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탯재/ 태잔 명재현] 낯선 서울, 너와 같은 방

낯선 서울, 너와 같은 방 11화

명재현은 태산에게 온 메시지를 한참 동안 바라봤다.

태산: 어제 내가 한 말, 다시 얘기하고 싶어.

괜히 심장이 빨리 뛰었다.

'무슨 말을 하려고?'

어제 자신이 들었던 말은 분명했다.

친구.

그 한마디에 괜히 마음이 복잡해졌고, 그래서 집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핑계를 대고 할머니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그런데 지금 태산이 다시 이야기를 하자고 했다.

명재현은 한참 고민하다 답장을 보냈다.

재현: 그래. 내일 얘기하자.

다음 날 오후.

명재현이 기숙사 문을 열자 태산은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왔어."

"응."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인사였지만 둘 사이에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명재현이 가방을 내려놓고 침대에 앉았다.

"어제 무슨 말 하려고 했어?"

태산은 잠시 입을 열지 못했다.

머릿속으로 수십 번 생각했던 말인데 막상 재현을 마주하니 쉽게 나오지 않았다.

"어제 내가 너한테 친구라고 했잖아."

"응."

"그거..."

태산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틀린 말은 아닌데, 그게 전부는 아니야."

명재현의 눈이 조금 커졌다.

태산은 손을 꽉 쥐었다.

"처음에는 그냥 룸메이트라고 생각했어, 서울에 올라와서 우연히 같은 방을 쓰게 된 사람이고, 시끄럽고 정신없어서 피곤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네가 늦으면 계속 기다리게 되고, 누구랑 있는지 신경 쓰이고, 다른 사람이 너한테 가까이 가는 것도 싫어졌어."

명재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태산은 숨을 한번 고르고 말을 이었다.

"그리고 네가 다른 기숙사로 옮길 수도 있다고 했을 때, 네가 내 옆에서 없어지는 게 싫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어, 그때 알았어."

태산이 재현을 똑바로 바라봤다.

"나는 네가 그냥 친구라서 좋은 게 아니라는 걸."

방 안이 조용해졌다.

명재현은 손끝을 만지작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래서?"

"좋아해."

짧은 말이었다.

하지만 그 한마디를 하기까지 태산에게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어, 그래서 나도 한동안 이게 무슨 감정인지 몰랐는데 이제는 확실해, 나는 네가 내 룸메이트라서 좋은 게 아니라 그냥 명재현이라서 좋아."

명재현의 눈가가 조금 붉어졌다.

그리고 피식 웃었다.

"너 진짜 반칙이다."

"왜."

"나는 어제부터 계속 네가 나 싫어하는 줄 알고 혼자 고민했는데, 갑자기 그렇게 말하면 어떡해."

태산의 표정이 조금 굳었다.

"싫어할 리가 없잖아."

"그럼 어제 왜 친구라고 했어?"

"무서워서."

"네가?"

"응."

태산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네가 나를 친구로만 생각하는데 괜히 말해서 지금까지의 관계까지 망칠까 봐."

명재현은 잠시 태산을 바라보다가 웃었다.

"나도 사실 무서웠어."

"뭐가."

"내가 너를 좋아하는 것 같아서."

태산의 눈이 커졌다.

명재현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처음에는 그냥 서울에서 처음 만난 룸메이트라서 편한 줄 알았는데, 네가 없으면 방이 너무 조용하고, 다른 사람이랑 있으면 괜히 신경 쓰이고, 네가 나 기다리고 있으면 좋고, 우산 하나 같이 쓰던 것도 계속 생각나고."

명재현은 작게 웃었다.

"그러다 보니까 어느 순간부터 나도 네가 그냥 룸메이트가 아니더라."

태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명재현이 먼저 물었다.

 

"그럼 나 기숙사 안 옮겨도 돼?"

태산은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안 갔으면 좋겠어."

"왜?"

"같이 있고 싶으니까."

명재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안 갈게."

그날 저녁.

두 사람은 오랜만에 함께 학교 근처를 걸었다.

처음 서울에 올라왔던 날과 같은 길이었다.

명재현은 주변을 둘러보다 말했다.

"우리 처음 만났을 때 기억나?"

"응."

"너 그때 진짜 무서웠어."

"내가?"

"응, 말도 없고 표정도 없고."

"너는 시끄러웠고."

"지금도?"

"응."

명재현이 웃음을 터뜨렸다.

"근데 이제는 네가 말 안 하면 더 이상해."

태산도 작게 웃었다.

잠시 후 명재현이 태산의 옆으로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갔다.

두 사람의 손등이 스쳤다.

태산이 잠시 망설이다 손을 내렸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명재현의 손을 잡았다.

명재현은 놀란 듯 태산을 바라봤지만 손을 빼지 않았다.

오히려 손가락을 살짝 맞물렸다.

"태산아."

"응."

"우리 이제 뭐야?"

태산은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룸메이트."

명재현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그건 맞는데."

"그리고."

태산이 잡은 손에 힘을 조금 더 줬다.

"좋아하는 사이."

명재현은 웃으며 태산의 어깨에 살짝 기대었다.

"그 말 좋다."

며칠 뒤.

기숙사 방.

명재현은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보고 있었고 태산은 책상에서 과제를 하고 있었다.

예전과 똑같은 풍경이었다.

하지만 달라진 게 하나 있었다.

"태산아."

"응."

"나 오늘 과 사람들이랑 밥 먹고 올게."

"몇 시에 와?"

"아마 9시?"

"알겠어."

잠시 후 명재현이 말했다.

"질투 안 해?"

태산이 고개를 들었다.

"안 해."

"진짜?"

"응."

명재현이 웃었다.

"왜?"

태산도 따라 웃었다.

"어차피 네가 돌아올 곳은 여기니까."

명재현은 잠시 태산을 바라보다가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태산의 볼에 짧게 입을 맞췄다.

"맞아."

태산의 얼굴이 굳었다.

"갑자기 뭐 해."

"좋아서."

"공부해야 돼."

"알았어."

명재현은 웃으며 다시 침대에 누웠다.

창밖으로 서울의 밤이 펼쳐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낯설었던 도시.

처음에는 가장 어색했던 룸메이트.

하지만 이제 명재현에게 서울에서 가장 익숙한 곳은 이 작은 기숙사 방이었고, 태산에게 가장 기다려지는 사람은 언제나 명재현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알았다.

서울에 올라와 처음 만난 룸메이트가, 어느새 서로의 가장 특별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두 사람의 대학 생활은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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