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의 혼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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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의 신) 이해할 수가 없구나. 결국 혼약을 맺다니….
정국) 말씀을 어긴 점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희는 그만큼
절박했고 서로를 사랑합니다. 맹세할 수 있습니다.
자윤) 전정국, 너 진짜…! 어떻게 혼약을 맺은거야?!
•••
죽음의 신은 기다란 종이를 손에 쥐었다. 그가 말할 때마다 텅빈 종이에 글자가 새겨졌다.
윤기) 인간 수여주는 물의 신 전정국과 혼약을 맺어 그를 향한 영원한 사랑을 맹세할텐가?
여주) 네.
윤기) 오선급 물의 신 전정국은 인간 수여주와 혼약을 맺어 그녀를 향한 영원한 사랑을 맹세할텐가?
정국) 네.
윤기) 이들의 혼약을 주관한 죽음의 신 민윤기는 태초 이후 130,613년에 오선급 물의 신 전정국과 인간 수여주의 혼약이 성사되었음을 알린다.
…이 혼약은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는 이상, 끊어지지 않고 영원히 이어질 것이다.
그의 말을 끝으로 몸이 붕 뜨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심장이 뜨거워졌다. 내가 휘청거리자 옆에 있는 정국이는 날 안아주었다. 그도 나와 같은 느낌을 받고 있었을거다. 신비로우면서도 이질적인 느낌이 점점 사그라들고 질끈 감았던 눈을 떠 그를 바라보았다.
혼약을 맺어 특별히 느껴지는 점이 있다면 또 다른 심장이 내 몸 속에 들어온 듯 벅차오르고 내 앞에 서있는 정국이의 영혼이 그의 숨결을 타고 내 피부에 닿는 듯 선명하게 느껴졌다는 점이었다.
윤기) 후…. 두 번은 못해주겠네.
그는 두통이 온 듯 머리를 짚고 의자에 앉았다. 그가 의자에 앉음과 동시에 책상엔 알아보지 못할 글자들이 빼곡히 적힌 종이가 쌓여갔고 그의 손에 쥐어져있던 긴 종이는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윤기) 혼약을 맺는다는 건 서로의 영혼을 묶는다는 것이기 때문에 여주가 이번 생을 다하면 다음생부터 서로의 끌림을 느낄 수 있을거야. 그럼 오래오래 사랑해.
그는 눈길을 종이에서 떼지 않은 채 말했다.
여주) 감사합니다…. 바쁘신 와중에 쉽지 않은 부탁을 흔쾌히 들어주셔서….

윤기) 고마우면 혼약 두 번 안 맺게 잘 사랑하면서 살아.
그가 손짓하자 우리 뒤로 불투명한 포털이 다시 생겼다. 난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드린 다음, 세명의 신들과 포털을 넘어 신계에 도착했다. 그와 동시에 조금 움찔한 정국이가 말했다.
정국) …가자. 혼약 맺은 건 또 어떻게 알고 우릴 부르네.
신의 혼약자
과거회상편 09
정국) …그리하여 저승에서 혼약을 맺고 왔습니다.
창조의 신) 네 혼약자가 나름 똑똑하구나. 민윤기에게 저승에 도착한 영혼을 다루는 힘을 주었기 때문에 그 역시 혼약을 맺을 줄 안다. 하지만…. 내 말을 어긴 건 조금 괘씸하군.
창조의 신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와 나란히 서있는 내 앞으로 다가왔다. 정국이 또한 긴장했다. 창조의 신은 내 머리를 조심히 감쌌다. 그러자 처음 보는 기억이 내 머리속을 스쳐 지나갔다. 순식간에 셀 수 없는 기억들이 머리속을 차지하는 바람에 정국이의 손을 놓고 머리를 부여잡았다.
정국) 여주야…!
창조의 신) 네 900개의 전생의 기억이다. 얼마 안되는 양에 속하지만 한꺼번에 감당하기엔 많게 느껴질 수 있지.
정국이는 중심을 못잡는 날 잡아주었다. 난 울리는 머리를 잡으며 창조의 신에게 물었다.
여주) 저, 전생의 기억을… 왜…
창조의 신) 괘씸한건 괘씸한거고… 이건 내가 너희에게 주는 축복이다. 넌 다음생부터 성인식 후에 또는 네 혼약자를 만난 후에 전생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야.
부디 전생을 기억 해내어 너의 신과 만나 수 만년, 수 억년…. 억겁의 시간을 살아가렴.
창조의 신 목소리에서 인자함이 느껴졌다. 그가 진심으로 우리의 혼약을 축복해주는것 같아 행복했다. 이 말대로라면 난 매 생마다 정국이를 잊지 않고, 정국이를 만나면 항상 같으면서도 새로운 사랑을 할 수 있었다.
자윤) 저것이 감히….
화가난 듯 많이 앙칼진 목소리. 뒤를 도니 심자윤이 서있었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동공이 흔들렸고 많이 착잡해보였다.
자윤) 너… 이름이 뭐니?
여주) ….수여주입니다.
왠지 내 이름이 동네북이 된 느낌이었다. 죽음의 신이 내 이름을 알게 된것보다 어둠의 신이 내 이름을 알게된 사실이 더 꺼림직했다.
자윤) 하, 그래…. 기어코 일을 저지르는구나. 전정국. 인간과 혼약한 이상, 평생 이어질거라 기대하지 마라.
정국) 심자윤!!!
순간, 뜨거운 불길이 그녀와 우리 사이를 갈라놓았다. 정국이 옆엔 태형이가, 내 옆엔 지민이가 다가왔다.

지민) 너 방금 말에 힘이 들어갔어. 이들의 혼약을 축복해주진 못할망정 저주하면 어쩌자는거야?
자윤) 어쩌긴 뭘 어째. 어차피 이 둘의 혼약을 축복해주는 이들이 많으니 내 저주는 있으나마나 한거 아닌가?
그녀는 피식하며 날 노려보았다. 신과 혼약을 맺어서 그런가 전같았으면 그 기에 눌려 숨을 헐떡였을텐데 영혼이 단단해지고 정신이 강해진 느낌이었다.
여주) ..심자윤이라고 하셨죠. 인간을 얼마나 우습게 여기고 하찮은 존재로 여기는지 충분히 알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런 태도는 보기에 좋지 않군요.
당신은 이뤄낸 것 하나없이 어둠의 신이라는 지위와 힘을 얻었지만 인간은 모든것들을 밑바닥에서부터 차근차근 쌓아올립니다. 거기엔 수많은 노력과 시간이 들어가죠. 당신이 결코 우습게 여기고 하찮게 대할 존재가 아닙니다.
자윤) 너-!
여주) 당신이 만만하게 여기던 인간인 제가 결국엔 정국이와 혼약을 맺은것처럼요.
자윤) 이 벌래같은 것이-!!!!
심자윤이 손을 내리치자 날카로운 어둠이 우리에게 내리꽂혔다. 순간 눈을 감으며 움찔한 내 앞에 순식간에 한 신이 나타났다.
정국) 역시 신계 최고의 맺집 김남준이야. 이걸 몸으로
그냥 막네.
남준) 소문 듣고 찾아왔어. 당돌한 혼약자네. 이 둘은 제가 인간계에 데려다놓고 오겠습니다.
그 신은 창조의 신에게 말한 뒤 우리의 어깨에 한 손씩 올렸다. 그러자 오색빛 터널을 순식간에 지나 숲이 울창한 행성에 도착했다.
남준) 전정국 혼약자. 이름이 뭐야?
여주) 아, 수여주입니다!

남준) 그래? 난 김남준이야. 대지의 신.
그는 인간이 살지 않는 행성이라며 이곳에서 신혼을 잘 보내라고 인사하고 다시 신계로 돌아갔다. 이 행성에 우리 둘뿐이라는 소리였다.
정국) 나랑 혼약 맺은거 후회 안해?
여주) 후회를 왜 해요 내가.
그는 내 허리를 부드럽게 감싸오며 말했고 난 그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정국) 그래. 그럼 누구의 마음이 더 먼저 식나 내기할래?
여주) 방금 겨우 혼약을 맺고 왔는데… 당신은 이 혼약이 재미에 불과한가요? 역시….
정국) 무, 무슨 소리야! 당연히 진심이지!
장난스럽게 말하며 그의 품에서 벗어나려하자 당황한 그는 혹여나 내 기분이 상했을까봐 내 어깨를 잡고 나와 눈을 마주치며 외쳤다.
여주) 후후. 농담에 이렇게 발끈하는 신이…. 잘도 그런 농담을 하네요.
정국) 농담 같은거 아니야. 그만큼 난 자신있다고!
여주) 그렇게 돌려말하지 않고 딱 얘기해주면 어디가 덧나나요…? 어서 빨리 말해줘요.

정국) 뾰루퉁해 있는것도 왜이리 귀여워ㅋㅋㅋㅋ
여주) 말 돌리지 말고요.
그를 똑바로 쳐다보는 내가 귀여웠는지 그는 내 볼에 손을 살며시 올리며 웃었다.
정국) 그래. 평생 너만의 신이 되어줄게. 항상 너만을 바라보고, 얼만큼이 될지 모르는 억겁의 시간동안 너만을 사랑하겠다고 약속할게. 맹세할게.
그 말을 끝으로 우린 아름다운 숲과 어여쁜 물결을 자랑하는 강을 배경에 두고 깊은 입맞춤을 했다.
여주) 우리의 사랑은 영원할테니 괜힌 걱정 말아요.
오늘의 TMI
1. 남준의 고유능력은 모든 공격을 몸으로 막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공격에 따라 데미지를 전혀 입지 않거나 거의 입지 않습니다)
(+이게 별거 아닌것 같아도 엄청난거예요,,,!)
2. 신의 말에 힘이 들어간다는건 어투가 강하다는게
아니라 예언이나 저주처럼 미래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신벌이 저주였던 것 기억하시나요?)
Q. 본격 허니문 시작-?😏
A. 아니요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