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 정국 빙의글] 다시, 전정국

3화

뒤풀이가 끝날 때쯤엔 다들 꽤 취해 있었다.

처음엔 시끌시끌하게 웃고 떠들던 분위기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목소리는 더 커지고 발음은 더 흐려졌다. 여주는 몇 번이나 시계를 확인했다. 이제 진짜 집에 가고 싶었다. 오늘 하루만 해도 이미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전정국이랑 결혼식장에서 다시 마주친 것도 모자라, 같은 테이블에서 밥까지 먹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심장에 안 좋았다.

 

여주는 조용히 가방을 챙겼다.

친구들한테만 적당히 인사하고 슬쩍 빠져나가려던 순간이었다.

 

“여주야아…”

 

누가 자기 팔을 툭 잡았다.

고개를 돌리자 공통 지인이 눈이 반쯤 풀린 채 여주 어깨에 기대고 있었다.

 

“어?”

“나 집 못 가겠어…”

“뭐야, 너 엄청 취했네.”

 

여주는 당황해서 지인의 팔을 붙잡았다. 아까까진 멀쩡한 척하더니, 끝날 때 되니까 완전히 풀린 모양이었다. 지인은 여주 어깨에 얼굴까지 기대며 웅얼거렸다.

 

“택시 타면… 멀미할 것 같아…”

“야, 정신 차려 봐.”

 

여주는 한숨을 쉬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들 비슷비슷했다. 서로 취한 사람들끼리 부축하고, 가방 찾고, 핸드폰 챙기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 상태로는 혼자 이 지인을 데려다주기 힘들 것 같았다.

 

“많이 취했네.”

 

낮게 떨어지는 목소리에 여주는 흠칫했다.

 

 

 

고개를 들자 전정국이 바로 옆에 서 있었다.

언제 온 건지 모르겠는데, 정국은 여주 어깨에 거의 매달려 있는 지인을 한 번 보고, 여주 얼굴을 한 번 봤다.

 

“혼자 데려다주긴 힘들겠다.”

 

여주는 순간 대답을 못 했다.

맞는 말이었다. 맞긴 한데.

문제는 그걸 전정국이 말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어… 뭐…”

 

여주가 애매하게 말끝을 흐리자, 정국이 자연스럽게 지인의 다른 쪽 팔을 잡았다.

 

“내가 잡을게.”

“됐어. 내가—”

“네가 혼자 어떻게 데려다주려고.”

 

말투는 무심했는데, 손은 이미 지인의 몸이 기울지 않게 안정적으로 받치고 있었다. 여주는 그걸 보고 입을 다물었다. 괜히 더 거절해봤자 이상해질 것 같았다.

 

결국 셋은 같이 뒤풀이 장소를 나왔다.

밤공기가 얼굴에 닿자 조금 정신이 들었다.

하지만 여주 마음은 더 복잡해졌다.

하필 또 같이 가게 되다니.

취한 지인은 두 사람 사이에 끼어서 웅얼거리기만 했다.

 

“물… 마시고 싶다…”

“잠깐만.”

 

정국이 근처 편의점 쪽을 보고 말했다.

 

“앞에서 물 사 갈게.”

“아냐, 그냥 바로 가도—”

“금방이야.”

 

짧게 말한 정국은 지인을 잠깐 여주 쪽으로 넘겨주고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 여주는 얼떨결에 지인의 몸을 혼자 붙잡게 됐다.

 

“야, 너 진짜 무겁다…”

 

지인은 대답도 없이 여주 어깨에 기대서 작게 웃기만 했다.

그 모습을 보다가 여주는 괜히 편의점 유리창 쪽으로 시선을 줬다.

 

정국이 계산대 앞에 서 있었다.

검은 셔츠 소매를 살짝 걷은 팔이 보였다. 그냥 물 하나 사는 건데, 왜 저렇게 익숙해 보이는지 모르겠다.

예전에도 그랬다.

 

어딜 같이 가면 정국은 꼭 먼저 움직였다. 물이 필요한지, 택시를 어디서 잡아야 하는지, 집이 멀진 않은지. 자기가 먼저 묻고 먼저 챙겼다. 그땐 그게 너무 당연해서 몰랐는데, 이렇게 다시 보니까 더 선명했다.

 

여주는 얼른 고개를 돌렸다.

그때 정국이 편의점에서 나왔다. 손엔 생수 두 병이 들려 있었다.

한 병은 지인한테, 다른 한 병은 여주 쪽으로 내밀었다.

 

“너도 마셔.”

“난 괜찮은데.”

“안 괜찮아 보여.”

 

여주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정국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이었다. 꼭 진짜 별뜻 없이 말한 것처럼.

 

“…고마워.”

 

여주는 결국 병을 받았다.

차가운 플라스틱 감촉이 손바닥에 닿았다.

 

셋은 다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지인의 집은 뒤풀이 장소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택시 타기도 애매한 거리라, 조금만 걸으면 되는 위치였다.

문제는 그 짧은 거리가 여주한테 너무 길게 느껴진다는 거였다.

지인은 거의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라 말이 없었고, 자연히 조용한 시간만 길어졌다. 발소리만 들렸다. 밤바람은 선선했고, 가끔 멀리서 차 지나가는 소리만 났다.

 

너무 조용했다.

여주는 그 침묵이 더 견디기 힘들었다.

그래서 괜히 취한 지인한테 말을 걸었다.

 

“야, 정신 좀 차려 봐.”

“으응…”

“집 거의 다 왔어.”

“여주야…”

“왜.”

 

지인은 눈도 제대로 못 뜬 채 말했다.

 

“나 너 좋아해…”

“뭔 소리야 진짜.”

 

여주는 어이없어서 헛웃음을 쳤다.

그때 옆에서 아주 작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정국이었다.

여주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정국은 웃음기를 참는 얼굴로 시선을 아래로 내리고 있었다.

 

“왜 웃어.”

 

괜히 민망해져서 툭 던지듯 말했더니, 정국이 여주를 흘깃 봤다.

 

“아니.”

“웃었잖아.”

“좀 웃겼어.”

 

그 짧은 대화가 이상하게 마음을 건드렸다.

예전에도 그랬다.

 

여주가 괜히 투덜거리면 정국은 꼭 저런 식으로 웃었다. 크게 놀리진 않는데, 혼자 웃는 얼굴이 좀 얄미웠다. 그래서 더 뭐라고 하고 싶어지던.

여주는 괜히 입술을 삐죽였다.

 

“웃기면 다냐.”

“그럼 안 웃어?”

“됐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은 더 엉망이었다.

겨우 몇 마디 했을 뿐인데.

겨우 저 웃는 얼굴 한 번 봤을 뿐인데.

이상하게 예전 기억이 너무 쉽게 살아났다.

 

셋은 얼마 안 가 지인의 집 앞에 도착했다.

비밀번호를 아는 룸메이트에게 연락해서 겨우 문을 열었고, 둘은 취한 지인을 현관 안까지 데려다줬다. 지인은 신발도 제대로 못 벗고 소파 쪽으로 풀썩 쓰러졌다.

 

“물 여기 놔둘게요.”

 

여주가 작게 말하자 룸메이트는 감사하다고 말하며 지인을 째려보았다.

문이 닫히고 나서야, 여주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드디어 갔다…”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자 정국이 옆에서 말했다.

 

“수고했네.”

 

그 말이 또 별거 아닌데 괜히 이상했다.

여주는 복도 끝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며 작게 대답했다.

 

“너도.”

 

엘리베이터가 내려오는 동안 잠깐 정적이 흘렀다.

여주는 전광판 숫자만 보고 있었다. 정국을 보면 또 괜히 신경 쓸 것 같았다.

 

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둘은 나란히 안으로 들어갔다.

 

늦은 시간이라 엘리베이터 안엔 둘밖에 없었다.

그제야 여주는 진짜 숨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조용했다. 너무 조용했다.

 

방금 전까진 취한 지인이 있어서 덜했는데, 이제 진짜 둘만 남았다.

여주는 괜히 손에 들고 있던 생수병 라벨만 만지작거렸다.

 

정국은 정면만 보고 서 있었다.

몇 초가 너무 길게 느껴지던 그때, 정국이 먼저 입을 열었다.

 

“집 멀어?”

 

여주는 잠깐 멈췄다가 대답했다.

 

“아니. 택시 타면 금방이야.”

“다행이네.”

 

또 대화가 끊겼다.

 

여주는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이렇게 어색할 거면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말지.

근데 또 정말 아무 말도 없으면 그건 그것대로 더 이상할 것 같았다.

그래서 더 짜증 났다. 자기 마음이 왜 이러는지도 모르겠고, 전정국이 이렇게 옆에 서 있는 것도 너무 신경 쓰였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둘은 밖으로 나왔다.

건물 밖까지 같이 걸어 나오는데, 밤공기가 아까보다 더 차갑게 느껴졌다. 여주는 가방끈을 괜히 꽉 쥐었다.

 

“택시 잡아줄까.”

 

 

정국이 물었다.

여주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냐, 괜찮아. 나 혼자 갈 수 있어.”

 

정국은 잠깐 여주를 봤다.

억지로 잡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금방 물러서지도 않았다.

그 짧은 시선이 이상하게 마음을 건드렸다.

 

“그래.”

 

정국은 결국 그렇게만 말했다.

정말 딱 그 정도였다.

 

붙잡지도 않고, 더 묻지도 않고, 그냥 여주 대답대로 물러났다.

근데 그게 오히려 더 이상했다.

 

여주는 한 발 물러선 정국을 잠깐 올려다봤다.

가로등 불빛 아래 서 있는 얼굴이 낯설면서도 익숙했다.

예전에는 참 많이 봤던 얼굴인데.

그때 정국이 아주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근데 너.”

 

여주는 괜히 심장이 철렁해서 바로 고개를 들었다.

정국은 여주를 보다가, 아주 잠깐 망설이는 것 같더니 말했다.

 

“말투 하나도 안 변했네.”

 

순간 여주는 아무 말도 못 했다.

그 말이 너무 예상 밖이라서.

 

그리고 그 말이, 오늘 밤 정국이 처음으로 예전의 두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말이라서.

여주는 손끝에 힘을 줬다.

 

“너도.”

 

겨우 그렇게 대답하자, 정국이 아주 희미하게 웃었다.

 

정말 잠깐이었다.

 

근데 여주는 그 짧은 웃는 얼굴을 보고 또 마음이 이상해졌다.

 

 

“먼저 갈게.”

 

여주가 먼저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응. 조심해서 가.”

 

여주는 서둘러 돌아섰다.

뒤를 돌아보면 안 될 것 같아서, 진짜로 보면 안 될 것 같아서 빠르게 걸었다.

그런데 몇 걸음 못 가서 결국 깨달았다.

 

아까 엘리베이터 안에서부터 계속,

자기 심장이 너무 시끄러웠다는 걸.

 

그리고 더 짜증 나는 건—

 

전정국이 마지막에 한 그 말 하나가,

오늘 있었던 어떤 일보다 오래 남을 것 같다는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