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는 무너졌다.
기후 변화는 이미 수십 년 전부터 경고되어 왔지만, 아무도 그것이 이토록 빠르게, 그리고 잔혹하게 인류를무릎 꿇릴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바다의 수위는 하루가 다르게 높아졌고, 대지는 갈라졌으며, 도시마다이상 기후로 인한 재해가 끊임없이 일어났다. 태풍, 지진, 가뭄, 홍수… 그리고 결국엔, 대규모 정전과 바이러스. 전 세계의 시스템이 붕괴하고, 정부와 국경이라는 개념조차 무의미해진 지금, 살아남은 자들은 서로를 믿지 못한 채 폐허 속을 떠돌고 있었다.
서울도 예외는 아니었다.
건물은 무너졌고, 도로는 잡초와 부서진 자동차로 뒤덮였다. 누군가는 바이러스에 쓰러졌고, 누군가는 식량을 두고 싸우다 죽었다. 그리고 이곳에,

최솔은이 있었다.
—
아포칼립스가 시작된 지는 불과 두 달 남짓. 그러나 세상이 무너지기 전에도 그녀의 삶은 고요한 지옥이었다. 부모의 방치, 폭력적인 연인, 보호라는 이름의 배신. 믿고 의지했던 사람들조차, 세상이 위태로워질수록 하나둘씩 떠나갔다.
그녀는 결심했다.
누구도 믿지 않겠다고. 아무도, 다시는.
그리고 남은 건—자기 자신뿐.
더욱 감당할 수 없는 슬픔과 상실이 그녀의 삶을 잠식했다.
팔뚝엔 자해의 흔적이 선명히 남아 있었다. 깊은 상처 몇 개는 덧나 있었고, 허술하게 감은 붕대는 바람에 흔들렸다. 그녀는 늘 조심했고, 늘 혼자였고, 늘 죽지 못해 살아 있었다.
그녀는 더는 울지 않았다. 울면 약해지니까.
“하…하아…“
솔은은 무너진 폐마트 건물 안으로 조심스럽게 들어섰다. 바닥에는 유리 파편이 깔려 있었고, 벽은 검게 그을려 있었다. 손에 쥔 철파이프가 땀으로 미끄러졌지만, 그녀는 절대 놓지 않았다. 이곳엔 식량이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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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각, 폐건물 안. 낮은 속삭임과 무거운 발소리가 어둠을 가르고 있었다.
“정말 여자애야?”
“확실해. 창고 쪽에서 혼자 움직이는 거 봤대"
목소리의 주인공은 가죽 조끼를 입은 거친 남자였다. 그리고 그 뒤를 따르던 일곱 명의 청년들. 그들의 눈빛은 어둡고 피로에 젖어 있었으며, 무엇보다 불편해 보였다.
“이런 식으로 움직이는 거, 점점 더 위험해지고 있어"
윤기가 낮게 말하자, 정국이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다 알아. 근데 지금은… 방법이 없어"
그들은 원래 한 무리의 생존자들이었다. 처음엔 서로를 도우며 살아남으려 했지만, 재난 초기 혼란 속에서 권력을 잡은 자들에게 붙잡혀, 마지못해 일행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무력도 부족했고, 혼자 나섰다간 언제 죽을지 모르는 세상이었다.
“이런 짓에 가담하고 있다는 게… 역겹다"태형이 낮게 내뱉었다.
“우리가 구할 수 있으면, 기회가 올 거야,“남준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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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은은 조용히, 조심스럽게 식량을 탐색하고 있었다. 이미 손에 쥔 것은 작은 통조림 하나. 그것만 있어도 오늘 하루는 버틸 수 있었다.
익숙한 듯 폐허의 사이를 스치며 건물 내부를 살피던 그녀는, 누군가가 자신을 따라오고 있다는 것을 느낌과 동시에 뒤에서 거친 발소리가 들려왔다..
“젠장…"그녀는 쎄함을 감지한 듯 무의식적으로 팔을 감싸쥐며,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고, 숨은 날카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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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뭐해, 아가씨?"
목소리와 함께 다섯 명의 남자들이 폐허 속에서 나타났다. 가죽 재킷, 무기를 들고, 몸에는 피가 말라붙은 자국.
그리고 그들 뒤에, 일곱 명의 남자들이 조용히 서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경계하듯 피투성이 손으로 벽에 기댄 채, 흐트러진 숨을 내쉬고 있었다.
야윈 몸이 훤히 들어나 보일 정도로 찢어졌지만 걸친 민소매와 반바지, 가는 팔뚝과 손목에 오래된 자해 흔적이 그녀를 더 위태롭게 보여지게 했다. 사람들이 무너지기 전에 무너져버린, 그런 눈을 가진 여자.
"이런 애가 이렇게 혼자 살아남아있다니, 이건 운이 좋은 거지.“
남자2와 3이 주변을 에워쌌고, 4와 5는 입구를 막았다. 좁은 폐마트 건물의 구석에서, 그들은 그녀를 물건처럼 바라봤다.
그리고 지켜보던 7명은 눈으로 말하고 있었다.
‘이건 익숙한 상황이다.'
“또야…”정국이 속삭였다.
태형이 이를 악물었다.
남준은 눈을 감고 고개를 돌렸다.
이 무리,남자1-5는 몇 주 전부터 생존자 무리의 우두머리로 행동하고 있었다. 그들이 여자들을 어떻게 다뤘는지는 7명의 남자들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몇 명의 여자 생존자들이, 저항하다 죽는 장면을 이미 목격했다.
그들은 남주들을 힘으로 억눌러 데리고 다녔다. “지켜주겠다"는 명분이었지만, 실제론 방패였다. 남주들 역시 무기를 빼앗긴 채, 감시받으며 따라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이 무리 안에서 말없이 살아남는 법을 알고 있었다. 말리지 않는 것, 시선을 피하는 것— 그게 살아남는 방식이었다.
“야, 이쁘장하네?혼자야?”
남자2가 슬쩍 솔은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솔은은 몸을 비틀며 피했지만, 얼굴을 찌푸리진 않았다.
“건들지 마"그녀가 낮게 말했다.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지만, 그 속에 숨겨진 절박함과 독기,그것은 그 자리에 있는 모든 남자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건들지 말라고?이 상황에 그게 통할 거 같냐?”남자3이 웃으며 가까이 다가왔다.
남주들은 그저 서 있었다. 예전처럼.
남준은 주먹을 쥐었다.
석진은 이를 악물었고, 정국은 시선을 피했다.
태형과 윤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솔은이 입을 열었다.
“…너희도, 그 여자들 봤지"
그녀는 남주들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날 저 골목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 끌려가던 여자.
기어서 도망치다 머리 깨진 아이.
팔 잘린 채 나무에 묶여 있던 그 사람…”
그녀의 눈이, 일곱 명의 남자들을 꿰뚫었다.
그들은, 숨이 멎는 듯한 충격 속에 그녀를 바라보았다. 정국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고, 태형의 이마가 찌푸려졌다. 지민은 미동도 없었지만, 시선을 그녀에게 고정한 채 눈꺼풀을 천천히 내렸다.
“너…” 윤기가 무의식적으로 한 걸음 다가섰다.
“봤다고?”
“다 봤어. 그 여자들이 마지막까지 어떻게 울부짖었는지도.
그리고… 너희가, 거기 있었던 것도"
순간, 공기 전체가 얼어붙었다.
“너희는 아무것도 안 했어.
그게 더—끔찍해"
남자1이 욕설을 내뱉으며 솔은의 팔을 거칠게 잡았다.
솔은은 눈을 감았고, 짧은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그 순간—호석이 먼저 움직였다.

“그만둬"
남자1의 손목을 잡았다. “지금 당장 놓으라고 했어"
“야, 이 새끼가 미쳤—”
파직.
석진이 근처 쇠파이프를 들어올렸다.
“다들, 물러서.우린 사람이라고. 이제라도 그냥 모른 척할 수 없어.”
석진 호석이 먼저 행동을 옮겼을 때,
남준은 재빨리 폐마트 뒤편의 비상구 위치를 머릿속에 그렸다.
석진, 호석, 남준까지 하나둘씩 움직인 것이다.
태형도 한참을 서 있다, 무겁게 내뱉었다.

“…이제 더는 못 봐. 이건 아니야."
남자5가 욕설을 내뱉으며 쇠막대를 꺼내 들려는 순간,
태형이 차갑게 외쳤다. “우린 더 이상 너희랑 안 가.
그게 무슨 대가든, 감당할게"
•
•
그 밤,폐허 안에서,
무너진 신뢰와 피로 써진 정의 사이에서—
최솔은과 일곱 명의 남자들은 처음으로 같은 쪽을 바라봤다.
오랜만에 팬플 들어오네요… 2020-2022년이 팬플 전성기 였던 것 같은데!!!
오랜만에 오니까 그때의 작가분들은 다 행방을 알 수가 없ㄴ…
곧 방탄도 다시 완전체가 됩니다💜
간만에 여러분과 소통하고 싶어요
그러니까 댓ㄱㅡㄹ……….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