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하고 씁쓸한

3_달콤하면서도 씁쓸한





"김민규!!!"






힘껏 외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샤워할 때는 몰랐지만 비가 꽤나 내렸던 것 같다. 민규는 꽤 오랜 시간을 비에 젖어있었던 것 같았다. 민규의 이마에 손을 얹으니 비에 젖어 축축하고 차가운 몸과는 다르게 뜨거웠다.

일단 젖은 옷부터 어떻게 해야겠단 마음으로 비에 흠뻑 젖은 옷을 벗겼다. 그제서야 옷에 가려진 흉터가 원우 눈에 들어왔다. 이 흉터가 어떤 흉터인지는 원우가 잘 알았다. 민규와 원우는 이 흉터들이 생길 때 만났었으니까.

회상은 뒤로하고 원우는 곧바로 큰 수건을 가져와 민규에게 덮어주었고 다른 수건을 가져와서는 얼굴이나 젖은 머리의 물기를 닦아냈다.  젖은 옷은 대충 구석에다 던져두고 저보다 큰 덩치의 민규를 업고는 소파에 간신히 눕혔다. 다행히 집에 들어오자마자 28도로 맞춘 보일러 덕분에 추울 걱정은 없었는데





'콜록-'





기침 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비를 얼마나 오래 맞고 있었는지 완전히 흠뻑 젖어서는 저 몸도 추운 걸 아는지 아프다며 소리내고 있다. 원우는 한숨을 내쉬며 감기약을 찾았다. 뭐 먹은 것도 없는데 약을 먹어도 괜찮은 건가. 원우는 시간을 확인하더니 배달앱을 켰다. 요리에는 재능이 없으니 배달앱을 이용해 죽을 시켰다.

원우 형... 민규의 목소리가 힘없이 울렸다. 도대체 자면서 무슨 꿈을 꾸는 건지 제 이름만 계속 부르고 있다. 어제 했던 말들이 어쩌면 민규에게는 사형 선고 같은 것이었을까. 헤어질 무렵부터 그 긴 다리에 힘이 없고 지금은 비에 홀딱 젖어 감기에 헐떡이고 있다. 분명 제 스스로가 자처한 일인데 원우는 마음 한 구석이 불편했다.




'부스럭-'





너무 늦지 않게 죽이 도착했고, 원우는 주섬주섬 일회용 숟가락에 씌어진 비닐을 뜯고, 죽이 든 통의 뚜껑을 열었다. 숟가락으로 한 숟가락 떠서는 후- 후- 불고는 민규를 불렀다.





"민규야. 먹을 수 있겠어?"





으응... 제 말을 제대로 듣고 있기는 하는 건지 눈을 뜨지도 못하면서 뭘 먹는지도 모르면서 먹겠댄다. 입을 벌리라고 하자 그래도 곧잘 입을 열어주는 민규 입으로 원우는 죽을 먹여주었다. 항상 저한테 잘 먹으라고 잔소리하던 민규가 죽 한 숟가락도 넘기기 버거워하는 걸 보니 옛정 때문인가. 마음이 저렸다.

결국 몇 숟가락에 더는 못 먹겠다는 민규의 말에 원우는 죽을 저 멀리 치우고 물과 약을 가져왔다. 그래도 원우가 신경 쓰는 건 아는지 민규도 꾸역꾸역 약을 먹었다. 그리고 곧바로 잠들긴 했지만.








-









거실에 있는 큰 창 커튼 사이로 밝은 빛이 들어왔다. 언제 잠든 건지 원우는 저도 모르게 소파에 기대어 있었다. 눈을 뜨니 민규는 여전히 자고 있었다. 꼭 그때로 돌아간 것 같아서 웃음을 내었더니 민규가 그 소리에 눈을 떠버렸다.




"아. 미안."


"뭐가 그렇게 재밌는데?"


"그냥 예전 생각나서. 근데 이젠 괜찮아?"


"덕분에."




민규는 멀쩡해 보였다. 일어나서 둘러보니 진짜 어질러진 원우의 집이었다. 항상 치우고 좀 살라니까 여전히 이렇게 사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일어나자마자 잔소리를 하는 것도 그렇고 어제 하루는 정말 제 자신에 얼마나 민폐였는지 알기에 참았다.

민규는 일어나서 부엌으로 향했다. 원우는 다시 진절머리가 났다. 또 당연하게 부엌으로 향하는구나. 너도 어제는 잘 못 먹었으면서. 이 말을 듣고 민규는 식탁 위에 놓인 남은 죽을 확인했다. 제가 먹고 남긴 게 있을 줄은 몰랐는데 어젠 이것도 못 먹을 만큼 많이 아프긴 했나 보다.





"내쫓지도 않고 챙겨줬잖아. 보답이라도 해야지."


"나가주는 게 보답일 것 같은데."


"밥만 챙겨주고 갈게."






제 집인 듯 편하게 냉장고를 열어보고 아침을 준비하려는 민규가 원우는 못마땅했다. 갑자기 와서는 쓰러지질 않나. 아프질 않나. 아침이 되니까 아픈 건 거짓말인지 멀쩡하게 요리를 하려고 하질 않나. 그런 원우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민규는 묵묵히 요리만 했다.





"먹는 것까지 보고 갈게."


"아까랑 말이 다르잖아 민규야."


"안 그러면 안 먹고 버릴 것 같아서."





원우는 민규를 빨리 보내기 위해서라도 식탁으로 향했다. 민규가 차린 밥상은 그때처럼 따스했다. 그래 이게 그때 느끼던 평화였다. 원우는 지금도 그 시절이 그리웠다. 그리고 그건 민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둘은 알고 있다 그 시절로 돌아갈 수도 없고 그 시절처럼 살 수 없다는 걸. 이미 그러기엔 둘 다 너무 멀리 떨어져버렸다.

원우가 밥을 다 먹자 민규는 일어났다. 정말 이게 목적이었을까. 원우는 민규를 붙잡았다.





"그래서 무슨 의미야."


"뭐가?"





태연하게 말해도 그 속내가 얼굴에 드러났다. 나 지금 형한테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데 참는 거야. 같은 표정이었다. 원우가 계속 민규를 바라보고 있으니 결국 민규도 못 이겨서 참던 말을 내뱉었다.






"형이 이전에 거기가 편하다고 했었지. 그래서 있잖아."


"그래서 뭐."






 지이잉 -, 민규의 휴대폰이 울렸다. 누구의 전화인지는 몰라도 민규는 다급히 받으며 제 입술 위에 검지손가락을 올리며 . 이라는 입 모양을 원우에게 비췄다.

반기지 않는 사람인 걸까 좋은 표정이라고는 못했다. 민규의 표정은  신중함 그 사이에 불편함 그리고 조금의 증오가 섞인 듯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보스. 라는 말이 원우의 귀를 떠나지 않았다.





"보스? 무슨 소리야."


"형을 말리려면 이 방법밖에 없을 것 같아서."


"김민규 너 설마."


"형이 잘 아는 곳이지. 이쪽 조직의 양대산맥이라고도 불리잖아."


"나를 막는다고 우리 조직이랑 싸우겠다고?"






민규는 그 말을 하러 온 거라면서 옷장에서 옷을 꺼냈다. 원우가 옷장 문을 닫으며 인상을 구겼다. 그런다고 제가 조직에서 나올 것 같냐고. 민규는 상관 없다고 했다. 어차피 원우를 막는 건 자신이 될 거니까 라며 옷을 입고는 현관으로 향했다.





"사적으로 보는 건 이게 마지막일 거야."


"허, 이 집에 남은 네 흔적들이나 좀 치우는 게 어때?"


"거슬리면 형이 치워. 근데 솔직히 말해서 형도 좋았던 거잖아."


"..."


"안 그러면 내 흔적들을 왜 남겨두었겠어."





 띠리릭!
현관이 열렸다. 민규는 그 말을 끝으로 집을 떠났다. 과거에 이 집에선 원우와 민규가 함께 살았다. 다른 건 아니었고 과거에도 둘은 조직 활동은 했었다. 그 조직에서 마련해준 집인데 하필이면 그 조직 내에서 충돌이 생겨 지금의 양대산맥 구조를 이루었다.

민규는 그 이후로 조직에서 해방되어 조직 활동을 그만두었지만 원우는 사람을 처리해왔던 자신의 손이 미워서 그간 더럽혀진 제 몸이 너무 싫어서 이미 괴물이 되어버린 것 같아서 조직을 떠날 수 없었다. 결국 원우는 그 뒤로도 승철과 사적인 만남을 가졌다가 최근 승철의 조직에 합류한 것이다.

그런 제 과거를 다 알고 있는 민규가 싫었다. 그런 과거를 만들 수밖에 없던 자신의 과거가 싫었다. 여전히 자신을 잘 이용하는 승철도 싫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싫은 것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가장 싫었다.

싫은 것들 속에 빛나는 유일한 행복은 민규와 이 집에서 생활했던 소소한 일상이었다. 평범했다면은 누릴 수 있었을 당연한 행복. 원우는 손을 붉게 물들인 순간부터 평범은 가질 수 없는 기회가 되어버렸다고 생각했다.








-








민규가 소속된 조직은 역시나 승철이 보스인 원우가 소속된 조직을 견제하고 있었다. 대놓고 사람을 처리하는 조직이 잡히지 않은 것도 미스테리지만 왜 그렇게 사람만 처리하고 다니는 지도 미스테리다.

민규는 다시는 하지 않을 줄 알았던 조직 생활을 하게 되어서 조금은 불안하지만 빨리 적응을 해야 됐다. 그래야 원우를 막을 수 있을 테니까.







원우도 민규의 소식을 알았으니 민규가 소속된 조직을 조사했다. 조직 내에서 들키지 않게. 괜히 자신이 이곳을 조사한다는 걸 알면 어떤 구설수에 오를지 혹은 어떤 불똥이 튈지 모르니 조심해야 됐다. 조사하면서 나온 거라곤 이 조직은 약물 쪽인 것 같았다.

언젠가는 저 손을 더럽혀야 되는데 겨우 밝은 세상으로 발을 내딛은 민규가 다시 이런 세상으로 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원우도 어쩌면 민규와 같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어떻게든 막아야겠다고. 제가 딛고 있는 세상에 민규가 들어올 수 없게.










형도 내가 살고 있는 세상으로 왔으면 좋겠어.

너는 내가 살고 있는 세상으로 오면 안 돼 민규야.









그러니까 내가 형을

그러니까 내가 너를




막을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