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로잡히다

(29) 하얀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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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로잡히다 (29) 하얀집 



새벽녘 

약물이 들어있는 가방을 들고 차에 올라탔다. 안그래도 실무자여서 일찍 도착해야하는데, ㅇㅇ도 ㅁㅁ시 까지 가려면 꽤 일찍 나가야했다. 고속 도로를 달리는 동안 오늘 어떻게 해야할지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현장에 가서 가방을 건네고, 혹시라도 나에게 약물을 주입하는 일까지 시킬려나 싶어서 식염수도 챙겨왔다. 피해자들에게 약물 대신 식염수를 주입할 생각이었다. 경찰들이 바로 급습할 예정이니까 조금 이상한 점이 발각되더라도 큰 문제는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안주머니에는 정국이가 준 신호기가 있고.. 정국이에게는 아까 출발한다고 미리 연락도 해두었다. 

약물 가방은 조수석에 흔들리지 않도록 안전띠로 고정하고 출발했다. 마음같아서는 열어서 안에 들어간 약물을 바꿔치기 하고 싶었지만 가방이 잠겨있어서 그러질 못한 점이 마음에 걸렸다. 경찰과 타이밍이 잘 맞아서 부디 약물을 주입하기 전에 현장에 오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이걸 굳이 나에게 가지고 오라고 한 이유가 뭘까..? 아직 잘 모르겠다. 진수의 대타라서 하는 거겠지..? 다른 이유는 없겠지...?

뭔가 시험을 당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    .    .



ㅁㅁ시 골프 CC까지는 길이 꽤 잘 닦여 있어서 오는 길이 어렵지 않았고 덕분에 약속시간 일찍 도착했다. 생각보다 일찍 도착한 현장은 약간 한산했다. 안그래도 실무자들은 사냥제 시작시간 보다 두시간 정도 일찍 오라고 한 건데, 약속시간보다 이른 시간이라 더욱더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약물 가져온 건 어디다가 둘까요..?"



나를 맞이해준 다른 실무자회원에게 물어보니 그 사람도 극비 사항이라 잘 모르겠다며 일단 있어보라고 한다.

주차장이 보이는 대기장소에 앉아서 한참을 기다렸다. 여러사람들이 왔다갔다 하는데 혼자 앉아있으려니 좌불안석이었다. 중요한 것을 갖고 있다보니 뭔가를 시키는 사람도 없었다. 기다리라는 말 뿐이었다. 그렇게 한 시간 쯤 기다렸을까... 건물 앞에 검은 세단이 들어왔다. 왠지 그 차에서 내리는 사람은 간부 중 한 명 일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차에서 내린 사람은 다름 아닌 박지민이었다. 나는 예끼치 않은 상황에 약간 당황스러웠다. 



"해주씨..? 가방은 가져오셨죠..?
 저랑 동행하셔야할 것 같은데 괜찮으신가요?"



그는 약물 가방을 무릎에 올려놓고 앉아있던 나에게 물었다. 중요한 거니까 간부가 챙기는 건가... 따라가면 피해자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모르니 가야할 것 같았다.



"어디로 가는 건가요....?"



일단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들었다. 이미 경찰들이 잠복 중이라는 것은 들었고, 단거리 수신기도 있으니까 따라간다고 해도 빠져나올 만반의 준비는 되었다고 생각했다. 나는 앞으로 일어날 일은 전혀 모른채 머릿속으로 어딘가에 갖혀있을 피해자들을 어떻게 구해야할지 생각하며 나는 그를 따라나섰다.



"일단, 제 차로 갈꺼니까 이쪽을 오시죠."



박지민은 나의 말에 대답하지 않은 채 나를 차에 태웠다. 운전사가 운전을 하고 나와 박지민은 뒷좌석에 앉아있었다. 박지민은 차를 타고 가는 내내 차창 밖만을 볼 뿐 말이 없었다. 박지민의 나에게 전혀 관심 없는 듯한 태도는, 감히 간부가 일개 실무자인 나에게 여태 보여준 모습과는 상반되는 태도여서 함께 앉아있는 이 순간이 무척 불편하게 느껴졌다. 나는 가방 손잡이를 좀더 움켜쥐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지만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한다.



.    .    .

 

차 창밖을 보니 차가 골프 클럽 주차장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점점 골프 CC와 점점 멀어지는데... 혹시 피해자들이 갖혀 있는 곳은 현장과는 멀리 떨어져있는 곳인가..?  안주머니에 있던 단거리 수신기를 슬쩍 다시 확인했다. 정국이는 골프CC근처에 있을텐데, 이건 어느정도 거리까지 작동 하려나... 괜찮겠지..?

큰 도로를 달리던 차는 갑자기 좌회전을 하더니 산 속으로 난 길을 따라 들어가기 시작했다.



"저 지민님, 지금 어디로 가는 거죠? 왜 이 쪽으로.."


"해주씨를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어서..
 만나러 갈꺼에요. "



박지민의 대답은 여전히 추상적이고 불친절했다.



.    .    . 



산속을 조금 들어가고 나니 큰 게이트가 나타났다. 하얀 건물... 입구에 /R&V 연구실/이라고 적혀있었다. 골프 CC가까이에 R&V연구소가 있었다니... 내가 만날 사람은 김태형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R&V와 관련된 사람 중 내가 아는 회원은 김태형이 유일하니까..

차는 연구소 메인 건물 앞 넓은 정원을 끼고 진입로를 따라 한참을 들어갔다. 연구소 건물이 가득하던 주변은 어느순간 숲으로 바뀌고 그 곳에는 하얀 목조주택이 있었다. 연구소 안에 이런 건물이 있다니.. 사택이나.. 숙소 같은 건가 싶으면서도, 느껴지는 이 묘한 기시감.. 내가 이런 건물을 예전에도 본 적이 있었나..? 뭔가 생각날 듯 말듯.. 나의 기억을 탐색하려고 하니 속이 간지러웠다. 반가우면서도 거부감이 드는 이상한 곳이었다. 



"이제 내리시죠."



박지민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내리면서 약물가방을 들고 내리려고 했다. 일단 이걸 갖다주러 온거니까...?



"그리고 그건 차에 두고 오세요. 저희가 알아서 할겁니다."


"네..?"



뭐지..? 그럼 왜 날 여기에... 당황스러워 하는 사이 하얀 집 안에서 아까 떠올린 그 누군가가 걸어나왔다. 김태형이었다. 날 기다렸다는 듯 걸어나온 김태형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어서 와, 해주씨.. 우리 해단이 형 딸"



뭐? 해단.. 흑해단 그건 우리 아빠의 이름이었다.  

저 자식이 우리 아빠 이름을 어떻게 아는 거지?


.    .    .



지민과 함께 목조주택 안으로 들어섰다. 손님맞이용 공간인듯한 1층은 푹신한 소파와 커다란 스크린이 있는 거실공간과 스낵 바로 쓰는 듯한 주방공간로 나뉘어있었다. 다소 오래되 보이는 듯한 설비들과 가구들.. 연구소 입구에서 보았던 신식건물들과는 딴판이었다. 



"해주씨, 뭐 마실 꺼 줄까?"



이 사람 뭔데 나에게 이렇게 친한 척이지...? 나는 경계심에 음료를 권유하는 김태형을 거절하고 소파에 앉았다. 기분이 너무 이상했다. 처음 와 보는 곳인데 이것저것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사냥제 중계 보려고 불렀어~ 해주야, 

미안 내가 그날은 해단이형 딸이라는 것을 알아보지 못했네... 기왕이면 사냥제에 참여해서 같이 뛰어볼까도 했는데 거절했다며..?"







나는 나에게 사냥제를 권유했던 지민을 쳐다보았다. 지민은 눈빛을 피하며 밖을 내다보았다. 뭔가 꺼림직한가...? 김태형은 주방에서 달그닥 거리더니 언더락 잔에 위스키를 가지고 나타났다. 

자리에 앉은 김태형이 수행원에게 고개짓을 하자, 수행원 중 한 명이 앞에 있던 커다란 스크린을 켜더니 리모컨으로 수많은 CCTV를 돌리며 사냥제를 준비 중인 모습을 화면에 띄웠다.



"아직 시작하려면 멀었네... 시간이 좀 있으니까.. 

 우리 이야기나 좀 할까...? 



꿀꺽... 긴장감에 나는 마른 침만 삼켰다. 달그닥달그닥..김태형은 기분이 좋은 듯 컵을 흔들어 얼음을 적당히 녹이고 있었다.







"해주는 여기 기억 안나나봐.. 어릴 때 종종 왔었는데... 

해단이형이 너를 얼마나 예뻐하던지... 
내가 질투가 다 날 지경이었지... 

하긴.. 부모님 돌아가시고 어린시절을 기억할 일이 별로 없었겠구나..."



김태형은 이야기를 하며 나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나는 너희 아빠의 조수이자, 투자자였어. 
 
 해단이 형이 외현와와 관련된 약물을 연구할 때,
 연구를 할 수 있도록 내가 도왔지."


"네? 외현화 약물요...?"


"해주는 아빠가 무슨일 하셨는지 잘, 몰라...?"


"저는 잘... 기억이 안납니다. 어린 시절이니까요."



다 잊고 있었다. 잊어야했으니까.. 그렇지 않으면....
그의 말을 듣자 마음 속의 어둠이 밀려오는 것 같았다.



"우린, 외현화를 조절하고 싶었어.
 하지만 해단이 형과 나는 결정적으로 입장에 차이가 있었지.

 형은 우리의 외현화하는 본능을 조절해서 인간과 같이 순응해야한다는 쪽이었고,
 나는 우리의 타고난 본능을 해소해야한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나는 사냥제를 기획했지..나는 중종들이 본능을 해소하는 장을 만들고 싶었거든..

 사냥제를 연다고 하니까 해단이형이 얼마나 반대를 하던지....

 뭔가를 하려고만 하면 경찰에 신고가 들어가는데, 
 나는 해단이 형이 신고한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정말 디테일하고 결정적인 신고가 들어오더라고..

그래서 난 해단이 형을 의심했어. 

형은 때마침 나와 공동개발한 외현화 조절 약물을 보급하기 위해 정부 기관들과 협의하기 시작했고... 난 당연히 반대 했지, 
 
우리의 외현화를 억제시킬 약물이 보급되면 수인들은 일반적인 인간과 똑같아지는 거잖아?

결국 해단이 형은 나와 크게 다투고 벤처기업을 열겠다며 여기서 나가려고 했지.. 우리는 그렇게 갈라서게 된 거야"



아빠가 사냥제를 반대했었다고...? 생각해보니.. 어린 시절 아빠가 절대로 함부로 외현화하면 안된다고 했던 것 같긴 하다. 

그래서 어린 시절  잘 때에도 나는 늘 사람의 모습으로 잤고, 수인친구들 사이에서도 외현화를 아주 잘 조절하는 편이었다. 조금씩 잊고 있던 어린시절이 떠오르자 머리가 아파왔다. 



"그래서.. 우리 해주는 어느 쪽일까...?"



김태형은 내가 생각에 잠겨있자, 슬며시 다가오더니 앞으로 늘어져있던 나의 머리칼을 어께 너머로 넘겼다. 목에 김태형의 손끝이 스치자 소름이 돋았다.



"..."



뭐라 대답할 수가 없었다.  
무엇을 얘기하던 아빠를 져버리거나, 사냥제를 반대해야하는 대답이 되니까.. 그리고 왠지 김태형이 부모님의 죽음과 관련있는 사람인 것 같아서 점점 역겨워지기 시작했다.

김태형은 나의 불편한 기색을 느꼈는지 떨어져 앉았다. 



"해주씨.. 아까 올라오면서 우리 연구소 건물들도 좀 봤나...?


"아, 네.. 봤습니다."


"내가 곧 이쪽으로 부를테니까, 자리를 옮겨. 

너네 연구소 소장인 김남준도 곧 이 곳 공동 이사로 부임할 꺼야. 아마 연구소가 통합될 것 같은데... 

내가 높은 자리를 하나 마련할테니 사양 말고... 바로 들어와. 

우리 똑똑한 해단이 형 딸인데, 오죽 하겠어...? 능력이야 출중하겠지... 그동안 도와주는 사람 하나 없이 어렵게 컸을 텐데 내가 뭐든 팍팍 지원해줄께.. 은혜도 갚고 말이야.."


"그게 무슨..."


"해주가 그 때 상속 포기하는 바람에  내가 외현화 약물과 관련된 특허를 모두 가져갔잖아..

 사실, R&V가 크는 데에는 그 특허가 아주 큰 도움이 되었어. 이제 해주야 내가 보태줄께.. 응? 사양말고 들어와.."



뭐라고... ?? 김태형의 말은 들으면 들을수록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우리 아빠의 특허를... 그러니까 그때 내가 상속을 포기해줘서 김태형이 다 가져갔다고..?

그가 다리를 꼬며 자리를 고쳐 앉았다.



"내가 해단이 형이 그동안 못 해준 거 다 해줄께.."



그는 악마같은 미소를 띄며 비릿하게 웃었다. 그의 태도를 보고 알 수 있었다.. 이자식.. 우리 부모님 돌아가신 것과 직접 연관이 있구나...! 



"제안은 감사하지만, 거절하겠습니다. 

 그나저나 그동안 도와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걸 어떻게 아셨죠...? 제가 어렵게 컸는지 어쨌는지, 솔직히 대표님과는 아무 상관 없는 일이지 않습니까?"


나는 솟구쳐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며 물었다. 김태형은 나의 기운이 느껴졌을 텐데도 아랑곳 하지 않았다. 

손에 계속 잔을 살랑살랑 흔들며, 얼음 녹이는데 집중하던 그는 뭔가 결심한 듯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암암.. 상관 있지.. 있고 말고"



김태형의 눈빛이 번들거렸다.



"내가 아무도 널 돕지 못하게 막았으니까....."



그는 이제야 얼음이 적당히 녹은 듯 언더락 잔에 있던 술을 한모금 마셨다. 



"해주야, 니가 어린 시절을 잘 기억 못한다는 것은 알겠어..여기도 기억 못하고 말이야. 얼마나 힘들게 지내서 그랬을 까 싶어. 

그러니까, 앞으로 잘 해준대잖아. 거절하지말고 들어와. 나도 10여년 전에 없애려던 해단이형 딸자식을 놓아줄 생각이 없거든...? 

오늘 무사히 가려면 해주는 생각 좀 잘해봐야할 거야.. 그치?"



나를 바라보는 김태형의 눈빛이 금색으로 바뀌어있었다. 살인을 해본 자의 압도적인 살기가 나의 기운을 내리 찍으며 공간을 가득 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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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야기는 작가 머릿속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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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머릿속에 지진정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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