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아침입니다.
4.그리움

녹서
2022.07.02조회수 12
아무튼 그랬다.
두려움이 앞서서 심장을 꾹 눌러댔다. 그러나 심장은 여전히도 쿵쾅거렸다. 크게 숨을 들이켰으나 호흡이 온전치 못했다.
약봉지를 움켜쥐었다
나는 이렇게 너를 또 잃어버릴까 두려워.
두려웠다.
가을이 결국 다시 왔다. 원래 이렇게 불안했던 적이 없었다.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
정연수...! 어딜..
............이렇게
........아..
겁이 없으면 어떡해요.
남준이 문 앞에 서 있었다. 얼굴이 창백해지며 문 손잡이를 꽉 잡아당겼다. 그러나 민윤기는 남준의 힘에 당해낼 수 없었다. 남준의 셔츠 깃에는 은색 날개 장신구가 달려 있었다.
이거 놔.
........얘기 좀 해요.
할 얘기 없어.
형 잡으러 온 거 아니에요. 누나 부탁으로 온거에요.
....연수가?
형을 지키랬어요.
.......어딨어.
저도 몰라요.
정부로 빼돌렸냐.
아뇨.
똑바로 말해. 어딨냐고!
진짜 몰라요. 누나도 어디로 간다고 저한테 얘기 안해줬다고요..!
남준이 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러나 이것도 연기였다. 연수의 계획을 함부로 망칠 수 없기에 모르는 척을 해야만 했다.
연수가 남준에게 부탁을 했단다. 그것도 저를 지켜달라는. 남준이 힐끗 주위를 보다가 조용히 귓가에 속삭였다.
형, 정부에서 아직도 누나랑 형을 찾아요. 조심해요.
아, 아아.
우리는 아직도 도망치지 못한 것인가.
쪼그려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그의 마른 모습은 제법이나 처량했다. 안타까웠다. 그럼에도 정부는 그들을 찾아내어 전투병기로 쓰려고 하고 있었다.
부산엔 잘 도착했을까. 지민이 잘 대해주긴 할텐데 걱정이 안되는 것은 아니었다. 부들부들 떠는 민윤기의 등을 천천히 쓸어내린다. 한참 이 둘이 도망치기 전 센터에서 연수가 했던 행동처럼 말이다.
눈이 벌겋게 충혈된 민윤기가 고개를 슬쩍 들어 남준을 쳐다보았다. 바닥에 짚은 손이 덜덜 떨렸다.
.....
남준은 익숙하게 찬장을 열어 컵을 꺼냈다. 그리고 아주 옛적부터 민윤기가 좋아하던 브랜드의 커피를 타서 내밀었다. 감싸쥔 컵에 온기가 돌았다.
드세요.
.......
그래, 우리는 너무 서로를 잘 알지.
남준이 민윤기의 옆에 털썩 앉았다. 그러고선 커피를 홀짝였다. 그래도 전보단 나아보여요 형. 남준은 가볍게 말을 꺼냈다. 남준은 그때 떠났을 때보다 많이 성장해 지금은 높은 직급에 있다고 했다. 간만에 옛날이야기를 들었다.
...수고했네.
다른 애들도 아직 같은 팀원이예요.
잘 있나보네.
....아뇨.
......
형. 우리는요. 어느 순간 도망간 우리의 사람을 용서하고싶지 않아요.
....
그러나 그들을 죽이고 싶지도 않아요. 그러나..우리의 위에 군림해 있는 그들은 우리들을 전투 기계 그 이상으로 보지 않아요.
우리는 오거를 죽여야 해요. 그들을 죽여야만 해요. 그렇게 살다 이용가치가 떨어지면 우리의 끝도 죽음이에요.
그러나 우린 살아야만 해요. 죽음이 두렵지 않아서 이렇게 싸우는게 아니에요.
그러니까 살아요. 죽지 못해서라도 살아남아요. 괴물이라는 죄책감을 가지지 말아요.
부디 제발.
우리는 괴물이어도 형은 그저 가이드일 뿐이잖아요. 그렇잖아요.
남준이 윤기에게 신세한탄을 했다. 이렇게라도 날뛰기 직전의 민윤기를 진정시키고 싶었다.
그리고 이 말은 사실이기도 했다. 센티넬이 그의 옆에 있지 않는 이상 그는 평범한 일반인으로서 살아갈테니.
동료이자 그의 연인을 지키고 싶었다. 남준은 모든 것을 지키고 싶었다.
126-7.
부산 어딘가의 지역은 연기가 나고 부산스러웠다. 사람들이 미처 다 대피하지 못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아, 저렇게 소리지르면 죽을텐ㄷ...
푹 멀리서 가슴에 칼이 박히는 소리가 난다. 센티넬이란 존재는 그러했다. 모든 감각기관이 곤두서 있었다. 소리가 남들보다 잘 들렸고 고통도 잘 느꼈다. 그러나 단지 익숙해질 뿐이다.
남의 죽음은 아무렇지도 않다. 박지민도 정연수도 가이드가 없는 반쪽짜리 존재들이었으나 그 누구도 그 자리에 있는 둘을 이겨낼 수 없는 것이었다. 오거도 같은 편인 다른 센티넬들도 그걸 느꼈다.
짧은 검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여자인지 남자인지 잘 알기 힘든 누군가가 지민의 최측근처럼 합을 맞춰 움직이는 모습을 본 지민의 부하들은 경이로운 눈으로 이 둘을 바라보았다.
그는 바람처럼 날았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자연스럽게 사람을 죽였다. 동맹에 가까운 그저 남일 뿐인 사람 둘이었지만 남들이 보기에는 동료 그 이상처럼 보였다.
지민의 능력은 중력을 다룰 수 있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땅바닥에 처박힌 채로 눌러져 있었다. 압사. 사람들은 그렇게 즉사했다. 연수의 능력은 불꽃이었다. 그 누구보다 화려한 불. 불의 자체가 연수였고, 연수 본인이 곧 불꽃이었다.
나는 꽃이 되지 않을거야
그 대신 너의 불꽃이 될게
그렇게 살아서 너의 심장에 불을 지필게
네가 살아남을 수 있도록
네가 그렇게 살아가도록.
남들은 이를 지옥불이라 일컬었다. 그 누구보다 뜨거운 불을 가지고 있는. 그 파란색 불꽃을.
연수가 푸른 불꽃을 지니고 있다고 한들 연수는 항상 붉은 불꽃만을 사용했다. 가장 저온의 온도에서 빛나는 것들을. 그도 그럴것이 붉은 불꽃에서 색이 변하는 순간 일반적인 인간들은 견딜 수 없는 온도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싸우는 적들도 연수의 불꽃을 견뎌내기 어려워했다. 그 정도로 뜨거운 온도였다.
이전 연수가 정부에 있을 당시 그들의 팀원들도 연수가 노란 불꽃 그 이상을 사용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정국이 가끔은 불꽃을 보여달라며 졸랐을 때도 노란 불꽃까지만 보여줬던 연수였다. 주변인들을 다치게 하고싶지 않다는 소신이 있었기에 팀원들은 그녀를 이해하곤 했다.
지민은 그 붉은 불꽃이 찬란하다 생각했다. 분명 화염능력자는 어디에든 존재할 것이란 생각은 하지만 연수의 불꽃만큼이나 찬란한 존재를 마주한 적이 없었다. 빛이 연수를 감싼다
아.
예쁘네.
지민은 싸우는 순간순간 그의 찬란함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금방 오거들을 해치웠다. 그의 덕분이었다. 손목에는 80% 가까이 숫자가 깜빡이고 있었다.
이제 돌아가서 주사를 맞겠지. 나는 그럴 때마다 네가 기억나 숨죽이겠지.
다친 곳은요?
덕분에 없습니다
연수는 씨익 웃어보이고서는 지민의 등을 툭툭 쳤다. 수고했어.
오랜만에 듣는 낯익은 단어.
보고싶어.
이젠 기억도 나지 않는 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