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아침입니다.

5.하나뿐인 나의

남준은 민윤기를 도와주겠다 약속하고는 금방 돌아갔다. 아무래도 정부의 통제 하에 있는 그들이기에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민윤기는 불안하고 위태로운 부분이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이성적이었다. 민윤기는 팀의 브레인이었고, 그의 지능은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음을 모두가 알았다.
민윤기가 정연수에게 하는 감정적인 행동에 다들 기겁을 할 정도였으니.

그렇기에,
김남준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정연수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감정적으로는 이해를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떠나간다면. 그렇게 나를 지킨다면.
대체 어떻게 본인 스스로를 지킬 것인가
가이드는 센티넬 없이도 살아갈 수 있지만, 센티넬은 가이드의 힘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그 고통을 알 수는 없지만 조그마한 것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그들은 고통이 남들의 몇배에 달한다. 아무리 다치는 것에 익숙하더라도 가이딩이 부재한다면 그들 짧은 생의 결말은 고통스러운 죽음뿐이었다. 그들에게 편한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너를 위해 쉽게 눈물을 흘린다. 아무것도 못하고 우매한 모습을 보인다는게 너무 하찮아보인다.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는 있었다. 그의 머리로 못 찾을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민윤기는 정연수를 찾아가서 그가 저에게 보낼 시선이 두려웠다. 연수가 저를 싫어할까 두려웠다. 그가 입을 피해가 더욱 걱정되었던 것이다. 정부의 시선을 피해 정착한 곳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큰 리스크를 짊어져야 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저 하나를 지키겠다고 떠난 그에게 민윤기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모두에게 필요한 가이드이자, 꽤나 전투실력이 뛰어난 민윤기가, 한때는 감정없는 기계라고도 불리던 그가. 고작 사랑 하나에 심장을 붙잡고는 커다란 눈물 방울을 뚝뚝 떨어뜨린다. 

모두가 어렸던 전투, 그 전투에서는 민윤기의 치밀한 작전에도 다 전멸당할 것이란 결말이 나왔다.
강제로 참전했던 다른 이능력자들과의 전쟁, 그 속에서 혜성과도 같이 나타난 그는 적의 능력에 참살당할 뻔했던 민윤기와 그의 팀원들을 모두 살려냈다. 

불꽃이 피었다.

어느 곳에도 속해있지 않았던 그이는 우리에게 꽃이었고 불꽃이었다. 희망이었다. 구원이자 영원이었다.

울음 속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 옛 추억이었다.
언제 돌아오나 나의 사랑.





목숨을 걸고 싸웠다. 그렇게 연명했다.
추억이라고 부를 수 없을 과거의 트라우마일지도 모른다.
그 어린 아이들을 위로해주기엔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다.






부산 지부. 모두가 돌아오고서는 숨을 돌렸다. 누군가에겐 쉽게 보일 수 있는 임무. 
모든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랬나.
비극이었다. 아픈 사람들은 여전히 많았다.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사람들은 많이 죽었다.

"나는 가이딩이 체질적으로 남들보다 느리게 줄어드는 편이니까 너나 다른 애들부터 신경써줘."

다가오는 지민을 보면서 굳이 오지 않아도 된다는 표시로 고개를 저었다. 지민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숙이며 등을 돌려 다른 환자에게로 돌아갔다. 
선천적으로 그러했다. 잘 죽지 않았다. 센티넬들의 결말에 반항하듯이 살아남았다.

지민의 통제 하에 돌아가는 구조인지 그 지휘에 발맞춰 부산지부는 흠집하나 없었다. 가끔 전투가 나면 건물이 무너지거나 할 수도 있는데 이 곳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아무래도 사이코키네시스 능력자가 있나.
몇년 전에 김해국제공항에 사건이 생겼을 때 출동했던 민윤기의 말로는 없었던 것 같은데 새로운 발현자가 있었나.

아무튼, 한 사람이라도 더 도와준다면 고마울 따름이었다. 정권이 바뀌면서 정부는 서울 지키기에 급급하여 지방까지 보살피려 하지 않았으니.

해는 물에 가라앉았고, 밤은 하늘을 집어삼켰다.
평범하게 마주앉아 밥을 먹었다. 앞에는 박지민이 있었다. 그가 앞에 있어 그런가 주변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사람들이 너 무서워해?"

"네..뭐 그런 것 같아요."


지민이 어깨를 으쓱였다. 따뜻하게 익힌 제육 볶음을 입에 넣었다. 문득 밥을 잘 챙겨먹지 않는 그가 떠올랐다. 매번 챙겨먹질 않아 식당으로 멱살을 잡고 데려간 적이 있었다. 그 일로 민윤기랑 죽어라 싸웠던 적도 있었다.


'밥 먹으라 했지!'

'아 대충 먹어도 된다고!'


남준이 티격태격하는 이 둘을 보며 얼마나 골머리를 앓았을지 눈에 선했다.
싸우면 내가 항상 이겼기에 씩씩대며 밥을 입에 넣는 민윤기가 있었다.
그런 민윤기는 꼴에 자존심도 세서 좋아하는 떡볶이가 나와도 저한테는 숨겼다는 것이다. 나중에 그 사실을 말했을 때 얼마나 놀렸는지 민윤기의 얼굴이 새빨개졌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게, 우리 지민이. 속도 좋고 착한데 왜들 무서워할까."

"선배 말고는 아무도 그렇게 생각 안 할걸요."


북적거리는 식당 사이에서 이상하다는 듯 피식거리며 웃었다. 






매번 반복되는 일상이 세 달이 지날 즈음 민윤기는 짐을 챙겼다.
첫 달은 돌아올 것이라 믿었다. 두 달은 정보를 모았다. 세 달은 전략을 짰다.
민윤기는 그럴 성격이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것이다.
산골마을이든 바닷가든 간에 기어코 찾아낼 것이다.
그가 저를 미워하더라도, 뒤따라 발자국을 맞춰 걸을 것이다.

적들이 수도를 공격하는 일은 잦았다. 서울이 아니더라도 부산, 인천 등 다양한 주요 거점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강원은 산이 불탔고, 전라도는 농경지가 불탔으며, 기차역은 폭발되었다. 그나마 안전한 곳은 그 유명한 박지민이라는 자가 있는 부산이었다. 전 김해국제공항에서 일어난 테러 사건에 지원하러 갔을 때 만났던 자였다.

부산에 있을 가능성이 제일 많았다. 그렇게 믿었다. 지금의 고속도로로 가장 멀리 갈 수 있는 곳, 서울만 지키면 해결될 것이라는 무능력한 정부의 시선이 제일 늦게 닿는 곳, 그럼에도 대도시이기에 정보들을 쉽게 취득할 수 있는 곳.

그리고 그가 좋아하는 푸른 바다가 앞에 있었다.

민윤기의 직감은 꽤나 적중률이 높은 편이었다.
떠나자. 이 회색 도시를. 오랫동안 비만 내리는 이 곳에서 벗어나자.

우리 다시 만나면 가파도로 도망갈까.
봄엔 유채꽃과 청보리 보고, 여름엔 바닷가를 노닐까. 가을엔 핑크뮬리 속에서 사진이라도 찍을까, 겨울엔 네가 좋아하는 고구마와 귤 먹으며 그렇게 사계절을 떠나보낼까.

왜 우리는 능력을 부여받았을까. 서로 아무것도 없는 채로 만났더라면 우린 더 좋았을까,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떨지 않고 너를 사랑할 수 있었을까


어때,

어때?

내가 너를 찾게 되면, 그때는 나의 손을 잡아주지 않을래.










너는 저항할 수 없는 물결처럼 밀려왔고 아스라히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