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집사 : 아가씨를 부탁해!

6화

[6]

분명 아가씨 체험을 조금 한 것 뿐인데 명수의 오후는 피곤함이 가득했다. 반대로 여왕님 대접을 제대로 받은 아가씨의 오후는 평화롭기 그지 없다.

"오늘 오빠도 왔는데 저녁에 파티를 하는 건 어때?"

"파티요?"

"응. 명수오빠는 평소에 일 하느라 바쁘잖아. 놀고 싶어도 놀지도 못하고 그러니까 오늘 저녁에 다같이 파티를 하는 거야. 오빠가 좋아하는 와인도 사고 집사들이 좋아하는 것들도 사고!"

"역시 오빠를 생각해주는 건 여주뿐이구나."

명수오빠는 여동생의 따뜻한 마음에 피로가 녹는 느낌이다. 오빠의 환한미소에 아가씨는 덩달아 기분이 좋다.

"그럼 장을 봐야 겠는데요?"

"나도 갈래! 장 보러."

집사들과의 교복 외출 이후에 바깥에 나가는 것에 대한 겁이 조금은 없어진 것 같다. 장 보러가는 것도 나쁠 것 같지는 않아.

"저도 갈래요."

"나도!"

석진과 함께 외출하기를 꺼리던 집사들이 적극적이게 변했다. 석진은 신중히 집사들을 둘러본다.

"딱 두명만 데리고 나갈 거야."

"나도 함께 가겠다."

명수가 장을 보겠다고 덩달아 나서자 정국이가 명수를 말리고 나선다.

"도련님께서는 파티의 주인공이시니 오늘은 얌전히 집에서 쉬시죠."

"그래. 오빠는 오늘 파티 주인공이니까 준비는 나랑 집사들이 하게 해줘."

여동생의 마음이 예쁘니 차마 따라가겠다고 하지 못한 명수는 어쩐지 아쉬움이 가득해보인다.

"정국이랑 지민이가 따라가는 걸로 하자."

"야호!"

"나도 데려가 달라고!"

태형이 석진을 향해 때를 써보지만 석진의 선택은 확고했다.

"남은 사람들은 집에서 도련님을 잘 보필하도록."

"갑자기 확 피곤하네."

"도련님한테 여장 시키면 아가씨 같은 느낌이 나지 않을까?"

윤기는 벌써 피곤한 얼굴로 한숨을 내쉰다. 태형은 명수를 보며 홀로 사차원적인 일을 꾸미고 있었는데 태형의 시선을 느낀 명수가 깨림직한 얼굴로 석진을 본다.

"김태형은 데려가면 안 되냐. 뭔가 쟤 눈빛이 꼭 나를 잡아 먹을 것 같아."

"김태형을 데려가는 건 이쪽에서도 꽤나 힘든 일이라서요."

"왜 저를 짐덩이 취급하는 거냐고요!"

"태형아. 집에서 오빠 말 잘 듣고 얌전히 있어. 다녀올게. 알았지?"

칭얼대는 태형이를 달래니 태형이가 순둥한 눈망울로 나를 올려다 본다.

"그대신 빨리 오셔야해요."

"알았어. 금방 다녀올게."

태형이는 순한 양의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

.

마트 팀이 자리를 비운 사이 남은 집사들은 명수의 부름에 모두 거실로 모였다. 명수는 잠시 뒤 비장한 얼굴로 양주 한 병을 테이블 위에 떡하니 올린다.

"사람은 술을 먹으면 본색이 들어나는 법이다. 세 명이 빠지긴 했지만 아쉬운 대로 인성테스트를 시작한다. 지금부터 잔을 빼는 사람은 용서하지 않는다."

"도련님, 내일 바로 일 나가시는 거 아니십니까?"

"그건 내가 알아서 할 일이니까 걱정 말고 한 잔 받아."

명수는 남준의 잔에 양주를 가득 채웠다. 명수의 잔이 모든 집사에게 다섯 번 돌아갔을 때 명수의 울분이 터지고 말았다.

"그러니까 너희들 나 약 올린 거지? 발 마시지를 한 거야, 발 고문을 한 거야?"

명수는 이미 술이 취했는지 혀가 제대로 꼬였다. 윤기는 자신에게 소리를 치는 명수 앞에서 묵묵히 여섯잔 째 양주를 따라 마신다.

"솔직히 오대오 가르마는 놀리려고 한 건데 도련님이 너무 잘생기셔서 실패했어요. 재미없어."

태형은 자신의 속마음을 명수를 향해 풀기 시작했다. 하지만 명수에게 듣기 좋은 소리였는지 명수는 태형에게 어깨동무를 하면서 실실 거린다.

"자식, 보는 눈이 있어. 너도 잘생겼어. 남자답게 잘생겼어."

"도련님이 좀 사람을 볼 줄 아시네. 제가 이래 보여도 한 때 먹어주는 얼굴이었죠."

태형과 명수의 칭찬릴레이와 함께 양주는 여덟번째 모두의 잔으로 돌아갔다.

"술 먹으니까 갑자기 아가씨가 너무 보고 싶다."

태형이 웅얼웅얼 옹알이를 하듯 아가씨를 찾는다. 태형의 눈 앞에는 술에 취해 반쯤 정신을 놓은 명수의 얼굴이 놓여있다. 피는 안 섞였지만 새하얀 피부나 예쁜 속눈썹이나 분위기가 아가씨와 많이 닮았다.

"아가씨보다는 못 생겼지만. 도련님, 더 잘생기게 만들어 드릴게요."

태형이 주섬주섬 아가씨의 방으로 들어가 화장품을 가지고 내려온다. 태형은 반쯤 필름이 끊긴 명수의 얼굴에 화장을 하기 시작한다.

"아, 김태형. 완전 웃겨."

윤기가 술을 마시다 말고 꽃단장을 한 명수 얼굴을 보고 웃음을 터뜨리자 남준이 심각한 얼굴이 되어 버린다.

"야. 너 임마. 도련님한테 무슨 짓이야?"

남준의 호통에 태형이 화장을 하던 것을 멈추고 남준을 돌아 본다. 남준은 진지한 얼굴로 붉은색 립스틱을 쥐어준다.

"립스틱이 빠졌잖아. 새끼야."

"그렇구나. 내가 이걸 까먹었네. 기다려요. 도련님 제가 섹시하게 만들어 드릴게요."

태형은 명수의 입술에 선명한 붉은색을 남겼다. 태형은 그게 또 재미있는지 소리내어 웃기에 바쁘다.

.

.

명수오빠를 위해 준비한 것들이 집사들의 두 손에 가득 들려있다. 즐거운 마음으로 현관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왔다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소파의 중간에서 아주 해괴한 꼴로 잠들어 있는 명수오빠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잠들어 있는 집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윤기만이 홀로 앉아 양주를 홀짝이고 있다가 나를 돌아본다.

"우와. 우리 아가씨다."

"윤기야.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도련님이 양주를 먹자고 졸라서 인성테스를 하겠다고. 가장 먼저 뻗으시긴 했지만."

말에 두서가 없는 걸로 보니 윤기도 꽤나 취한 상태인 것 같다.

"아우, 술 냄새. 벌써 파티 끝난 것 같은데요?"

지민이 거실의 참혹한 풍경을 보고 있다가 일단 손에 들린 짐을 처리하기 위해 부엌으로 들어간다.

"일단 짐부터 정리하자. 저 인간들은 나중에 정리하고."

정국과 석진도 분주하게 짐을 부엌으로 옮겼다. 나는 다시 술잔을 드는 윤기의 손을 저지 시켰다.

"윤기야. 너 술 취했어. 그만 마시자."

"아가씨, 나 듣고 싶은 말 있는데."

살짝 풀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눈웃음을 치는 윤기는 평소의 무표정한 윤기의 모습과 많이 달랐다.

"응? 무슨 말인데?"

"우리 윤기."

"너 또 나 놀리는 거지?"

"놀리는 거 아닌데."

나는 발끈했지만 윤기는 여전히 나를 다정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너무 귀여워서."

윤기가 많이 취한 것 같다. 윤기의 귀엽다는 말에 어쩐지 쑥스러워진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윤기는 그런 나를 자신의 품에 덥석 안았다. 윤기의 턱이 내 머리 위에 닿았다. 덕분에 내 두 눈은 동그래지고 말았다.

"아가씨. 우리 귀여운 아가씨."

"

"윤기가 많이 사랑해요. 많이."

"윤기야."

"윤기가 많이 많이 사랑해."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나를 감싸안은 윤기의 손에 힘이 빠져 나갔다. 아무래도 잠에 든 모양이었다. 끙끙거리며 윤기를 소파에 눕히고 바닥에 널브러져서 자고 있는 태형이를 흔들어 깨웠다.

"태형아. 여기서 자면 감기 걸려. 방에 들어가서 자."

"아가씨, 목소리다."

내 목소리에 반응한 건지 벌떡 몸을 일으켜 앉은 태형이가 나를 보며 환하게 웃는다. 얘도 무지 취했네. 오빠는 대체 집사들한테 얼마나 술을 먹인 거야. 태형이는 한동안 다정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가 갑작스럽게 나에게 다가와 내 입술에 살짝 입을 맞췄다 뗐다. 방금 김태형이 나한테 뭘 한 거지? 내가 태형의 행동에 당황해서 굳어버린 중에 태형이는 홀로 자신의 입술을 만지작 댄다.

"이상하다. 꿈인데 부드럽네."

"

"꿈도 나날이 발전하네. 발전하는 대한민국!"

태형이의 못 말리는 술주정을 보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버렸다. 태형이는 나의 뺨을 자신의 두 손으로 부드럽게 감싼 채 나와 눈을 맞췄다.

"그렇게 예쁘게 웃으면 반칙."

내가 태형에게서 빠져나오기도 전에 태형이의 입술이 내 입술을 덮쳤다. 입속으로 알싸한 알코올 향이 전해져왔다. 나는 그 향에 취한 듯 몽롱한 기분이 되어버렸다. 태형이는 나에게서 입술을 떼어내자 마자 나의 품에 기대어 잠들어 버렸다.

"아."

내가 얼굴이 홍당무처럼 달아오른 상태로 두손으로 입술을 가리고 어쩔 줄 몰라하고 있는데 나의 어깨 위에 누군가의 손이 닿는다.

"아가씨, 여기 앉아서 뭐하세요?"

"정국아. 나는 피곤해서 먼저 자러가야할 것 같아. 애들 깨워서 다 방에서 재워. 감기 드니까. 먼저 올라가 볼게."

정국이는 도망가듯 이층으로 사라지는 내 모습을 어리둥절한 얼굴로 바라보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태형을 흔들어 깨운다.

"형, 일어나봐."

정국의 부름에 태형이 전과 같이 벌떡 몸을 일으킨다.

"한번 더."

그와 동시에 태형은 정국의 입술을 덮쳤다. 덕분에 정국의 두 눈이 커다랗게 변한다. 정국이 겨우 태형을 떼어내자 태형은 뒤로 벌러덩 넘어가서 잠들어 버린다. 정국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진다. 아직도 촉촉한 감촉이 남아있는 자신의 입술을 두어번 매만지던 정국은 온 집안이 울려라 비명을 내어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