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정국의 홈마다.

8화

[8]

'꾸꾸 : 햄아. 완전 미안해. 윤기형이 갑자기 와서 놀랐지?'

'햄: 아니야. 윤기형이랑 만날 수 있어서 좋았어.'

'꾸꾸 : 아니야. 그러면 안 돼.'

응? 그러면 안 된다니. 무슨 이야기지?

'꾸꾸: 넌 내 홈마잖아. 햄아.'

'햄 : 그게 왜?'

'꾸꾸 : 형한테 매력 느끼고 그러지 마.'

'햄 : 그렇지만 매력 있잖아?'

'꾸꾸 : 햄이가 몰라서 그러는데 내가 더 잘 해줄 수 있어! 윤기형보다 더!'

    

정국이 내가 윤기가 좋다고 하니까 질투하는 걸까. 은근히 질투가 많네. 귀엽다. 정국이가 질투하는 게 나는 왜 이렇게 기분이 좋을까?

    

'햄 : 귀여워.'

    

혼자 끄적이던 문자가 날아가 버렸다. 잠깐만 내가 보내버렸다고? 어쩌지. 무작정 귀엽다고 말해버리면 너무 적극적인 표현이잖아. 내가 이불킥을 하고 있을 때 핸드폰이 울리며 화면이 밝아졌다.

문자인 줄 알았는데 전화가 왔다. 이걸 받아야해 말아야 해? 문자를 받는 것만으로도 이불킥 몇 번은 할 것 같은데 정국이 목소리를 듣기가 너무 부끄럽다. 그래도 전화가 끊기는 건 싫은데. 정국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나는 이불을 뒤집어썼다. 부끄러움을 이겨내기 위한 나만의 방법이었달 까.

    

"여보세요?"

[햄이, 왜 이렇게 늦게 받아.]

"아, 나 무음이라서 늦게 확인했어."

[그런 말을 해놓고 핸드폰을 안 보고 있었다고?]

    

정국이는 어딘가 토라진 것 같아보였다. 아니, 제발 모르는 척 넘어가주면 안 될까. 나 너무 부끄럽거든.

    

"미안. 근데 왜 전화했어?"

[이유가 있어야 전화할 수 있는 거야?]

"그건 아니지만."

[갑자기 햄이가 너무 보고 싶어서.]

"응?"

[그래서 전화했어.]

    

보고 싶다니. 핸드폰을 들고 있는 손에서 땀이 났다. 온 몸에서 열이 화끈화끈 올라오는 것 같았다. 긴장해서 뭐라고 답해야할 지 모를 정도로 정국이의 말이 달콤해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아, 그랬구나."

[햄이는 나 안 보고 싶었어?]

"나는 당연히 보고 싶지. 그러니까 정국이 홈마하잖아."

[그렇지. 맞아. 하지만 그전에 친구라니까.]

"알았어. 친구야. 꾸꾸!"

[너무해.]

"응?"

[나만 답답한 것 같아.]

    

내가 뭔가 잘못 말 한 걸까. 답답하다니. 내가 아이돌이 아니다 보니 정국이가 뭐가 답답한 건지 알 수가 없다. 내가 윤기의 홈마로 넘어갈까봐 걱정을 하고 있는 걸까.

    

"나 윤기 홈마 안 해. 정국이 홈마만 할 거야. 그러니까 답답해하지 마."

[그래. 절대 다른데 가지마. 나만 봐줘.]

    

어쩐지 정국이가 요즘 들어서 독점욕이 강해진 것 같다. 이것이 바로 팬보호 같은 건가.

    

"난 떠날 생각 같은 거 없으니까. 마음 놓고 하고 싶은 걸 해. 언제나 응원해 줄게. 비록 멀리서라도 말이야."

[햄아.]

"응?"

[나 햄이가 귀엽다고 생각해.]

"갑자기 무슨."

[햄이가 너무 사랑스럽다고 생각해.]

    

팬서비스가 과포화 상태다. 진짜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아.

    

"꾸꾸야. 그만해. 심장에 무리가 와."

[진짜. 햄이, 너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내 솔직한 말에 정국이의 웃음소리가 전화 너머로 들렸다. 어쨌든 정국이를 웃게 만들 수 있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웃어서 다행이야."

[햄이는 너무 귀여워.]

    

귀여워서 미칠 것 같다. 꼭 고백을 받는 기분이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듣는 귀엽다는 이야기는 생각보다 더 설레고 달콤하고 두근거렸다.

정국이는 항상 나에게 설렘을 안겨줬다. 나도 정국이에게 뭔가 해주고 싶다. 방탄소년단은 윤기가 있어서 곡 걱정은 없지만. 내 초라한 곡이나마 들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곡을 만들었다. 정국이를 생각하면 음표가 떠올랐다. 나에게 정국이는 음악 같은 사람이었다.

    

"음, 이걸 전해줄 수 있는 날이 올까."

    

솔직히 정국이는 나보다 모든 면에서 잘난 사람이라 이런 곡 같은 건 눈에 들어오지 않겠지만. 그래도 정국이에 대한 내 마음을 담아보고 싶다. 곡으로 전하면 티를 내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으니까. 그냥 곡 가사라고 생각할 테니까.

    

'꾸꾸 : 햄아, 오늘 만날 수 있어?'

    

오랜만에 설레는 정국이의 연락이다. 윤기와 함께 만난 뒤로 월드투어가 잡혀 있어서 줄곧 보지 못했는데.

    

'햄: 응, 당연하지.'

'꾸꾸 : 알바 끝나는 시간에 거기로 갈게.'

'햄 : 알았어!'

    

전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정국이를 생각하며 쓴 악보뭉치를 가방에 접어 넣었다. 후하. 언제 끝나도 이상할 게 없는 관계지만 그래도 나에게 연락이 닿을 때까지 만이라도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자. 이별의 순간이 와도 서운해 하지 말자. 나는 정국이의 홈마이자 팬일 뿐이니까. 그냥 정국이가 어디에 있던 지금처럼 한결같은 마음으로 응원해주자.

    

알바를 마칠 시간이 다가오자 카페 앞에 검은 벤이 나타났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핸드폰을 바라보자 기다렸다는 듯 화면이 밝아졌다.

    

'꾸꾸 : 알바를 마친 뒤 카페 앞에 있는 벤을 타시오.'

'햄 : 벤을? 그렇게 해도 되는 거야?'

'꾸꾸 : 그럼! 허락도 받았어!'

    

대박. 대박사건. 내가 정국이랑 같이 벤에 타다니.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의 벤에. 이건 정말 전생에 나라를 구하지 않고서야 얻을 수 없는 행운이다. 나는 다음 타임 오빠에게 바통터치를 하고 카페 앞에 있는 벤 앞을 어슬렁거렸다. 벤의 문을 열기는 해야하는데 막상 그럴 용기가 나지 않는다. 어떡하면 좋을까 망설이고 있을 때 벤의 문이 안쪽에서 열리고 누군가의 손이 나를 벤 안으로 이끌었다.

    

"거기서 얼쩡거리면 찍힌다."

    

손의 주인은 윤기였다. 벤의 문은 나를 태우자마자 굳게 닫혔다.

    

"윤기야."

"햄아, 나는 여기 있는데."

    

정국이는 내가 처음 부른 이름이 윤기인게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인지 입술을 쭉 내밀고 토라진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정국이 안녕."

"그것밖에 할 말이 없어?"

"그럼?"

"와, 서운해. 햄이 애정이 식었어."

"누가 보면 햄이가 네 여자 친구인 줄 알겠다. 보통은 이게 정상이라고?"

    

윤기는 현실적이구나. 정국이는 나를 자신의 곁에 앉히고 나와 눈을 맞췄다.

    

"나는 햄이가 너무 보고 싶었어."

"아, 나도."

"그리고 봐서 좋아."

"나도?"

    

정국이는 계속해서 담담한 내 반응이 서운한 모양이었다.

    

"다른 팬들은 이렇게 해주면 좋아해주는데."

"아, 나도 좋은데."

"너무 담담하달까. 전정국. 차인 듯."

    

윤기가 정국이를 약 올리자 정국이는 더욱 더 열을 올리며 나를 빤히 바라본다.

    

"햄이, 혹시 나 말고 다른 사람 팬 아니야?"

"그럴 리가 없잖아. 나는 정국이 팬인 걸."

"헐. 개인팬. 너무해요. 방탄소년단 모두를 사랑해주시라고요."

"물론 윤기도 좋은데!"

"안 돼! 개인팬 해!"

    

정국이와 윤기가 투닥 거리는 사이 벤은 어딘가에 멈춰 섰다.

    

"도착했습니다."

"잠깐만. 근데 여기가 어디야?"

"우리 기획사 인데."

"응? 빅히트?"

"응. 빅히트."

"여길 내가 왜 가?"

"그건 들어가서 이야기 하자. 일단 이거 써."

    

정국이가 나에게 검은 모자와 검은 마스크를 쓰게 만들었다. 긴 머리를 안쪽으로 밀어 넣어서 꼭 남자처럼 위장했다. 빅히트 안으로 들어와서 작업실로 향할 때까지 나는 그 상태로 이동했다.

    

"햄아, 이대로 방탄소년단 영입해도 되겠다."

"그거 칭찬 아닌 것 같은데?"

"그렇게 해도 예쁜데? 인기 많을 것 같아."

    

예쁘다니. 그렇게 해맑게 웃으면서 하면 안 되는 멘트라니까. 정국이는 왜 이렇게 사람 심장에 훅 들어오는 걸까? 정말 연예인 안 했으면 어쩔 뻔 했어?

    

"너한테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걸."

"에이. 그건 아니다. 나보다 햄이가 더 예뻐. 훨씬."

    

아, 어쩌지 마스크를 쓰고 있는 게 이렇게 감사한 일일 줄이야. 분명히 맨 얼굴이었다면 정국이한테 내 마음을 들키고 말았을 거다.

"장난치지 마."

    

나는 정국이에게서 달아나듯 윤기의 곁으로 도망쳤다.

    

"햄이는 내 홈마인데! 왜 윤기형한테 가냐고!“

    

미안해. 정국아. 지금은 너한테 갈 수가 없어. 어째서인지 점점 너한테 내 마음을 숨기기가 힘들어지고 있어. 하지만 나는 꼭꼭 숨길 거야. 내 마음이 드러나면 너와 나의 이 애매한 관계가 끊어지고 말테니까. 그러니까 숨게 해줘. 내가 너와 계속 이렇게나마 만날 수 있도록. 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