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ta de la amistad

“계엄령을 해지하라!! 전두환 대통령은 물러나라!!”


연준은 이불 안에서 귀를 막았다. 도망쳐왔으면서도 공부는 하겠답시고 챙겨온 두꺼운 전공책으로 자기 머리를 한번 치고 기절해버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며칠간 계속해서 이어진 시위에 밖에 나갈 수도 없어 하루에 라면 반봉지로 버티느라 연준의 사고는 생각보다 예민해져 있었다.


“최루탄이다!!”


광주의 소음을 배경음악 삼아 연준은 오늘의 끼니를 챙기기 위해 라면봉지로 손을 뻗었다. 텅 빈 봉지가 그를 맞이했다. 1초 동안 자살충동이 들었다. 주여, 정녕 이 방법 밖엔 없는 겁니까. 이미 한껏 신경이 날카로워진 연준은 수건으로 코와 입을 가리고서 밖으로 나갔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굶을 수 없다. 매슬로 이론 또한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는 생리적 욕구라고 말하지 않는가.

최대한 빨리 다녀오는 것이 그의 목적이었다. 연준은 바삐 거리를 뛰어갔다. 최루탄 가스가 수건을 뚫고 지독하게 스며왔다. 늘상 가던 장 할머니네 슈퍼는 문이 닫혀 있었다. 연준은 이 가엾은 인간에게 양식 조차 주지 않는 무심한 주님을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내밀고 싶은 마음을 눌러담았다.

그때 뒤에서 군인 하나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어이! 거기 뭐야!”


연준은 부리나케 도망쳤다. 하필이면 수건 때문에 시위대로 오해 받을 것이 뭔가. 군인은 기다란 대검을 들고 연준을 쫓아왔다. 이미 그 검에 피가 묻다 못해 흐르고 있었다. 최루탄을 피해, 저가 죽인 빨갱이 리스트에 한 사람이라도 더 올리고 싶어하는 군인을 피해 연준은 사람들 사이를 비집어가며 뛰었다. 시위대의 방향의 정반대였다.

연준이 뒤로 도망칠 동안 시위대는 앞으로 나아갔다. 긴 시위 행렬은 끝이 보이질 않았다. 군인을 어느정도 따돌린 연준은 담벼락 뒤에 숨어 숨을 골랐다.


“비켜요.”


어떤 여자아이가 씨근거리며 말했다. 바로 옆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연준은 기절할 뻔 했다. 여자아이는 이제 중학생 쯤 되어 보였다. 달리다 넘어졌는지 무릎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가라고요.”
“뭐?”
“그쪽이 여기 있으면 우리 둘다 들켜요. 그니까 다른 곳 가서 숨으라고요.”


연준은 잠시 멍하니 그 아이를 바라보았다.


“딴데 알아보라니까요!”


아이가 빽 소리를 지르며 연준을 힘껏 떠밀었다. 연준은 아이의 힘에 떠밀려 비틀거리며 담벼락에서 멀어졌다. 총칼 앞에서 남에게 베풀 인정이랄 것은 없음을 뼈저리게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허탈함이 몰려왔다. 문득 연준은 시위대와 군인들이 무척이나 조용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시위대와 군인들이 큰 간격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고 있었고 그 간격 사이에는 한 사람과 군인 세 명이 있었다. 군인들은 그 사람을 몽둥이로 무자비하게 내리쳤고 시위대는 바로 맞은편에 총을 장전한 군인들이 서 있던 탓에 아이고…어쩔까나…하는 소리만 내뱉으며 가만히 서 있었다. 맞고 있는 남자는 미동도 거의 하지 않았다. 연준은 비로소 눈앞이 캄캄해졌다. 헛구역질이 나올 것만 같았다.


다시 말하지만, 연준은 저가 시위에 참여하는 것은 위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또한 군인들과 맞설 깡도 없는 사람이었다.


“당장 멈추지 못합니까!!!”


연준이 포효했다. 그의 큰 소리에 다들 고개를 돌렸다. 몽둥이질을 하던 군인들도 몽둥이를 허공에 고정한채로 연준쪽을 쳐다보았다. 사람이 위급한 상황에 몰리면 초인적인 무언가가 생긴다고 했던가. 연준은 남자 쪽으로 달려가 그의 옆에 무릎을 꿇었다. 기절한 것 같았다. 심장박동이 미약했다. 피가 흐르는 앳된 얼굴을 보아하니 아직 대학교 새내기인듯 싶었다. 치가 떨렸다.

세 군인 중 하나가 픽 웃었다. 재미있는 것을 본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는 권총을 하늘 위로 큰 소리가 나도록 쐈다. 광주에 처음으로 울린 실탄의 소리에 다들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그 군인이 연준의 머리에 총을 들이밀었다. 차갑고 딱딱한 무기의 촉감에 겁을 먹을 법도 했지만 연준은 가만히 있었다.


“안 떨어지면 쏘겠다.”
“……”
“초면인 사람을 위해 버리기엔 목숨이 아깝지 않은가. 1미터 이상 떨어지지 않으면 사격하겠다.”


그 비열하고 악랄한 목소리가 연준이 애써 외면해왔던 그의 양심을 건드렸던 것 같다. 연준은 눈을 희번득 뜨고 총구를 한 손으로 꽉 붙잡았다.


“쏴봐, 쏴보라고!”
“이게…!”
“왜, 쫄리냐?! 쏜다며! 쏴보라고!”


예상하지 못한 변수인지 군인이 제 상관이지 싶은 사람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오늘은 이만 철수한다.”


상관의 명령이 떨어지자 군인들이 우르르르 물러갔다. 권총을 대던 군인도 땅바닥에 침을 뱉고서는 가버렸다. 연준은 흙먼지를 털고 일어섰다. 시위대들도 부상자들을 병원에 옮기느라 바빴다.


“……그러게 이런 위험한 짓을 왜 했어요, 이렇게 맞을 걸 알면서.”


연준은 기절한 남자를 부축해 병원으로 향했다. 긴장이 풀린 탓인지 다리의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지금 병원에 자리가 다 찼어요.”


연준은 입 안에서 욕을 짓씹었다. 당장이라도 옆의 이 사람이 숨이 끊어질 것만 같았다. 지쳐보이시는데 물이라도 한잔 드릴까요? 간호사가 내미는 물을 들이킨 연준은 남자를 등에 업었다. 그리고 그가 달릴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로 집을 향해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