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쉿 그냥 지나가 헤어지자."
"어?.."
"오빠 가자"
그대로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그 낮선남자의 팔을 붙들고 지나가버렸다.
처음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29년을 살면서 한번도 여자에게 먼저 당한 적은 없었는데.
그렇게 나는 지원이에게서부터 그냥 차인 것보다 더 비참하게 버려졌다.
그리고 그 이유는 이유라고 말하기도 뭐했다.
그냥 그저 내가 자기 비위에 맞춰주지 않아서.
그리고 내가 병원일로 바쁜 사이에 다른 남자가 생긴 것이겠지.
"하 ㅋ 진짜.."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었다.
그딴 여자가 뭐가 좋다고 내 쉬는 시간 쪼개서 만났던건지..
"차라리 잘 됐어 쓰레기를 일찍 처리해서 다행이지"
말은 그렇게 해도 속에서는 분노와 짜증이 뒤섞여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시발 집에나 가자"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 분노에 온갓 성질은 다 내며 집에 들어갔다.
"재환아 오늘 선은 어땠니?"
"그 여자 참하고 괜찮지?"
"엄마 나 이런 얘기 할 기분 아니니깐 그만 해요"
"왜 그래..무슨 일 있었니? 3일 후면 그 여자분 우리 집에 들어올텐데.."
"..뭐요?"
"그냥 진짜 두달 동안 한번 같이 살아보는거야 너도 이제 방황 그만 하ㄱ.."
"바라는게 뭐예요?"
"엄마는 맨날 저한테 바라는게 점점 추가됐잖아요"
"고등학생때는 아빠 따라서 의사 되서 아빠 병원에서 일하라더니, 그거 해주니깐 이제 여자문제까지에도 직접 개입하시게요?"
"바라는건...너 정신 차리는거"
"맨날 이여자 저여자 만나다가 차이지 말고...정신차리고 살란 말이야.."
오늘 같은 날 저 말을 들으니깐 더 x같았다.
박지원한테 차이고 온 날, 저런 얘기를 듣다니
엄마가 꼴보기 싫어서 미쳐버리겠다.

"그 여자 우리 집에 들어오든 말든 알아서 해요 어차피 곧 자기 발로 나갈테니깐"
(쾅

(슬아)
아무리 엄마가 나랑은 상의도 없이 계약을 했다 하더라도, 계약은 계약이었으니 지킬 수 밖에 없었다.
동거라...그것도 병원장 아들이랑..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말도 안 되는 이 상황에 헛웃음이나왔다.
에휴 그래 어차피 두달인데 버텨보자.
//
(며칠 후)
바리바리 짐을 싸 들고 엄마가 알려준 그 집 주소대로 찾아갔다.
와..근데 무슨 집이 나 비싼 집이에요 하고 티를 내고 있냐
누가 부잣집 아니랄까봐 집부터 으리으리해요 아주.
밸을 누르니, 곧 바로 대문이 스르륵하고 열렸다.
조심스럽게 정원를 지나쳐 집 문앞에 도착했다.
(똑똑똑
노크를 새번 하자 가정부처럼 보이는 아주머니가 웃으며 나를 맞아주셨다.
"슬아씨죠? 들어와요"
"안애 사모님이 기다리고 계세요"
사모님...역시 부잣집이야 호칭부터 다르잖아
//
응접실 처럼 보이는 공간에 들어가자, 작은 테이블 옆 의자에는 사모님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앉아 있었다.
"안녕하세요 강슬아씨"
"네 안녕하세요.."
"앞으로..부탁해요 제발"
사모님의 한마디에 난 느꼈다.
내가 지금 이곳에 제 발로 들어온 이상
한동안 빠져나가기는 힘들 것이라고.
"제발...우리 재환이 사람 만들어줘요"
"우리 아들...정신 좀 차리게 해줘요..."

(재환)
사실 집에 있었다.
그 여자가 재환의 집에 들어왔을때 재환은 방에서 잠자코 인기척도 없이 한숨만 쉬며 있었다.
벌써 이러기도 이십여분째
바깥상황이 궁금하지도 않을까, 조용히 핸드폰에 얼굴을 파묻고 있을 뿐이었다.

"..."
사실은 나갈 수가 없었다.
아니, 그냥 내가 못 나가겠다.
그여자를 내가 무슨 면목으로 봐.
그날 선자리에서 내가 뱉은 말이 있는데.
사실 그래도 처음에 들어왔을땐 나가서 인사라도 해줘야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이내 포기했다.
그 여자가 들어왔을 시각에 나는 방구석에서 전여친 sns나 보고 있었는데 무슨 염치로 나가서 반긴다는 말인가.
이 모든일은 내가 자초한 일이었고, 그 누구도 탓 하면 안 됐다.
그냥 나는 사람을 대하는 것에 대해서 지극히 철이 없던 놈이었고, 그 사소한 것들이 커지고 커져 현재의 상황을 만들어냈다.
박지원도, 지금 우리집에 있는 저 여자도.
나만 아니었으면 편하게 알아서 잘 살았을텐데
나 하나로 그들의 삶은 바뀌었고, 아니면 바뀌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