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응 응 짐 다 옮겼고 이제 조금 정리만 하면 돼~ 나 이제 애 아니다? 걱정하지 말고 이따 연락 할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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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 잘 챙겨 먹을게 알겠어 "
' 뚜뚜 '
혼자 자취방 알아보고 짐을 꾸려서 방에 앉아보니 이제야 실감이 가기 시작한다
21년 인생 유여주 드디어 1시간 30분 통학을 버리고 학교 앞으로 자취한 것이다..!
자취에 대한 망상에 빠진 사이에 박지민에게서 전화가 왔다

" 어 여주야 이사 정리는 잘 됐어? "
" 응응 짐은 다 들여왔고 이제 정리만 살짝하면 돼 "
지민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을 이었다
" 오늘 일 때문에 짐 옮기는 것도 못 도와주고 미안하다 여주야 "
" 너도 참 착해서 문제지 ㅋㅋ 필요 없네요 저도 알아서 잘 합니다 높은 일하시는 귀한 분을 어떻게 부려 먹어요~ "
자신을 놀리는 말에 속상함이 조금 풀렸는지 베시시 웃는 소리가 전화기를 타고 내 귀에 전해졌다
" 다음에 집들이 하러 갈게 그 날은 오빠가 쏜다 약 잘 챙겨먹고 건강하게 있어 "
약을 언급하는 부분에 힘이 조금 들어가게 말하는 걸 보니 어지간히 어렸을적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게 보였다
' 나 때문에..'
" 아이 걱정 마 이제 별로 아픈 것도 없어 다음에 보자 "
울적한 생각에 급히 전화를 끊어버리고 대충 정리한 방 매트에 몸을 던졌다
그러고보니 약이 다 떨어져 가는데 오랜만에 내일 병원에 들어야 겠다 생각하며 그 상태 그대로 잠에 들고 말았다
" 악 몇 시야! "
일어나보니 이미 점심이 훨 넘어있었다
" 어제 피곤하긴 했나보네.. 반성해라 유여주 오늘 학교 안 가는 날이라 다행이지 어휴 "
빠르게 준비를 마치고 문을 여는 순간 옆집 문도 함께 열리며 옆집 사람과 눈이 딱 마주쳤다
" ... "날 빤히 쳐다보는 눈이 부담스러워 가볍게 고개로 인사를 한 뒤 바로 뛰쳐 나왔다
병원에 도착 후 접수를 하고 차례가 오길 기다렸다
"띵동 유여주 님 진료실로 들어오세요 "
성인이 된 후 약에 그리 의존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의 일 년만에 내가 어릴적부터 동경하던 담당 의사를 보기에 조금 설레는 목소리로 진료실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 할아버..! "
" 예 유여주 씨 안녕하세요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분명 주름 많고 인자하게 생긴 분이 앉아계셔야 하는데 이 사람은 누구지..?
" 어엇.. 여기 전현우 씨 방 아닌가요? "
내가 당황해서 묻자 그는 안경을 벗으며 무뚝뚝하게 말을 뱉었다
" 저희 할아버지십니다 이제 제가 그 뒤를 이어 진료를 보고 있습니다 "
그러곤 잠깐 쉬었다가 다시 한 마디 뱉었다
" 그리고 제 이름은 전정국입니다 "
아 나이가 있으시다 보니 그만 두셨구나 뭔가 아쉽기도 하고 그동안 못 찾아뵌게 속상하기도 했다 어쨋든 진료는 봐야 하니까
" 요즘도 별 문제 없이 지내고 있어요 제 병에 대해서 뭔가 더 알아낼게 없을까요? "
난 어릴 적부터 툭하면 쓰러지기도 하고 호흡기도 약해 주변 사람들의 걱정을 한 몸에 받고 살았다
그렇기에 빨리 떨쳐내고 싶은 맘도 크지만 몇 년째 병원은 알 수 없다고만 말하며 내 속을 뒤집어 놓았다
전정국 이라는 의사는 내 말에 그리 큰 관심이 없다는 듯 한결같은 무표정으로 모니터만 쳐다보며 혼잣말을 늘어놓았다
" 몇 년간 검사를 해왔다 하는데 이정도면 정신적으로 아프다 스스로 생각을 하는 꾀병이.. "
' 움찔 '
어릴 적부터 특별대우 받던 날 부러워하는 아이들은 나에게 꾀병이라는 단어를 언급하며 날 괴롭혔다
" 네? 꾀병이요? 지금 의사가 그런 말을 해도 되는건가요? "
내 살짝 욱한 목소리에 모니터에서 눈을 떼 날 쳐다보곤 아까보단 살짝 누그러진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 제가 말 실수를 한 모양입니다 그 점은 사과드리죠 하지만 아직 어떤 해결점도 찾지 못해서 드린 말씀입니다 "
억울하지만 그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라 난 차마 더 화를 낼 수 없었다
거의 15년 넘게 안고 있는 나만의 병
난 그 안에 갇혀서 누군가 괜찮다 곁에 있어주겠다 그런 말로 위로를 얻고 싶은게 아니었을까 때로 생각하긴 한다
숨막히는 정적에 정국은 안경을 고쳐 쓰며 말 했다
" 오늘은 이만 돌아가시고 약은 그대로 처방 해드릴테니 다음에 또 뵙도록 합시다 "
나도 더 할 말은 없기에 멍하게 집으로 가려다 잠시 대학 친구를 만나 기분이라도 조금 나아지게 수다를 떨다 밤이 되어 터덜터덜 집 앞에 도착했다
' 빵! '
영혼 없이 걷던 내 눈 앞에 차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땐 이미 늦었었다 그리 빠른 속도로 오는 차는 아니었지만 피할 수 없단 생각에 눈을 질끈 감았다
그 순간 누가 내 후드 모자를 잡아댕겼고 난 날 잡아댕긴 사람의 품에 안긴듯한 이상한 자세가 되어버렸다
차에 타고 있던 사람은 나에게 몇 마디 욕을 지껄이다 갈 길을 가기 시작했고
누가 날 구해줬나 뒤를 돌아봤더니

" 멍청하게 뭐하냐 "
아침에 봤던 옆집 사람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