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4. 쉘터 (1)
폭풍처럼 지나간 일들 탓에 잊은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바로 겁에 질려 기절하기 직전이었던 이석민. 다행히도 이들은 냉철한 비지니스적 관계까지는 아니었는지 준휘가 석민을 챙기고 있었다. 극한의 공포에 두려워하며 온몸을 덜덜 떨던 석민을 준휘가 말 없이 토닥여주고 있었다. 생긴 건 냉미남처럼 생긴 사람이 이렇게 겁도 많고 무해하다니. 여하튼 준휘가 토닥여준 덕분인지 석민은 점점 침착해져갔다. 그 광경을 최승철도 보고 있었고, 그는 무언가 의문을 품으며 물었다.
“그렇게 겁이 많으면서 왜 여기에 있는 거냐. 쉘터에 가지.”
그 말을 듣고 보니 나도 의문이었다. 나야 뭐 거기까지 안 가도 잘 살아남으니까 안 간 거지만 이석민은 왜 쉘터에 가지 않았을까. 거기는 말 그대로 대피소라 훨씬 안전할 텐데 말이다. 지켜주는 군인들도 있을 테고.
“좀비 사태 터지자마자 가려고 했었어요… 그런데 좀비들한테 도망치면서 여기저기에 가다 보니 길을 잃고 정한 선배랑 얘네들을 만난 거예요.”
“우린 딱히 쉘터에 가고 싶은 마음이 없거든.”
윤정한이 단호하게 덧붙였다. 하긴 쉘터에 대해 좋지 않은 소문들이 있긴 했다. 식량이 부족하면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을 죽인다고도 했고 힘이 약한 사람들은 무조건 좀비들을 유인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소문들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몇몇한테는 쉘터에 대한 인식이 그리 좋지 않았다. 나도 그랬고. 아마 윤정한과 다른 후배들은 그 탓에 가지 않는 것 같았다. 이석민도 그게 무서워서 굳이 혼자 가지 않는 듯했고.
“근데 지금은 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최승철은 여전히 피가 나는 나의 팔을 쳐다보며 말했다. 아무리 지혈을 했다고 한들 도끼에 스쳐진 상처라 쉽게 피가 멎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도 손이 빠른 권순영 덕분에 출혈을 막긴 했다. 지금 이런 상황에서는 쉘터에 가는 게 좋을 것 같긴 했다. 근방에 병원도 없었고 더 가까운 건 쉘터였으니까. 쉘터에는 아마 구급상자 정도는 많이 있을 것이다. 의사나 간호사도 있을 수도 있고.

“누구 때문인데.”
윤정한이 최승철을 노려보며 공격적으로 말했다. 그러자 그는 미안하단 마음이 서린 얼굴을 하며 고개를 떨구었다. 생각한 것만큼 잔혹한 애는 아닌 것 같았다.
“나도 쉘터에 같이 갈게. 가는 동안이나 뭐 아님 쉘터에서 위험한 일 생기면 지켜줄게.”
“그렇게까지 안 해도 돼.”
“너한테 미안해서 그래.”
함께 합류하겠다는 최승철의 말에 윤정한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았다. 그가 나를 다치게 해서 그런 듯했다. 뭐 언제 봤다고 나를 이렇게 애틋하게 생각하는 건지. 그렇게 최승철이 마음에 들지 않음에도 별말하지 않는 것을 보면 아마 나를 지켜주겠다는 그의 말 덕분이었을 거다. 그런 말 없이 대뜸 같이 가자고 말했다면 무슨 낯짝으로 그러냐며 역정을 냈을 게 뻔하다. 그렇게 또 다시 싸움판이 벌어졌을지도 모르지. 이 와중에 문준휘는 그저 사람이 더 늘었다는 거에 기쁜지 미소를 지으며 최승철과 통성명을 하고 있었다. 내가 막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어쩌면 저 사람한테 죽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자신을 위협했던 최승철에 문준휘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다가갔다. 하긴 뭐 이 상황에 나쁘게 지내는 것보다는 친하게 지내는 게 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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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끼로 스치기만 해도 미안하다고 할 거였으면 왜 죽인다고 했어? 이 정도로 그렇게 미안해하면 죽일 정도의 강한 멘탈은 아닌 것 같은데.”
쉘터에 가던 도중 나는 의문이 들어 물었다. 혹여 좀비들이 몰려올까 소리를 잔뜩 죽인 채로.
“그렇게 죽일 거라고 위협하고 도끼 좀 휘두르기만 하면 다들 도망갔거든.”
“…아.”
“너처럼 무작정 달려올 거라고 내가 예상이나 했겠냐.”
“근데 네 구역을 이렇게 버리고 와도 되는 거야? 다른 사람이 네 구역을 차지하면 어떡하려고.”
“구역이야 뭐 언제든 새로 찾으면 되지. 내가 그 정도로 약해 보여?”
그에 대답은 ‘전혀 아니.’였다. 인상도 세 보이고 체구도 크고 누구나 쉽게 들기 힘든 무거운 도끼를 들고 있는데 윤정한처럼 미친놈이 아니고서야 누가 감히 기어오르겠는가. 뭐 물론 나는 기어오른 정도가 아니라 달려들었지만.
…하여간 나도 정상은 아니야.
‘쿵!!!’
어디선가 들려온 심상치 않은 큰 소리에 나를 비롯한 모두가 그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다 쓰러져가던 가게의 간판이 간당간당하게 버티다가 이제서야 바닥에 떨어진 모양이었다. 그런데 왜 하필 우리가 지나갈 때 떨어진 건지. 생명도 아닌 가게 간판이 원망스러워지면서도 좀비가 몰려올 생각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팔도 다쳐서 제대로 싸우지도 못 할 텐데. 이대로 남들에게 기대기만 하고 지켜지기만 하는 건 사양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다가오는 좀비는 최승철조차도 해치우지 못 할 것 같았다. 지금까지 봐온 좀비들과는 너무 달랐다. 크기는 3층 짜리 건물만 했고 생긴 것 또한 기괴했다. 마치 여러 좀비들이 엉켜있는 듯한 느낌…
“저게… 대체 뭐야……?”
처음 보는 좀비의 모습에 충격 받아 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우리 중 가장 센 최승철이 육두문자를 섞어가며 소리쳤다.
“시발, 죽을 힘을 다 해 달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