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코나보레키나
(: 상상한 것이 현실로 이루어지게 하는 주문)
"전정국! 진짜 와줬네."
"뭘... 당연한 건데."
이주가 꼭 붙잡아오는 손을 살짝 밀어내고는 쌉싸름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정국이었다. 몇 주 전, 아침 댓바람부터 정국을 불러낸 이주가 결혼을 하게 되었다며 청첩장을 건네왔을 때도 정국은 절대 결혼식에 가지 않을 것이라는 나름의 다짐을 했다. 집에 돌아와서 청첩장을 신경질적으로 던져버린 정국. 우울감에 쩔어 있으면 그래도 막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인 27살까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왔던 친구가 결혼을 한다는데..., 사적인 감정 하나만으로 그런 곳에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다? 이이주가 속상해할 것을 알았기에 전정국은 잘 입지도 않는 정장을 멋지게 빼입고 결혼식장으로 부리나케 달려왔다.
이주에 의해 건너건너 아는 친구부터 고등학교 동창들까지 신부 대기실에서 신부 주위를 둘러싸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본 정국은 더욱이 기분이 이상했다. 신부 대기실 정중앙의 체어에서 잘 빠진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있는 신부가 제 오랜 친구, 이이주라는 것이 가장 이질스러웠다. 우글거리는 인파 속 스쳐 보인 머리를 곱게 올려묶고 면사포를 눌러쓴 이이주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렸다.
"이렇게 먼저 가기 있냐."
"에이~ 너도 좋은 여자 만날 거야. 네가 누굴 못 만나."
착각인지, 정국은 잠시 몸이 저릿했다. 진짜 이이주가 결혼을 하는구나. 남자친구도 아니고 남편이라는 사람이 생기는구나. 가정이 생기는구나. 27년 동안 함께한 내 가족이고 또 친구. 그런 이이주가 나를 떠나 다른 가정을 이루는 날이라니..., 아직까지도 정국은 얼떨떨했다. 차라리 지금이 꿈이었으면 하는 마음. 이주의 말에 뜸을 들이던 정국이 살풋 미소를 지었다. 웃펐다.
"이주야."
"뭐야! 네가 내 이름 부르는 거 오랜만이다."
"그 정도야?"
"내 이름이 코코넛인가 이이주인가 아직도 헷갈린다니까~"
코코넛 음료를 좋아하는 이주를 전정국은 항상 코코넛이라고 애칭했다. 서로 별거 아닌 일로 싸울 때도 코코넛 네가 잘못한 거야. 라던지 하는 애칭을 고집하던 전정국은 몇 년 동안 이주를 이주라고 부르지 않았다. 오랜만에 정국의 목소리로 본인의 이름이 불리우는 것을 들은 이주는 식장이 떠나가도록 웃었다. 별일이 아닌데도 하염없이 웃음을 뱉는 이주를 보고 정말 행복한 것 같아서, 그래서 전정국도 옅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오늘만큼은 이이주가 정말 행복한 하루를 보낼 수 있게 사적인 감정은 자제해야 한다. 그게 전정국이 신부 대기실에 발을 들이기 전 했던 다짐이었다.
"재혁 씨는 잘 해줘?"
"응. 진짜 이 사람 못 만났으면 어쨌을까 싶고... 나도 짝이 있구나! 막 그랬지 뭐."
"다행이네 그럼."
"좋은 사람이야. 걱정하지 마."
이제 네 옆의 그 사람을 네 남자친구가 아니라 재혁 씨? ... 백 번 노력해서는 신랑 정도. 아무튼 그렇게 지칭 해야 한다는 게 불만스러워서 이상하게 말이 툴툴스럽게 나온 정국이었다. 그래도 이이주의 남편이 될 사람이 정말 가정적이고 좋은 남자라는 건 정국도 어느 정도 들은 바가 있어서 그저 입맛을 다시는 것 밖에 없었다. 이이주 하여간에 남자 보는 눈 하나는 기깔이 나지. 정국의 한 마디에 이주가 예비 신랑에 대한 칭찬을 무더기 마냥 쏟아냈다. 하하 호호 웃는 이주에 반해 어두워지는 표정을 감추려 입꼬리를 올리는 전정국이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언제 쯤 갈 거야?"
"바빠. 그냥 네 얼굴 보러온 거야."
"밥은 먹고 갈 거지?"
아... 잘 모르겠는데. 모르기는 개뿔..., 식장에서 벗어나고 나서 전정국이 할 일은 텅 빈 집에서 애꿎은 샐러드만 우걱우걱 씹어먹는 것 뿐이다. 아직까지도 이이주가 화려하기 짝이 없는 식장에서 신부라는 이름으로 자리 해 있다는 것에 속이 울렁울렁 거리는 정국은 자신과 집에 일찍 가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식을 보게 될 본인만 해도 처량해 죽겠는데 앉아서 여유롭게 스테이크 씹어줄 상황은 아니라는 거였다. 그래도 이이주에게 가장 친한 친구를 말해보라 하면 단연코 정국이가 입에서 튀어나온다. 정국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런 전정국이 저의 한 번 뿐일지 모를 결혼식에서 밥도 먹지 않고 자리를 뜬다고 하니 조금은 마음이 공허해 입술을 댓발 내밀고 그래~ 그럼 다음에 내가 밥 한 번 사지 뭐 하며 자연스럽게 상황을 넘긴 이주였다.
"...코,"
"응?"
"이주야."
"ㅋㅋ 응~"

"... 결혼, 축하한다."
아까부터 울 것 같은 눈이긴 했지만,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서 이주가 눈물이 달랑달랑 맺혔다. 오글거리는 상황이긴 했어도 둘 다 전보다 철 좀 들었다고 정말 애틋해 보이더라. 저도 눈물을 참고 있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이런 분위기가 어색해서 그런 건지... 귀까지 새빨갛게 달아오른 전정국이 코를 쓱쓱 비비는 재스처를 취하고, 결혼 축하한다며 건네준 물건은 다름이 아니라 예쁘게 포장되어 있는 석고 방향제였다. 이주가 그렇게 좋아하는 핸드메이드 몰에서 정국이 직접 주문까지 넣은 정성이 담겨있었다.
"아 벌써 울 것 같아. 나 너 축사할 때 울어버리면 어떡해! 화장 비싼 돈 주고받은 건데..."
"우리 우정이 몇 년치인데 울만 하지 않나."
"하여간 짖궃기는... 너나 울지 마. 이 울보야."
울보. 그 별명 한 마디가 정국의 심장에 꽃혀버렸다. 정국이가 마음을 조금 가라앉혔을 때가 되면 기다렸다는 듯이 살가운 태도로 대해오는 이주 때문에 입꼬리도 사르르 내려갔다. 표정 관리가 더 이상 통제되지 않는다는 걸 느낀 정국은 신부 대기실에 사람이 이렇게 많이 들어올 수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며, 난 이제 가봐야할 것 같다고 어서 이주에게서 발걸음을 옮겼다.
"야 전정국! 축사 떨지말고 해. 바보야."
"...축하해. 그리고 오늘 이쁘다."
이주의 표정이 한껏 밝아졌다. 고마워 정국아. 정국과 이주가 인사를 나누고 정국이 뒤를 도는 것을 확인한 이주의 친구들이 순식간에 이주 주변을 둘러쌌다. 오늘 왜 이렇게 예쁘니! 진짜 축하해. 그 광경을 보고서는 체념한 정국이었다. 너랑 내가 함께한 시간이 얼만데도 나는..., 그냥 저런 친구들이랑 같아. 내가 너에게 해줄 수 있는 게 겨우 식장에 와주는 것과 다른 사람들도 평범하게 건네는 그런 선물을 주는 것 밖에 없네. 신부 대기실에서 금방 나온 정국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차려입은 정장이 무색할 정도로 어색하게 서있었다.
"어머 정국이 왔니! 얼마만이야 이게."
"아... 이모. 안녕하셨어요."
"그래. 정국이 사업 잘 됐다며~"
초라하게 서 있던 정국을 보고 한달음에 달려와 고급진 한복을 차려입고 정국의 어깨를 두드리는 이이주의 엄마. 이주의 부모님과 정국은 정국이 시작한 사업 일 때문에 오랜만에 보던지라 반갑다며 정국을 폭삭 안아오셨다. 그동안에 어떻게 지냈냐며, 밥은 잘 먹고 사냐고. 오랫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저에게 미운 감정이 들셨을까 걱정했던 정국은 긴장을 풀고 웃음을 지었다. 이주 엄마를 몇 번 안아드린 정국은 옆에 계시던 이주 아빠께도 안부를 여쭈고, 화장실에 가야겠다며 자리에서 빠져나왔다. 뭐 볼 일이 급한 건 아니었다.
"....."
흐르는 식은땀을 일단 세수로 닦아냈다. 가만히 고개를 숙인 채 틀어진 수도꼭지를 꽉 잠가버린 정국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상하게 이주 부모님을 뵈는게 죄송스러워서, 그래서 화장실로 뛰어왔다. 정국의 고민이 깊어졌다. 괜히 식장까지 온 본인의 발걸음이 원망스러워져 연이코 구두 뒷꿈치로 바닥을 찍어내리던 정국이 왼쪽 손목에 반듯이 걸어둔 시계를 쳐다보았다. 식장에 온 지 20분도 채 안 된 것을 확인하고 젖은 손으로 꽤 과격하게 머리를 쓸어넘겼다. 지금 미쳤다고 집에 가기는 또 그렇잖아.
"씨발.."
튀어나오려는 욕짓거리를 결국 참지 못하고 읊은 정국이었다. 화장실 밖에서 왁자지껄 소란스러운 소리가 정국의 귀에 콕콕 박혔다. 그냥 미친 척 한 번 하고 당장 이 곳에서 빠져나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래도 정국이 조금 더 이곳에 머무르려는 이유는 단 한가지였다. 이이주. 오늘 이 식장에서 결혼식이 진행될 때 정국이 하객석에 없으면 이주가 찝찝해 할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아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어느 쪽으로든 곤란해 방황하던 정국이 쇠 맛이 나도록 입술을 물어뜯었다.
화장실에서 어렵게 발걸음을 뗀 정국은 머리 꼴이 말이 아닌 것을 확인하고 만나는 친구들마다 인사할 때, 그저 땀을 흘려서 그런 것이라고 변명했다. 나름 정국의 속사정을 오래 전부터 알아왔던 동창들은 괜찮다고, 다 나이 들면 추억일 거라고. 그렇게 정국에게 위로 아닌 위로를 해줬다. 그러한 말들에 딱히 할 말이 없어서 가만히, 그리고 묵묵히 고개만 끄덕이는 정국.
"전정국. 어디 가냐?"
"일."
"엥 벌써? 좀 더 있다 가~"
"야 간다는데... 됐어. 나중에 술 한 잔 해라."
"..... 그래."
전정국이 이 곳에 있기를 힘들어하는 것을 대충 눈치챈 여럿이 전정국을 붙잡는 한 명을 저지하며 얘기했다. 이주가 서운해 할까 봐 동창 몇 명과 뷔페에 발을 들였을 때는 후회스러웠다. 누구는 전정국 더러 불쌍하다는 눈빛을 보내고 누구는 자기 가족 일자리 좀 줄 수 없냐며 들러붙고..., 아무래도 신경이 곤두서있던 정국은 곧장 벗었던 정장 자켓을 다듬어 입고 식 장 밖으로 나섰다. 달려나오는 바람에 정국이 숨이 턱턱 매는 와중에도 이주에게 미안한 마음이 제일 컸다.
"아.... 진짜 미안. 미안.."
무릎에 간신히 손을 걸쳐 가파른 숨을 뱉어내던 정국이 끝내 고개를 떨어뜨렸다. 눈시울이 붉어지는 듯 하더니 금새 침을 꼴딱 삼키고 더러워진 정장 바지를 털어내는 정국. 다짜고짜 식장에서 도망치는 바람에 꼬깃꼬깃해진 축사 편지 때문에 마음이 더 아파왔다. 정국이 며칠 전부터 밤을 꼬박 새오면서 써내려왔던 글씨가 애석해 정국이 머리를 쥐어잡았다. 씨발. 다 뜯어진 축사 편지를 바닥에 내팽겨쳤다. 오지 말았어야 했는데.
손을 덜덜 떨면서 힘겹게 축사 편지를 주워들었다. 주먹을 꽉 쥔 정국이 휴대폰을 들고 무작정 아는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나 축사 못할 것 같다. 이주한테 진짜 미안하다고 해주라. 미안하다. 정국이 메시지를 여럿 나눠 보냈다. 문자를 받은 친구들도 당황스러울 것을 알았고, 이주에게 큰 실망감을 살 것이라는 것을 대충 알고있음에도 정국은 그 식장에 다시 들어갈 자신이 없었다. 이이주가 새로운 가족의 옆에서 걸어가는 모습을 볼 수가 없다. 다른 사람과 가정을 꾸려나간다는 것이 싫다. 전정국은 무지하게 자괴감이 들었다.
행복해야지. 이이주는 행복해야지.
지금 저의 꼴은 버려진 강아지나 다름 없는데도 이주만 걱정하고 있는 상황을 눈치채니 정국도 실소가 터져나왔다. 진짜 미친건가..., 얼굴을 가리고 웃던 정국은 곧이어 꾹꾹 참았던 눈물이 터져나왔다. 이이주가 행복하길 바랬는데, 저의 속은 지옥이나 다름없다. 웃고 있는 이주가 미워보였던 것이 전정국은 처음이었다. 오늘이.

빼입은 정장에 맞지못하게 마구마구 묻은 흙먼지를 털지도 못하고 전정국은 하염없이 울었다.
내가 그토록 간절히 빌었던 것이 너와 내가 아니었음을.
고장나기 일보직전의 너덜너덜한 주문서를 붙잡고...
난 여태껏 나지막히, ... 네 행복만을 빌어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