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 회장님

밍미소 예찬론자

 비판의 소지가 있긴 하지만 상당히 보수적인데다 요즘 말로 ‘꼰대’인 나는 우리 미사모의 회사 체계를 매우 맘에 들어한다. 그도 그럴 것이, 본래 힐링과 서로를 향한 열렬한 덕질의 장소인 미사모에서 -비전문 치고는- 꽤나 높은 퀄리티의 회사 세계관이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미사모 회사의 회장은 단연 우리의 수장이자 일명 ‘대럼지 대장’으로 불리우는 밍미소(언니). 이 글은 그녀를 향한 나의 애정을 1000000…분의 1로 압축하여 그녀와 나의 서사를 회상하며 쓴 글이므로 모두 너그러이 읽어주길 바란다.



1. 첫인상
   이실직고 하자면 우리 미사모의 첫 이미지는 지금과 매우 달랐다. 나는 최나비(당시 도화설)의 추천으로 미사모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그때가 아마 오후 2시 쯤이었을 것이다. 늘상 그랬듯 파릇파릇한 뉴비가 인사도 좀 하고 낯도 적당히 가려주며 좀 적응을 하려던 찰나였다. 갑자기 미사모의 온라인 인원들이 일제히 ‘석류시’를 외치는 것이 아닌가. 이 정도의 단합력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내 인생에서 처음 보았거니와, 그 광경이 마치 어떤 숭고한 종교 의식을 치르는 듯한 느낌을 주었으므로 나는 그때 적잖이 당황했다.

‘우와. 이 사람들 뭐지.’

   한마디로 ‘이게 뭐노’ 였던 것이다. 그리고 곧이어 나타난 ‘석류시’의 주인공과 미소(언니)의 현빈 손예진 커플 뺨치는 애정표현은 나를 ‘우와잉(적절한 단어를 찾지 못한 점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 상태로 만들었다.  이건 무슨 현빈 손예진도 ‘저희가 졌습니다’ 할 수준 아닌가. 물론 지금은 그러한 광경을 보아도 아무런 멘붕이 오지 않고 오히려 나의 풍부한 창작욕을 건드리는 촉매제 역할을 하지만 그때 당시 나는 목요일의 아이도 아니고 왠지 내가 갈 길이 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고 미소(언니)가 석류(님)과만 여느 웹툰의 주인공 커플들처럼 ‘나 잡아봐라~’ 하면서 하하호호 한 것은 아니다(단지 둘은 제3자가 끼어들기에 아주 매우 많이 어려운 둘 사이의 아주 견고한 애정의 벽이 있을 뿐이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공평하게 회원들 모두에게 친절과 애정을 베풀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가끔씩 나타나는 미소(언니)의 모습에서 빛이 연상되기도 했다. ‘밍미소=빛’. 주접이라고 볼 수도 있겠는데 이건 기정사실화 된 등식이다. 반박시 내 말이 다 맞다.



2. 훌륭한 리더
   팬플러스에서 ‘미룽지’를 검색해본 적이 있는가? 4.1만 조회수와 구독자수 171명이라는 표지공방으로서는 이례적인 기록을 이룬 사람이 바로 밍미소(언니)이다. 당장 팬플러스에서 ‘표지’를 검색하면 가장 조회수 높은 작품이며 구독자수 또한 제일 많다. 그래, 이런 본업존잘의 사람이 우리 회장님이다. 그녀의 작품은 여느 이름있는 뮤지컬이나 오페라의 포스터로 극장에 내걸어도 손색 없을 정도로 뛰어난 미적감각을 자랑한다. 언제나 적절한 사진을 찾아내어 몽환적이고 감성적인 아름다움을 더하는 그녀의 작업물을 어느 누가 사랑하지 않겠는가. 특히나 본업을 기깔나게 잘하는 사람에게 끌리도록 운명이 짜여 있는 내게 그녀는 정말이지 그저 빛이었다. 작품 리메이크 버전을 꼭 보도록 해라. 그것을 못 본 사람이 없도록 하는 것이 나의 숙명이다. 메마른 갈망의 어떤 어두운 면을 보여주는 듯한 색상과 그녀가 선택한 사진은 마치 기이한 수식이 x+y라는 아주 간단한 값으로 나누어 떨어졌을 때의 희열을 느끼게 해주었다. 요즈음 나오는 난해한, 소위 말해 ‘그들만의 리그’인 현대미술 작품보다 이 작품이 내게는 더 미술관에 걸릴 가치가 있다고 느껴진다.

   미소(언니)의 본업존잘모먼트는 비단 표지에서만 빛을 발하지 않는다. 모임의 회장이라는 직책을 달고 따스한 카리스마를 발휘해 나 포함 모든 운영진을 관리한다. 이 ‘밍종대왕’ 아래 우리는 태평성대를 맞을 수 밖엔 없는 것이다. 사람들이 이상적인 리더의 덕목으로 뽑는 것 중 하나가 겸손이다. 그리고 미소(언니)는 그 덕목을 흠잡을데 없이 갖추고 있다. 예술의 경지에 올랐음에도 끊임없이 수련을 거듭하고, 언제나 운영진들(심지어 자신보다 나이가 더 어릴지라도 말이다.)의 의견을 귀담아 들으며, 회원들의 업적은 누구보다 따스하게 칭찬해주고 실수는 부드러우나 단호하게 알려주는 등 그녀는 겸손을 몸소 실천하며 훌륭한 본보기가 되어주고 있다. 이러한 그녀의 모습에 내가 홀리듯이 빠져들 수 밖에 없던 것은, 어쩔 수 없는 운명이었지 싶다.



3. 미소(언니)와 나-(1)사랑은 일제강점기를 타고
   나의 밍미소(언니) 예찬론자로서의 삶은 꽤나 유구한 역사를 가진다. 때는 바야흐로 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그당시 일제강점기에 미쳐 있었고 누군가가 툭 치면 바로 일제강점기 배경의 상상을 읊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때 공교롭게도 미소(언니)와 일제강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나는 곧 나의 혼을 바쳐서 상상의 나래를 펼쳤고 우리의 완벽한 리더 밍미소(언니)는 나의 말을 매우 성실하게 경청해 주었다. 다들 알다시피, 말을 하고 있을 때 누군가 경청해준다는 사실만으로 꽤 든든해지기 마련이다. 함께 오전 1시 가량 되는 시각까지 일제강점기의 상상을 펼쳐준 우리 미소(언니)에게 이 자리를 빌려 깊은 감사를 전한다. 그녀가 있어 나의 역사에 대한 마음이 다시 불타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타오른 것은 일제강점기에 대한 마음 뿐만이 아니었다. 평소 친밀감을 쌓던 차에 더더욱 성큼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생긴 것이었다. 내가 ENFJ 였다면 두팔을 벌리고 하늘을 향해 외쳤을지도 모르겠다.

“미소언니가 있는 세상은 아름다워!!!!!”



4. 미소(언니)와 나-(2)미소병 발현
   정말 갑작스럽게 가까워진 나와 미소(언니)는 제동이 걸리기는 커녕 가속도를 받았다. 특히나 그녀를 향한 나의 마음은 하루가 다르게 커져갔다. -이러한 b급 소설 같은 표현을 너른 마음으로 이해 해주길 바란다.- 어쩔 수가 없었다. 밍미소(언니)는 자신의 일에서 최선과 최대를 행하는 사람이었고, 나는 그에게 끌릴 수 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내가 이 심리를 다소 집착으로 보일 수도 있는 ‘미소병’이라는 명칭으로 부른 것도 타당한 일인 것이다. 정말이지 손발이 오그라드는 표현이겠으나 미소(언니)는 귀여웠고(사람 자체에서 나오는 귀여움과 인위적인 귀여움은 다르다. 이 경우엔 전자이다.), 본업에 충실했으며, 언제나 내게 영감을 주었다. 이따금씩 미소(언니)와 나눈 대화를 상기하며 어울리지 않는 흐뭇함에 젖기도 하였다. 어느새 미소(언니)는 내 일상의 한 요소가 되었지 싶다. 이것은 단순한 것이 아니다.
   나는 서로 얼굴도 보지 못하는 이 인터넷 세상에 대해 상당히 회의적이고 현실주의적인 사람이며,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정보화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꼰대’이다. 이러한 내가 누군가에게 매달리며 현실에서는 전혀 하지 않을 애정표시를 하고 이렇게 애타하는 것은 정말이지 놀라운 일인 것이다. 어떻게 보면 기이하기까지 하다. 나 스스로 애정을 주기보다는 주변의 선망과 동경을 받으며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밍미소(언니) 그녀는 나 또한 무한한 애정을 느끼는 상대에게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었으며 현재 그 애정의 주인공이다. 나는 때때로 미소(언니)를 생각하며 따스한 기분에 잠식되고 주인을 기다리는 개처럼 충직하게 그녀를 기다린다. 불과 몇개월 전까지만 하더라도 아무도 내가 이러리라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1년 전에 인터넷 세상에서 ‘컾’을 맞춘다는 것부터 의아해 했던 나였다.

‘그 사람이 누군줄 알고? 채팅 속에서 이렇게 말해놓고 실제로는 어떨 줄 알고?’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보수적이고 완고했던 나는 그렇게 생각하였다. 그리고 지금 나는 1년 전의 내가 안다면 기함할 행동들을 스스럼 없이 하고 있다. 그것도 참 신기한 일이다.
   한 사람에 따라 일희일비하는 나라니?
   일편단심 민들레에 빙의한 것마냥 한 사람만을 바라보는 나라니?
   얼굴도 모르고 사는 곳, 학교, 그외 아무것도, 단지 이름밖에 모르는 사람을 이토록 사랑스러워하는 나라니? 
그래, 쇼킹하겠지만 이것은 놀랍게도 말이 된다. 이 복잡하고 절대 풀리지 않을 것 같은 이 방대한 수식은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오묘하고 또 내가 아끼는 그 사람에 의해 마법같이 인수분해되고 풀린다. 그래. 이 모든 것은 미소(언니)에 의해 간결한 끝을 맺는다. 한 사람에 의해 완전히 위로받고 동기부여를 얻는다. 누군가는 과대평가라며 혹평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나만은 이것이 지극히 자명하고 상식적인 사실이라는 것을 알기에 승자의 미소를 지으며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미소(언니)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누군들 그러지 않을까.



5. 미소(언니)와 나-(3)갑.분.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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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급히 준비하다보니 그런건지 슬럼프의 시작인지 내가 평소에 미소(언니)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10000000분의 1도 담기지 않은 듯 하여 안타깝고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다음에는 더 알차고 감동적인 글로 돌아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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