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선을 넘지 않기로 했다
116화. 선수훈지

sophie97
2026.08.11Vistas 29
언덕에서 내려와 집 근처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다 뜬 후였다.
우리는 집 근처 레스토랑에서
이른 아침을 먹었다.
"우리 둘 다 지금 엄청 초췌해 보이는 거 알아요?
훈지 씨는 땀에 절고,
나는 피곤에 절어서...
정말 못 봐주겠다."
"우리 아침 먹고 들어가서 좀 자요.
진짜 너무 피곤하다.
밤새 정아 씨 찾으러 다녔더니...ㅎ"
"우린...
전생에 무슨 인연이었길래 이렇게 만났을까요?
나는 전생이 꼭 있는 거 같아요.
그 때 만났던 사람들과 다른 관계가 되어
지금 만나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요."
나는 잠시 지난 새벽 바다를 보며
했던 생각을 떠올렸다.
"훈지 씨는 다음 생에는 어떤 사람이고 싶어요?"
"갑자기요?"
"바다를 내려다 보면서...
다음 생에 줄리앙을 만나면
그때는... 꼭 좋은 연인이 되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가 나를 또 만나면 어떻게 하려고
그런 말을 해요?"
"어차피 전생을 기억하지 못하잖아요.
그런 거 아니에요?"
"그건 모르겠고...
다음 생에도 나랑 만나는 걸로 해요."
"두 번 연속으로요?
우리 다른 사람도 만나고 좀 그래요.
한 번 만났으면 됐지... 뭘 두 번이나..."
"어~? 약속 안 지킬 거에요?
이거 봐... 이거 봐...
사람이 화장실 들어갈 때 나올 때 이렇게 다르다!
우리 위시 리스트에 거짓말하지 않기
있어요, 없어요?"
"거짓말을 했다구요? 내가 지금?"
"참...나...
아까는 나 없으면 안 되겠다고 하더니만.
이제 와서 다음 생에는 만나지 말자고 하고."
훈지 씨의 장난을 받아주고 있다 보니,
조금 전까지 가슴을 짓누르던 슬픔도
잠시 잊혀졌다.
나는 그의 미소를 보다가
갑자기 궁금한 게 떠올랐다.
"훈지 씨는 연애 몇 번 해 봤어요?"
"헐... 그런 건 묻지 않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이럴 때 보면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는 말을
너무 능수능란하게 해요.
이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의심스러워요.
대체 얼마나 많은 여자들을 만났길래 저러는 걸까..."
갑자기 예전의 기억 하나가 생각났다.
"예전에 우리 수업 초반에
휴대폰에 훈지 씨 이름을 뭐라고
저장했냐고 물었을 때도,
정아 씨라고 부르면 안 되냐고 했을 때도...
지금 생각해 보니 너무 선수 느낌이잖아!"
그는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나를 지금 선수 취급하는 거에요?"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그냥 물어보는 거에요?
얼마나 많은 여자들을 만났길래
이렇게 연애를 잘하는지"
나는 그의 억울해 하는 표정이 재미있었다.
"사실... 내가 연애에 타고난 부분이 좀 있어요.
다른 사람의 기분을 잘 파악하고,
맞춰 줄 줄 안다고 해야 하나.
내 영업 비밀을 오늘 이렇게 풀게 되었네...ㅎ"
"그건 연기를 할 때도 장점이네요.
상대 배우를 잘 배려해 줄 수 있잖아요."
이 말을 마치고, 나는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데 그런 거 너무 남발하면
진짜 선수되는 거에요.
명심해요!"
우리는 아침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씻자마자 그대로 잠이 들었다.
해가 지고 집안이 어둑질 때쯤 잠에서 깼다.
마음도 몸도 지쳤던 탓인지
훈지 씨는 내가 일어난 것도 모른 채
곤히 자고 있었다.
나는 살짝 침실 문을 닫고 나와
무엇을 해야 하나 망설였다.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으면
다시 줄리앙 생각이 떠오를 것 같아서
뭐라도 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아까 훈지 씨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여행.
따지고 보면, 한국에서 캠핑을 갔던 것 말고는
우리가 함께 가는 첫번째 여행이다.
어디가 좋을지 찾아보면서
나는 어느새 설레고 있었다.
"이렇게 의견이 안 맞아서 어떻게 여행을 같이 해요?"
<117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