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yright 2020. 안생. 모든 권리 보유.
※로맨스, 썸 일절 없는 휴먼 장르입니다.※
감안하고 봐주시길 바랍니다.

꿈이 없어도 괜찮다.
공부를 못해도 괜찮다.
네가 가진 것엔 그 만한 가치가 있으니.

2019년 겨울방학 전
탁- 소리가 나며 서영의 담임이 그녀의 생활기록부와 성적표를 책상에 내려놓았다. 담임은 머리가 아프다는 듯 손가락으로 미간을 꾹꾹 눌러댔지만, 정작 서영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적당히 담임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어떻게 3학년 전교생 217명 중에서 217등일 수가 있는 거야 서영아."
"아무리 우리 학교가 학생이 적어서 1등급을 맞기 어렵다고 해도 그렇지, 9등급이 뭐야. 9등급이."
"너 진짜 뭐가 되려 그러니?"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담임과 상담을 할 때면 항상 듣는 말이다. 처음엔 서영 자신도 자신의 성적에 대해 크게 놀랐지만, 이제는 그냥 그러려니 하며 지내게 되었다.
"가수요, 가수."

"쌤 저는, 커서 마우스 대신 마이크 잡을 거예요."
***
"이번에도 전교 1등에, 올백이네."
석진의 담임이 그의 생활기록부와 지금까지 본 중간, 기말고사의 성적표를 천천히 넘겨보았다. 전과목 1등급에 스펙 빵빵한 생기부, 이정도라면 최저만 맞춘다면 SKY는 기본이다.
"석진이는 뭐, 가고 싶은 과 있어? 과 아니어도 대학이나."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선생님이 그쪽으로도 도움이 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어."
담임의 말에 석진이 천천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 성적이 졸업때까지 간다면 사실상 대기업 취직까지 노려볼 수가 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뭘 하고 싶은 건진 몰랐다. 그저 앞만 보고 살아왔으니.
"··· 아니요."

"아직은.. 하고 싶은 게 없어요."
***
2020년 새학기
"이지은, 같은 반이야?"
"아니, 나 4반. 바로 옆반이네."

"윤서영, 아침부터 조회 시간에 자빠져 자지 말고, 알았어?"
아아, 알았어. 워낙 학교에 관심이 없는 서영인지라 수업시간과 점심시간이 아니면 거의 모든 시간을 엎드려 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지은이다.
그렇게 대충 지은하고 인사를 하고 반으로 들어오니, 교실에는 아는 얼굴이 대부분이었지만 말을 붙일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래서 복도쪽 자리에 앉아 벽에 머리를 기대고 폰을 켜는 서영이었다.
"저기···, 거기 내 자린데."
한참 폰으로 지은과 연락을 하고 있으니, 갑자기 한 여학생이 와서 서영에게 말을 걸었다. 한쪽 손엔 가방을 들고, 한쪽 손엔 문제집과 필통을 들고 있었다. 그걸 본 서영은 재빨리 가방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미안, 자리 있는 거였어?"
"응, 칠판에 자리표 이름으로 써져있어. 그거 보고 앉으면 돼."
알았어, 대답을 하고 교실 앞으로 향한 서영이 자신의 자리가 창가쪽 맨 뒷자리라는 것을 알고 속으로 기뻐하며 서둘러 자리로 향했다.

가만히 창밖을 바라보며 운동장에서 놀고 있는 학생들을 보던 서영이 이내 폰으로 시간을 확인하고는 후드를 뒤집어쓰고 책상 위에 엎드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서영의 옆에 누군가 앉았다.
***
"윤서영, 윤서영 일어나라."
"야, 서영이 좀 깨워."
이에 서영의 앞에 앉은 남학생이 서영의 팔을 손가락으로 툭툭 치며 서영을 깨웠다. 그러자 서영이 후드를 벗고는 반쯤 감긴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반 학생들이 모두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것에, 서영은 급하게 머리를 정리하며 정신을 깨웠다.
"자, 앞서 말했듯이 너희 자리는 내가 너희 내신 보고 짠 거다."
"앞으로 1년 간 바뀔 일은 없을 거다. 짝끼리 모르는 건 물어보고, 물어보면 알려줘라."
그리고 서영이 자신의 옆자리에 누가 앉은 건지 보려 고개를 옆으로 돌리니 세상에, 자신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앉아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 학교의 전교 1등 석진이었다. 아직 새학기가 시작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았지만, 그는 고등학교 3학년 수준의 문제를 풀고 있었다. 곧이어 담임이 나가며 종이 치고, 반 학생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친구를 만들기 바빴다.
"김석진, 숙제하냐?"
교실과 복도가 웅성거리는 사이, 한 남학생이 석진의 이름을 부르며 3반으로 들어왔다. 서영은 그런 남학생과 석진을 보더니 이내 다시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리며 자리에 엎드렸다.
"네 짝 누구야."
"몰라, 전교 꼴등이래."
석진은 윤기의 말을 받아주며 수학 문제를 풀고 있었다. 윤기가 전교 꼴등이라는 석진의 말에 입을 떡 벌리며 석진의 책상을 빠르게 두어 번 치며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헐, 전교 꼴등이면 걔 아니야?"
"누구."

"윤서영, 9등급에 중간기말 다 전교 꼴등 먹은 애."
서영의 전적은 화려했다. 지금까지 봤던 중간고사와 기말고사에서는 다 전교 꼴등을 하니, 9등급은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석진은 문제집에 답을 적으며 오, 라고 말하며 영혼 없는 리액션을 했다.
"와, 이름만 들어봤지 실제로 본 적은 없는데 이렇게 보다니."
"존X 신기하다, 전교 꼴등이 내 눈 앞에-"
"닥X, 들리겠다."
석진의 단호한 말에 윤기는 그제서야 자신의 기분이 상기되어있다는 것을 알고는 말수를 줄였다. 석진은 마지막 문제까지 채점을 마치고는, 문제집을 덮고 가방에 집어넣었다.

석진이 산발이 된 채 엎드려 있는 서영을 잠시 동안 쳐다보더니, 이내 가방에서 다른 과목의 문제집과 노트를 꺼냈다. 그리고는 마치 이 교실에 자기 자신 혼자만이 남겨진 것처럼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인생에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첫 번째 단계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결정하는 것이다.
- 벤 스타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