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와 다름 없이 알바를 마치고 잠에 들려고 하는데 누군가에게 전화가 왔다. 이 시간에 누구지 하며 전화를 받아보니 민윤기다. 스케줄에 바쁠까봐 연락을 못했는데,이렇게 먼저 연락을 주다니 뭔가 마음 한 쪽이 찡해졌다.
“여보세요”
“응 뭐해”
“나? 이제 씻고 자려고”
“벌써?” 내 평소 취침시간이 3시인걸 아는 오빠는 12시에 잔다고 하자 놀라서 반문했다.
“내일 오빠보려면 일찍 자야하거든요” 왜냐면, 내일은 방탄소년단 팬싸인회가 잡혀있었기때문이었다. 정말 간신히, 운 좋게도 앨범을 10장 샀더니 팬싸인회에 당첨되었다. 매우 기쁘고 신나는 마음에 오빠한테는 서프라이즈로 할까 고민도 했지만, 그러기엔 내 거짓말이 너무 서툴렀기에 방방뛰며 전화로 이야기를 하자, 기대와는 다르게 무슨 앨범을 10장이나 샀냐며 뭐라했던 오빠였다.
“아니 그냥 나 불러서 보면되지”
“체 됐어. 여자친구가 10장이나 사서 말이야 당첨도 됐는데 기뻐도 안해주고”
“..삐졌어?”
“응” 조심스레 삐졌냐고 물어보는 오빠의 말투가 너무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삐진척연기를 했다.
“아니..그게..”역시 달래주는데 서툰 오빤 어쩔 줄을 몰라한다. 그 와중에 뒤에서 들려오는 지민이의 목소리다.
“임지윤~~!!!!”
“아 시끄러” 지민이의 목소리에 놀란 오빠가 나와 전화할때는 너무나 다른 목소리로 말하는데, 그 목소리에 살짝 주눅든 지민이는 아까보다는 작아진 소리로 내일 올 때 도시락을 싸오라 이야기한다.
“....? 얘가 왜 너네 도시락을 싸와” 지민이의 이야기에 정색하며 뭐라하는 오빠에 웃음이 터져 웃으니, 이제 풀렸냐며 물어보는 오빠다.
“안 삐졌었거든요 아저씨. 얼른 주무시죠? 내일 행사가려면?”
“싫은데 난 전화 더 하고 싶은데”
단호한 목소리로 애기 같이 말하면 어쩌자는 거냐고. 겨우 어르고 달래서 오빠를 재운 후, 전화를 끊고 나도 얼른 잘 준비를 했다. 왜냐면 내일 지민이의 말 대로 도시락을 쌀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쟤는 또 어떻게 안건지.
연애하고 나서 도시락을 싸줘야지 생각만 하고 요리를 잘 하지도 못하고, 이렇게 찾아갈 일도 없다보니 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 타이밍이 너무 잘맞아서 당첨 된 그 날부터 만반의 준비를 다 했다. 그래서 원래는 알바 후 집에 바로 와서 씻고 쉬어야했지만, 마트에서 장보고 아침에 도시락 쌀 준비를 하다보니 평소보다 더 피곤했나보다.
‘불타오르네 fire fire 불 불 불타올라’
아침에 일어나는 데는 진짜 이 노래만큼 효과 좋은 게 없는 것 같다. 눈을 떠 알람을 끄려고 시계를 보는데
..예? 네? 왜 이시간이죠? 제가 생각했던 시간보다 1시간은 더 늦게 일어난 이유가 뭐죠..?
순간 멘붕이 와서 멍을 때리고 있는데, 이럴 때가 아니지 하며 부엌으로 달려 나갔다. 급하게 앞치마를 둘러 메고선 최대한 차분하자고 마음을 먹은 뒤 하나하나씩 준비를 했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없어서 정신이 없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 와중에 휴대폰에 걸려오는 전화 때문에 스피커로 해서 받는데
“뭐해”
“어?” 오빠다.
후 침착하자 임지윤. 아무렇지 않은 척
“응? 아 나 이제 씻으려고”
“뭐 타고 올거야?”
“지하철?”
하..택시겠지...시간을 봐...
“데리러 가고 싶다” 말 하나를 해도 다정하게 하는 이 사람이 대중한테 차가운 이미지라는 게 믿기지 않지만, 지금 그런 생각을 할 여유 따위가 없었다.
“악!” 전화와 요리를 동시에 하다보니, 칼에 손을 베였다. 아.. 망했다..
“왜!!!” 내 비명이 들리자 마자 무슨 일이냐며 계속 물어오는 오빠다.
“아 아니야 방문나오다가 침대에 발 찍혀서 그래”
“조심 좀 하지”
“어 오빠 나 빨리 준비해야겠다. 나중에 봐”
“어어 조심히 오”
오빠의 뒷말은 듣지도 못한 채 전화를 끊고선 미친 듯이 도시락을 싸나가기 시작했다. 미친 집중력 덕분에 다행히 늦지 않고 완성할 수 있었다. 예쁘게 포장을 한 후, 나도 준비를 한 뒤 미리 예약해놓은 택시를 타고 팬싸인회 장소로 향했다.
“어디 좋은데 가나봐요?”
“네?”
“너무 예쁘게 입었길래” 웃으며 칭찬해주시는 택시 아주머니 덕분에 기분이 한껏 업되었다.
“헤헤 감사합니다 사실 남자친구 보러가는거에요”
“어머 이쁜 아가씨 남자친구는 누구이려나”
“저보다 훨씬 멋있는 사람이에요” 팔불출 아니랄가봐 아주머니의 말씀이 끝나자마자 반사적으로 나오는 나의 대답이었다.
‘I need you girl 왜 혼자 사랑하고 왜 혼자서만 이별’
벨소리가 울리길래 받으려고 휴대폰을 켜자마자 꺼지는 휴대폰이다. 아 망했다 발신인 보니깐 오빠던데 걱정 엄청하겠다
“죄송한데 저 조금만 빠르게 가주실 수 있으세요?”
“아이고 약속시간 늦었나벼 내가 지름길 아니깐 그쪽으로 가면 훨씬 빠를거에요”
“아! 감사합니다!” 다행히 지름길을 아시는 아주머니 덕에 늦지 않고 팬싸인회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미리 연락한 매니저 오빠에게 가서 도시락을 건넸다.
“짠”
“와 이걸 다 싼거야?” 내가 내민 봉투들을 보고 놀라하며 받아드는 매니저 오빠이다.
“훗 제가 힘 좀 썼습니다”
“고마워 윤기가 알면 엄청 좋아하겠다”
“...백퍼 뭐라할걸요?”
“왜?”
“왜 사서 고생하냐고 말이죠”
“어유 민윤기 여자친구 아끼는 거 하나는 진짜 인정해줘야해 누가 알았겠어 우리 시크하신 민윤기님이 이렇게 변할 줄이야”
“에이 매니저님도 참. 저 이제 그만 들어가볼게요”
“그래그래 조금 있다 보자”
“네에” 매니저님께 인사를 건네곤 팬싸인회 장소로 들어가 앉으려는데 와 역시 정말 빼곡이 채워진 좌석이다. 나도 내 자리를 찾아서 조심스레 앉으니, 환호소리와 함께 등장하는 7명의 멤버들이다. 와...소리봐. 평소에 큰 소리를 잘 못 듣는 나지만, 오늘 만큼은 등장하고 있는 오빠를 보느라 그런 소리들쯤은 괜찮았다.
멤버들이 자리에 앉고, 소개와 인사 등을 하는데, 지민이가 나를 봤나보다. 옆에 있는 윤기를 건드려 귓속말을 했고, 오빠는 내 쪽을 쳐다본다. 내가 작게 손을 흔들어보이자. 한쪽 미간을 찌푸리는 오빠다. ‘아 아까 전화 꺼져서..’
오빠 쪽을 보며 휴대폰을 들고선 배터리가 없다는 작은 몸짓과 시무룩한 표정을 해보이니, 그제서야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웃어보이는 민윤기다. 아마 난 진짜 저 웃음에 반해서 오빠를 만난거라해도 과언이 아닌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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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팬싸인회 쉬는시간, 그 시각 무대 위에선 정국이가 장난스레 윤기의 옆으로 다가가 ‘와 형 누나 요리 왜 그렇게 잘해요? 진짜 누난 못하는게 뭐지?’ 라고 작게 이야기를 했고, 그걸 들은 윤기는 도시락?하며 반문해 보였다. ‘엥? 아까 매니저 형이 들고온 거 지윤이 누나가 싸준거잖아요’ ‘지윤이누나는 뭐가 아쉬워서 형을 만나나 몰..’ ‘켘’ 정국이의 장난스러운 농담에 정국이의 뒤로가 어깨 마사지를 하는 척 꾹꾹 지압을 해대는 윤기다. 그 덕분에 간지러움을 잘 타는 정국이는 자질러지며 쓰러질려고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그걸 본 팬들과 지윤이는 그냥 정국이와 윤기가 평소와 다름없이 장난치는 거 같아 귀엽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차례를 기다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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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민윤기 진짜 개잘생겼어”
“미쳤어 진짜 민슈가님...저를 가지세요”
팬들 사이에 있으니 윤기를 찬양하는 말들이 많이 들렸고,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뿌듯하고 기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사람이랑 내가 연애하는 게 말이 되는 건가 라는 근심도 들었다. 그래서 팬들이 적어가는 포스트잇 용지에 ‘나랑 만나는 이유가 뭐에요’라고 적고선 팬들과 대화하는 오빠를 보며 내 차례를 기다렸다.
그렇게 기다리는 시간동안 오빠를 보고 있으니, 갑자기 내 절친인 유하가 물어봤던 질문이 떠올랐다. ‘근데 너 가서 팬들이 그 사람이랑 막 손잡고 하는 것도 다 봐야할텐데 괜찮아?’
뭐 윤기와 손을 잡고 웃으며 다정하게 대화하는 팬들에게 질투를 느끼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팬들 때문에 이만큼 올라올 수 있었던 것이기 때문에 큰 그런 감정은 들지 않았던 거 같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내 줄 차례가 되었다. 긴장되는 마음으로 걸어가다 보니, 나도 모르게 삐끗해서 넘어질 뻔 했지만, 다행히 중심을 잡고 맨 처음에 있는 태형이에게 걸어갔다.
“어머 이게 누구에요?” 내 얼굴을 보자마자 장난스럽게 이야기하는 김태형이다. 태형이랑은 원래 동네 친구로 아는 사이였기 때문에, 내가 넘어질 뻔한 거 가지고는 웃으며 장난쳤다.
“나다 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까 넘어질 뻔한 임지윤씨..?”
“야!”
“와 진짜 너도 지극정성이다. 여기까지 어떻게 온거냐”
“앨범 10장 샀는데 당첨됨. 대박이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멋있다 친구여”
“그래서 요즘 어떤데”
“...뭐가?”
“아니 너가 좋아하는 사람 있다며”
그제 전화로 얘기했던 내용을 물어보니 지금 무슨 소리하는거냐며 손사래를 내젓지만, 얼굴은 빨개져버린 태형이다.
“으유 이 누나 속일생각을 하다니 너도 참..”
“뭐”
“됐어 담에 잘되면 이야기해^^”하고선 옆으로 옮기라는 말에 넘어갔다. 그렇게 남준이오빠, 진오빠, 정국이와 이야기를 했다. 다들 나의 등장에 놀란 모양이었지만, 정국이는 웃으며 왔냐고 말한다.
“ㅋㅋㅋㅋㅋ아까 너 왜 그렇게 쓰러지려 했어”하고 물으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니 아까 내가 누나 얘기하면서 좀 놀렸거든요? 그랬더니, 와... 평소에 반응 하나도 안해주던 사람이 진짜 프로 반응러..”
“조금 설렙니다?”
“아 맞아 도시락 잘 먹을게요”
“아니야 더 맛있게 싸려고 했는데 늦게 일어나는 바람에 미안..”
“에이 무슨 소리십니까 형수님”
“뭐?” 갑작스런 형수님 소리에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니, 정국이 옆에 있던 윤기오빠는 고개를 돌려선 우리를 바라본다.
“너무 싫어하는 표정이십니다?”하고 말하는 오빠에 웃으며 맞대응 하니, 뾰로퉁하게 나를 바라보는 오빠다.
“난 오빠랑 결혼한다고 한적이 없는데..”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이에 낀 정국이는 그저 이 둘을 흐뭇하게 바라볼 뿐이다.
그때 오빠가 내 손목을 끌고 앞으로 데려오니, 뒤에서 그걸 봤는지 몇 명 팬분들이 ‘와..저거봐...윤기오빠가...’하는 소리가 다들렸다.
“오빠 미쳤어..?” 놀란 표정으로 물어보자 내 여친 내가 데리고 오겠다는 데 누가 뭐라하냐며 웃는다. 진짜 이렇게 달라질 수 있는거지 사람이.
“그러다 들키면 혼난다?”
“들키면 결혼 선언 할건데?”
“...? 나 이제 23살인데..?”
“어차피 나랑 결혼할 거 잖아”
단호하게 말하는 오빠에 슬슬 장난 치고 싶은 마음이 들어
“나 결혼할 사람 있는데”
“뭐?” 내 반응에 어이가 없는지, 평소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표정으로 반문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장난이지. 내가 오빠 말고 또 누굴 봐요”
“그러기엔 아까 형수님하는 말에 반응이 너무 싫은 반응이었어..”
“놀라서 그런거야 바보야”
내 머리를 살짝 쓰다듬더니, 내 손을 가지고 가선 깍지를 끼다가 갑자기 정색하는 오빠다.
“뭐야”
“응?”
“이거 뭐냐고” 하며 내 손가락에 붙여있는 밴드를 가르킨다.
‘아.. 망했다...’
“아...아니...그게”
“너 도시락 싸다가 베였지”
“와우! 그걸 어떻게 안거야?”하며 최대한 밝게 반응해 보이자, 내 볼을 살짝 꼬집고는, 그러니깐 내가 도시락 싸지 말라고 했잖아. 내가 싸준다고 할 땐 싫다고 하면서, 하여간 청개구리짓은 다 해요 하며 잔소리 폭격을 날린다.
“....헤헤 오빠 맛있게 먹으면 된거지”
“담엔 내가 싸주는 도시락 먹겠다고 약속해”
“알았어요. 오라버님” “아!! 이거”
오빠랑 대화한다고 잊어버렸던 포스트잇이 생각났다. 손바닥에 질문이 적힌 포스트잇을 내보이니, 한 없이 심각한 표정으로 계속 쳐다본다.
“이걸 왜 물어?”
“그냥?”
“거짓말”
세상에서 민윤기 속이는 게 제일 어려운 거 같다.
“아니..아까 기다리면서 팬들이 다들 오빠 칭찬을 엄청 하는데, 오빠가 만나는 사람은 나니깐..”
“왜” “임지윤 나 봐”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떨구면서 말하자, 바로 나 보라며 얼굴을 자기 쪽으로 당긴다.
“나는 너라서 연애하는 거야. 너 아니었으면 나 평생 독수공방했어”
도대체 이런 말들은 어디서 배워 온 건지, 사람 설레게 잘도 한다.
“체..말만. 그래서 이거에 대한 답은 뭔데”
기분 좋아진 표정을 애써 숨기려 일부러 툴툴대며 말하자
“이걸로 안되는데, 여기 가득 채울 만한 종이는 가져와야 하는데?”
“손 줘봐”
능글맞게 말하고선 내 손을 가져가서, 밴드 위에 자기 앞에 있던 네임펜으로 뭘 그리기 시작한다.
“자 됐다”
“응?” 하며 손가락을 보니, 다이아 반지가 그려져 있다.
“표시야 표시. 도망못가게 너가 나한테서. 민윤기는 평생 임지윤꺼라는 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