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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올해로 스물둘
다들 이런 얘기들을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대학 가면 예뻐진다, 대학가면 남자친구 생긴다..뭐 등등?
그리고 그 얘기들을 철석같이 믿은 사람도 많을 것이다.
물론 나도 포함이다..^
그렇게 죽어라 공부해서 들어간 화연대, 물리치료과.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얘기들이 다 거짓말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긴 했지만,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던 일이었긴 했다.
근데 어느날, 한 선배가 그러더라고
누구에게나 운명은 있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 운명은 어느샌가 내 마음에 들어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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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김없이 밤늦게까지 열람실에서 미뤄둔 공부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초가을이라 그런지 반팔만
입기엔 제법 쌀쌀했다. 그리고 길거리는 사람 하나 없이 쓸쓸했다. 하긴 새벽 2시에 사람이 북적이는 것도 이상하긴 하다만...
그래서인지 밤늦게 귀가할 때면 이어폰으로 노래를 들으면서 걷는 것이 습관이었다. 음량을 제일 크게 해두는 것도 잊지 않고 말이다.
소식 하나 없이 조용한 폰을 붙잡고 인별 그램에서 무한 세로 고침을 하다가 지쳐갈 때 즈음-
- ..아!
뛰어오던 누군가와 어깨를 부딪히고
둔탁한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러니까.....내가 아니라 핸드폰이.
놀랄 틈도 없이 당장 바닥에 떨어진 휴대폰을 주워서
뒤집어 보는데…당연하게도 액정은 박살이 나있었다.
- 아 미쳤어....산지 얼마나 됐다고.......ㅜㅜ
울먹거리며 박살난 휴대폰을 잡고 있으니
뒤에서는 괜찮냐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너 같으면 괜찮겠냐.....? 내 폰 이렇게 만든 놈
얼굴이나 보자. 넌 디졌다. 하고 고개를 돌렸더니

“ 괜찮아요? ”
- 미친 존나 잘생ㄱ..헉
젖은 머리, 훅 들어오는 바디워시 향기, 별을 박아놓은 듯한 눈동자 그리고 내 이상형과 쏙 빼닮은 얼굴에 살짝 설렐 뻔 했으나 이내 정신을 차리고 깨진 폰을 그의 얼굴에 들어보였다.
- 이거 안보여요??! 이게 괜찮아 보여요??
" 보여요. 근데 왜 짜증이지? "
- 그쪽은 어려서 잘 모르시겠죠!!!
- 딱 봐도 고딩같구만.....
고딩이라는 말에 그 남자는 확 찌뿌렸던 인상을
풀고 어이가 없다는 듯 살짝 웃어보였다.
- ..웃어? 재밌어요??
" 재미가 없진 않네요. "
- ....뭐요???
“ 저 고딩 맞으니까 한번만 좀 봐주시죠? ”
“ 누님? ”
역시나 고삐리는 맞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하필이면 초극도로 예민한 상태의 나를 건드려버린 거라고.
- 고딩이라고 봐줄 만큼 제 성격이 좋진 않아서요?
" 참, 되게 깐깐하네. "
- ㅁ. 뭐어? 깐깐????
" 그럼 번호 찍으세요. "
그러곤 자기 폰을 나에게 쥐여주었다.
- ㅈ.ㅈ지금 번호 따는 거예요?
- 아무리 그래도 성인이랑 미잔데??
" 사례 안받으실래요? 싫음 말고. "
- 아 아니. 줘요 찍을게
후...근데 이상하게 기분이 나빴다.
나 지금 고작 남고딩 하나한테 말로 지고 있는 건가?
“ 연락할게요. “
” …김여주..누님? “
따라가보니, 내 품에 안겨있는 노트북에 대놓고 붙어있는
이름 스티커가 있었다.
- 아 이거 내 이름 아닌ㄷ…..어라라
다시 시선을 앞으로 돌리니 남고딩은 이미 내 시야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저 멀리 뛰어가는 뒷모습만 보일 뿐이었다.
- 저 싸가지…. 근데 잘생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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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두번째 만남은,
평화로울.. 뻔했던 금요일
월화수목에 수업을 몰아넣은 덕분에 하루의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하루 종일 집에서 뭘 하고 놀지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 여주 학교 안 가니? "
- 웅~~ 나 공강
" 오 그래~? 그럼 오빠 반찬 좀 갖다주고 와 "
- 아 엄마 나 머리가 좀 아픈 거 같아.. 콜록콜록
" 갔다 오면 용돈 줄게 "
- 다녀오겠습니다 ^
너무 귀찮은 건 사실이었지만, 밖에 나가면 건강에 좋으니까......절대 절대 용돈 때문은 아니었다
대충 후드티에 모자를 눌러 쓰고 양손 가득 반찬을
들고 오빠 자취방으로 향했다.
...
다행히도 손가락이 빠지기 직전에 집에 도착했다.
후덜 거리는 손으로 도어락을 열고 들어가니
날 마주하는 건, 다름 아닌

저번에 본 그 남고딩이. 그것도 위엔 아무것도 안 입은 채로.
" 어? ..저번에 휴대ㅍ "
- 죄송합니다!!!!!!!!
순간 너무 당황해서 냅다 죄송합니다를 외치고
다급히 집을 빠져나왔다. 하필이면 손에 있던 반찬들을 그대로 들고 나와버렸다. 아니 내가 지금 뭘 본거지...


전화를 걸려던 그 순간,
현관문이 열리면서 그 남고딩이 나오는게 아니겠는가..
" ....안 무거워요? "
- 네 하하하 전혀요. 거뜬해요
괜찮다곤 했지만 부들부들 떨리는 내 손은 차마 숨기지 못했다.
" 일단 들어오세요. "
후 오늘 하루…뭔가 꼬여도 단단히 꼬인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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쭈뼛쭈뼛 그를 들어가 냉장고에 반찬을 넣으려고 냉장고 문을 여는데 정국이 내 뒤에 서서 손을 뻗었다.
" 어, 제가 넣을게요 "
- 엇..네......에?
뒤로 도는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다.
졸지에 품에 안겨버린 꼴이 된 것이다.
둘 다 눈만 데굴데굴 굴리기 바빴다.
당황해서 그의 가슴팍을 밀쳐내고 뒤도 안돌아 보고 밖으로 뛰어나왔다.
- 미쳤어 진짜 이게 뭐야...
달아오른 볼을 매만지며 마음을 가다듬고 있는데
문득 생각나는 모자. 뛰쳐나오면서 떨어진 모자 말이다. 하지만 다시 들어갈 순 없는 노릇이었다.
어쩔 수 없이 신세한탄을 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날 밤 여주는 쉽게 잠에 들지 못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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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세번째 만남은 병원이었다.
몇주전부터 실습생이 되어 실습을 시작한 이후로
하루하루가 바빠졌다. 그 바쁜 하루 속에서도 문득문득 그 남자가 끼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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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하기 약 30분 전,
데스크에 앉아 선배와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주고 받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사람들이 수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세히 들어보니....잘생겼다?..뭐가 잘생겨? 뭐지? 하고 고개를 드는 순간

미친. 그 남자다.
- ㅇ.여긴 왜 왔어요??..어떻게 알고?
" 치료받으러 왔겠죠? "
- 아...네 성함이요..
" 잘 아실텐데 "
- 네...^^
어금니를 꽉 깨물고 차트를 보니
이름 옆에 떡하니 나와있는 나이, 23살
그리고 어깨 수술 후 재활 치료가 적혀있었다.
아니 뭐라고 23살?
- ..23살 맞으세요?
" 네. "
- 네...^ 안에서 대기하실게요
대기실로 가는 그의 뒷모습은 얇밉기 그지없었다.
23살이었다니... 심지어 오빠였다니..
그럼 왜 그때 고딩이라 한 거지...?
그리고 결심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자고.
- 선배 저 환자 치료 제가 해도 돼요??
" 너 퇴근 30분도 안 남았는데..괜찮겠어? "
- 네.. 꼭 제가 해야만 해요.....하고싶어요..🥺🥺
" ㄱ.그래 뭐..여주 잘하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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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23세 전정국 씨?
- 치료해드릴게요. 누우세요.
” 실습생 아닙니까? “
- 맞는데요. 누우세요. 안 죽여요
” 죽일 거 같은데 “
- 왜요, 죽을 짓을 하셨나 보죠?
” 그런 거 같네요 “
- 근데 어깨 수술 왜 했어요?? 뭐 체대생인 줄
” 네 체대생 맞아요 “
- 뭐요?...
" 다들 이 얼굴에 체대생이라고 하면 안 믿더라고요 "
- 왕재수.........
" 뭐라고요? "
- 엎드리시라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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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무사히 마지막 치료를 끝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퇴근길에 올랐다. 병원을 나오니 계단에 어떤 남자가 서 있었다.
- 우와 등판 겁나 넓네.
" 왜요 등판 넓은 남자는 싫은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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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친 뭐예요? 왜, 왜 또 여기 있지?
그 남자는 제 몸보다 큰 가방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더니 나에게 건넸다. 그건 다른 아닌 모자였다.
- ㅁ.뭐예요?
" 떨어트리고 갔잖아요. "
- 이걸 계속 들고 다닌 거예요? 이렇게 기약 없이?
" 언제 다시 마주칠지 몰라서요. "
- .....그럼 조심히 들어가... 세요.. 전 이만..!!
오늘도 또 급하게 도망쳤다.... 바보같이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나는 그 사람을 보면 설레이고, 떨린다는 사실을. 처음 느껴보는 낯선 감정에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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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우리의 마지막 만남은
처음 봤던 그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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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친.
설레는 마음으로 화장대에 앉았다.
연하게 화장을 하고, 아끼던 향수도 아낌없이 뿌린 후
입꼬리가 귀에 걸린 채로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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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주씨 ”
- 우와. 저 전정국 씨 웃는 거 처음 봐요.
“ 안 웃었는데 ”
- 지금도 웃고 있으면서요
” 여주 씨도 웃고 있잖아요 ㅋㅋ “
“ 아 진짜 못 참겠네 ”
- 뭘요..?.. 나 때리려고..?
“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어요. ”
" 뭐 밀당 이런 건 내 스타일 아니고, 그냥 솔직히 말할게요. "

" 저 여주 씨한테 반했어요. 처음 봤을 때부터. "
찾았다, 내 운명.
- ......저도요
" ..네?.. "
- 저도 정국 씨 좋아한다고요... 보면 설레고 떨리고 그런다고요......
서로의 눈을 마주치고 환하게 웃어보였다.
" 그럼 저희 오늘부터 1일인가요? "
- 네 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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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후,
3년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연애를
마치고 우리는 결혼을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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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대학교 가면 남자친구 생기는게 맞았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