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바투 연숩/ 연준 수빈] 붉은 둥지

[연숩] 붉은 둥지 11화

 

가문의 정예 부대가 혼비백산하여 도망친 마당에는 차가운 적막만이 감돌았다.

깨진 결계석 파편과 흩어진 은빛 부적들이 달빛을 받아 쓸쓸하게 반짝였다.

수빈은 붉은 마력으로 이루어졌던 검을 천천히 거두었다. 손끝에 남은 서늘한 감각이 가라앉자, 수빈은 참았던 숨을 길게 내쉬었다. 수십 년간 자신을 죄어오던 가문이라는 거대한 굴레가 마침내 산산조각 난 순간이었다.

“...끝났네요.”

수빈이 멀어지는 헌터들의 잔상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연준은 뒤에서 수빈의 어깨에 가볍게 손을 얹었다.

연준 특유의 서늘한 기운과 짙은 장미 향이 수빈을 부드럽게 감쌌다. 연준은 수빈의 어깨를 돌려 세워 시선을 맞추었다. 연준의 붉은 눈동자에는 수빈을 향한 아득한 애정과 은밀한 안도감이 일렁이고 있었다.

“후회해?”

연준이 물었다.

“네 가문이고, 네가 평생 자란 곳이잖아.”

“후회 안 해요.”

수빈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곳에 제 자리는 없었어요. 나를 실패작이라 부르며 버린 곳보다는... 제 곁을 지켜주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봐 준 연준 씨 옆이 훨씬 편해요.”

수빈의 담담한 고백에 연준의 입꼬리가 나른하게 말려 올라갔다.

연준은 수빈의 머리를 쓱쓱 쓸어넘겨 준 뒤, 손을 잡고 저택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전투가 끝난 저택은 빠르게 정돈되어 갔다. 집사와 하인들은 주인의 완벽한 승리와, 또 한 명의 강력한 순혈 지배자로 거듭난 수빈에게 깊은 경의를 표했다.

더 이상 수빈을 단순한 ‘인간 죄수’나 ‘위험요소’로 보는 시선은 존재하지 않았다.

침실로 돌아온 두 사람 사이에는 묵직한 안도감이 감돌았다.

전투의 열기가 가라앉자, 수빈은 비로소 피로감이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뱀파이어의 신체를 가졌다고 해서 마력을 쏟아부은 후의 정신적 중압감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수빈이 침대 끄트머리에 털썩 앉아 지친 기색을 보이자, 연준이 그 옆에 차분히 다가앉았다.

“고생했어, 오늘.”

연준이 수빈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수빈은 피식 웃으며 연준의 어깨에 고개를 살짝 기댔다.

“가문 사람들은 전부 정리됐지만... 여전히 이상해요. 제가 정말 그 헌터 가문의 최수빈이었나 싶기도 하고.”

“넌 여전히 최수빈이지. 다만 이제 내 저택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된 것뿐이고.”

연준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수빈의 마음을 편안하게 가라앉혀 주었다.

수빈은 연준의 곁에서 비로소 자신이 온전히 보호받고 있음을 느꼈다.

가문의 그 어떤 어른도 주지 않았던 인정과 온기였다.

그때, 저택 아래층에서 집사가 급히 올라와 문을 두드렸다.

“연준 님, 잠시 보셔야 할 서류가 있습니다.

헌터 가문이 물러나며 남기고 간 수수께끼의 봉인이 저택 외곽 산맥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가문과의 싸움은 끝났지만, 그들이 남긴 마지막 잔재와 새로운 의문이 아직 남아있었다.

연준과 수빈은 서로를 바라보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함께 헤쳐나가야 할 진짜 '완전한 평화'를 향한 마지막 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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