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탯재/ 태잔 명재현] 낯선 서울, 너와 같은 방

낯선 서울, 너와 같은 방 4화

서울의 비는 고향에서 맞던 비와 달랐다.

명재현은 창문에 부딪히는 빗소리를 들으며 한숨을 쉬었다.

"하필 오늘..."

아침부터 예보에는 분명 맑음이라고 되어 있었다.

그래서 우산을 챙기지 않았다.

문제는 오후 수업이 끝날 무렵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는 것.

"이 정도면 그냥 물 맞고 가도 되려나."

명재현은 건물 입구에 서서 하늘을 바라봤다.

학생들은 하나둘씩 우산을 펼치며 캠퍼스를 빠져나갔다.

누군가는 친구와 우산을 나눠 쓰고.

누군가는 연인과 함께 걸어가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명재현은 괜히 외로워졌다.

서울에 올라온 지 한 달.

친구도 생겼고, 학교도 적응했다.

그런데 가끔 이런 순간에는 아직 혼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명재현."

스토리 핀 이미지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태산이었다.

"어?"

"왜 안 가."

"비 오잖아."

"그래서."

"우산 없어서."

태산은 말없이 자신의 손에 들린 우산을 들어 보였다.

명재현은 눈을 크게 떴다.

"너 우산 있었어?"

"있으니까 들고 있지."

"아니, 너 같은 사람이 우산을 챙긴다는 게 신기해서."

"나 같은 사람이 뭔데."

"맨날 계획적으로 사는 사람."

태산은 한숨을 쉬었다.

"같이 가."

명재현은 잠시 멈칫했다.

"같이?"

"기숙사 가는 길 같잖아."

"아..."

괜히 심장이 조금 빨라졌다.

물론 별 의미 없는 말이었다.

같은 기숙사.

같은 방.

같이 가는 게 당연한 일.

그런데도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고마워."

"안 젖으려고 하는 거야."

"그래도."

우산 하나는 생각보다 좁았다.

명재현은 최대한 태산 쪽으로 붙지 않으려고 했지만, 빗물이 계속 어깨에 떨어졌다.

"너 젖는다."

태산이 말했다.

"괜찮아."

"안 괜찮은데."

"너도 젖잖아."

"나는 괜찮아."

"왜?"

태산은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다 우산을 명재현 쪽으로 조금 더 기울였다.

"네가 감기 걸리면 시끄러워져."

명재현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게 걱정하는 말투야?"

"아니."

"맞는데?"

"아니라고."

"태산아."

"뭐."

"너 은근 다정하다."

그 말에 태산의 걸음이 아주 조금 느려졌다.

"착각."

"아닌데."

"착각이야."

명재현은 웃었다.

처음에는 차갑고 무서운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알면 알수록 달랐다.

말은 항상 차갑게 하는데.

행동은 계속 반대였다.

기숙사에 도착했을 때.

명재현은 옷소매를 털며 말했다.

"아, 맞다."

"뭐."

"너 왜 오늘 우산 챙겼어?"

태산은 신발을 벗으며 대답했다.

"비 온다고 했으니까."

"너 날씨 확인해?"

"응."

"진짜 계획형 인간이다."

명재현은 감탄하며 웃었다.

그러다 갑자기 생각난 듯 말했다.

"근데 나 오늘 아침에 우산 안 챙긴 거 어떻게 알았어?"

태산의 움직임이 멈췄다.

"..."

"태산아?"

"네가."

"내가?"

"어제 일기예보 보면서 내일 비 안 온다고 좋아했잖아."

명재현은 눈을 깜빡였다.

"그걸 기억해?"

"같은 방에 있으니까 들은 거야."

"그래도."

태산은 별일 아니라는 듯 책상에 앉았다.

"네가 그런 거 자주 까먹는 것도 알고."

"뭘?"

"충전기."

"..."

"학생증."

"..."

"기숙사 카드."

명재현은 입을 다물었다.

"너 나 관찰해?"

"아니."

"근데 다 알잖아."

태산은 대답하지 않았다.

명재현은 괜히 웃음이 났다.

그날 밤.

명재현은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보다가 사진첩을 열었다.

며칠 전 태산이 찍어준 사진.

캠퍼스 노을 아래 웃고 있는 자신의 모습.

사진을 한참 바라보던 명재현은 혼잣말했다.

"태산이는 이상하다."

처음에는 불편했다.

말도 없고, 표현도 없고.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사람.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자신이 서울에서 힘들지 않도록 가장 먼저 챙겨주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때 옆 침대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안 자?"

"어?"

"불 꺼."

"아, 미안."

명재현이 급하게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잠시 후.

어둠 속에서 태산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스토리 핀 이미지

"재현아."

처음이었다.

태산이 이름을 부른 건.

명재현은 눈을 크게 떴다.

"응?"

"...아니다."

"뭔데?"

"그냥."

"뭐야."

태산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명재현은 이상하게 웃음이 났다.

처음 만났을 때는 이름조차 짧게 말하던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이제는 자신의 이름을 불렀다.

아주 작은 변화였지만.

명재현에게는 꽤 큰 변화였다.

낯선 서울.

낯선 학교.

그리고 낯선 룸메이트.

그 모든 것이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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