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몬 전쟁 시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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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보이지 않는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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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아- 학교 안에만 있으려니까 갑갑하네-"
호석이 교실 안에서 창밖을 내다보다가 반복되는 일상이 지루하다는 듯 기지개를 편다. 그러고 보니까 학교에 들어오고 나서 우리가 하는 거라고는 교실에서 멍 때리고 있는 것뿐이구나.
"초이스들은 별다른 일과가 없는 거에요?"
"뭐- 보통 그렇지?논초이스들은 호르몬을 개발해서 자신들이 가진 능력을 극대화시키려고 끊임없이 연구에 몰두하지만 우리는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그래도 이렇게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데.. 초이스들은 졸업을 하면 보통 어떤 일을 해요?"
"음- 호르몬에 따라 다르지. 너 같은 경우는 무효화 호르몬을 가지고 있으니까 대현 선생님이나 택운 선생님처럼 호르몬 고등학교의 선생님이 되는 경우가 많고 나 같은 희망호르몬을 가진 사람들은 적당한 교육을 받은 후에 심리상담사 같은 직업에 종사하지. 태형이나 윤기 형 같은 경우는 연예계 쪽에 종사할 확률이 높고 지민이는 비밀 정보요원 같이 국가에서 중요한 일을 하는 역할을 맞게 될 거야"
아- 그렇구나!그런데 석진오빠나 남준 오빠의 호르몬은 어느 직종에서 일할 수 있는 거지?아무리 생각해도 별다른 직업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럼 남준오빠나 석진 오빠는 어떤 직업을 가지게 되는 거에요?"
"남준이는 공포나 파괴 호르몬을 가지고 있으니까 외교적이거나 국방부 같은 곳에서 일하게 될 확률이 높고 석진이 형은..."
석진의 직업을 말하려던 호석의 말문이 막힌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말로 설명하기 곤란한 표정으로 석진의 눈치를 본다. 그런 호석의 행동을 알아챈 석진이 다소 굳어진 얼굴로 애써 미소 지으며 나를 본다.
"음.. 나 같은 경우는.. 그저 사람을 어색하게 만드는 호르몬을 가진 것뿐이라서 호르몬 연구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공헌하는 게 내 일이야"
호르몬 연구에 도움이 되도록 공헌한다..?그렇다는 건... 석진 오빠가 직접 그 연구의 재료가 된다... 뭐 이런 건가..?에이.. 설마 사람을 실험 재료로 쓸 리가 없잖아.
"호르몬을 연구하는 건 논초이스들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 아니에요?"
내 질문에 석진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면서 나를 본다.
"연구를 하는 건 내가 아니야. 네 말대로 논초이스들이 연구하는 거지"
그렇다는 건... 내가 석진의 말에 다소 심각해진 얼굴로 석진을 보자 그런 표정 지을 필요 없다는 듯 말하는 석진.
"괜찮아- 어차피 이런 일도 누군가는 해야 하는 거잖아?우리 인류의 발전을 위해서 말이야"
괜찮다는 듯 나를 향해 활짝- 미소 짓는 석진의 얼굴이 나에게는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는다고 느껴졌다. 지금 만해도 호르몬 때문에 다른 사람과 같은 학교생활도 즐기지 못하고 다른 사람과 같이 가족과 함께 하지 못하고 떨어져 지내는데..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자유는커녕 호르몬 연구의 실험체가 되어야한다니...
"안 되겠다. 나는 바람 좀 쐬고 와야겠다"
내가 울상인 얼굴로 석진을 보고 있자 그 상황이 불편한지 교실을 벗어나는 석진 오빠. 석진 오빠가 교실에서 빠져나가자 호석 또한 석진이 빠져나간 곳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본다.
"제가... 석진오빠를 곤란하게 만들어버린 걸까요..?"
내가 힘이 빠진 목소리로 말하자 그런 나의 어깨를 감싸 토닥여주며 말하는 태형 오빠.
"에이- 알고 그런 것도 아니고, 언젠가는 직시해야하는 현실이기도 하니까. 너무 마음에 두지 마. 이쁜아"
"그렇지만.. 연구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건... 그 연구의 실험체가 된다는 거잖아요. 그거 엄청 아프고.. 엄청 괴로운 거잖아요.."
어째서 였을까?실험체라는 그 말이 너무 슬프고 괴롭게 다가왔다.. 마치 내가 그 실험체가 되어본 것처럼... 말이다. 내가 왜 그런 느낌을 받는지 나는 잘 알지 못했지만.. 가슴이 찌릿찌릿 해질 정도로 슬퍼졌다. 내가 왠지 모르게 우울해져오는 걸 느끼며 시무룩해져 있는데 그런 내 머리 위로 올라오는 누군가의 손. 그 손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어보면 담담한 얼굴의 정국의 모습이 보인다.
"석진이 형도 잘 참고 있는데- 유난 떨지 마. 호박"
어쩐 일로 위로 해준다했어. 내가 정국의 말에 정국을 노려보자'뭐 어쩌라고'라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는 전정국. 그런 정국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태형의 표정이 순간 시무룩해진다. 그 때 다급한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고 덜커덕- 소리와 함께 교실의 앞문이 거칠게 열리며 석진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한다.
"큰 일 났어!호석이가....!"
"호석이 형이 왜?"
석진의 다급한 목소리에서 이미 불길한 상황을 예측한 듯 초이스반 아이들이 모두 몸을 일으킨다. 정국의 물음에 석진이 눈물이 맺힌 눈으로 정국을 보며 말한다.
"호석이가... 쓰러졌어.. 그래서 택운 선생님한테 데리고 갔는데... 의식이 돌아오지 않는데..."
"그게 무슨 소리야?호석이 형이 왜 쓰러져?"
석진의 말에 태형이 그런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다급하게 교실을 빠져나간다. 호석이 오빠가.. 쓰러져?전정국이 쓰러졌으면 몰라도 호석이 오빠는 엄청 건강해보였는데.. 호석이 오빠가 쓰러지다니...
'나 대신 속 시원하게 울어줘서. 덕분에 나도 답답한 속이 좀 풀린 것 같다.'
그렇게... 다정한 호석이 오빠가....나를 향해 눈물이 맺힌 눈으로 미소 짓던 호석오빠의 얼굴이 머릿속에 떠올랐을 때 나는 이미 태형오빠의 뒤를 따라 달려 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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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스 보건실. 호석이 의식을 잃은 채로 새하얀 침대 위에 누워있고 그런 호석의 상태를 택운과 대현이 살피고 있다.
"호석이는 호르몬 주사를 정국이 보다 덜 복용했는데... 호르몬 주사에 대한 내성도 강했고... 부작용도 제일 적게 나타났잖아. 그런데 호석이가 쓰러진 이유가 대체..."
대현이 혼란스러운 얼굴로 택운을 보자 택운이 호석의 얼굴을 유심히 보면서 말한다.
"호르몬 억제 주사의 부작용 때문에 쓰러진 게 아니야.."
"그게 무슨 소리야..?호르몬 억제 주사 때문에 쓰러진 게 아니라니..?"
대현의 이해하기 힘들다는 목소리에 택운이 평온하게 잠들어있는 듯한 호석의 이마 위에 길다란 손을 얹으며 말한다.
"호르몬 억제 주사의 부작용은 생명이 단축된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쓰러진다고 해도 혈색이 나빠지고 식은땀을 흘리며 잠든 동안에도 고통스러워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지. 그런데 지금 호석이의 상태는 진짜 편하게 잠든 것과 같은 상태야. 거기다가 이번년도 건강 검진표를 봐도 몸에 별 이상이 없던 걸로 봐서는... 개인적인 건강의 문제도 아니고.."
"잠깐만.. 그렇다면..."
대현이 택운의 말에 뭔가를 떠올린 듯 심각한 표정이 된다.
"내 생각은 그래.. 이건 분명히 호르몬을 누군가가 강제로 빼앗아 갔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야. 누군가 호르몬을 강제로 빼앗아 갔을 경우는 빠져나간 호르몬만큼 생명이 단축되는 것이 특징이니까.. 준홍이를 통해서 호석이의 남은 수명을 확인해보면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있겠지"
"하지만 호르몬을 강제로 빼앗아 갈 수 있는 것 또한 호르몬을 빼앗을 수 있는 호르몬을 가진 초이스뿐일텐데... 그런 호르몬을 가진 초이스들 중에 이런 일을 벌일 놈들은 어둠의 초이스 녀석들뿐이잖아..?그렇다는 건 어둠의 초이스가 학교 내로 들어왔다는 거야?"
대현의 말에 택운이 자신도 그 상황이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다는 듯 말한다.
"분명히.. 어둠의 초이스들이 학교 내로 침입하면 원식이랑 용국이가 먼저 알아챘을 텐데.. 대체 어떻게 학교 내로 침입한 거지..?"
"일단.. 아이들에게는 비밀로 해두는 게 좋겠지?아직 정확해진 것도 아니니까"
"불안해할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하도록 하고. 교실 내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네가 항상 함께 있어주도록 해. 어둠의 초이스가 관련된다면 확실히 초이스 반을 노리고 공격해올 테니까"
"일단, 준홍이를 불러오도록 할게"
대현이 수명을 감별하는 호르몬을 가진 준홍을 불러오기 위해 보건실 문을 여는 순간, 그 문 앞에서 굳은 표정으로 서 있는 초이스반 아이들이 대현의 시야에 들어온다. 초이스반 아이들을 본 대현의 눈동자에 당황스러움이 담긴다.
"너희들....."
"호석이 형이 저렇게 된 게... 어둠의 초이스인가 뭔가 하는 녀석들 때문인거에요..?"
좀처럼 어두운 표정을 보이지 않는 지민이 이를 악물고 대현을 향해 물어온다.
"아직.. 정확해진 건 아니니까 다들 교실로 돌아가자"
"호석이.. 일어날 수 있는 거죠..?"
대현의 말에 석진이 금방이라도 울것 같은 얼굴로 대현을 향해 묻는다. 그런 석진의 말에 잠시 불안한 표정을 지어보이던 대현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석진을 본다.
"당연하지. 호석이 곧 일어날 거야. 그러니까 택운 선생님이랑 나를 믿고 교실에서 기다려 줄 수 있을까?너희가 들은 대로 너희가 개인행동을 하면 위험에 빠질 수도 있으니까 되도록이면 교실에 함께 있도록 하고. 부탁한다"
대현의 말에 정국이 먼저 뒤돌아서서 교실로 향한다. 그런 정국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남준이 나머지 초이스 반 아이들을 타이르듯 말한다.
"일단 교실에 가있도록 하자. 또 다른 피해가 일어나서는 안 되니까"
그래... 더 이상 누군가가 더 위험해지면 안 되니까.. 대현 선생님의 말대로 하는 게 맞겠지.. 보건실의 열린 문으로 평온한 표정으로 잠들어있는 호석오빠의 얼굴이 보인다. 호석 오빠... 일어나주실 거죠.. 다시 일어나서... 저한테... 전처럼 다정하게 웃어주세요... 침대위에 가만히 누워있는 호석의 모습을 보고 있는 내 시야는 어느 샌가 흐려져 버렸다.
'이제 보니까 ㅇㅇ이 완전 울보네.'
울지 말자... 내가 또 울면.. 호석오빠가... 나보고 또 울보라고 놀릴지도 모르는 일이잖아.. 그러니까.. 울지 말자.. 호석이 오빠는 건강하게 돌아올 거니까 그러니까 씩씩하게 기다리자.
"ㅇㅇ아. 일단 교실로 돌아가자"
지민이 금방이라도 울것 같은 나의 등을 토닥여주며 말한다. 그런 지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한발자국씩 내딛으며 교실로 향했다.
초이스 반 교실로 다시 돌아가고 있는 초이스 반 아이들. 그들의 뒤를 따르고 있던 태형의 걸음이 어느 순간 멈춘다. 한동안 멈춰있던 태형의 발걸음이 계속해서 초이스 반 교실로 향하려다가 말고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때마침 태형의 빈자리를 느낀 정국이 태형을 찾기 위해 고개를 돌리고 교실과 반대편으로 걸어가고 있는 태형의 뒷모습을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