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탯사연에 / 태산 빙의글] 세 번째 결말

1화. 다시 눈을 뜨다

마지막 기억은 그의 손이었다.

다리 위였다. 밤이었고, 차는 너무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조수석에서 나는 라디오 볼륨을 줄이며 물었다.

 

"근데 오늘 왜 이렇게 조용해?"

"그냥."

 

동민은 짧게 대답하고 앞만 봤다. 평소랑 다를 게 없는 반응이라 나는 별생각 없이 창밖을 봤다.

 

"…브레이크가 안 들어."

 

동민이 낮게 말했다. 나는 순간 그게 농담인 줄 알았다.

 

"뭐? 지금 그런 농담을……."

"손잡이 잡아."

 

농담이 아니었다. 그의 발이 브레이크를 몇 번이나 밟았지만 차는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앞에 다리 난간이 점점 커졌다.

 

"…이 차, 성호 실장이 배정한 건데."

 

동민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때는 그 이름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동민이 한 손으로 핸들을 붙잡은 채, 다른 팔로 내 머리를 감쌌다.

 

"눈 감아."

"동민아, 우리……."

"괜찮아."

 

괜찮다는 사람 얼굴이 제일 안 괜찮았다. 웃으려고 했는데 눈은 하나도 웃지 않았다.

그게 내가 본 그의 마지막 얼굴이었다.

굉음이 났다. 유리가 깨졌다. 손목이 핸들 어딘가에 부딪히며 시계 유리에 쩍, 금이 갔다. 그다음은 아무것도 없었다.

 

 

 

*

 

 

 

숨이 턱, 하고 터졌다.

 

물에 빠졌다가 겨우 올라온 사람처럼 나는 크게 숨을 들이켰다.

 

형광등, 스테인리스 벽, 숫자 4가 깜빡이는 표시창.

엘리베이터 안이었다. 그리고 바로 옆에, 동민이 서 있었다.

 

검은 점퍼, 헝클어진 머리, 잠이 덜 깬 얼굴. 다친 데 하나 없이 멀쩡한 얼굴이었다.

숨이 멎었다.

 

'…나 죽은 거 아니었나?'

 

방금까지 분명 저 사람이랑 같이 차 안에 있었다. 브레이크가 안 들었고, 그가 내 머리를 감쌌고, 굉음이 나고, 그다음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그 손이 지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내 옆에 멀쩡히 있었다.

나는 정신없이 그의 팔을 붙잡았다.

 

"동민아! 너 괜찮아? 다친 데 없어?"

 

그가 놀란 얼굴로 팔을 슬쩍 뺐다.

 

"…네? 왜 그러세요, 갑자기."

 

존댓말이었다.

그 말투에 정신이 확 들었다. 방금까지 나를 끌어안다시피 감싸던 사람이, 지금은 낯선 사람 보듯 나를 조심스럽게 밀어내고 있었다.

 

"…죄송해요. 아니에요, 그냥……."

 

나는 얼른 팔을 놓고 한 발 물러섰다.

손목에서 딸깍 소리가 났다. 아빠가 남긴 낡은 손목시계였다. 십 년째 멈춰 있던 초침이 딱 한 칸 움직이더니 다시 멈췄다.

 

띵.

 

문이 열렸다.

 

"…안 내려요?"

 

동민이 열림 버튼을 누른 채 먼저 내리려다 돌아보며 물었다. 방금 나를 이상하게 보던 얼굴은 벌써 사라지고, 원래의 무심한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뭐지, 방금 그건.'

 

나는 고개를 숙이고 그를 지나쳐 복도로 나왔다.

 

 

 

*

 

 

 

4층 복도는 조용했다. 왼쪽은 우리 회계사무소, 오른쪽 유리문에는 'BND 리서치'라는 글씨가 붙어 있었다. 채권 조사 회사라는 것 말고는 아는 게 없었다.

무심코 그의 손을 봤다.

손등에 긁힌 자국이 있었다. 두 줄, 비스듬히.

 

'…어, 이거 나 아는데.'

 

그 순간 그가 내 시선을 알아채고 손을 등 뒤로 숨겼다.

저럴 줄 알았다. 정확히는, 저 행동이 나오기 전에 이미 머릿속에 있었다.

 

"손……."

"…괜찮은데요."

 

내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대답이 나왔다. 그리고 그 대답도, 이미 알고 있었다.

 

저번엔, 나는 여기서 밴드를 내밀었었다.

 

"괜찮은데요" 하면서 물러났다가, 결국 받아 들고, 귀 끝이 빨개졌었다.

 

"…고맙습니다." 작은 목소리로.

 

"……왜요."

 

동민의 목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손을 등 뒤에 숨긴 채, 경계하는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뭐 묻었어요? 제 얼굴에."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는 잠깐 더 보다가 말없이 유리문을 밀고 들어갔다.

혼자 남은 복도에서 나는 한참 서 있었다.

데자뷔라기엔 너무 정확했다.

 

 

 

*

 

 

 

화장실 거울 앞에서 찬물을 틀었다.

 

거울 속 나는 멀쩡했다. 이마도, 팔도, 부러졌어야 할 갈비뼈도. 어제 다려 입은 셔츠까지 그대로였다.

찬물을 얼굴에 끼얹었다. 손끝이 시릴 만큼 차가웠다. 꿈이라기엔 감각이 너무 생생했다.

 

'그래, 사고 후유증이야. 데자뷔일 뿐이야.'

 

근데 데자뷔는 다음 대사를 미리 알려 주지 않는다.

그때 손목이 눈에 들어왔다.

시계 유리에 쩍, 금이 가 있었다.

 

사고 순간, 핸들에 부딪히며 생겼던 바로 그 금이었다.

 

'…이게 왜 아직도 있어.'

 

꿈이었다면 이 금은 없어야 했다. 사고가 나기도 전인 지금, 이 시계는 멀쩡해야 정상이었다.

 

"…설마."

 

거울 속 내가 대답 대신 물을 뚝뚝 흘렸다.

 

 

 

*

 

 

 

사무소 문을 여는 순간, 다음에 무슨 말이 나올지 다 알 것 같았다.

 

'다들 왔죠? 마감이 이틀 앞당겨졌어요.'

"다들 왔죠? 마감이 이틀 앞당겨졌어요."

 

소장님이 서류를 흔들며 말했다. 한 글자도 다르지 않았다.

 

'여주야! 오늘 점심 김밥 어때? 내가 쏠게.'

"여주야! 오늘 점심 김밥 어때? 내가 쏠게."

 

지원 언니가 손을 흔들며 말했다. 이것도 그대로였다.

그런데 언니가 내 얼굴을 보더니 표정이 굳었다.

 

"…근데 너 얼굴이 왜 이렇게 하얘? 무슨 일 있어?"

 

이건 처음 듣는 말이었다. 하긴, 방금 죽었다 살아난 얼굴이 멀쩡할 리가.

 

"……아니에요. 김밥 좋아요."

 

자리에 앉아 모니터를 켰다. 어제 보던 거래처 장부가 그대로였다. 회수액 32억 원, 입금액 29억 6,000만 원.

2억 4,000만 원이 비어 있었다. 어제는 그냥 오타인가 보다 하고 넘어갔던 숫자였다.

 

시선이 벽걸이 달력으로 갔다.

 

소장님이 8주 뒤 날짜에 빨간 동그라미를 쳐 뒀다. 옆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정산'.

나는 저 동그라미 밑에서 죽었다.

손끝이 차갑게 식었다.

 

나는 돌아온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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