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악남의 여동생이 되어버렸다

4. 프렐가

※다시 연화 시점입니다※




여행이라... 에서렌 제국은 적어도 전쟁은 없는 나라였으니까 위험하시진 않겠네. 여행 가셔서 소설에도 안 나오셨나 싶어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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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야...? 아픈 데는 없고?"




"응... 아니 네...? 아, 네...”




기억을 잃으면서 대답하는 법도 잊어버린 걸까? 갑자기 묻는 승철 오빠 때문에 대답이 헛나왔다. 




"다행이네..."




이제 오빠들은 한결 긴장이 풀린 얼굴로 날 바라봤다.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다만 13명 곱하기 2개의 눈, 그러니까 총 26개의 눈이 나를 쳐다보니까 부담스럽긴 하다. 특히 지수 오빠가.

뚫어질 듯 날 바라보는 탓에 애꿎은 차만 들이켰다. 지수 오빠가 차를 마시는 날 유심히 지켜보더니 물었다.




“연화야, 혹시 예법도 다 잊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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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잃었다며. 그럼 예법도 잊었겠지...”



준휘 오빠가 당연하다는 듯 나 대신 대답했다. 아. 짧은 탄성을 낸 지수오빠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예법의 예자도 모르는데 당연히 모르지. 나도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아니 잠깐, 그 말은 차를 마실 때도 예법이 있다는 소리야? 뭐야 귀족하기 싫다. 그렇게 잡다한 생각을 하고 있는데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똑똑-




"들어와."




"저, 공작님, 프렐가에서 편지가 왔습니다."





한 시녀가 조심스레 들어와 지수 오빠에게 편지를 건넸고 지수 오빠가 편지를 받았다. 프렐가라는 말을 듣자마자 표정이 굳은 지수 오빠는 살기를 내뿜으며 편지를 읽었다. 지수 오빠 외에 12명의 오빠들의 얼굴에도 나를 보며 짓던 미소는 사라졌고 방에는 무거운 공기가 흘렀다. 몇명은 기가 차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고 나머지는 싸늘한 표정으로 지수 오빠 옆에서 조용히 편지를 곁눈질했다. 





"프렐가... 정말..."




원우 오빠가 조소했다. 편지를 다 읽은 지수 오빠가 편지를 두 번 접어 형태를 알아볼 수 없게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내일부터 일주일 동안 공작령에 그 누구도 나가고 들어오지 못하게 하라고 전해. 시녀는 살기에 떨며 조용히 대답하더니 유유히 방을 빠져나갔다.




"형, 뭐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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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만간 찾아 뵙겠다네? 당치도 않는 소리."




지수 오빠가 작은 소리로 비웃었다. 갈갈이 찢어진 편지는 벽난로에 던져졌다. 벽난로의 불길이 갑작스레 치솟더니 이내 수그러들었고 편지는 잿더미가 되어버렸다.


프렐가가 뭘까. 왜 프렐가라는 말을 듣고 표정이 굳은 걸까. 프렐가가 무슨 잘못을 했나? 책에서는 프렐가라는 가문을 언급조차 하지 않았는데... 이 세계는 내가 아는 소설과 다른 것 같아... 같다고 해도 그 이야기대로 흘러가게 두진 않을 거지만.




"응? 연화야 뭐라고?"




나도 모르게 작게 중얼거리자 승철 오빠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차를 다 마시고 컵을 내려놓는 날 보고 지수오빠는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




"음… 연화야, 예법 배우는건 어떨까...? 아무래도 우리가 귀족이다 보니 예법은 꼭 배워야 해... 그래서 전에 너를 가르치던 예법 선생이 있는데 그분께 다시 예법을 배워보는 건 어떨까... 싶어."



"... 배워야 한다면 배워야죠. 그리고 앞으로 다른 사람들도 많이 만날 텐데 예의는 차려야 하니까요."




귀찮지만 내가 지수 오빠 가문, 아니 우리 가문인 레오스가의 위상을 떨어뜨리면 안 되니까. 정말 예법이라곤 0도 모르는데… 




"알겠어. 그럼 브루즈가에게 말해둘게."




브루즈가... 브루즈가…? 아, 지수 오빠를 가르치던 예법 선생님의 가문이 브루즈가였다. 브루즈가는 원래 다른 귀족 편이었지만 그걸 숨기고 레오스가편인 척하며 지수 오빠와 연화에게 잘못된 예법을 가르치며 창피를 주었다. 나중엔 다른 귀족편인 걸 밝히고 도망갔어.




"저… 브루즈가 말고… 다른 가문 안될까요…?"



"응? 브루즈가 말고…? 원래 브루즈가에서 가르쳐주었는데…?"




지수 오빠는 당황한 것 같았지만 한편으로는 기뻐하는 눈치였다. 지수 오빠는 브루즈가가 우리 가문 편이 아닌걸 아는 걸까 아니면 내가, 연화가 의견을 낸 걸 좋아하는 걸까.




"그냥… 감이 안 좋아서요."



"음, 네가 그렇다면야. 그럼 다른 가문으로 알아볼게."




차를 너무 마셨는지 배가 불렀다.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나저나 이 집 구조는 어떻게 되어있는 거지. 




"참, 저 집 좀 둘러볼 수 있을까요…? 이틀 동안 이 방에만 있고 나가지 않아서..."



"아, 그럼 나랑 같이… 아…  처리할 서류가 많이 남았는데…"



"그럼 남은 서류들은 우리가 처리할까?  연화랑 같이 집 돌아다녀."



"그런데 너흰 우리 공작령 일 잘 모르… 지 않구나. 그럼 부탁 좀 할게."




지수 오빠는 직접 나에게 집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일이 많은지 안절부절 못했다. 그러자 민규 오빠가 다른 오빠들과 다 처리하겠다며 나섰다. 지수 오빠는 기쁜 듯 웃으며 고맙다고 했다.




"가자 연화야."




지수 오빠는 내 손을 잡아 이끌었다. 나는 얼떨결에 끌려갔고 내 뒤에선 시아가 재빨리 차가 조금 남은 찻주전자를 내려놓고 뒤따라왔다. 엘라, 차를 치워주고 너흰 내 방에서 서류를 부탁해. 고마워. 지수 오빠는 속사포로 말하고 복도를 달리다시피 걸었다. 




"지수 오빠...! 조금만 천천히..."




아 고작 몇 번 오빠라 불렀다고 익숙해졌나 보다. 이젠 술술 나오네. -오빠라고 부르기 시작한 지 하루도 되지 않았다- 길고 긴 복도를 천천히 걸으며 많은 방을 지나치고 2층을 계단으로 내려가 겨우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왔는데도 지수 오빠는 걷는 걸 멈추지 않고 왼쪽으로 갔다. 그곳엔 작은 정원이 있었다. 




"와아-!"



"여긴 네가 기억을 잃기 전에도 좋아했던 곳이야. 한번 쭉 둘러볼래?" 



"네...!"




나는 지수 오빠와 꽃길을 따라 걸었다. 양 옆에는 형형색색의 꽃들과 잘 가꿔진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그 중심에는 작은 연못도 있었다.




"정원이 생각보다 넓어요..."



"네가 좋아하니까 아버지가 여기에 있던 안 쓰던 집이랄까? 그거 부수고 꽃이랑 나무를 심은거거든."




아…? 스케일이 큰 지수 오빠… 아니 아버지...? 아니 그냥 이 레오스 가문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아니 무슨 연화 하나 때문에 집을 부수냐고… 




"그... 저 때문에요…? 애꿎은 집을…?"



"어차피 안 쓰던 집이었으니까."




지수 오빠는 그때 정원을 보고 좋아서 뛰어다닌 내가 생각난다며 웃었다. 어느새 정원을 다 돌고 다시 집 앞으로 왔다. 문을 여니 아까 급히 나올 때는 제대로 보지 못 했던 큰 집이 더 화려해 보였다. 




"1층에는 응접실이랑 주방, 세탁실, 사용인들이 쓰는 공간, 연회장 등이 있어. 음, 1층에는 딱히 둘러볼 곳은 없으니 2층에 올라가 볼까?"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지수 오빠는 싱긋 웃으며 내 손을 잡고 계단을 올라갔다. 2층의 길고 긴 복도를 지나 중간쯤에 위치한 방 앞에 도착했다. 지수 오빠는 말 없이 고개를 꼿꼿이 들고 방문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작게 한숨을 쉬고 방문을 열었다.


방안은 생각보다 깔끔했고 먼지 한 톨 없었지만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불빛을 키진 않았지만 창문으로 햇빛이 새어들어와 방안을 보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큰 침대와 화장대, 화장실, 소파, 작은 테이블 등이 있었고 한쪽 벽면에는 큰 초상화가, 가족이 그려진 초상화가 걸려있었다. 우린 그 초상화 앞에 섰다.




"... 아버지랑… 어머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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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


지수 오빠가 작게 미소지었다.



초상화에는 나와 지수 오빠, 그리고 어머니, 아버지가 그려져있었다. 지금의 우리보다는 더 어려보이고 아버지는 은색머리에 은색 눈, 어머니는 갈색머리에 갈색 눈이다. 둘 다 굉장히 행복해보이시고 무지 잘 어울리셨다. 





"행복해보이시네요… 사이가 좋아보이셔요."



"사이? 무지 좋으셨지. 제국 내 잉꼬부부로 유명하셨어."



"그래서 여행도 둘이 같이 떠나셨나 봐요."




지수오빠는 잠깐 표정이 굳었다가 돌아왔다.




"응..."




창안으로 짙어진 노을빛이 새어들어와 초상화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 비하인드



"... 홍지수… 이거 계획적인 거였나고..."


"상식적으로 서류가 책상을 벗어나 바닥에까지 있는 게 가능해…?"


"우리 영지에서도 이 정도의 서류는 없었어..."




극한노동으로 고통받는 중...


( 연화랑 조금 더 있다가 나가서 그 년에 대해 상의하겠다는 생각은 연화로 인해 사라진지 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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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악...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시간만에 돌아왔네요ㅠ

제가 늘 한편 쓰면 친구들에게 점검받는데

그중 한명이(소닉) 특히 많은 도움을 주었답니다..! 

너무 늦게 돌아와 죄송해요ㅜㅜ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