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트라로 살아남는 법

#8

- 작가가 조금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썼습니다.

- 대체 무슨 글인지 작가도 모릅니다.

- 왜 썼는지 작가도 모릅니다.

- 클리셰 덩어리입니다.

- 가볍게 읽어주세요... 어차피 개연성 개나 준 엉망진창인 글입니다...

- 여주의 이름이 나오는 부분은 일부러 비워뒀습니다. 독자님들 이름 넣어서 읽으시면 될듯...

-TRIGGER WARNING! 2010년대 초에 유행하던 인터넷 소설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학교폭력을 연상시키는 장면이 있을 수 있습니다.





엑스트라로 살아남는 법

:어느 날 소설 속 엑스트라가 되어버렸습니다.

W. 그쁨





OOO로써 24년간 살아온 인생은 별로 특별한 구석 없이 평탄했다. 곡선이 아닌 직선에 가까웠다고 볼 수 있겠다. 그야말로 평범한 삶.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평범하게 자라, 평범하게 학교에 다니고, 평범하게 친구를 사귀고. 그게 얼마나 복에 겨운 행복이었는지는 웃기게도 이 소설 속에 들어와서야 깨닫는 중이었다. 당연하지, 허구한 날 학교에서 '은하별고 여신님!', '은하별고 B4!' 따위의 소리를 듣고 있자면 그런 깨달음은 자연스럽게 얻게 돼있는 것이었다.

아무튼, 그런 웃기지도 않는 별명들을 들으면서도 내가 이 세계에 (나름)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오글거리기 짝이 없는 별명들이 향하는 곳이 결코 내가 아니었다는 것이 한몫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곳에서의 내 역할이 엑스트라였기 때문에. 상상해 보라, 만일 내가 어느 날 소설 속에서 눈을 떴는데 온갖 남자아이들의 구애를 받고, 여자아이들의 질투를 사거나 납치와 감금과 같은 결코 평범하지 않은 삶을 하루아침에 살게 되었다면 버틸 수 있을까? 절대 아니. 그 자리에서 냅다 기절해버리면 몰라. 아무튼 간에 엑스트라의 역할은 그랬다. 여주인공처럼 다이내믹한 일들을 겪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의 시선이 몰릴 일도 없고 비교적 평범하고 평탄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그런 역할.

"김연주!!"

"야, 무슨 일…, 너 울어?!"

그러니까, 덤덤한 척했을지라도 평범한 삶을 살아왔던 내게 어딘가에 '갇힌' 경험은 충격 그 자체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꼴사납게 얼굴을 구긴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시야가 흐릿해지더니 굵직한 눈물이 방울방울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김석진의 연락을 받은 건 집에 거의 도착했을 때 즈음이었다. 전화가 시끄럽게 울리길래 서둘러 확인해 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익숙한 이름이 떠 있더라. 여보세요-, 하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창고에 갇혔다는 게 대체 무슨 소리냐 물어오는 김석진에게 나는 차분히 상황들을 설명했다. 방금까지 어디 갇혀있던 사람 치고는 퍽 덤덤한 말투에 나도 내가 그렇게까지 놀란 줄은 몰랐더랬다. 되려 별로 놀라지 않았다 생각했으면 생각했지. 옆에서 흘금흘금 내 눈치를 보던 전정국도 차분한 내 모습에 한결 안심한 눈치였고.

그런데 이게, 우리 집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던 김석진과 박지민을 보자마자 터져버릴 줄은 아무도 몰랐던 거지. 그 익숙한 얼굴들을 보자마자 속에서부터 무언가가 울컥 차오르는 것 같았다. 분함이나 억울함, 그런 감정은 아니었다. 되려 마음이 놓였기에 터져 나오는 감정들이었달까. 뭐 참아볼 새도 없이 눈물부터 줄줄 흘리는 내 모습에 전정국이 제일 먼저 놀라고,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눈물을 닦는답시고 팔로 얼굴을 벅벅 문대는 나를 보고 김석진과 박지민이 놀라 달려왔다. 사람 마음이란 게, 원래 누군가가 달래주면 달래주는 대로 더 서러워지고 마는 것이었다. 세상 서럽게 허어엉-, 하며 울어젖히는 내 모습이 딱 그짝이었다. 아 씨, 쪽팔리게! 이게 무슨 개망신이냐는 생각을 하면서도 자꾸 눈물이 나는 건 뭐 어쩔 수가 없던 터라 나는 그냥 쪽이고 뭐고 다 내려놓고 울었다. 엉엉.

금세 내 앞까지 다가온 김석진과 박지민이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손을 올렸다 내렸다, 당황한 그 움직임에 난 더 서러워졌더랬다. 거기에 더해, 더 쪽이 팔리기도 했고. 가까이에 있던 김석진의 팔뚝을 냅다 주먹으로 후려갈긴 것도 그런 이유였다. 정말로.

"아!! 왜, 왜 때려!!"

"너 이 씨ㅂ…, 왜! 연락 안, 받아! 왜!!"

"아악!!!"

"왜, 연락 안, 받고 지랄, 이냐고오, 이 새끼야악!!!!!"

김여주의 납치 사건으로 새벽을 죄 뜬눈으로 지새웠을 김석진과 박지민이 그 저녁에 눈을 좀 붙였던 게, 그래서 내 연락을 의도치 않게 씹어버렸단 사실이 그들의 탓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그냥 이건, 갑작스레 낯선 곳에 동떨어졌음을 실감한 탓에 부려보는 어리광 정도일까.

"갑자기, 갑자기 창고 문이 닫혔는데, 누가 일부러, 잠근 게 아니면 안, 열릴 리가 없는데,"

"어어…,"

"안, 열리길래, 무서워서, 도와달라고, 열어달라고 너네,한테 연락도 했, 는데,"

"……."

"근데, 연락은…, 받지도 않고!!"

아무 잘못 없는 제 탓을 하는데도 쩔쩔매며 야, 야, 일단 울지 말고 말해봐…, 하며 나를 탓하는 대신 나를 살살 달래는 김석진만 봐도 그랬다. 어리광이었다. 기꺼이 내 칭얼거림을 받아주는 그 모습에 더 울컥했다.

"유진, 유진이한테도 전화는 했, 는데, 도와달라고 했는데,"

"응,"

"자꾸 이상한, 소리만 하니까…."

"……."

"무서워서…."

눈물이 잔뜩 고였다 바닥으로 후두둑 떨어졌다. 얼굴이 우스꽝스럽게 일그러졌다. 평소 같았으면 그 표정을 보고 득달같이 달려들어 놀려댔을 김석진은 평소와 다르게 눈물로 축축한 내 얼굴에 어쩔 줄 몰라 했고, 키득키득-, 하는 웃음을 자주 터트리던 박지민은 입꼬리를 딱딱하게 굳히고는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짜증 나!! 바락 소리를 질렀다. 평소와는 너무나도 다른 이 상황이 낯설고 오그라들어서, 그러면서도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그칠 수가 없어서 나는 결국 온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다시 엉엉 울음을 터트렸다. 엉엉,





📘 📗 📕





그리고 여전히, 내 얼굴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끅…, 흡…,"

김석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박지민은 소파에 앉은 채 제 손으로 눈을 가리곤 헛웃음만 내뱉고 있었고, 전정국은 박지민의 반대편에 앉아 그런 우리들을 멀거니 구경만 하고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남주인공 세 명을 데리고 들어오게 된 우리 집 거실에는 내가 끅끅거리는 소리와 김석진의 한숨소리, 그리고 박지민의 헛웃음 소리만이 고요하게 들렸다.

"…슬슬 그만하지?"

"…나도, 끅, 그러고 싶은, 데 …안, 멈추는 걸 어떡, 하라고!"

아까와는 다른 깊은 한숨을 내쉬며 김석진이 기어이 제 양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짜증이 한껏 묻어있는 그 반응에도 나는 내 신체반응을 멈출 수가 없어서 자꾸만 양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만 쉴 새 없이 닦아냈다. 눈물을 얼마나 많이 흘린 건지, 양 눈가가 미친 듯이 쓰려왔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눈이 벌겋게 부어있을 거란 사실 정도는 쉽게 알 수 있었다. 지금 내 얼굴이 그 누구보다 꼴사나울 거란 생각이 문득 들어 나는 들었던 고개를 다시금 바닥으로 처박았다.

"…그렇게,"

바닥에 얼굴을 처박고 있는 날 보며 전정국이 입을 열었다.

"그게 그렇게…,"

"……."

"…웃겨?"

"…프흡,"

전정국의 그 말과 동시에 나는 겨우 멎어가던 웃음을 다시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크흐흡, 하며 안간힘을 쓰는데도 결국 짓이겨진 입술 틈 새로 웃음소리가 비집고 튀어나왔다. 전정국이 멋쩍은 웃음을 짓고, 김석진과 박지민은 그런 전정국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겨우 진정되나 싶던 내 웃음주머니를 다시 터트렸단 이유일 것이었다. 김석진이 다시 깊은 한숨을 쉬고, 박지민이 제 눈을 가리던 손을 치우고 나를 매섭게 노려보아도 내 웃음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우는 게 아니었냐고? 울긴 했지. 너무 웃길 때 가끔 눈물이 나오기도 하잖아. 따지고 보면 눈물 흘린 거니까 이것도 운 거 맞지 않을까?

재밌어? 답지 않게 낮은 목소리로 박지민이 물었다. 나는 겨우 웃음을 멈추고 바들바들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럼, 그럼 이게 재미가 없어? 어떻게 재미가 없을 수 있어, 이게! 하는 내 대답에 박지민이 짜증 난다는 듯 얼굴을 잔뜩 구기고는 제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제 손바닥을 쥐락펴락하는 건 아마 바닥을 떼굴떼굴 굴러다니며 웃음을 멈출 줄을 모르는 나를 쥐어박을지 말지 하는 고민과 함께 나온 행동일 것이었다. 그 모습에 나는 잠깐 정신이 들어 바닥을 구르던 몸뚱이에 힘을 풀었다. 거실 바닥에 대자로 뻗은 채, 나는 가쁜 숨을 골랐다. 아, 배 아파.

그래, 당최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없을 여러분들을 위해, 김석진이 한숨만 푹푹 내쉬고 있는 이유나 박지민이 짜증 나 죽겠단 표정으로 날 죽어라 노려보고 있는 이유나, 전정국이 저렇게 멍하게 앉아 멋쩍은 웃음만 짓고 있는 이유나, 내가 눈물을 한 바가지 흘려가며 웃어젖히고 있던 이유에 대해 설명해 주겠다. 단 한 줄로 요악까지 가능하다.

"야, 그래서 여기가 무슨 소설 속이라고?"

웃느라 형편없이 갈라진 내 목소리에도 가득 담겨있는 장난기는 숨길 수가 없었던지라, 김석진이 이를 악물고는 중얼거렸다. 그만해라…, 하는 그 말에 내가 한 번만! 진짜 마지막! 딱 한 번만! 하며 졸라댔다. 하기 싫은 티가 역력한데도 이를 깍깨문채로 대답해 주는 김석진의 발음이 엉망진창이었다.

"팬… 픽, 속이라고…."

또다시 빵 터져버린 나는 결국 김석진에게 볼을 꼬집혔더랬다. 아니, 웃긴 걸 어떡해! 억울함을 한껏 담아 김석진을 향해 외쳤으나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꼬집힌 볼이 아렸지만, 그마저도 더 빨개질 수도 없겠다 싶을 정도로 붉게 타오르는 김석진의 얼굴을 보아하니 그깟 아림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세상에, 내가 빙의한 소설이 팬픽이란다. 그것도, '진짜' 김석진, 박지민, 전정국, 그리고 김태형을 주인공으로 삼은 팬픽 말이다.





📘 📗 📕





요컨대 이랬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만 하더라도 제 이름으로 팬픽 그 비스무리한 게 쓰이고 있다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김석진은, 우연히 만나게 된 동창으로부터 그런 소설이 한때 제가 다니던 학교에서 유행했음을 전해 들었단다. 그런 게 있었어? 하며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지만, 원체 호기심이란 어떻게 참아본다고 참아지는 게 아닌지라 결국 그 동창에게 한때 유행했던 그 소설을 받게 되었단다. 그리고 그 새벽 내내, 길이가 꽤 길던 그 소설을 읽다가…

“하 씨, 개오글거리네….”

제 이름을 달고 하는 짓이 겨우 좋은 머리로 납치범 조지기 따위나 제 할아버지 때나 유행했을법한 플러팅멘트 치기, 여주인공 우쭈쭈해주기가 끝인 걸 보고 현타가 와서 핸드폰을 내려놨더랬다. 더는 못 봐. 하며 핸드폰을 내던지고 잠이나 자자며 눈을 감았는데, 이게 웬걸, 눈 떠보니 낯선 천장, 처음 보는 방 안이 보이더랬다.

박지민이나, 전정국의 경우도 그와 별다를 바 없었다. 박지민은 뭐, 소설이 여기저기 퍼져나가기 시작할 무렵부터 그 소설의 존재 자체는 알고 있었던지라, 잠 안 오는 새벽에 문득 생각이 나서 소설을 찾아보았더랬다. 물론 다 읽진 못했다. 너무 오글거려서. 졸업사진을 구경하다 그 소설에 대해 떠올리게 된 전정국도 그랬다. 나야 뭐, 멋모르고 다운받은 인소들 가운데 우연찮게 이 소설이 껴있었던 것 같고.

김석진이 동창을 만났던 것이 2월 초, 박지민이 문득 소설을 떠올렸던 것이 2월 중순, 내가 MP4를 뒤적거리며 청소를 하는 둥 마는 둥 했던 게 정확히 3월 1일, 전정국이 졸업사진을 펼쳐본 것이 4월 말.

"어쩐지, 분명 처음엔 빙의자가 아니었단 말이야."

박지민이 말했다. 지난 2월, 혹시나 저 자신 말고도 이 세계로 뚝 떨어진 사람이 있을까 싶어 여기저기 '여긴 소설 속이야!'라 외치고 다니던 박지민의 말에 '여주 생일이 얼마나 남았더라?'라는 대답을 해 박지민을 절망에 빠지게 만들었던 전정국이었건만, 이제 와 진실을 깨닫고 보니 그냥 좀 늦게 소설에 빙의된 빙의자였더랬다.

"내가 그랬어?"

2월이면 여주 생일 지난지 얼마 안 됐을 땐데, 진짜 헛소리였네. 전정국이 말했다.

전정국이 박지민의 말에 헛소리로 답한 이유는 간단했다. 2월의 전정국은 빙의자가 아닌 등장인물 전정국이었으니까. 체육대회 날 전교생이 나와 박지민의 대화를 모른척했던 것과 같이, 소설에 맞지 않는 상황을 기억에서 싹 지워버린 것이었다. 창고에 갇혔으니 구해달라 말하던 내게 이유진이 딴소리만 지겹게 해대던 것과 같은 이유였다.

아무튼 그래, 여태까지 ‘뭔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는데?’ 싶었던 것들은 이걸로 다 설명이 됐다. 전정국이 빙의자였고, 네 빙의자가 이 소설 속으로 들어오게 된 시기가 죄 달라서 무언가가 꼬여버렸다는 사실들 말이다. 다만 한 가지, 어쩌면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일지도 모르는 사실 하나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있었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입을 열었다. 질문이 튀어나갔다.

“그래서 남자 주인공이 누군데?”

두 눈을 초롱초롱하게 뜬 채 묻는 나를 보고 김석진은 또 한숨을 내쉬었고, 박지민은 눈을 가늘게 뜬 채 나를 쳐다보았고, 전정국은 웃음을 터트렸다. 이 와중에 그게 궁금해? 그렇게 묻는 듯한 눈빛에도 굴하지 않는 내 모습에 결국 그들이 한발 물러났다.

“김태형.”





패배자들 4

내가 중요한걸 안 물어본 것 같은데


김석진

웃느라 못 물어본거겠지


웃긴걸 어떡함

아무튼

박지민

?


이 소설 결말이 뭔데?

언제 끝나?





현실 세계에서 재미 삼아 소설을 읽다 이쪽으로 냅다 끌려와버린 우리로서는, 이 세계에서 벗어날 방법 따위 알지 못한다. 그러니까, 그저 소설이 끝나면 우리가 맡은 역할도 끝날 테니 그때쯤이면 적당히 현실 세계로 돌아갈 수 있지 않겠느냐-, 하며 결말을 내렸던 것이었다. 문제는 이 소설 내용도 기억하지 못하는 내가 결말이 언제 어떻게 일어나는지 알고 있을 리 만무하다는 사실이었다.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가지고 물어봤건만은,

김석진

몰라

끝까지 안 읽었어

박지민

나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부정의 대답들을 내놓는 것이었다. 도움이 안 돼요, 도움이.

"연주! 아직 점심시간 조금 남았는데 매점 갈래?"

그래-, 하며 자리에서 일어남과 동시에 띠링-, 하는 알림음이 울렸다. 그러고 보니, 이제 세 명이 아니라 네 명이구나-, 하는 시답잖은 생각과 함께 핸드폰을 켰다. 잔뜩 쌓인 알람 사이 익숙한 이름이 보였고-,

전정국

근데

어쩐지 불안한 기운이 스멀스멀 등허리를 타고 올라서 나는 나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고 이어진 전정국의 메세지에 그만-,

전정국

내가 알기론

김여주랑 김태형이

신혼여행 가는 걸로

끝났던 것 같은데

벌떡, 그 자리에서 일어서고 말았다. 의자가 무너지며 굉음을 냈다. 쾅, 하는 큰소리에 왁자지껄하던 교실이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 시선들이 다닥다닥 내게 달라붙는 것이 느껴져 나도 모르게 흠칫하며 몸을 움츠렸다. 그럼에도 핸드폰을 쥔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은 어쩔 수 없더라고. …미안, 하는 작은 사과와 함께 벌떡 일어난 탓에 뒤로 쿠당탕 넘어져 버린 의자를 바로 세웠다.

"연주야,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괜찮아?"

"아 아냐, 그냥 갑자기 일어나서 의자가 넘어진 거야…."

"그래? 어휴, 깜짝 놀랐잖아! 너 표정도 엄청 굳어있어서 난 무슨 화나는 일 있는 줄 알았어!"

"미안…,"

화나는 일? 맞다. 있다. 신혼여행? 결혼? 결혼이라니? 나는 고개를 숙여 지금 입고 있는 교복을 한 번, 슬리퍼를 한 번, 교실에서 교복을 입고 하하 호호 떠드는 김여주를 한 번, 그 옆에 있는 김태형을 한 번 쳐다보았다. …17세 고등학생들에게 결혼이라뇨? 성인이 되자마자 미친 척 결혼식을 한다 쳐도 3년이다. 무려 3년!

이게 말이 돼? 저절로 눈썹 끝이 내려가고, 입꼬리가 축 처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런 내 표정은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이유진은 '빨리 가자~, 나 초코우유 먹고 싶어!'라며 해맑게 나를 이끌었다. 저 멀리, 교실 한구석에서 웃음을 꾹 참으며 이쪽을 흘긋대는 세 명이 보였다. 웃음이 나와? 진심으로, 그렇게 묻고 싶었다.

"음음-, 뭐 먹지? 메론빵 아직 남아있을까? 오늘 점심 맛없어서 이미 다 팔렸겠지?"

"으응…,"

"참, 매점에 고구마빵 새로 나온 거 봤어? 맛있어 보이던데, 메론빵 없으면 그거 한번 먹어봐야겠다! 연주 넌 고구마 좋아해?"

"으응…,"

"좋아하는구나-, 나도! 고구마 엄청 좋아하거든-, 그래서 작년엔 저기 시골에서 농사지으시는 외삼촌이 세 박스나 보내주셨어! 이번에도 보내주실 것 같은데, 연주 너도 좀 나눠줄게!"

"으응…,"

"헉, 곧 종 치겠다! 연주 넌 초코소라빵 먹을 거지?"

내가 얼른 갔다 올게! 이런저런 사족이 잔뜩 붙은 이유진의 물음들에 성실하게 '으응…,'하는 불성실한 대답을 내놓았다. 매점을 향해 열심히 뛰어가는 이유진은 이미 내 안중에 없었다. 결혼…, 그 단어만 머릿속에 미친 듯이 맴돌았다. …미친 거 아니야?

곧 점심시간이 끝날 것이라는 걸 알기에 다급해진 발걸음들이 바쁘게 나를 스쳐 지나갔다. 야, 다음 시간 뭐더라? 수학! 미친, 뛰어! 하며 달음박질한다. 우린 뭐더라. 국어였나? 아무튼 비교적 깐깐하지 않은 과목임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곧 종이 친다며 다급하게 매점 안으로 뛰어들어간 이유진이 저렇게 느긋하게 빵과 함께 먹을 우유를 고르고 있을 리 없으니까. 창 너머로 어딘가로 유유히 걸어가는 김여주의 모습도 보일 리…,

"…어?"

잘못 본 건가 싶어 눈을 비비적거렸지만, 복도의 창문 너머를 가로질러가는 모습은 누가 뭐래도 우리 반, 그러니까 이 소설의 주인공인 여주의 모습이 맞았다. 이 시간에? 점심시간 끝 종이 치기까지 1분도 채 남지 않은 시간을 확인하며 내가 생각했다. 아무리 봐도 나나 이유진처럼 매점을 향해가는 발걸음은 아니었다. 아니, 묘하게 걸음이 축축 처지는 것 같기도…, 하는 생각을 하며 나는 고민했다. 이것도 소설 내용인가? 그러면…,





패배자들 4

김석진

야 김연주

언제 오냐

올 때 단팥크림빵

전정국

내꺼도

박지민

ㅋㅋㅋㅋㅋㅋㅋㅋ

잘도 사오겠다

…이 멍청이들한테 이 사실을 말해줘야 할까? 핸드폰을 붙잡은 채로 잠깐 고민했다. 납치 사건도 있었고, 이따금 김여주를 욕하는 말들이 복도 여기저기서 들려오긴 했어도 여긴 학교니까, 그렇게 위험한 상황은 아니겠지-, 하는 생각으로 나는 핸드폰 화면을 껐다. 음, 그럴 생각이었다.

"……."

그러니까-, 하필 김여주의 뒤를 쫓아가는 게 내 눈에 익숙한 얼굴들이 아니었다면, 난 분명 별일 아니겠거니-, 하며 저기서 헤실헤실 웃으며 빵과 우유를 계산 중인 이유진을 데리고 교실로 발걸음을 옮겼을 것이다. 김여주를 질투하는 사람은 꽤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대기업 축에 속하는 기업 자제들이 무려 두 명이나 속한 무리의 유일한 여학생이었으니까. 홍일점, 뭐 그 비스무리한 위치에서 남주인공들의 히로인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김여주의 모습이 꼴 보기 싫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김여주를 뒤따라가는 여학생 무리, 그 가장 앞에 서 있는 사람이…

"헐, 저기 오해지다!!"

"O 기업 외동딸?!"

…그래, 여기가 인터넷 소설(아니, 팬픽이라 해야 되나…?) 속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언제나. 일전에 말했듯, 내가 이곳이 소설 속이라는 사실을 빠르게 깨닫게 해준 데 공을 세운 사람들이 몇몇 있었는데, 모두가 알다시피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사람은 누가 뭐래도 B…, 그러니까, 남주들이고, 또 한 명이 바로 오해지다. 그 이유라 함은,

"은하별고 공주님…!"

이딴 거지 같은 별명을 가진 게 바로 오해지라서 그렇다. O 기업 외동딸에 은하별고 공주님. 그게 저기 김여주의 뒤를 쫓는 오해지라는 것이다.

오해지가 김여주의 뒤를 쫓는 것이 어째서 내가 신경 쓸 행동이냐 묻는다면, 그건 바로 여주인공이자 B…, 주인공 무리들의 홍일점임 김여주를 죽어라 질투하고 괴롭히는 게 오해지라서 그렇다. 대충 이야기를 들어보니 소설 속에서도 여전히 김여주를 괴롭히는 못돼 처먹은 부잣집 아가씨로 나온 것 같고, 그 외에도 내가 이 소설 속에서 살아가면서 보고 들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아, 일전의 김여주 납치 사건에도 오해지가 연관되어 있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으니 말 다 했지.

뭐 아무튼, 김여주나 오해지나 그저 소설 속 등장인물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어쨌든 평범한 도덕심을 갖춘 사람으로서 누군가가 위험한 일에 처할 것 같은 상황을 보고도 모른척하기에는 얼마 남지 않은 양심이 찔려 매우 괴로웠다. 그렇다고 앞에 나서긴 죽어도 싫었다. 어차피 저게 소설 속 이야기라면 내가 나서지도 못하겠지만, 경고 정도는 충분히 해줄 수 있겠지. 누구에게? 곧 김여주를 위해 오해지를 무찌를 우리의 남주인공들에게 말이다. 그런 이유로 핸드폰을 집어 들었는데….

"어? 연주야 어디 가?!"

그 핸드폰을 다시 교복 자켓 주머니로 집어넣은 것은 내 의지가 아니었으며, 당연히! 김여주와 오해지 무리의 뒤를 쫓으려는 내 행동도 내 의지가 아님을 밝힌다. 그러니까, 무슨 로봇이라도 된 것 마냥 어색한 움직임으로 살금살금 그들의 뒤를 쫓는 데에는 내 의지가 단 1도 반영되어 있지 않다는 말이었다.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시발, 한낱 엑스트라로 빙의했을 때부터 절대 소설 내용에 따라 내 팔다리가 같이 움직일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김연주우, 어디가아…, 이유진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는 것을 들으며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끝끝내 점심시간의 끝을 알리는 종이 쳤다. 익숙한 멜로디가 교내 전체에 울려 퍼지는데도 어째 내 몸뚱이는 교실로 돌아갈 생각을 않는 것이었다. 아, 망했어요. 제멋대로 움직이던 몸뚱이가 서서히 속력을 줄였다. 5월의 더운 날씨는 짤막한 뜀박질일지언정 이마에 자그마한 땀방울을 맺히게 하기에는 충분했더랬다.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을 손등으로 스윽, 훑으며 생각했다. 난 분명 남주들한테 그냥 연락만 해두려고 했을 뿐인데…! 억울한 마음에 저절로 얼굴이 울상으로 변해갔다. 꾹 감고 있던 눈을 떴을 때 보이는 광경이 결코 달가울 리 없어서 더 그랬다.

"…쟨 뭐야?"

은하별고 공ㅈ…, 그러니까 오해지가 담벼락에 삐딱하게 서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옆에 오해지와 함께 다니는 무리들은 말할 것도 없고! 저게 정녕 17세 여고생들의 눈빛이란 말이야? 눈빛으로 누군가를 찌를 수 있었다면 난 이미 고슴도치와 엇비슷한 꼴이 되고 말았을 것이었다.

자, 지금 상황을 빠르게 정리해 보자. 난 그냥 초코소라빵이나 먹을 심산으로 이유진의 손에 이끌려 매점에 내려왔는데, 하필이면 그 옆을 김여주가 지나가고 있었고, 또 하필이면 그 뒤를 오해지와 친구들이 뒤쫓던 차였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한낱 엑스트라에 불과하던 내가 김여주를 따라가는 오해지 무리의 뒤를 쫓아 당당하게 그 앞에 섰다! 이게 뭘 의미하는지, 십수 년간 수십, 수백 개의 소설을 읽어온 내가 모를 리가 없었다.

"너, 너희, 뭐 하는 거야…!"

"…뭐?"

"친, 친구를 괴, 괴롭히면 안… 되지!"

하하, 죽고 싶어라. 마음 같아서는 찌질하기 짝이 없는 대사를 더듬더듬 내뱉는 내 입을 찢어버리고 싶었더랬다. 저기 저, 벙진 표정으로 날 쳐다보는 오해지만 보더라도 그랬다. 저 찐따가 뭐라는 거니, 딱 그 표정으로 날 쳐다보고 있는 무리들 사이에서 익숙한 얼굴 하나가 뿅! 하고 나타났더랬다.

"어…! 연주야…!"

그 반갑기 그지없어 보이는 표정이란. 난 정말로 울고 싶어졌다. 해맑기 그지없는 김여주의 얼굴을 본다면 그 누구라도 다 나와 같은 심정을 느낄 수 있으리라 단언한다.

그러니까, 자기가 괴롭힘당하는 줄도 모르는 천사 같은 여주인공을 구하는 역할에 내가 당첨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말이다. 이런 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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