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 에피소드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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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가 보채기도 하였고, 우진도 이젠 지친 나머지 결국 제주도행을 결정했다. 그리곤 다신 돌아오지 않을 생각이었다. 제주도로 가기 위해 진행된 모든 일은 속전속결이었다. 서울에서 있던 여주와의 추억과 흔적은 우진이 놓자마자 쉽게 지워졌고, 잊혀졌다. 솔직히 허무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쌓아왔던 우리의 추억이 사실은 저가 놓기만 하면 사라지는거 였다는게 우진의 마음을 짓밟았다. 수년간의 시간이 한 번에 없던 일로 돌아가버렸다.  

  

  

  

 짧은 기간 지낼 호텔을 빌린 우진은 곧바로 침대에 몸을 던졌다. 폭신한 매트리스와 이불이 우진을 감싸안았다. 매번 맡던 냄새와는 다른, 어색하지만 달콤한 섬유유연제 냄새가 우진의 코 주변을 맴돌았다. 이제는 정말 여주와 관련되었던 모든 것이 사라졌다. 우진은 잠시 눈을 감았다. 감은 눈에서 눈물이 새어나왔다. 분명 몸은 한결 편해졌는데, 머릿속은 복잡했다. 계속 눈을 감고 머릿속을 정리하던 우진은 까무룩 잠들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참 애석하게도 우진은 몇 년만에 봄이 되면 꾸던 그 꿈을 꾸지 않을 수 있었다.  

  

  

 어색할 정도로 개운하게 일어난 우진은 어이가 없었다. 그냥 여주와의 추억이 많던 서울을 빠져나왔을 뿐인데 이렇게 꿈을 안 꾼 것에 그동안의 노력이 모두 바보같은 짓이었다는 게 웃기기도 했지만 슬프기도 했다. 그래도 오랜만에 찝찝한 꿈을 안 꿔서 한결 기분이 괜찮아진 우진은 챙겨온 캐리어를 열었다. 그리고 입고 나갈 옷을 고르기 시작했다. 만날 사람은 없지만 산책을 하고 싶은 마음에 가방을 파헤쳐가며 고르던 중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 닳은 그 책은 우진이 대학생때 쓰던 전공책이기도 했지만 여주에게 선물해주려고 꺾은 벚꽃 한 송이를 넣어놓은 책이기도 했다. 책에 있는 작은 틈을 펼쳐보면 그때 그 모양과 색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벚꽃이 들어있다. 한때는 이 분홍빛의 꽃이 여주를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여주가 만약 아직도 살아있었다면 그 생각을 지금도 했을까라는 상상을 해보았다.  

  

  

 대충 차려입은 우진은 호텔을 나와 해안도로 위를 걷고 있었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우진의 뺨을 스쳤고 아직은 조금 차가운 바람에 몸을 떨기도 했다. 바다냄새는 그때와 다르지 않았고, 오늘은 그날과 달리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깨끗한 날씨였다. 우진은 계속 걸었다. 다시 돌아가는 길을 잊어버린건 이미 지난 일이었다. 정처없이 걷다보니 벚꽃나무가 무성한 어느 공간으로 들어가게 된 우진은 넓은 평야 가운데 서있는 제일 큰 나무를 바라보았다. 그 나무만 유일하게 가지에 아무것도 없었다. 꽃은 커녕 나뭇잎도 달려있지 않았다. 겨울이 지난지는 한참 되어 거의 모든 나무에는 새 생명이 돋아나고 있었는데 그런 나무를 보니 우진은 지나칠 수가 없었다. 그렇게 그 나무를 향해 서서히 걸어가는 중이었는데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우진이 그토록 그리던 사람의 목소리였다. 목소리는 나무로 다가갈 수록 더욱 크게 들려왔고, 소리가 커질 수록 우진은 눈물을 쏟아냈다. 나무에 다 다른 우진은 큰 나무를 돌아 여주를 맞이했다.

  

  

  

 우진은 여주의 뺨에 손을 대었다. 비록 전 처럼 따뜻한 체온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여주가 만져졌다. 여주를 품에 안았다. 그리고 계속 눈물만 흘리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여주야. 여주야. 이여주. 나의 모든것 여주야. 내 사랑 여주야. 보고싶었어. 너무 힘들고 괴로웠어. 두 사람이 서있던 나무에 벚꽃이 만개했다. 우진의 맘에 다시 벚꽃이 찾아왔고, 우진은 더이상 아파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옛날옛날 한 마을에 서로를 많이 사랑하던 소년과 소녀가 있었다. 그 둘은 벚꽃나무 아래에서 놀기를 좋아하였다. 행복했던 둘을 시기하던 신은 소녀를 소년이 찾을 수 없는 곳으로 데리고 가버렸다. 소년은 절망하였지만 그녀를 둘의 추억이 가득한 벚꽃나무 아래에 묻어주었다. 그 후 어째서인지 나무가 소녀를 묻은 뒤로 더이상 꽃을 피우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고, 남아있던 소년도 세상을 떠나자 마을 사람들은 소년을 소녀가 묻혀있는 벚꽃나무 소녀의 옆자리에 같이 묻어주었다. 그러자 죽은 줄로만 알았던 나무에 꽃이 피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만나 그 나무가 다시 봄을 찾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