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이후, 여주는 며칠을 방 안에만 틀어박혀 지냈다.
밥상을 물릴 때마다 단이의 걱정스러운 눈빛이 뒤따랐지만,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머릿속은 온통 뒤엉킨 실타래 같았다.
아버지를 원망하는 마음과, 그럴 수밖에 없었을 거라 이해하려는 마음이 하루에도 몇 번씩 자리를 바꿨다.
원망이 앞설 때면, 그 침묵 하나가 한 가문을 통째로 무너뜨렸다는 사실이 가슴을 짓눌렀다.
그 침묵만 아니었다면, 범규는 부모를 잃지도, 십 년을 떠돌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해가 앞설 때면, 그 자리에 자신이었어도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지 자신이 없어졌다.
만약 자신이 그때의 아버지였다면, 과연 가족을 버리면서까지 진실을 택할 수 있었을까.
그 두 마음 사이를 오가느라, 여주는 하루하루가 버거웠다.
잠들어도 꿈속까지 그 두 마음이 따라와, 눈을 뜨면 늘 온몸이 젖어 있었다.
*
사흘째 되던 날, 단이가 더는 못 참겠다는 얼굴로 방문을 열어젖혔다.
"아가씨, 이러다 몸까지 상하시겠어요. 어르신도 진지를 통 못 드시고 계세요."
그 말에 여주는 마지못해 몸을 일으켰다.
아버지도 자신 못지않게 무너져 있을 거라는 생각이, 그제야 스쳐 지나갔다.
밥상 앞에 마주 앉은 두 사람 사이, 며칠 만에 처음으로 말이 오갔다.
"진지 드시죠, 아버지."
식사 자리에서 마주쳐도, 여주는 그 한마디 외엔 아무 말도 건네지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이런저런 이야기로 밥상머리가 시끄러웠을 텐데, 지금은 수저 소리만 오갔다.
김유형도 딸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수저를 들 뿐, 먼저 입을 열지 못했다.
밥그릇 부딪히는 소리만 유독 크게 울리는 저녁이었다.
숟가락을 내려놓던 여주가 문득 물었다.
"그때, 진실을 밝혔더라면…… 최가 어른이 사실 수 있었을까요?"
김유형의 손이 멈췄다.
"…모르겠다. 어쩌면 나도, 그 자리에서 함께 처형당했을지도."
"그래도…… 그랬어야 하는 거 아니었을까요."
"…그래. 그랬어야 했겠지."
담담하게 인정하는 그 대답이, 오히려 여주의 마음을 더 아프게 했다.
차라리 변명이라도 하셨다면, 이렇게까지 마음이 무겁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아버지는 그저 묵묵히, 스스로에게 내린 벌을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 같았다.
*
밤이 되어 홀로 방에 남으면, 여주는 자꾸만 그가 이 집에 머물던 날들을 되짚었다.
수틀 앞에서 능청스럽게 놀리던 말투, 소나기를 함께 맞으며 웃던 처마 밑, 나란히 앉아 올려다보던 밤하늘.
그 모든 순간이 실은 낯익음이 아니라, 잊고 있던 기억이 되살아나던 순간들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범규는, 처음부터 자신을 알아보고 있었던 걸까.
그리고 그 뒤엔, 감히 묻기 두려운 물음 하나가 남았다.
자신을, 아니 이 집을, 범규는 얼마나 원망하고 있을까.
아버지의 침묵이 그의 가족을 무너뜨렸으니, 원망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다치고 쓰러진 몸으로 이 집에 흘러들어와, 그저 웃기만 했다.
그 웃음이 진심이었는지, 아니면 견뎌내기 위한 안간힘이었는지, 여주는 알 수 없었다.
여주는 저도 모르게 그가 머물렀던 빈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문틈으로 들어오는 달빛이, 텅 빈 이부자리를 희미하게 비추고 있었다.
그날, 옥패를 보여주며 "이 옥패 모르십니까?" 라고 묻던 그 얼굴이 다시 떠올랐다.
정말 알고 있었다면, 그 순간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까.
정체를 밝히고, 나를 원망하고, 따져 물었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텐데.
그런데도 그는 아무 내색 없이, 계속 이 집에 머물렀다.
왜였을까. 그저 몸을 추스를 곳이 필요해서였을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던 걸까.
물음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지만, 어느 것 하나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여주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대답 없는 방을 향해 나직이 되뇌었다.
"…왜 아무 말도 안 하셨어요. 대체 왜."
두려움에 떨며 자식을 지키려 했던 아버지의 마음도, 자식인 자신은 결국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원망과 이해, 그 사이 어디쯤에서 여주는 자꾸만 무너져 내렸다.
어느 쪽으로도 완전히 기울지 못한 채, 마음만 하루하루 닳아갔다.
이러다간 그 모든 물음들이, 결국 자신을 갉아먹을 것만 같았다.
문득 그 나무 패를 꺼내 손에 쥐었다. 반쪽짜리 패는 여전히 차가웠다.
이 작은 나무 조각 하나가, 지금 그와 이어진 유일한 끈이었다.
옥패의 나머지 반쪽처럼, 이 마음도 반쪽만 남은 채 갈 곳을 잃은 듯했다.
이 반쪽의 주인을 찾아야, 이 수많은 물음들도 어딘가 답을 얻을 것 같았다.
원망도, 그리움도, 그 모든 물음도, 결국 그를 다시 만나야만 끝날 일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