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아침입니다.

2.떠난 이의 책임



우리는 그랬다.
함께 지내온 이후, 서로가 없는 삶을 단 한번이라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너가 향한다면 난 그 뒤를 따를 것이고
너가 가고싶은 곳이 생긴다면 그곳에 갈것이라고
절대 변함없는 나의 태양. 삶의 주축은 너일 것이라고

그랬었다. 분명

민윤기에게 짧은 입맞춤을 보낸다.
따뜻한 온기와 반복적이고 안정적인 숨소리가 들려왔다.
연수는 고요히 잠든 민윤기를 등지고 짐을 챙겼다.
짐은 고작 가방 하나 안에 다 들어갔다. 저의 옷가지들만 가득한 짐가방이었다.
다 받은 것들이었다.

연인이랍시고 받은 네번째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도, 그가 선물해준 은색 목걸이도
그 모든 것은 제 것이 아니었다.

가지런히 탁자 위에 올려놓고 창문을 연다. 새벽 바람을 만끽한다.
어디로 가야할까.
이전 저가 살았던 정부의 품으로 돌아가야할까.
그럴까.

떠나오고도 3년이 지났다. 부디 나는 우릴 잊어주길 바랐는데, 그들은 여전히 우리를 뒤쫓았다.
민윤기를 찾기보단 나를 찾는 것이 분명했다. 



윤기야.
내가 말했었지

나는 너를 위해 살고
너를 위해 죽을거야.



창문 난간을 밟는다. 바람을 만끽한다.
윤기야. 적어도 오늘은 악몽을 꾸지 않았으면 좋겠어.
좋은 꿈 꿔.

뛰어내린다. 허공을 가른다. 창공은 발 디딜 곳이 없다.
그러나 그 길을 가로질러 서녘으로. 더 태양에서 멀어지는 곳으로.
창문에 매달린 풍경은 짜르릉 소리를 낸다.



네 선배.

야. 임시 거처좀 알아봐줘.

.......선배, 윤기 형이랑 집 같이...

..........찼어. 내가.

......

그러니까. 가장 먼 곳으로 가게 도와줘라 남준아.
그리고 윤기 지키는 것 좀 도와줘라.

선배는 진짜..!

그들이 노리는 건 나니까.

........울어요?



침묵.
남준은 이 침묵만으로도 충분히 이해했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 이 지멋대로인 선배님께서 윤기 형 지키겠다고 이렇게 떠나온 거라고, 오케이.



하...알았어요. 제가 어떻게 도와드리면 되는데요.

윤기 기억 좀 없앨 수 있어.

미쳤어요?

최선의 방법이야.

아니 선배 아무리 그래도 이건 명백한 불법이라고요. 게다가 저는 국가기관 소속인데 그걸..!

그러니까 너에게 부탁하는거잖냐

아니 그게 말이 쉽지..! 이거 잘못 시도했다가 기억 오류 생기면 어쩌지도 못해요. 기억이 났다가도 파편이 깨져서 기억이 없고, 두통 생기는 건 기본이고, 이게 더 고통이라니까...

 ...그럼 어떻게 해야하는데

그냥 떠난 그대로 내비둬요. 몰래 주변은 지킬테니까.
그 대신 함부로 죽지 마요.
각인 끊기면 선배가 죽는 고통만큼 그 고통을 느낄테니까요.

남준아.

네.

나 다시 정부로 돌아갈까.

....네?

그럼 민윤기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뭔 소리를 하는 거에요. 나오려고 엄청 고생했었잖아요. 하긴, 선배같은 능력자는 대한민국에 몇 없으니까....

호석이도, 정국이도 있잖아. 아, 걔들..잘 지내?

...선배랑 윤기 형 도망치고 애들 많이 무너졌어요.

..그건 아무래도 미안하다.

괜찮아요. 우리 다 이해하니까.
죽지만...
죽지만 말아줘요.

..........





남준은 전화 수화기 너머에 울었던 선배를 기억에서 지울 수 없었다. 선배는 남을 위해 분노하고 울었다.
선배, 자기 스스로 좀 챙겨요.
이렇게 말하면 연수는 늘 웃었다.



내가 어떻게 나를 챙겨.



점점 동이 터오르기 시작한다. 태양으로부터 멀어진다. 차라리 내가 그 기억을 앗아갈 수 있다면, 그렇게 나를 모르는 평범한 일상을 살아갈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하고 싶어서.

너가 모르는 먼 곳으로 나는 떠난다.
부디 아프지만 말아.









이렇게 민윤기와의 모든 연락을 끊어낸다.










남준이 소개시켜준 지민이라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부산으로 향했다. 기차표를 끊고 역에 서 있는다.
연식이 있는 무궁화호가 부산으로 향한다고 안내를 한다. 나는 그 기차에 올라탄다. 사람 냄새가 가득하게 퍼져있는 곳. 모자를 푹 눌러 쓰고 의자에 앉아 가만히 음악을 듣는다.

항구의 뱃고동처럼 소리가 울리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이 땅에서 해가 가장 빨리 지는 곳으로.











가을 바다는 하늘이 높았다.
부산역에 도착하자마자 저를 반기고 있는 것은 한 조그마한 체구의 남자였다. 



부산지부 소속 박지민입니다. 남준이 형이 미리 말해줘서 알고 있어요. 정연수씨 맞으시죠?

아, 맞아요. 

일단 가시죠. 최근따라 오거들이 늘어서요.



오거란, 우리들의 존재 이유와도 같았다. 세상이 망하고 난 뒤에 정부를 불신하는 존재들. 반정부군을 우리는 괴물이라 불렀다.
사람들을 죽이는 괴물인 오거.
사람들을 지키는 괴물인 우리.
우리는 그저 괴물들끼리 싸우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싸운다. 사람을 지키기 위한 행동이 아니다. 죽을 수 있는데 겁을 먹지 않을 사람은 없다.
우리도 그러하였다.
그렇기에 우리는 서로를 지키기 위해 그들과 싸운 것이었다. 내 옆에 있는 동료들의 머리가 터지며 피가 곳곳에 묻는 경험따윈 이젠 하고싶지 않다.



정연수 대장님.

그냥 연수라고 해도 괜찮아요. 말도 놓으면 더 좋고요. 어차피 저는 지민씨 대장도 아니니까요.

...그럼 호칭을...

아. 그러네요. 그럼 편한대로 불러요.

연수...선배?

오히려 편하니 좋네요. 남준이 대할 때처럼 해요. 그럼 나도 편하게 말할테니까.

연수 선배. 잘 부탁해요.

잘 부탁할게.



굳은살이 자리잡은 서로의 손을 잡는다.
더 이상 돌아갈 곳은 없을 듯하다.

이른 가을이 찾아온 부산은 붉은 색으로 가득 차 있었다.
시민들은 평범하게 거리를 걸어다니고 있었다. 나는 차의 등받이에 몸을 기대어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오늘따라 평화로워 보이는 하늘은 시퍼렇게 물들어있었다.













떠난 나를 찾지 말아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