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로잡히다 (33) 추격
지하 연구실은 꽤 넓었다. 내 기억 속 연구소에는 여러가지 출구가 있었다. 김태형이 걸어간 방향에도 출구가 하나 있었다.
산 꼭대기 절벽으로 나가는 출구...
이 출구는 마지막 실험실에 있는 창고를 통해 나가는 곳이어서 건물 구조를 모르는 사람은 쉽게 알아볼 수 없었다.
. . .
산꼭대기 절벽..
어린 나는 거기에서 술래잡기를 하곤 했다.
아빠랑 엄마는 안 된다고 했었는데, 나를 데리고 가서 술래잡기를 하던 사람은 김태형이었다. 어린 대학생이었던 김태형.. 아빠를 해맑은 미소를 띄고 형처럼 따르던 김태형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그 절벽에서 해지는 것을 보는 걸 좋아했는데, 생각해보면 나에게 처음 그걸 보여준 사람도 김태형이었다. 그런데 위험하다며 엄마가 어느 순간부터 못 가게 했다. 내가 너무 가고 싶어하니까 엄마 몰래 어린 김태형이 꼬꼬마였던 나를 그곳에 데려다 주곤 했다.
말하자면 그 곳은 나와 김태형의 비밀 장소였다.
"어디로 갔을지 알 것 같아..
거기가면 헬리콥터를 세울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아마 그래서 그 쪽으로 탈출하려고 할지도 몰라"
나는 다리가 후들거려서 정국이의 부축을 받아야 했다.
"이 쪽이야.."
정국의 부축을 받으며 나는 길을 안내했다.
. . .
맨 마지막 연구실 창고 안, 오랫동안 닫혀있었던 듯한 철문의 자물쇠가 뜯겨있었다. 여기가 바로 그 출구였다. 이미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 듯 엘리베이터가 윗쪽에 서 있었다.
"여기로 올라가면 어릴 때 김태형이 날 데리고 놀아주던 절벽이 있어."
"정말?"
"그동안 어린 시절을 잊고 살아서
처음 김태형 얼굴을 봤을 때 생각이 나질 않았어...
김태형은 우리 아빠가 외현화 약물을 개발할 때 데리고 있던 조수야. 기업가 집안이어서, 아빠가 개발하는 약물에 투자를 했었던 것으로 기억해...
지금, 경찰에서 쓰고 있는 외현화 지체 약물 말이야.
아빠가 연구하던 일이야."
"너희 아빠가 그걸 개발했다고..?"
"응... 내가 투자자들의 빚에 쫒겨서 상속 포기를 했었는데...
그게 다 김태형의 짓이었어. 아빠와 같이 공동 소유했던 여러 약물의 특허권을 김태형이 독차지하려고 했던 거야..."
이야기를 하는 동안 엘리베이터가 와서 타고 올라갔다.
"엄마, 아빠의 기억을 잊어야한다고만 생각해서...
정말로 잊고 지냈어..
조금만.. 기억을 해냈더라면, 조심했을 텐데...
니 말이 맞아.. 나 네 말대로 여기 오면 안 됬었어..
모두 내 탓이야"
정국은 말을 하고 있는 나를 감싸 안으며 토닥여 주었다.
"아니야. 이번 기회에 김태형을 잡으면 되지.
니가 김태형을 잡을 새로운 기회를 만들었잖아.
빨리 쫒아가자.."
어느새 바깥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밖으로 정국과 나는 나갔다.
. . .
두두두두...
절벽으로 뛰어 올라가니 아니나 다를까, 헬리콥터 소리가 들렸다. 어느새 해가 질 무렵이 되어 붉게 물든 하늘을 바탕으로 헬리콥터가 절벽 위 좁은 평지에 막 내려오고 있었다.
"해주야, 저기..!"
정국의 외침에 보니 김태형이 헬리콥터에 올라가고 있었다. 김태형과 함께 있던 괴한들은 우리를 보더니 달려왔다.
나는 최대한 외현화된 힘을 이용해서 괴한들을 피해 앞으로 뛰어나갔다. 놓치면 안된다..! 나의 중학교 시절 이전의 모든 추억과 온기을 빼앗아간 사람이 저기에 있었다.
탕!
옆에 있던 정국이 실탄을 발사했다. 경고용으로 발사한 실탄은 헬리콥터에 오르던 김태형의 얼굴을 스쳐지나 헬리콥터에 박혔다.
"빨리 출발해..! 어서!!!"
놀란 김태형은 뒤를 돌아보더니 급하게 뛰어올탔다. 그는 상황이 급한 듯 위태롭게 문에 매달린 채로 헬리콥터를 출발시켰다. 남아있던 수행원들은 김태형이 그냥 출발하자 당황한 듯 뿔뿔히 흩어지기 시작했다.
태형이 가까스로 헬리콥터에 올라탔을 때였다.
"쳇..! 할 수 없군"
이대로 김태형을 놓칠까봐 마음이 급해진 정국은 다시 실탄을 발사했다.
탕!
으아악!!
이번에는 실탄이 정확히 김태형의 어께에 박혔다. 그는 깜짝 놀란 듯 실탄을 맞은 어께를 다른 손으로 감쌌다. 헬리콥터가 흔들거리자 한손으로 매달려 있던 김태형은 휘청거리다가 헬리콥터 밖으로 떨어졌다.
다행히 아직 헬리콥터가 높이 이륙하지 못 해서인지, 표범 특유의 반사신경 덕분인지 김태형은 꽤나 가뿐하게 바닥으로 착지했다.
나는 그런 김태형 혹시라도 놓칠 새라 계속 달려갔다. 이제 손만 뻣으면 닿을 것 같이 가까워졌다. 나와 눈이 마주친 김태형은 선혈이 낭자한 자신의 어께를 감싸더니, 미소를 지으며 갑자기 몸을 낭떠러지쪽으로 기울였다.
"안돼!"
나의 외침에도 김태형은 그대로 몸을 기울여 낭떠러지 쪽으로 떨어졌다.
"아저씨..!!!"
아저씨.. 그것은 꼬꼬마였던 내가 대학생이었던 김태형을 부르던 말이었다. 재빨리 몸을 날렸다. 가까스로 김태형의 손을 잡았다.
"뭐야... 해주야, 이제 나 기억 났어...?"
절벽에 위태롭게 매달린 김태형, 태형아저씨가 날 보고 씩 웃었다. 뭔가 반가우면서도 슬픈 듯한 그런 표정..
"형에게도 너에게도 정말 미안했다.
내가 죽어서 그 벌 받으마.."
갑자기 평온한 표정을 짓던 김태형은 내 손을 놓아버리려고 했다. 그리고 손을 놓는 순간...!
나는 다른 손을 뻣어 그의 팔을 다시 잡았다.
"웃기지마, 벌은 살아서 받아야지..!"
나의 말에 김태형은 피식 웃었다.
뒤늦게 따라온 정국과 나는 힘을 합쳐 절벽에서 김태형을 끌어냈다. 김태형은 우리가 끌어올리자 순순히 따라왔다.
뒤 돌아보니, 어느새 절벽에 도착한 많은 경찰 대원들이 수행원들과 괴한들을 체포하고 있었다. 하늘에는 붉은 노을이 점점 어둠으로 덮혀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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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머릿속에 지진정 (2023)
* 주말에 일이 있어서 이번주는 주중에 올려요.. ㅎㅎ
내일 다음편도 이어서 올라올 예정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