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낭만주의? -
언제나처럼의 하굣길이었다.
3월 중순의 풍경.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는 시기.
모든것이 새롭게 바뀌게 된 해.
아이들이 재잘대는 목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개미떼처럼 몰려나오는 아이들 얼굴 하나하나를 살피며,
교문 앞에서 연준이 더위를 참으며 누군가를 찾고있었다.
첫사랑은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누가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연준은 부디 그 이야기가
허망한 소문이 아닌 진실이기를 누구보다도 간절히 바랬다.
필시 같은 고등학교에 배치된것은 운명이라고 믿으며.
"형. 뭐해요?"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남자의
목소리다. 그러니까..최범규의 목소리라는거다.
"...사람 찾는데."
"오, 누구요? 누구?"
"...묻지마."
"에이, 같이 찾아줄수도 있는데! "
"범규야. 형아 바쁜데."
"네엥.."
투덜거리며 애꿏은 돌멩이를 차는 소리가 들려오지만 연준은 애써 무시해봤다.
범규가 여기에 있다면 분명 곧 다른 애들도 저를 찾아 이곳으로
올것이다.
"그전에 봤으면 좋겠는데.."
연준의 마음이 초조해졌다.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교문 앞은 학생들로 북적거렸다.
○●○
"형, 아직도 그 여자분 찾아다녀요?"
열심히 떡볶이를 집어먹던 연준이 행동을 멈췄다. 오래살고
볼일이다.
"맞구나?"
태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결론지었다.우리 태현이, 머리도 참 좋구나.
"범규한테는 비밀로 해주라. 걔 분명히 와서 방해할것 같단 말이야."
속내를 들킨 연준이 백기를 들며 사정했다. 태현은 알것같다는
끄덕임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형 중3때부터 짝사랑하지 않았어요?"
"웅, 그랬지."
새나가는 발음으로 연준이 대답했다. 고작 1년간의 만남이었지만 그것이 연준에게는 가장 큰 기쁨이었고, 행복이었으며, 잊지 못할
기억이었다.
"잠깐 보니까 막 더 보고싶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고백할 마음은 있어요?"
태현이 연준을 보며 묻자, 연준이 마지막 떡을 꼬치로 찍으며
말했다.
"너 그거 아냐. "
"뭘요?"
"걔, 남자친구 있더라."
"..우와."
우와가 아니지 않니 태현아. 이 형은 양심이 너무 아픈데.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바라본다. 나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는 그 모습이 너무나도 밉다. 근데,
[ 밉고, 미운데도 너무 좋더라. ]

"바보같지..알면서도 포기 못하는게. "
연준이 착잡한 미소를 지었다. 서브 남주가 마치 이런 느낌일까.
마음 한켠이 아려왔다.
"..해줄 말이 없네요."
큰 눈으로 저를 쳐다보던 태현이 떡볶이로 시선을 떨궜다.
차마 힘내라는 말은 할 수 없었다.
○●○
모든 시작은 중3. 7월의 중순. 뜨거운 햇빚이 내려쬐는 한여름.
네가 전학을 왔다.
자기소개를 하라는 선생님의 말에 뻘쭘히 서있다 빨갛게 익은 얼굴로 손을 흔드는 모습이 너의 첫인상이었다.
'부끄러움이 많나보네.'
잠깐의 관심이었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것이 어느새 불씨가 되어있다는 사실을 모른채로.
그 아이의 얼굴은 반짝반짝하게 빛이 나는것만 같았다.
질끈 묶어낸 머리카락에서는 좋은 향이 날것만 같았다.
왜인지는 몰랐다.
흥미가 생겨났다.
새로운 것에 관심을 보이는 여느 아이들처럼 연준은 이끌리듯 그 아이앞에 섰다. 많은 관심을 한번에 받은 너는 방금전처럼 빨갛게 달아올라있었다.
귀여웠다. 당황한듯 끔뻑거리는 눈이, 부끄러워 꾹 닫은 입이. 질문을 쏟아내는 아이들에게 향하던 예쁜 눈이 잠깐 연준을
스쳐지나갔다.
그 잠깐의 관심이 연준의 안에 불을 피워냈다. 귀가 새빨게졌다.
마치 너의 볼같이 멈출새 없이 빨갛게 익었다.
생전 처음 느끼는 감정이었다.
부끄러움인가.
학교 축제때 전교생 앞에서 춤을 출때도 이런 부끄러움은 느껴보지 못했다.
당황함일까?
갑자기 눈이 마주쳐서 그런걸까.
그러나 단 한번도 어느 여자아이들과 눈을 맞추고 인사해도
이런 당황함은 느껴본적이 없다.
미숙한 소년은 생전 처음 느끼는 이 감정에 이름을 붙이지 못한채
그저 소란스러운 아이들 사이. 너의 바로 앞에 한참동안 멍하니 서있었다.
"첫눈에 반한거네요?!"
휴닝카이가 손뼉을 짝 치며 외쳤다.
"그러니까..형이 짝사랑 시작하게 된거라는 소리지?"
수빈이 휴닝카이를 보며 신난듯 물었다.
"백퍼센트 짝사랑이죠!! 형, 누구에요? 막 엄청 이쁘구 그래요??"
"드디어 연준이 형이 솔로 탈출하려나보다."
양옆에서 조잘대는 소리가 앵앵거리는 모기소리보다 더 거슬렸다.
확 떼놓고 갈까보다.
"잠깐 눈 한번 마주친것 뿐이라니까..,"
"에이, 형 모솔티 내지마요! 원래 짝사랑같은건 그렇게
한번에 만들어지는거에요! "
"우리 연준이 형 이렇게 순수해서 어떡해.."
..내가 너희중에서 제일 맏형이란다. 얘들아...
"아 몰라몰라..! 니네 다 조용히하고 따라와..!"
연준이 투덜거리며 혼자 둘을 제치고 앞서나갔다.
"형! 같이가요!!"
"우리 두고 가지 마요!"
뒤에서 휴닝이와 수빈이가 쫓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괜스레 발걸음을 빨리했다.
첫눈에 반했다는 소리가 뇌리에 꽂혔다.
"그런거 아닌데..그냥..."
연준은 열심히 부정하고 부정해보았으나 자꾸만 눈을 감으면 너와 마주쳤던 그 1초가 반복해서 보여졌다.
귀여운 눈동자. 빨갛게 익은 볼. 쑥쓰러워하던 모습이.
"원래 짝사랑은 한번에 만들어지는거에요! "
휴닝카이의 목소리가 귀에 선했다.
또다시 귓가가 홧홧해졌다. 한참을 부정하다가, 고민하다가의 반복이었다.
결국 연준은 인정하고서야 말았다.
[ 그 1초동안에, 너를 좋아하게 됐나봐. ]
머리를 쓸어넘기는 연준의 붉어진 귀를 보며 동생들은 쿡쿡 웃었다.
○●○
언제나 연애물은 쓰기 어렵죠..ㅜ
심지어 그게 첫눈에 반한 모먼트라면..
짧아서 죄송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