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1
by_이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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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상태를 갖춘 완전한 사회. 그리고 어느 곳에도 없는 장소. 나는 그리고 우리는 아무런 괴로움이나 고통 없이 안락하게 살 수 있는 즐거운 곳을 원한다. 우리는 모두가 공정하고 같은 위치에 있는 곳. 그래, 마치 낙원 같은 곳을 원한다.
윤여주는 인생이 존나 아팠다. 집은 찢어지게 가난했고,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아무리 성실해도, 아무리 노력해도 윤여주에게 돌아오는 혜택은 찾아볼 수 없었다. 윤여주가 그렇게 원했던 서울대에 들어가지 못했던 이유도 다 부모 잘 만난 것들이 돈으로 성적을 사고, 돈으로 선생을 샀다.
돈도 없었고, 재능도 없었던 윤여주는 그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했으며 그 어디에서도 인정받지 못했다. 처음엔 노력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안 계셔도, 돈이 없어도, 친구가 없어도 노력만 하면 뭐든지 다 잘 될 거라고 생각했다.
담임선생이라는 사람이 윤여주에게 서울대는 무리라고 했을 때도, 전교 1등을 해도 재능이 없다며 다른 곳을 선택해 보라는 말을 들었을 때도 윤여주는 노력 하나만을 믿고 공부만 했다. 누가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하던가. 윤여주는 그 말만 믿고는 노력만 했다.
하지만 윤여주가 노력하는 걸 포기했던 건 자신보다 성적이 훨씬 낮고, 놀기만 하는 같은 반 아이가 윤여주도 붙지 못한 서울대에 붙었을 때, 그리고 그 모든 게 돈 때문이라는 걸 알았을 때, 담임 선생님이 서울대가 아닌 다른 대학교를 고집했던 이유를 알았을 때였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윤여주가 19년간 믿어온 신념은 그날 처참히 무너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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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주는 그 이후 알바라는 알바는 모두 했으며 어떻게든 살아가려 발버둥 쳤다. 하지만 그럼에도 윤여주는 노력하지 않았다. 노력을 하지 않으니 되는 건 없었고, 윤여주의 인생도 서서히 망가지기 시작했다. 돈은 없고,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윤여주는 결국 해서는 안 될 일까지 하고야 말았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 돈이 많아 보이는 사람의 지갑을 슬쩍 훔쳤다. 거기까진 괜찮았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그 사람은 눈치가 얼마나 빨랐는지 지갑을 빼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윤여주를 찾아와 지갑을 내놓으라며 다짜고짜 때렸다. 윤여주는 사람을 잘못 건드렸던 것이었다.
좆됐다. 윤여주는 이 모든 상황을 그렇게 정의했다. 뭐가 좆됐냐 물으면 손에 꼽을 수도 없다. 이 사람한테서 어디 하나 안 부러지고 도망칠 수 있다면 다행인 것이었다. 윤여주는 제발 살아있기만을 바라며 눈을 질끈 감았다. 그 순간, 무언가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미친 거 아니야, 여자를 이렇게 때리는 게 말이 돼?"

"얘, 괜찮니?"
"딱 봐도 중학생 같은데, 미친놈이네"

"일단 우리가 데리고 가자, 좀 다친 것 같은데"
윤여주의 눈앞에 네 개의 손이 있었다. 윤여주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 윤여주의 신념이 깨진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사람을 믿은 적은 없었다. 씨발. 윤여주는 작게 욕을 내뱉고서는 서둘러 그 골목을 빠져나왔다. 뒤에서 어떤 소리가 들려도 절대 되돌아보지 않았다. 절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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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주의 속은 추악한 모든 진실을 알고 난 뒤 균열로 가득 차 있었다. 윤여주는 자신의 인생을 필요악 그 세 글자로 정의했다. 윤여주의 인생에서 진짜로 안타까운 게 있다면 그건 신이 아닌 악마가 윤여주에게 손을 내밀었다는 것이었을까.
노력만으로 가득한 윤여주의 시나리오는 완벽하게 망가져버렸고 그로 인해 윤여주의 인생이라는 연극은 카타르시스에 치다른다. 원래대로라면 맞이했을 결말의 내용. 하지만 악마가 내민 손을 잡은 윤여주의 인생은 순식간에 뒤바뀌었다.

"우리랑 같이 가자, 우리도 너랑 같은 생각을 하고 있어"
"후회하지 않을 거야. 우리도 유토피아를 꿈꾸고 있거든"

"빨리 결정해, 우리에게도 시간이 그렇게 많지는 않아"
"자, 우리랑 함께 가자"
윤여주는 그들의 손을 잡았다. 그들의 손을 잡았으므로 완벽한 카타르시스에 치다른 것이었다. 이미 심해의 밑바닥 속으로 추락한 윤여주에게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성적으로 생각할 수도 없었고, 딱히 선택할만한 선택지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윤여주는 믿어보기로 한 것이다.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 준 악마들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