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가 조금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썼습니다.
- 대체 무슨 글인지 작가도 모릅니다.
- 왜 썼는지 작가도 모릅니다.
- 클리셰 덩어리입니다.
- 가볍게 읽어주세요... 어차피 개연성 개나 준 엉망진창인 글입니다...
- 여주의 원래 이름이 나오는 부분은 일부러 비워뒀습니다. 독자님들 이름 넣어서 읽으시면 될듯...
-TRIGGER WARNING! 2010년대 초에 유행하던 인터넷 소설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학교폭력을 연상시키는 장면이 있을 수 있습니다.
엑스트라로 살아남는 법
:어느 날 소설 속 엑스트라가 되어버렸습니다.
W. 그쁨
"또, 씨발…, 또…."
체육 창고, 야산에 이어 이번엔 납치다. 이쯤 되니 욕이 안 나오려야 안 나올 수가 없다. 손발은 묶여있고, 시야는 가려져있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손발에 묶인 줄을 풀려 아등바등 대기도 하고, 눈에 씌워진 새카만 천을 벗겨내보기라도 하려 열심히 꼼지락거려보았지만, 남는 건 여전히 단단히 묶인 손발과 가려진 시야, 그리고 우스꽝스러운 몸짓으로부터 비롯된 수치심 뿐이었다. 결국 힘만 잔뜩 뺀 셈이다.
이제는 꼼지락거릴 기력도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편의점 가기 전에 뭐라도 좀 먹고 나올걸. 주린 배에서 꼬르륵-, 하는 애처로운 소리가 났다. 수치심을 이겨내기 위한 변명을 좀 해보자면, 나는 배가 고파 편의점에 가는 길이었고, 편의점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납치를 당했으니, 내 주린 배는 그대로일 수밖에 없었다. 꼬르륵 소리가 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그래, 납치가 무슨 흔한 현상도 아니고, 편의점 가다 납치당할 줄 누가 알았겠냐고? 게다가, 게다가,
"난 엑스트란데… 왜 납치하냐고…."
차라리 여주인공이었다면 덜 억울했겠다. 여주인공의 숙명이겠거니-, 하며 받아들이는 척이라도 좀 했을 거라고. 아니면 처음부터 납치를 염두에 두고 생활을 하던가 했겠지, 젠장.
…징징거려봐야 변하는 게 없단 사실은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알았다. 밧줄을 풀기 위한 고군분투 덕에 흐트러진 호흡을 쌕쌕 숨을 고르는 걸로 정리하며 나는 생각했다. 지금이 몇 시일지, 납치된지는 얼마나 지났을지, 갇힌 건 혼자인지, 여기는 어디일지 따위는 손발이 묶이고 눈이 가려진 내게 하등 쓸모없는 생각이었기에 나는 질문을 바꾸었다. 왜 나를 납치했을지, 그리고 납치를 사주한 범인이 누굴지.
'…권연희일까?'
사실 가장 유력한 후보이긴 했다. 자, 생각해 보자, 권연희에 대해. 일단 이런 납치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능력? 이 세계에서 신이나 다름없는 작가인데다 재벌집 따님이라는 신분까지 가지고 있으니 충분. 날 납치해야 할 이유, 즉, 범죄 동기? 날 죽이려 든 적도 있는데 납치라고 못할까, 아주 차고 넘친다! 여기까지 생각하던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착잡함까지 느끼는 중이었다.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은데, 정황상 권연희가 범인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그랬다.
소설의 원작에서 엑스트라에 불과했던 내가 납치를 당했다면 이런 일이 벌어진 이유는 두 가지였다. 1. 내가 납치되는 걸로 줄거리가 바뀌었거나, 2. 나와 같은 빙의자가 날 납치했거나. 지금 같은 경우엔 1과 2가 모두 가능한 게 권연희밖에 없다, 이 말이다. 복숭아 맛 새콤달콤을 손에 꼭 쥐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좀 마음을 열었다고 생각한 건 내 착각이었나?
생각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그 이유라 함은 어딘가에서부터 들려오는 인기척 때문이었다. 두런두런 말소리가 커져가는 것을 알아챈 나는 최대한 몸에 힘을 뺐다. 차가운 바닥에서부터 한기가 달라붙었지만, 깨있단 걸 들켜봤자 별 좋은 일은 벌어지지 않을 거란 생각에 몸이 떨리지 않게 애썼다. 끼익-, 하며 낡은 경첩이 쇳소리를 냈다. 어렴풋하게 들려오던 목소리가 한층 선명해졌다.
"…해서 목격자도 깔끔하게 처리했습니다. 누가 누구인지 구별도 끝냈는데, 다만, 아가씨께서 말씀하신 분의 이름을 정확하게 알 수가 없어서…,"
"됐다, 거기까지. 나중에 아가씨께 다시 여쭤보면 될 일이야. 피차 둘 모두 아가씨와 별다른 친분조차 없어 보이던데. 그럼 죽던 살던 신경도 안 쓰실게 뻔하지."
"그건… …예, 맞습니다."
"그럼 문제 될 건 없지 않나? 그래서, 어느 쪽이 김여주고 어느 쪽이 김연주지?"
"프로필 상으로는 이쪽이 김연주, 다른 한쪽이 김여주인것으로 보입니다."
…김여주가 여기 있어? 생각지도 못한 이름에 몸에 힘이 들어가려는 것을 필사적으로 참아냈다. 납치된 게 혼자가 아닌 상황, 게다가 아가씨라…. 권연희에 대한 의심이 다시금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아가씨라고 불릴만한 여학생이 이 소설에 대체 몇 명이나 있겠냐고. 한숨을 내쉬고 싶은 것을 꾹 참아내며 나는 두 남성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사장님, 연희 아가씨께서 정말 이 학생들을 데려오라 시키신 게 맞습니까?"
"그렇대도, 대체 아까부터 같은 것만 물어보는 이유가 뭐지?"
"죄송합니다. 한데 제가 알기론 아가씨께서 내리신 명령이 사장님께서 말씀하신 것과는 좀 다른 것 같아서…."
"허 참, 아가씨께서 뭐라 하셨다던가?"
"그러니까 정확하게는…,"
역시 아가씨는 권연희였구만, 아, 팔 저려. 옆으로 돌아누운 탓에 자꾸만 저려오는 팔이 불편해 절로 미간이 찌푸러졌다. 어차피 천에 가려졌으니 이 정돈 괜찮겠지 하며 나는 팔이 움찔거리려는 것을 또 참아내며 귀를 기울였다.
"정확하게는, 그 김여주인지 김연주인지 하는 학생의 털끝 하나라도 건드리면 가만두지 않겠다 하셨지 않습니까?"
…그딴 명령을 내렸어?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대화에 나는 팔이 저릿한 것도 잊은 채 그들의 대화에 집중했다.
"해서 혹시, 아가씨께서 아끼시는 친구분이 아닐지…,"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군,"
"예?"
"그래, 아가씨께서 내린 명령은 그랬지. 근데 얼마 전까지는 그 김여주인지 김연주인지 하는 학생을 못 잡아먹어 안달 아니셨나?"
"예? 아가씨께서요?"
"그래, 그런데 하루아침에 마음을 바꾸시고 건드리지 말라 한 이유가 뭐겠나?"
"…글쎄요, 뭡니까?"
그래, 뭔데? 이 흥미진진한 대화에 귀를 더욱 기울이며 내가 생각했다.
"다 아가씨께서 직접 처리하려고 내리신 명령인 거지. 우리 손을 빌리지 않겠단 말씀이다."
"그런, 그런가요? 그럼 왜 납치를…,"
"아무리 아가씨 명령이라도, 굳이 우리를 놔두고 아가씨 손을 더럽힐 필요가 있겠는가?"
"그러면…."
"아가씨께서 괜히 힘들일 일 없이 학생을 여기다 잡아두면 될 일 아니겠나. 아가씨만 모셔오면 끝인 거지."
"아하…."
솔직히 권연희라면 진짜 그런 의도로 명령을 내렸을 수도 있겠단 의심이 들긴 했다. 그런데 얌전히 두 남정네들의 대화를 듣고 있자니 어쩐지…, …나와 김여주를 납치한 저 아저씨가 잘못 짚어도 한참은 잘못 짚은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생각하는 게 조금… …헛똑똑이 같았다. 누군가의 말을 화자가 의도하는 대로 듣는 것이 아닌, 제 머릿속에서 한 번 더 꼬아 엉뚱한 결론을 내리는 것이 꼭 그랬다. 삼류 소설의 악당 같달까. 단편적이기 그지없는 모습에 나는 권연희를 의심하는 것을 그만두기로 했다.
“아무튼 인질들은 잘 있는 걸 봤으니 우리도 돌아가지.”
“예, 보초를 세울까요?”
“뭐 하러? 어차피 여자애 둘인데. 자자, 밥이나 먹으러 가자고.”
인질만 덜렁 놔두고 가는 저 모습을 보라. 지능이 심히 의심되지 않을 수가 없지 않나…. 제까짓것들이 여기가 어딘 줄 알고 빠져나가겠어? 하며 걸음을 옮기는 두 남자에 나는 끝까지 숨죽여 문이 닫히길 기다렸다. 끼이익-, 하는 소리를 내다 덜컹-, 하며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자마자 나는 몸을 움직였다. 팔 저려 죽을 뻔했다.
생각이 바뀌었다. 어차피 내가 없어졌단 사실을 알면 김석진을 비롯한 세 남주인공들이 누굴 털러 갈지는 뻔한 일이었다. 권연희가 범인이든 아니든 나는 여기서 시키는 대로 있으며 구조나 기다리는 게 낫다고 생각했었는데, 저 멍청한 대화를 듣고 있자니 어쩌면 탈출이 그렇게 어렵지 않을 거란 생각이 막 드는 것이었다. 이게 바로 근거 없는 자신감인가? 아무튼 간에, 저 허술함을 보아하니 눈에 걸쳐진 천 정도는 어떻게 해서든 풀어낼 수 있을 것 같아 나는 바닥에 얼굴을 댔다. 차가운 바닥에 관자놀이 부근을 대고 얼굴을 몸 쪽으로 끌어당겼다. 천이 씌워진 부분이 바닥과 마찰하며 서서히 시야가 트였다.
진작 이럴걸, 속으로 투덜거리며 천을 완전히 벗어냈다. 바닥이 생각보다 고르지 못한 탓에 얼굴이 긁혔는지 따끔함이 느껴졌다. 곧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는데 그깟 따끔함이 대수랴. 갑작스레 밝아진 시야에 적응하기 위해 눈을 몇 번 끔뻑거린 나는 눈을 뜨는 것이 적당히 편해졌을 무렵 서둘러 주변을 살폈다. 생각보다 좁은 공간, 컨테이너 박스를 연상시키는 공간 안에 미동도 없이 축 늘어진 김여주가 보였다.
"여주야, 김여주-,"
지렁이마냥 바닥을 기어가는 데는 취미가 없었지만, 양손과 발이 묶인 마당에 움직일 방법이 마땅찮아 어쩔 수 없었다. 몸을 꿈틀거리며 김여주에게로 다가선 나는 작은 목소리로 김여주를 연신 불렀다. 으응-, 하는 앓는 소리를 낸 김여주가 정신이 든 것인지 몸을 움찔거렸다. 눈을 깜빡인 것인지 검은 천이 몇 번 달싹이다 말았다. 김여주, 하며 이름을 한 번 더 부르자 그제야 입을 열었다.
“혹시 연주야…?”
“응, 괜찮아? 정신이 좀 들어?”
“어, 응, 근데 여긴 어디야? 나 앞이 안 보이는데….”
“천 때문에 그래. 벗겨줄 테니까 그대로 앞으로 조금만 와봐.”
얌전히 앞으로 다가선 김여주의 얼굴에 묶인 천을 뒤로 묶인 손으로 열심히 풀어내는 와중에도 나는 입가에 살며시 떠오른 미소를 감출 수가 없었다. 변태도 아니고 납치 감금된 이 상황이 즐거워서 떠오른 미소는 단연코 아니었다. 단지, 아까의 대화에서 얻어낸 진실 하나가 내 기분을 좋게 만들었을 뿐이었다. 날 납치한 건 권연희가 아니었다. 권연희가 마음을 열었다.
앙칼진 고양이를 길들이는데 성공한 것 같아 기분이 좋을 뿐이었다.
📘 📗 📕
OOO가 사라졌다.
연락이 되지 않아 설마 했다. 다른 할 일이 있는 거겠지, 일찍 잠든 거겠지. 스스로 안심이 될법한 말들을 속으로 되뇌면서도 결국 참지 못하고 겉옷을 주워 입는 제 꼴이 좀 우습다고 석진은 생각했다. '적당히 좀 하라고, 적당히! 어? 적당히 몰라?!' 수학여행 때 잠깐 사라졌던 걸로 헬기까지 띄웠던 저들에게 기겁하며 소리를 질러대던 OO가 생각나 석진은 픽 웃었다. 이번에도 찾아가면 과보호라고 성질내려나? OO와 제대로 말해본 지가 벌써 이틀이라는 사실은 이미 석진의 안중에 없었다. 차라리 성질이라도 내주었으면 좋겠다. 어제와 다름없는 일상 속의 불청객이었으면 했다, 저 자신이.
"연주? 오늘 친구 집에서 자고 온다고 연락 왔던데?"
"…친구요?"
"응, 연주한테 연락해 보지그래?"
연희란 애 집에서 자고 온다더라고-. 그래서 석진은, 꾸역꾸역 찾아간 OO의 집에서 OO의 어머니께 이런 말을 들었을 때 눈앞이 하얘지는 것 같았다. 늦은 시간에 실례했단 말을 덧붙이곤 급하게 계단을 내려가는 석진의 얼굴이 새하얬다. 김연주, 010-XXXX_XXXX. '전원이 꺼져있어 삐 소리 후 소리샘으로…,' 여전히 연락이 되지 않았다. 석진의 표정이 절박하게 바뀌었다.
빨라지던 걸음이 기어이 뜀박질로 변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데도 석진은 뜀박질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손으로는 바쁘게 어디론가 연락을 보냈다. OOO가 사라졌다. 석진이 향해야 할 곳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연락을 보낸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석진의 핸드폰이 시끄럽게 울렸다. 발신인은 지민이었다. 주저할 것 없이 그 전화를 받은 석진이 상황을 설명했고, 지민은 즉시 권연희의 집 주소를 털었다. P 기업 유일한 도련님쯤 되니 이 정도는 숨 쉬는 것보다 간단했다. 석진에게 주소를 전해준 지민이 정국을 데리고 가겠다는 말을 남기곤 전화를 끊었다. 석진이 택시를 잡은 것도 그쯤이었다.
으리으리한 집이었다. 땅값만 더럽게 비싼 서울 한복판에 있는 집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물론, 소설 속으로 들어오고 나선 풍족하다 못해 넘쳐나는 부의 향연에 금전 감각이 망가져버린 셋에게는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논외였다. 지민과 정국이 데리고 온 경호원들까지 동원하니, 결코 열리지 않을 것 같던 으리으리한 대문도 금세 뚫려버린다. 성큼성큼 남의 집 안으로 들어가는 동안에도 석진은 꼼꼼하게 주변을 살폈다. 혹시라도 -가 있을까 봐 그랬다.

"김연주 어딨어?"
"뭐? 갑자기 찾아와선 무슨 소리야?!"
난데없는 소란에 무슨 일인가 싶어 뛰쳐나온 권연희의 앞을 가로막은 지민이 물었다. 인상을 팍 쓰곤 무슨 소리냐며 시치미를 뚝 떼는 그 모습에 석진이 주먹을 꾹, 말아 쥐었다. 김연주 어디 숨겼냐고. 석진에 비하면 차분한 상태인 지민이 재차 물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같았다. 무슨 소리냐니까?! 권연희의 뻔뻔한 대답에 참다못한 석진이 앞으로 나섰다.
"너 내가 적당히 하라고 했지. 그때 그러고서 아직도 정신 못 차렸어?"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진정 좀 하는 게 어때,"
"그럴 여유 없어. 김연주 어딨어?"
"나야말로 묻고 싶다. 대체 왜 나한테 김연주 행방을 묻는 건데?"
"몰라서 물어?"
"모르니까 묻지!"
권연희가 바락, 소리를 내질렀다.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를 보곤 어쩔 줄 몰라 하던 것 같은데, 지금 석진의 눈앞에 있는 권연희는 그때와는 무언가가 달랐다. 그러니까, 무언가를 좀 내려놓은 느낌? 그렇다고 해서 일전의 일이 없는 일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권연희는 김연주 납치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였다. 적어도 석진에겐 그랬다.

"…김연주가 없어졌어. 집에 찾아갔더니 너네 집에서 자고 온다는 연락만 왔대. 정황상 네가 납치한 게-,"
"뭐?!"
"…그러니까 네가 납치한 게-,"
"OOO가 없어졌다고?!"
…그래도 이쯤 되니 '…진짜 얘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저 격한 반응을 보라. 석진이 여태 봐왔던 권연희는 제 감정에 솔직한 사람이었다. 그만큼 욕망에도 솔직하긴 했지만, 그 솔직함 덕에 거짓말을 하면 죄다 티가 나는(사실 좀 멍청해 보일 정도라고 생각했다.) 사람이었다. 정말로 그가 김연주를 납치해간 것이 맞다면, 적어도 제 앞에서 펄쩍 뛰며 OO의 안위를 걱정하는듯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으리라. 석진은 혼란스러웠다. 당황과 혼란이 그의 표정에 죄다 드러나는 것을 보고 나선 것은 지민이었다.
별생각 없이 석진과 권연희의 대화를 듣고 있던 지민의 머릿속에 얼마 전, 연주와의 대화가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먹을 걸로 좌지우지될 우정인가 보지."
"아니야, 먹힐걸?"
사실 그때까지도 지민은 OO가 답지 않게 좀 미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길고양이도 아니고, 사람에게 먹을 걸로 환심을 사서 친해지겠단 계획에 황당하다는 생각만이 들었으니까. 그런데, 만일 그 말도 안 되는 계획을 김연주가 해낸 거라면? 지금 제 앞에 있는 권연희를 김연주가 먹을 걸로 완전히 꼬드겨낸 걸까…? 진짜,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지민은 앞으로 나서 권연희를 똑바로 마주 보았다. 정신없이 무언가를 중얼거리던 권연희가 지민을 마주 봤다. 지민이 물었다.

"네가 김연주를 데려간 게 아니란 소리야?"
"내가 뭐 하러?! 아니 그보다, 너넨 대체 뭐 하는 건데?!"
"…어…?"
"OOO가 납치당했는데 뭐 하는 거냐고?! 왜 가만히 있어?! 지금 이럴 시간이 있어?!"
"…그게,"
"진짜 도움 안 되네!!"
…말문이 막혔다. 비단 지민뿐만은 아니었다. 방금까지도 권연희를 매섭게 몰아세우던 석진도 상당히 얼빠진 얼굴을 하고 있었고, 아직 졸음이 덕지덕지 묻어있는 얼굴을 한 정국도 침묵을 지키다 겨우,

"…와,"
하는 감탄사를 내뱉었을 뿐이었다. 와, 진짜 와.
얼빠진 세 사람을 제쳐놓고 권연희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이것저것 시키기 시작했다. 어, 저번에 말했던 애, 김연주. 위치 찾았어? 어디? 아 왜 이렇게 멀어!! 헬기? 띄워!! 아니, 지금 당장!!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며 무언가를 지시하더니, 이윽고 집 안으로 뛰쳐들어가 문을 쾅! 닫아버렸다. …이게 뭐지? 얼빠진 얼굴로 지민이 생각했다. 모든 것이 제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권연희네 집 마당에 멍하게 서 있던 세 사람은 다시 문이 열리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그새 겉옷 두 개를 챙긴 권연희가 뛰쳐나오고 있었다. 그러고선, 여전히 얼빠진 채 제 집 마당을 지키고 서있기만 하던 저들을 보곤 인상을 팍 찌푸리는 것이었다.
"뭐해?"
"……?"
"OOO구하러 안 가? 나 혼자 간다?"
"……!"
쌩하니 저들을 앞질러가는 권연희의 뒤꽁무니를 세 남정네들이 졸졸 쫓았다. 자연스레 차의 상석에 앉은 권연희는 세 남정네들이 저를 따라 쫄래쫄래 차에 올라타자마자 출발을 외쳤다. 승차감 하나는 끝내주는 차가 속력을 높이며 어딘가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가는 내내 권연희는 휴대폰을 붙잡고 누군가에게 바락바락 악을 쓰고 소리를 질러댔다. 제대로 안 해?! 이 멍청이가…! 어디라고?! 빨리 사람 더 투입시켜…! 뭐 하는 짓이야 이 멍청아!! 등등, 대화의 반절에 '멍청이'란 단어가 들어가 있었다. 그걸 들으며 석진과 지민, 그리고 정국은 각각 다르지만 비슷한 생각을 했더랬다.
'…와.'
'…대체 이게 뭐지…?'
'…진짜 먹을 걸로 사람을 길들였어….'
그 순간에 세 사람, 아니, 네 사람은 같은 사람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더랬다.
김연주, OOO, 너는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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