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
도용 X
결국 전정국의 방에서 자게 됐다. 다른 이들은 모두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고, 난 소파에 앉은 채로 멍 때렸다.
"안 잘 거야?"
"...너나 자."
잠이 퍽이나 오겠다. 두통 때문에 잠은 무슨 스트레스만 받는 중인데. 애초에 전정국이랑 어떻게 한 공간에서 자. 쟤를 어떻게 믿고.
"아무 짓도 안 해. 너 아프잖아."
"안 아프면 하겠다는 뜻인가."
"ㅇ, 아니!! 그게 아니잖아..."
혼자 귀를 붉히는 전정국에 웃음이 나왔다. 꼴에 순수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게 의외였다.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
"뭔데."
"누가 널 괴롭히고 있는 거야...?"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한수지를 괴롭히는 사람? 나를 괴롭히는 사람? 한수지를 괴롭히는 사람이라면 한 둘이 아니다. 그런데 나를 괴롭히는 사람은 단 한 명. 그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한수지일 것이다. 한수지라는 존재 때문에 원치 않은 삶을 살아가며 고통을 받고 있으니까.
그런데 이제 와서 뭐 어쩌겠어. 죽음이 쉬운 것도 아니고, 냅다 죽어버리기엔 찝찝한 게 많아졌다. 아무 이유 없이 내가 이러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 테니까.
"알려고 하지 마. 너도 죽기 싫으면."
딱히 해줄 말이 없다. 저들의 죽음을 바라는 건 아니기에 그저 경고 아닌 경고를 주는 게 다일뿐이다. 잃을 게 없으면 무서운 게 없다지만 그 사람은 내게 공포를 심어준 존재. 내 가족은 아니지만, 한수지가 가지고 있는 감정을 그대로 전해 받고 있으니 공포심이 안 생길 수가 없었다.
내가 한수지가 아니라도 그 사람은 무서워했을 거다. 눈만 마주 보고 있는 것만으로 숨통을 조여오게 만들었으니까. 재수 없는 새끼...

"도대체 뭘 숨기고 있는 거야..."
"너 나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게 있긴 해?"
"어...?"
"뭐라 하려는 건 아닌데. 이때까지 관심 없었던 거 아냐? 왜 자꾸 이제 와서 알려고 들어."
전정국은 입을 열지 못했다. 아무래도 할 말이 없는 거겠지. 뭐, 있으면 안 되려나? 예전 일을 언급하는 것도 지긋지긋하지만 예상하기 힘든 태도로 나오기 시작하는 너네들 때문에 내 머리는 더 복잡해져 가. 그러니 늘 하던 대로 행동해. 제발.
"말했잖아. 난 너랑 있고 싶다고."
"야..."
"이기적이라는 거 알아. 아는데... 나도 모르겠어. 이러면 안 되는 거 같다가도, 내 시선은 네게 향해 있어."
다소 진지한 표정. 어떻게 받아 들여야 될까. 한수지라면 좋아했을까? ....과연? 나는 의문이 들어. 정말 한수지가 전정국을 좋아한 건지, 아버지의 협박 때문에 사랑하는 척을 하고 있었던 건지. 당사자사 아닌 내가 알 리가 없지만 궁금증이 쉽게 사라지진 않았다.
이미 김석진만 해도 자꾸만 복잡한 감정이 들어서 괴로운 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가 내게 향하는 시선이 너무나도 잘 느껴지니 신경을 끄기도 어려울 수밖에.
"살아 봐."
"어...?"
"일단 죽지 말고 살아 보라고."
살아 있어야 뭐든 해볼 거 아냐. 그러니까 그 사람 손에 죽지 마. 그 누구든지.
잠을 설친 수지는 날이 밝자마자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곤 옆에 뒀던 폰을 켰을까. 그 사람에게 연락이 와 있었다. 짧고 굵게.
- 네 오빠처럼 되고 싶나 보지? 제대로 하는 게 좋을 거다.
수지는 그대로 아무 행동도 할 수 없었다. 내가 원했던 거잖아. 내가 그렇게 원하던 죽음이잖아. 그런데 뭐가 이렇게도 두려운 걸까. 내가 두려움을 느끼는 건지, 한수지가 느끼는 건지...
서로의 감정이 뒤섞이니 모든 게 복잡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을 거다. 그런 상황에서도 앞으로 걸어가야 하는 수지는 언제까지고 버틸 수 있을까.
"한수지...!"
"어...?"
전정국은 수지의 손을 꽉 잡았다. 본인도 모르게 손을 잘게 떨고 있으니 그걸 발견한 전정국이 급히 달려온 거다. 수지는 전정국이 자신의 손을 잡지 않았다면 전정국이 깨어난 지도 몰랐겠지.
"괜찮은 거야?"
"아, 어..."
수지는 전정국이 자신의 폰을 볼까 급히 숨겼다. 전정국은 뭐 때문에 수지가 겁에 질려 있었는지 궁금했지만, 본인이 자꾸만 알려고 한다면 피할 게 뻔했기에 참기로 했다.
"...나가자."
아침을 먹으러 나가야 하는 시간. 전정국은 수지를 데리고 식당으로 내려갔다. 딱히 입맛이 없는 수지지만 혼자 있다가는 또 어제처럼 그 사람들이 내게 몰릴 게 뻔했기에 전정국과 함께 밥을 먹기로 했다. 고작 샐러드만 담아 왔지만.
"그거 가지고 되겠어...?"
"입맛 없는데도 먹는 거야."
전정국은 아침부터 먹방이라도 찍으려는 건지 어지간히도 담아 왔다. 전정국에 비해 내 앞에 놓인 샐러드가 너무 초라해 보일 정도랄까...

"한수지."
"....."
"할 말 있어."
꽤나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박지민. 별로 겸상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다.
"물어 보고 싶은 게 있어서 그래. 여기서 말하면 너한테 좋을 말은 아닐 거 같은데."
...썩 내키지 않았지만, 박지민이 저렇게 말하니 어쩔 수 없이 먹다 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움직이자 아빠 쪽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이걸 눈치챈 박지민은 나를 데리고 본인의 방으로 갔다.

"그래서 할 말이 뭔데."
"네가 쓰는 향초... 무슨 향초인 지 알고 쓰는 거냐?"
"향초...?"
갑자기 웬 향초? 왜 그런 얘기를 꺼내냐는 표정을 지으니 박지민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 향에 중독되면 고통을 못 느끼게 되고, 자칫하면 천천히 네 뇌를 마비 시켜올 거야."
"너 두통 심하지? 그거 그 향초 때문이야. 맡고 있으면 두통이 덜한데, 어떤 날은 맡고 어떤 날은 안 맡고 이래 버리면···"
"잠깐만... 넌 그걸 어떻게 아는 거야."
불쾌했던 그 향초. 아버지라는 사람이 그 향초를 무조건 피우게 했으니 뭣도 모르고 난 그 향초에 노출되어 있었다. 그게 독 같은 건 줄도 모르고. 그런데 박지민 네가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건데?
"너한테 그 향이 날 때는 긴가민가 했는데, 어제 네 방에 들어갔을 때 짙게 맡아 보니까 익숙한 향이 맞는 거 같더라고."
"혹시나 해서 알아보니까 내가 생각한 게 맞더라. 넌 여태껏 저게 뭔지도 모르고 썼다는 거야?"
"난 몰라. 저게 뭔지."
"구하기도 어려운 그걸 누가 준 건데. "
아, 그 시발 새끼가... 수지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난 어차피 버릴 인형이었구나. 어차피 날 죽일 거였어. 내 목숨을 저렇게 쥐고 있었을 줄은...
"야... 너···"
"어디 가서 이 얘기 하기만 해."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너 죽을 수도 있다고!"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인데."
박지민은 입을 다물었다. 그래, 내가 무슨 상관이야. 내가 왜... 그런데 나는 네가 죽는 걸 원한 적은 없어. 그리고 네가 저 향초 때문에 죽는다면... 넌 우리 엄마랑 똑같은 이유로 죽게 되는 거야. 내가 그렇게 역겨워하던 그것으로.
박지민의 어머니는 수지가 맡고 있는 향초와 똑같은 재료가 들어간 것을 선물 받아 먹었다가 돌아가셨다. 수지가 향초였다면 박지민 어머니께선 우려 마시는 차였다. 맛이 좋아 매일 마시다가 죽음을 맞이했고, 박지민은 그 차를 선물해 준 사람을 몇 년째 찾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한수지도 똑같은 이유로 죽음에 다가가고 있다니 기분이 안 좋을 수밖에. 그러다 든 생각이 설마 똑같은 사람이 이걸 준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었다.

"얘기해 줘. 누가 네게 그 향초를 피우게 만들었는지."
"알 필요 없···"
"부탁할게.. 제발."
박지민의 표정은 어둡다가도 슬퍼 보였다. 도대체 그 향초가 너랑 무슨 연관이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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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팅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