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한 번 해 봐, 프로듀싱

6화

“혹시 원치 않으시면...“

”아뇨.”

”...“

“부탁드릴게요.”


막상 부탁한다니 의외였는지 예준이 흠칫 하는 게 보였다.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반쯤 장난기 섞인 투로 물었다.  


“아까도 끼어들 걸 그랬나봐요“

“...한번쯤은 확실하게 정리가 필요했어요.

아깐 그런 상황이었고요.”

“하나만 더 물어봐도 돼요? 앞으로 끼어들 사람으로서.“

“뭘요?”

“민우형씨 아직 좋아해요?”

“...”


나 왜 바로 대답을 못하지. 미친 거 아니야 김보민? 

애꿎은 손가락만 꼼지락 거리는 나를 한참 바라보던 예준이 씩 하고 웃었다. 


Gravatar“이건 괜히 물어봤다. 내려갈까요?“


예준이 먼저 일어섰다. 

난 그의 뒷통수에 대고 답을 했다. 


“...미안함...인 것 같아요.“


맞다, 이거다. 

5년의 연습생 생활 끝에 이제 막 날아오르려던 아이를

내가 연애로 들쑤셔서 망쳐놓은 것만 같은,

그런 기분에서 오는 죄책감. 

일어섰던 예준이 다시 나를 향해 자세를 고쳐 앉았다. 


”뭐가 미안한데요?“

”그 친구는 어리잖아요. 그땐 더 어렸고...

갓 데뷔한 애랑 연애라니... 제가 미쳤었나 봐요.“


입 밖으로 내뱉고 나니 

생각보다 내 자신이 더 한심해서 헛웃음이 나왔다. 


”보민씨는 뭐 나이 많아요?“


예준의 입에서 ‘프로듀서’ 대신 

‘보민씨’라는 호칭이 툭 튀어나오자 순간 흠칫했다. 

예준은 아랑곳 않고 씩 웃으며 말했다. 


“두 살 차이잖아요 고작.”

“그래도 직업 특성상 그랬으면 안됐...”


Gravatar

“혹시 안 만나주면 노래 안 만들어준다고 했어요?”

 

 

예준의 농담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나왔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내 모습에

예준도 따라 씩 웃어보였다. 

 

 

“또래의 남녀가 서로 좋아해서 만났고,

안 맞아서 헤어졌어요. 그게 다예요. 

보민씨 성격상 밀어냈겠죠.

그럼에도 만났다는 건, 진심이었을 거예요.”


이 남자는 어떻게 저렇게 남의 심리를 줄줄 읊어대는 걸까.


“먼저 들어가 계세요. 전 커피 좀 사갈게요.”


회사에도 한가득인 커피를 사러 간다는 것은

나에게 혼자 몰골(?)을 정리하고 내려 올 시간을 벌어주기 위함이 틀림 없었다. 

내가 파악한 남예준은 그런 사람이었다.


------------


다시 녹음실에 돌아오자, 

노아가 소파에 누워 휴대폰에 대고 무어라 중얼거리고 있었다.


“플리이... 지금 커피 사러 간 예준이를 기다리고 있습니다아...”


전화 중인 건가?

내 인기척을 느낀 노아가 벌떡 일어났다.


“어, 오셨어요? 남예준은요?”

“커피 사 온다고...”

“커피요? 걔 바깥 커피 안 마시는데? 

회사에 다 있는데 뭐하러 돈 쓰냐고.”


역시. 배려가 맞았구나.


“근데 통화 중이셨던 거 아니에요?”

“아, 이거 버블이라고 팬들한테 음성메시지...”


훌쩍-


너무 울었나. 콧물이 안 멈추네. 

신나서 버블에 대해 말을 이어가려던 노아가 

굳은 표정으로 말을 멈췄다. 


Gravatar“...”


혹여나 운 사실을 들킬까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코감기인척 훌찌럭거리는 나였다.


“잠시만요.”


노아가 그대로 녹음실 밖으로 나갔다. 

화장실 가는 건가.

 

 

갑자기 녹음실에 혼자 남겨진 난,

책상 위 덩그러니 놓인 종이만 뒤적거렸다. 

예준과 노아의 열렬한 토론 흔적이 가득했다.


I Wish 집착 X, 춤 출 생각, 플리가 좋아할 스타일 


이건 노아가 쓴 거겠지.


원래의 목적, 농도 짙은 연애 X, 풋풋한 사랑 노래💙 


이건 예준이 썼구나. 하트까지 야무지게 끄적여놨네.

 

 

”프로듀서님.“


뒤에서 들려오는 노아 목소리에 무심결에 고개를 돌렸다. 


“풉!!!”


그리고 빵 터져버렸다.

대뜸 쇠 숟가락을 양쪽 눈에 울트라맨처럼 대고 있는 게 아닌가.


“뭐예요?”

“ㅎㅎㅎ멋있지 않아요?”

“대체 어디가요?”


Gravatar
“에이~ 멋을 모르시네. 자, 해 보세요.“


노아가 그대로 숟가락 두개를 내 눈에 가져다 댔다.


“앗 차가워!”


냉동실에 얼려둔 숟가락이구나.

그럼... 내가 울었다는 걸 눈치 챘단 뜻이고. 


“제가 잘 부어서 늘 가져다 놔요. 5분만 그러고 계세요.”

“감사합니...“

“남예준이 놀렸어요? 흐흐.“


진지한 감사 인사 따위 받을 생각 없어 보이는

그의 말투에 나도 덩달아 웃음이 났다. 


”뭐, 비슷해요.“


Gravatar

”예준이 오면 제가 엎드려 뻗쳐 시키겠습니다.

이 놈의 자식이 말이야. 프로듀서님을 말이야.“


진실을 알 생각조차, 물어볼 의향조차 없다는

노아식 배려가 묻어나는 화법이었다. 


----


보민의 컨디션을 눈치 챈 예준, 노아가 

적당히 회의를 정리하고 보민을 들여보냈다.

보민이 나가고 둘만 남은 녹음실.

예준의 머릿 속엔 보민이 울던 잔상이 깊게 남아있었다.


일로 만난 사이인데 나한테 치부를 들킨 것 같으려나.

괜히 아는 척 했나. 그냥 끝까지 모른척 할 걸.

민우형씨는 어쩌자고 대놓고 여기까지 온 거지.


온화하고 평온한 표정과 달리

보민에 대한 생각으로 머릿 속이 어지러운 예준이었다.


“닌 알아?”

“어?”


잡념 때문에 노아의 말을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한 예준이 되물었다. 


“프로듀서님 왜 울었는지 아냐고.”


Gravatar

“...글쎄? 우셨어 프로듀서님이?“


예준은 모르는척 싱긋 웃어보였다. 

눈치백단 한노아의 눈은 못 속이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눈치 못 챌 줄 알았는데.


“아네.”

“응?“


Gravatar

“남예준 니 안다고.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