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o. 친애하는 이안에게,
네가 부탁한 약이 드디어 완성됐어,
그동안 많이 고생했을텐데, 다행이지,
이번에는 부작용도 없을거야,
마음 같아서는 직접 만나서 전해주고싶지만
사정이 사정인지라 나도 쉽지만은 않아,
네가 어디에 사는지 정확히 몰라서 일단 가장 가까운 마을로 보낼게, 타운 아일론, 맞지?
.
.
.
ps. 약이 다 떨어지면 또 연락해,
오랜만에 얼굴이라도 보고싶다.
From. S.에드워드

어째 이 수상한 편지는 그 정체를 밝혀내려할 수록 더욱더 미궁으로 빠져든단 말이지, 편지의 내용을 몇번이고 다시 훑어본 그레이는 지끈거리는 미간을 꾸욱, 짚었다.
하운드씨의 오두막에서 떠나 제 집에 돌아온 그녀는 결국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페이퍼나이프로 편지를 개봉했다.
그러나 봉투 안에는 편지뿐만이 아니라 의문의 알약이 가득 담긴 봉투들이 함께 들어있었다. 그 알약은 겉은 투명한 캡슐 형태인데 내부에는 붉은빛의 액체형 물약이 찰랑였다.
거기에 발신인은 더욱더 미스테리였다. S.에드워드라니, 무슨 연극배우도 아니고 이름이 왜이래? 온 제국을 다 뒤져봐도 에드워드라는 이름의 가문은 없었다. 아, 생각해보면 제온이 더 말이 안 되는 성씨이긴 한데,
그것과 편지의 내용을 몇번이고 번갈아 바라본 그레이는 검지 끝으로 제 입술을 톡톡 두드렸다. 이것은 깊은 생각에 빠질 때마다 하는 그녀만의 습관이었다. 예를 들면 새로운 책의 내용을 떠올릴 때라던가, 아니면 이렇게 아리송한 말들을 유추할 때라던가,
'네가 부탁한 약들이 드디어 완성됐어,' '그동안 많이 고생했을턴데,' 라는 문구들이 적혀있는 S.에드워드의 편지 속 머릿말,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핏빛 알약들, 자그마한 퍼즐 조각들을 하나하나 맞춰보던 그녀의 머릿 속에 어떠한 생각이 빠르게 스쳐지나갔고 그것은 마치 맑은 하늘에 번개가 치는 것만 같았다.
만약에 이 편지를 받아야 할 '이안 제온'이 위독한 상황이라면? 그래서 에드워드가 치료제를 보낸거라면? 수많은 가설들 중 이 생각이 떠오르자 그 상상의 실마리들을 이 다음으로 끄집어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럼 지금 이 사람한테는 이 약이 필요한거잖아,
그녀의 끝도 없는 상상력은 그레이 본인조차도 어찌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미 그녀의 머릿속에는 두렵게 느껴질만한 장면들이 끊없이 그려지고 있었고 그 중에는 거칠게 숨을 헐떡이며 사경을 헤매는 한 남자의 형상도 있었다.
"
시골로 내려오면서 괜한 오지랖이라도 생긴 걸까, 그녀의 뜻은 아니었지만 아픈 환자의 약을 가로채갔다는 생각이 자꾸만 양심을 콕콕 찔러댔다.
"...."
그러나 그러한 양심이 애석하게도 머릿속에 자리잡은 차가운 이성이 빼액, 소리쳤다. 지금 이안 제온이 어디있는 줄 알고, 설마 저 위험한 바위산에 냅다 찾아가려는건 아니겠지,
"...하아아.."
결국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탁자 위로 추욱 늘어지는 그레이였고 그런 그녀의 눈에 '그동안 많이 고생했을텐데,' 라는 문구가 적힌 머릿말이 보였다.
"..그래도 주인한테 전해주긴 해야할텐데.."
...그래 뭐.. 무슨 일이 생기진 않겠지, 세상이 아무리 흉흉해도 그렇지, 사람을 산 채로 잡아먹는 괴물이 어디있어? 여차하면 우편함에다만 넣어두고 오면 되잖아,
오케이, 내일 해 뜨면 후딱 다녀오자, 그리 생각한 그레이는 조심스레 편지와 약봉투를 집어놓고서 편지봉투를 재밀봉했다.

꿀꺽, 꿀꺽, 빛이라고는 통유리창을 가린 암막커튼 사이로 비춰오는 월광 뿐인 어느 흑빛의 방 안에 누군가 다급하게 제 갈증을 달래는 소리만이 고요함을 깨부쉈다.

"하아.."
방금전까지만해도 잔 속에서 얼음조각들이 저들끼리 부딪히며 찰랑이던 냉수를 단숨에 비워낸 이안은 빈 잔을 신경질적으로 내려놓으며 제 목을 감싸쥐었다.

"하.. X발.."
또 시작이었다. 요새 밤이 찾아올 때면 목이 갈라지다 못해 타들어갈 것만 같은 갈증이 그를 수도없이 괴롭혔다.
이 빌어먹을 갈증은 목구멍에 냉수를 몇병씩 들이켜도 도저히 가라앉지가 않았고 간혹가다 흐릿한 비린내가 코끝을 자극하는 듯한 환각을 일으키니 미칠 노릇이었다.
그럴 때마다 이안은 그것을 필사적으로 외면했다. 그 지독한 환각이 끝끝내 제 앞에 붉은 색으로 영롱히 빛나는 핏빛 웅덩이의 형상을 들이밀어도 혀를 깨물고 뺨을 때려가며 저항했다.
그러나 그 또한 계속 이렇게 버틸 수만은 없다는 것을 알았고 몸 속에서는 자꾸만 그의 본능이 그 비릿향 향기와 붉은빛의 형상을 갈망하며 꿈틀거렸다.

어떻게 해서든, 해결책을 찾아야했다.

8월 29일 랭킹 8위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