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화의 꽃말.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 * *
"여주야. 나 나갔다 올게."
정국의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주는 굳은 얼굴로, 예쁘게 웃어보았다. 정국의 목소리는 눈에 띄게 다정해졌다. 처음과는 아주 달랐다.
"오늘 4시에 한강 다리에서 만나자."
"...네?"
"못 들었어?"
여주는 단 한번도 밖에 나가본 적이 존재하지 않았다. 여주는 마른 침을 내삼키더니, 살살 고개를 끄덕였다.
* * *
오후 네시가 되고, 여주는 정국을 만나러 밖을 나섰다. 걸음이 아직 익숙하지 않았던 여주는, 다리가 저려오는 기분을 크게 느꼈다. 인형이라면 어쩔 수 없는 일.
'주인님은..'
주인님은 무슨 생각으로 나를 만나자고 하신걸까. 여주는 곰곰히 생각했다. 여주가 한걸음 앞으로 내딛자, 아름다운 한강의 풍경이 여주의 시야를 사로잡았다. 흘러가는 물결들, 푸른 바다가 여주의 눈동자 안에서 첨벙거리는 듯 싶었다.
"예쁘다."
여주도 모르게 움켜놨던 한 마디가 새어나왔다. 너무 예쁘다고. 아름다운 바다를 보고 있자니 굳어있던 입가가 살짝 위로 올라갔다. 한낱 인형에 불과한 여주였지만, 감정은 느끼고 있었으니까.
'빨리 오세요 주인님.'
여주는 눈을 살포시 감고 정국을 하염없이 기다렸다.
* * *
몇 시간이 지났을 까, 밝게 빛나던 해는 저물어가고 붉은 노을이 지고 있었다. 분명히 네시에 만나자고 했었는데. 정국은 보이지 않았다. 오직 줄어드는 사람들만 눈에 밟힌 뿐 이였다.
"..왜 안오시는거죠."
여주는 결국 정국을 뒤로하고 집에 돌아섰다. 정말 마지막까지 보이지 않는 정국에, 이상하게 눈에서 맑은 눈물이 새어나왔다. 버림받은건 아니겠지. 그냥, 까먹으신거겠지. 라며 자신을 위로했다.
"다녀왔습니다."
여주가 집에 들어섰다. 집에는 공허한 공기만 맴돌 뿐, 정국은 없었다. 여주는 옅은 한숨을 작게 내뱉으며 중얼거렸다.
"..나는 주인님에게 꼭두각시 였나요."
여주는 슬픈 눈빛을 감추지 못하고 티비를 켰다.
티비에서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오늘 한 동네에서 20대 남성이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사실이였다. 시각은 3시 48분. 한송이의 꽃을 사들고, 가는길에 교통사고를 당하였다고 한다. 현재 병원에 이송되었지만,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다고 하였다.
"우리 동네에 왜 이런일이.."
여주는 우울함을 감추지 못하고 티비 전원을 꺼버렸다.
* * *
몇 시간 전, 정국은 일이 끝난 뒤 작은 꽃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름다운 꽃들이 정국의 시야를 사로잡았다. 그 중에서도 이상하게 밝게 빛나던 꽃이 하나 있었다. 정국은 냉큼 꽃을 잡아들었다.
"이 꽃 얼마예요?"
"오천원이요.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누구에게 줄건지 여쭈어보아도 괜찮을까요?"
"..그냥, 친구요."
"그래요? 그러면.. 괜찮겠네요."
꽃집 점원은 꽃을 최대한 예쁘게 포장해, 정국에게 건네주었다. 정국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꽃집을 나섰다. 꽃집 점원은 정국의 뒷모습을 보다, 가볍게 읊조렸다.
"하필이면 상사화를 골랐네."
정국은 상사화를 손에 꼭 쥐고, 시간을 보았다. 3시 47분.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 정국은 횡단보도가 바뀌는 동시에, 발걸음을 뗐다.
'내 머리 자른 모습도 여주가 좋아해주겠지.'
쾅.
큰 마찰음과 함께 시간은 3시 48분에 향해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