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 정국 빙의글] 다시, 전정국

2화

결혼식이 끝난 뒤, 하객들은 하나둘 예약된 연회장으로 이동했다.

 

여주는 솔직히 집에 가고 싶었다.

예식만 보고 조용히 빠지려 했는데, 친구들이 붙잡는 바람에 결국 뒤풀이 자리까지 따라오게 됐다. 오랜만에 다 같이 모였는데 얼굴만 비추고 가면 서운하다는 말에 어쩔 수 없었다.

 

문제는 딱 하나였다.

전정국도 이 자리에 있다는 것.

 

문 앞에 도착한 순간에도 여주는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제발 같은 테이블만 아니면 된다.

진짜 그것만 아니면 된다.

근데 그런 바람은 원래 잘 안 이루어지는 법이었다.

 

“여주 여기 앉아!”

 

친구가 활짝 웃으면서 한쪽 테이블을 가리켰다.

여주는 별생각 없이 고개를 돌렸다가 그대로 굳었다.

전정국이 거기 앉아 있었다.

 

“…와.”

 

작게 나온 소리였다.

친구는 못 들은 것 같았다.

 

“왜? 자리 괜찮잖아.”

 

괜찮긴 뭐가 괜찮아.

하필 왜 여기냐고.

 

여주는 속으로만 울부짖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다른 자리 가겠다고 하기도 너무 이상했다. 이미 몇 명은 앉아 있었고, 다들 자연스럽게 자리를 채우는 중이었다.

 

정국도 고개를 들어 여주를 봤다.

딱 눈이 마주쳤다.

 

 

정국은 별말 없이 여주를 잠깐 바라보다가, 아주 미세하게 시선을 내렸다. 그게 마치 인사처럼 느껴져서 여주는 더 어색해졌다. 모르는 척하기도, 그렇다고 자연스럽게 웃기도 애매했다.

결국 여주는 정국의 정면은 피하고, 두 칸 정도 떨어진 자리에 앉았다.

 

“와, 오늘 사람 진짜 많다.”

“그러니까. 결혼식 예쁘더라.”

 

테이블 분위기는 금방 시끌벅적해졌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끼리 안부를 묻고, 사진을 찍고, 잔을 채웠다. 여주도 적당히 웃으며 맞장구를 쳤지만 마음 한쪽이 계속 불편했다. 굳이 보지 않으려 해도 정국의 존재가 자꾸 의식됐다.

 

이상한 일이었다.

바로 옆에 앉은 것도 아닌데, 같은 테이블이라는 이유만으로 숨 쉴 때마다 신경이 쓰였다.

 

“여주야, 뭐 마실래?”

 

친구가 물었다.

 

“아, 그냥 물—”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여주 앞에 비어 있던 컵 쪽으로 생수병이 스윽 밀려왔다. 방금 직원이 두고 간 생수병과 컵이었다. 여주는 잠깐 멈칫했다. 누가 밀어준 건지 확인하려고 고개를 들자, 정국이 아무 일 없다는 듯 자기 잔에만 시선을 둔 채 앉아 있었다.

 

여주는 잠깐 입술을 깨물었다.

 

“고마워.”

 

작게 말했지만, 정국이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정국은 그냥 손끝으로 컵 가장자리를 한 번 두드릴 뿐이었다.

 

그 반응이 더 미치게 했다.

뭐야 진짜.

왜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아?

 

예전에도 그랬다.

전정국은 꼭 이런 식이었다. 말은 별로 안 하면서, 사소한 건 이상하게 잘 챙겼다. 그래서 더 미련 남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여주는 괜히 시선을 돌렸다.

 

식사가 시작되고, 누군가 신랑 신부 이야기를 꺼내자 분위기는 더 풀어졌다.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다. 정국도 몇 번 따라 웃었는데, 여주는 그 웃는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괜히 복잡해졌다. 예전에는 너무 익숙했던 목소리였다. 가까이 있을 때는 별생각 없이 들었는데, 이렇게 멀어진 뒤 들으니 이상하게 더 선명했다.

 

“정국아, 너 요즘도 엄청 바쁘지?”

 

누군가 물었다.

 

“그냥 뭐, 비슷해.”

“너는 맨날 비슷하대. 그렇게 바쁜 사람이 어딨냐.”

 

 

가벼운 농담이 오갔다. 여주는 굳이 끼어들지 않았다. 끼어들 수가 없었다. 정국의 일상은 더 이상 자신이 아는 범위가 아니었고, 알고 싶지도 않다고 생각해왔는데, 막상 다른 사람들 입에서 그의 생활이 오가는 걸 듣고 있으니 묘하게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때였다.

 

“여주 너는?”

 

갑자기 화제가 넘어왔다. 여주는 놀라 눈을 깜빡였다.

 

“어?”

“요즘 일 어때? 바쁘지?”

“아… 그냥, 늘 그렇지 뭐.”

 

무난하게 대답했지만, 이어지는 질문에 금방 말문이 막혔다.

 

“회사 옮긴 건 적응됐어?”

 

질문을 한 건 공통 지인이었지만, 여주는 대답하기 전에 잠깐 멈췄다. 그 얘기를 정국도 알고 있다는 사실이 갑자기 선명해졌기 때문이다. 헤어진 뒤 한참 지나 이직했다. 당연히 직접 말한 적은 없는데, 아마 공통 지인들 통해 들었겠지. 그게 별일 아닌데도 괜히 마음에 걸렸다.

 

“응. 아직 좀 정신없긴 한데… 괜찮아.”

 

짧게 대답하고 컵을 들었다. 더 묻지 말아줬으면 싶었는데, 다행히 대화는 다른 쪽으로 금방 넘어갔다.

여주는 속으로 안도했다.

 

하지만 그 안도도 오래가지 않았다.

테이블 가운데 놓인 뜨거운 국물을 앞접시에 덜어 먹으려다, 여주는 그만 손끝을 데일 뻔했다. 순간 움찔하며 손을 뗐는데, 바로 옆에서 누군가 조용히 집게를 집어 들었다. 정국이었다.

 

“그거 뜨거워.”

 

짧은 한마디.

 

정국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국그릇 손잡이를 돌려 여주 쪽과 멀어지게 놓아줬다. 너무 자연스러운 동작이라 오히려 더 당황스러웠다. 예전에도 정국은 늘 저랬다. 대단한 말을 하지도 않으면서, 꼭 이런 사소한 걸 먼저 챙겼다.

여주는 괜히 손끝만 만지작거렸다.

 

“…알아.”

 

대답은 조금 늦었고, 생각보다 퉁명스러웠다.

여주 스스로도 아차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

 

정국은 별 반응 없이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서운해하는 기색도, 웃는 기색도 없었다. 그 무심한 얼굴이 오히려 여주를 더 불편하게 했다.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말지. 왜 자꾸 예전처럼 구는 건지, 왜 그런 사소한 배려 하나에 또 흔들려야 하는 건지 마음이 복잡해졌다.

 

뒤풀이가 중반쯤 넘어가자 사람들 얼굴도 조금씩 붉어졌다. 술잔이 오가고 목소리도 커졌다. 다들 편해진 분위기 속에서 떠들고 있었지만, 여주는 이상하게 점점 더 말수가 줄었다. 웃고 있긴 한데 몸에 힘이 들어갔다. 정국이 직접 말을 거는 것도 아닌데, 같은 공간 안에서 계속 그를 의식하는 자신이 피곤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느껴지는 게 있었다.

정국은 여주에게 굳이 말을 걸지 않았다.

 

정말 필요한 순간이 아니면 시선조차 오래 두지 않았다.

그게 오히려 더 신경 쓰였다.

불편하게 만들지 않으려고 일부러 조심하는 것 같아서.

 

여주는 젓가락으로 접시만 괜히 건드렸다.

예전 같으면 그 배려를 알아채는 순간 더 마음이 아팠을 텐데, 지금은 그것마저도 애매했다. 고맙다고 해야 할지, 모르는 척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 자리 너무 싫다.

당장이라도 일어나고 싶었다.

근데 또 이상하게, 진짜로 일어나서 나가면 정국이 신경 쓸 것 같았다.

 

“여주야, 왜 이렇게 조용해?”

 

옆자리에 앉은 친구가 웃으며 어깨를 쳤다.

 

“아니, 그냥 좀 피곤해서.”

“그러네. 얼굴이 좀 피곤해 보인다.”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여주는 맞은편에서 잠깐 시선이 닿는 걸 느꼈다.

정국이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분명했다.

말없이 여주의 얼굴을 확인하듯 바라보다가, 여주가 고개를 들기도 전에 먼저 시선을 거두는 눈빛.

정말 별거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짧은 시선 하나가 오래 남았다.

여주는 손에 쥔 컵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끝난 사이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이렇게 어수선할 줄은 몰랐다.

 

그리고 더 싫은 건,

저 사람도 자신을 신경 쓰고 있다는 걸 어렴풋이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