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5ㅣ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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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오구, 우리 서아 왔어?”
“으응, 할머니 나 배고파요.”
“얼른 들어가자, 밥 해놨어.”
할머니. 매일 공부하라고 구박하며 압박을 주던 부모님과는 달리 할머니는 내게 유일한 따뜻한 존재였다. 매일 나에게 힘있는 말을 불어넣어주고, 나를 웃게 만들어줬으며, 공부라는 족쇄에서 잠시나마 자유를 주었던 존재였다.
“할머니… 나 공부가 너무 하기 싫어요, 힘들어요.”
“근데 부모님은 자꾸 저보고 공부 하래요, 재능도 없는 게 공부도 못 하면 무슨 쓸모냐고…”
“우리 서아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쓸모 있어, 우리 서아는 특별한 존재야.”
“특별한… 존재요? 나는 잘 하는 것도 없는 걸요…”
“잘 하는 게 없긴, 사람은 전부 잘 하는 거 한 개씩은 가지고 태어나. 서아 네가 아직 못 찾은 것 뿐이야.”
“우리 서아는 손재주가 좀 뛰어나, 계산 능력도 빠르고, 지적이고.”
“많이 힘들겠지만, 이 할머니를 생각하며 공부해서 서아가 꼭 의사가 되었으면 좋겠어.”
“치… 할머니까지 의사 타령 할 거예요?”
“의사는 인정 받는 직업이잖아, 멋지고.”
“의사는 공부 잘 해야 되잖아요, 나는 의사 돼도 일 잘 못 할 것 같은데…”
“못 하긴, 우리 서아는 분명히 의사로서 재능을 타고났어.”
“우리 부모님은 의사가 아닌 걸요?”
“그래도, 손재주가 뛰어나고 지적이고 순발력 있는 우리 서아는 의사가 딱이야.”
“사람을 구하는 일, 얼마나 멋져?”
“나중에 우리 서아가 의사가 돼서, 이 할머니가 아플 때 꼭 치료해줬으면 좋겠어.”
“할머니처럼 심장병이 있는 사람들을 꼭 우리 서아가 치료해줬으면 좋겠어, 이 할머니 소원이야.”
나는 할머니에게 틱틱대며 의사 타령은 이제 그만 하라 말했지만 할머니는 아랑곳 않고는 의사가 되면 잘 될 거라고 말씀 하셨고, 차마 내가 아끼는 할머니의 말을 한 귀로 흘려보내고 싶지 않아 매일 할머니를 생각하며 열심히 공부했다.
그러다 할머니의 심장병이 더욱 악화가 되었고, 수술까지 해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의사는 별거 아닌 수술이라며 이 수술이 끝나면 다시 괜찮아질 거라는 말로 우리를 안심 시켰고, 할머니는 그런 의사 선생님을 믿는다며 의사 선생님이 있기에 하나도 무섭지 않다고 하고는 미소를 지으며 수술실로 들어갔다.
그렇게 환하게 웃으며 수술실로 들어갔던 할머니는, 그 환한 미소를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테이블 데스, 그 간단한 수술 중에 죽었다는 건 분명 무언가가 있었을 것이다. 나는 할머니의 장례식 절차를 밟으며 생각했다. 무조건 할머니의 소원을 이루겠다고, 의사가 되어 진실을 알아낼 것이라고, 나는 그런 무책임한 의사가 되지 않겠다고.
무조건 최고의 의사가 되어 많은 사람들을 살리고, 할머니처럼 억울하게 돌아가는 사람이 없도록 만드는 게 내 바람이자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발악이었다.
그렇기에 나에게 의사라는 꿈은 너무나도 간절했다.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의 꿈이기도 하며, 내 꿈이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은 과거에 얽매여 내 현재와 미래의 인생을 망치지 말라고들 한다. 하지만 나는 과거에 얽매여 내 삶을 망치는 게 아니라, 돌아가신 할머니의 소원을 이루며 내 꿈도 이루는 것이다. 현재와 미래가 확실히 보장되어 있는 삶.
부모님도 내가 의사가 되길 원하셨지만, 나는 부모님의 꿈을 이루어드린 게 아니다. 부모님은 더욱 안정적인 과를 원하셨지만, 내 마음대로 할머니가 돌아가신 원인이 잠들어 있는 흉부외과에 왔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은 말한다, 흉부외과는 안정적이지도 않고 응급 환자와 중환자가 많기에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힘들 것이라고. 하지만 나는 흉부외과만큼 안정적인 과가 없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기관을 다루는 곳이기에 의료 사고도 많고 힘들 테지만, 그만큼 마음을 굳게 먹을 수 있는 곳이니까. 우리 할머니의 억울함을, 가장 안정적이게 풀어줄 수 있는 곳이니까.
할머니, 나 할머니 소원 이뤘어요. 이제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내가 한 약속 지킬 거예요. 하늘에서 꼭 지켜봐주세요, 할머니 억울함 풀어드릴 거니까. 내가 많이 사랑해요, 할머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