 생길것 같았다. 고개를 숙여 바닥을 보니 잔뜩 오므라든 어깨와 한없이 처져있는 머리의 그림자가 빗물보다 빠르게 바닥을 적시도록 만들었다.
바닥을 적시다 못해 살짝 차오른 물. 그 위에 일렁이는 물결속에서 빗물과 눈물로 씻겨내려간 그와의 추억을 비춰주었다. 복잡하게 얽혀 서로 부딪히는 물결에서도 선명히 보이는 그와의 추억. 견딜 수 없는 그리움에 사무쳐 결국 그 속에 무릎꿇고말았다. 쿵-하고 둔탁한 소리와 함께 고여있던 빗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러나 튄 빗물자국은 하늘에선지 눈에선지 내려오는 물에 의해 쉽게 지워졌다. 미칠대로 미쳐버린 그녀는 하늘을 향해 힘껏 웃었다. 아하하하하! 동화속에 나오는 패악의 여인들처럼 웃어버리는 그녀. 그 뒤로 처참한 그녀의 모습을 본 자는 아무도 없었다고했다.

<김태형 시점>
"야 이여주 너 헤어져서 힘든거 알겠는ㄷ"
"씨발 존나 미안하다"
그렇게 전화가 끊긴 뒤로 여주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 걱정되는 마음에 계속해서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연결음만이 내 귀를 채울뿐 그녀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30분쯤 지나자 슬슬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나는 서둘러 외투를 걸쳐입고 문을 박차고 나갔다. 집 앞 공원, 다리등등 그녀가 갈만한 곳을 다 뒤져봐도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씨발, 이여주 어딨는거야. 욕을 곱씹으며 그녀를 찾아 이리저리 달렸다. 그렇게 여기저기 뛰어다니다 문득 든 생각.
'여기에서 민현이를 처음 만났어서, 가끔 싸우거나 기분 안좋으면 여기에 와서 그날을 떠올려보곤 해'
하필이면 황민현을 만난 장소가 고등학교 옥상이라니. 혹 무슨일이 생길까봐 고등학교로 무작정 달려나갔다. 숨을 고르며 도착한 옥상에는 아니나 다를까 그녀가 있었다. 빗물에 젖어 엉망이된 머리칼과 옷때문에 다른사람이었으면 못알아볼 정도로 그녀는 망가져있었다. 아마도 마음은 겉보다 더 망가져있을것이란걸 추측할수 있을정도로 그녀는 미칠대로 미쳐있었다. 젖어서 엉킨 머리카락속 가려진 얼굴에는 이중적인 표정을 짓고있을것이다. 입은 웃고있지만 눈에선 끊임없이 눈물이 흐르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옆으로 다가가 우산을 씌웠다. 그러자 정말 미친듯이 웃어대는 그녀. 아하하하하하! 본능에 미쳐버린 옛날이야기의 악녀들처럼 웃어대는 그녀의 눈동자는 초점을 잃은지 오래였다.
"..ㅋ..왜왔냐"
"이여주, 가자 집에"
"풉...푸하하하하!"
"벌써 버스 떠났어ㅋ"
그녀는 불길한 말을 끝으로 붙잡을새도 없이 뛰쳐나갔다. 잡을새도 없이 어느새 옥상 난간에 걸터앉은 그녀는 한눈에 보기에도 아찔했다. 그녀를 어서 붙잡지 않으면, 진짜 그녀의 목적지가 그 깊은 어둠, 아무 소리도 없는 침묵속이 되어버릴거라는 생각에 그녀에게로 달려갔다. 그러자 내 모습이 웃긴건지 한번 더 크게 웃더니 거의 다가온 나를 확 끌어당겨 그녀가 한마디를 건넸다.
"마지막, 흉한 꼴 보여서 존나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안된다고 소리를 지르려는 찰나 그녀가 내 옷깃을 놓았다. 빠르게 어둠속으로, 침묵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그녀를 붙잡지 못한채 부들거리는 동공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빨려들어가는 와중 내게 웃으며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그녀에 나도 덩달아 미쳤는지 웃으며 인사를 했다.
탁-
둔탁한 소리와 함께 그녀가 침묵속에 묻혀버렸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속으로 그녀가 묻혀버렸다. 차디찬 바닥에서 그 끝없는 침묵에서 마지막 미소를 띈 채로 잠들어버렸다. 이 모든게 꿈일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머리와 달리 몸은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분명 자살이지만
그녀의 자살행위는 타인이 만든것이었다
그녀의 탓인지 그의 탓인지는
그 누구도 모르는채로
그녀는 그렇게 침묵속에 묻혀버렸다
/
그
렇
게
,
침
묵
속
에
묻
혀
버
렸
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