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의 순간 이동을 거쳐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 사이에도 여주는 태형의 품에서 벗어나지 않았고 그 역시 그녀를 밀어내지 않았다. 밝은 빛이 그들의 시야를 찔렀다. 잠시의 정적. 얼마 안 가 반정부 모든 사람들이 태형에 안겨있는 여주에게 시선이 쏠렸다. 여주는 처음으로 극도의 긴장감을 느꼈다. 평생의 적이었던 반정부들이 자신을, 죽일 듯이 노려보는 거 같아서. 하지만 마치 그 생각은 오해였다는 걸 증명하듯 그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 리커버리 호출해요. 얼른!"
"혹시 모르니까 가이드도 불러주세요. 상처가 심한 것 같아, 가이딩이 필요할 수 있겠어요."
"여자분, 어디 아픈 곳 있어요? 머리가 띵하던가. 어딘가 쑤신다던가."
울컥했다. 자신이 뻔히 센터 사람인 걸 알 텐데도, 제 자신을 센터 대 반정부가 아니라.
"그, 저 리커버리인데요! 늦기 전에 제가 치료해도 될까요? 시작할 때 긴장 푸시고 눈 감기면 피로 때문에 그럴 수 있으니까... 그냥 편하게 잠들 시면 돼요.."
사람 대 사람으로 자신을 봐주는 게.
"... 자. 자고 일어나면."

평생을 의지하고 살아왔던 센터보다 훨씬 낫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다 괜찮아질 거야."
이곳은 따뜻했다.
센터는 사라진 하여주 찾기에 돌입했다. 잔해더미를 치우며 사이코 메트리 센티넬 수십 명이 합류하며 과거를 읽어내기 다급했다. 이그노어 하여주가 센터의 실수로 사라졌다,라는 기사가 표면에 드러날 시 센터가 감당해야 할 일들이 수백 배로 부풀리는 건 당연하고, 세계 센터장들이 모이는 회의에 참여해 일일이 브리핑해야 했다. 생각만 해도 눈앞이 아찔해진 센터장은 괜스레 애꿎은 손톱만 틱틱 괴롭혔다.
"... 그만."
손톱 밑 여린 살에 흉터가 생기기 직전, 센터장이 모든 사람들의 행동을 중지시켰다. 하여주는 센터를 배신했다. 그래서 반정부들을 통해 탈출했다. 그의 머릿속에 완벽한 판타지 소설 한편이 그려졌다. 책임을 물고 싶지 않다면, 떠넘기면 된다. 센터장의 책임을 배신자 하여주에게 떠넘기면,
"... 이그노어 하여주 센티넬은 반정부를 통해 탈출했다."
모든 것이, 수월해진다.
센터장의 한마디에 사고 현장 공기가 탁하게 얼었다. 누군가는 눈치를 보며 과연 하여주가 그랬을까, 와 역시 그랬구나.라는 둥. 수많은 의견들이 나뉘는 그때. 수많은 인파를 뚫고 큼지막한 손이 불쑥 튀어나오더니 센터장의 멱살을 붙잡았다.
"거짓말 치지 마세요."
"김남준."
"하여주가 탈출했다고요."
"커헉...."
"반정부를 통해 탈출했다고요."
"김남준!!"
"... 지랄하지 마."
내가 저 잔해더미 일일이 손 대보면서 본 과거가 뭔 줄 알아? 진득하게 베여있는 고문의 흔적이야. 그럼에도 가만히 있던 하여주가.

"... 우리 이름을 지독하게, 부르면서 버티던 하여주가."
탈출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의문문의 확신이었다. 예의상 붙은 물음표였을 뿐. 답은 이미 정해 저 있었기에. 고문. 그 한 단어에 모두가 사색이 된 채, 센터장을 주시했다. 하지만 곧장 그들은 빠르게 시선을 거뒀다.
"... 고문이라니."
그마저 사색이 된 채, 급기야 손까지 제어하지 못하고 덜덜 떨었다. 그가 제일 두려웠던 건, 하여주의 상태였다. 납치가 되는 탈출을 하든 적어도 센터에 의해 몸에 흉터가 남는다면. 수많은 언론에 올려질 자신의 이름에 눈을 질끈 감았다.
과거를 읽은 센티넬들도 많을 테고 이제 와서 오리발 내밀기엔 너무 이상한 상황. 그에겐 증거를 지울 방법 말곤 선택지가 없었다.
"...."
... 그 증거가 사람들이라면.
기억이라면.
"내일 다시 작업을 시작하도록 합시다."
지우면 된다.
증거를.
고요한 새벽. 센터 앞으로 한 여린 소녀가 뚜벅 걸어왔다. 잔뜩 긴장한 얼굴에 비쩍 마른 몸. 멀리서 봐도 센터 소속의 사람은 아니었다. 한 발자국 더 내디디려는 때, 경비원이 소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여긴 함부로 못 들어가는데요. 혹시 센터장님한테 초대받고 오셨으면 이름,"
"... 경."
"... 예?"

"이 경, 메모리저 센티넬이라고 말씀드리면, 아실 거예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던 경비원. 12년이라는 시간 동안 수많은 센티넬, 가이드들을 봐오며 어느 정도 능력의 이름을 외우고 다녔지만 메모리저는 난생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기에. 어딘가 찝찝한 구석이 있었달까. 하지만 얼마 안 가, 센터장이 직접 걸음을 옮겨 센터 입구까지 마중 나왔을 때야 무언가를 느꼈다.
이 경.
메모리저.
센터장.
이들은 무언의 일을 벌일 거라고.
툭. 이 경 앞으로 탁한 빛의 붉은 액체가 담긴 주사기가 떨어졌다. 5분 정도는 지속될 거야. 센터장의 말이 끝나는 동시에 빈 주사기가 바닥과 맞닿았다. 그러자 아까까지 멀쩡했던 이 경이 상체를 앞으로 숙이더니 고통스러움에 신음을 내뱉었다.
"억.... 허억."
"버텨."
"윽..으윽..."
"괴로워할 시간 없어."
돈 받아야지.
한마디가 그녀의 시작을 알리는 총성이었는지 방금 허덕이던 모습은 어디 가고 눈 붉게 충혈된 채 허리를 꼿꼿이 핀 채 능력을 사용하는 이 경이었다. 검은빛의 오로라가 온 센터를 감쌌다. 경비원은 털썩 주저앉았고 센터장은 손톱을 뜯으며 그녀를 기다렸다.
정확히 팔에 약물을 주입한 지 5분이 지날 때쯤 오로라가 거둬지며 이 경이 털썩 주저앉았다. 가이딩 부족에 텅 빈 공허한 눈동자로 고통에 갈피를 못 잡고 허우적거리는 이 경에게 또 다른 주사기가 그녀 눈앞에 툭, 떨어졌다.
"앰플이야."
"...."
"꽃아. 살고 싶으면."
"기억은,"
"...."
"... 기억들은 확실히 지웠어요. 한 명 빼고."
"한 명?"
"... 하여주라는 사람의 기억이, 인생의 절반인 사람."

민윤기
센터장의 미간이 보기 좋게 구겨졌다. 민윤기라면 하여주로 의해 11년이라는 인생의 절반을 센터에서 보내게 됐으며 어쩌면 하여주에게 인생의 구원을 받은 가이드. 그 역시 하여주보단 아니지만 이곳에 오래 머문 만큼 센터를 잘 꽤뚫고 있다.
"... 그 사람만 잘 처리하면 기억할 확률은 적어요."
"적어?"
"... 기억할 수도 있어요."
상대와의 기억이 너무 강렬했거나 상대에게 감정이 짙게 남겨질 경우. 그 감정이 행복이든, 원망이든. 뭐든 인생에 큰 반환점이었다면 기억을 할 수도 있어요.
이 경의 말에 센터장은 정신줄이 놓였다. 그럼 기억할 수도 있는 사람만 자그마치 4명이다. 그것도 상위권 팀이라 어쩌면 그들의 말에 민심을 움직일 수 있을 텐데. 재미있다. 재미있네. 센터장은 실성한 듯 허리를 숙여 미친 듯이 웃어댔고, 그를 응시하던 경비원은 심각성을 느끼고 조용히 자리를 피했다.
"...."
"일어났네."
"... 아."
"조금 더 쉬어."
"... 그쪽들은."
"...."
"왜 날 도와요."

"우리랑 같으니까."
"...."
버려졌으니까.
아.
버려졌다.
"...."
내가 너희들에게 손을 내밀었을 때, 너흰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 반정부 리더를 만나고 싶어요."
나쁜 일이라도, 반사회적이어도.

"... 제발요."
그 손을 잡고 싶었겠구나.
"...."
찝찝하다.

무언가를, 잊은 것처럼.
근데.
기억이 나질 않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