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었다.

제 2화. 거절

글, 서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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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2화. 거절








나는 아무런 걱정 없이 네x버에 ‘7월 6일’을 검색해보았다.


‘뭐야, 별 다른 건 없는 것 같은데? 박지민 얘도 참, 가만 보면 장난이 너무 심해.’


멈칫.


‘잠깐만, 이게 뭐지?’


나는 빠르게 훑으며 스크롤을 내리던 손을 멈추고 당황하며 글을 클릭해보았다.



<9월 17일, 고백데이? 크리스마스에 100일!>



9월 17일이 고백데이라고? 그럼 오늘도 뭐 고백데이 그런건가?

…날짜 계산기를 돌려보니 9월 17일에 사귀면 크리스마스가 100일이다. 맞다. 딱 100일. 아니 왜? 뭐가? 잠깐만, 그럼 7월 6일은 뭐지?

이것저것 심란한 마음으로 아무 날짜나 넣어보다가, 아까 생일을 얘기한 게 떠올라 퍼뜩 넣어보았다. 우선 내 생일을 넣었더니, 100일은 훌쩍 넘었다. 


“차라리 다행이지, 이대로 박지민 생일도 안맞으면…”


그렇게 중얼거리곤 이번에 박지민의 생일을 넣어보았다. 

…젠장, 이게 왜 100일이지? 아니 진짜로? 얘가 나를 좋아한다고? 이성으로서? 아니지, 내 망상일 수도 있는 거야. 그래, 그렇겠지. 

나는 그렇게 애써 박지민에 대한 생각이란 화려한 옷을 접어서 저 구석진 선반에,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고이 넣어놓은 후 학원으로 향했다. 




오후 9시 30분.



- 자,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모두 수고했고 너네 곧 고3인 거 잊지 말고 집 가서 공부해라!

- 아 쌤~ 오늘은 금요일이잖아여 ㅠㅠ

- 맞아여 쌤~ 오늘은 놀아도 되지 않아요?

- 너네 저번주에도 딱 금요일만 논다고 했다가 다 망치고 주말에 숙제 똑바로 해온 사람 별로 없었던 거 다 안다~

- 아 진짜 너무해여 ㅠㅠㅠ

- 뭘 너무해, 얼른 가!

- 힝~ 네~



수업을 마치자 말자 퍼뜩 든 생각. 박지민. 


‘아니, 진짜 망했다~!! 김칫국 마시는 걸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그거 한번 보고 나니까 괜히 안잊혀지고!’


그렇게 생각하고선 터덜터덜 걸으며 학원을 나오자, 건너편 인도에 나를 기다리고 있는 박지민의 모습이 보였다. 박지민이 나를 보곤 밝게 웃으며 인사하자, 나도 괜시리 따라 인사했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진짜 얼굴에 철판 깔고 만약 나한테 고백하면 바로 거절해야지. 그래도, 진짜 그러면 사이 어색해질까 좀 그렇네…’



“야, 김여주. 김여주? 아니, 무슨 생각해?”



‘아 깜짝아! 언제 와서는, 이름이나 부르고! 후… 진정하자, 진정…’



“아… 별 거 아니거든. 빨리 가자.”

“그으래? 별 거 아니라기엔 얼굴이 좀 빨간데~”

“아, 진짜 별 거 아니라고! 그래서, 오늘이 무슨 날인데?”

“뭐야, 안 찾아봤어? 너무하다 진짜~”

“어, 안 찾아봤다. 어쩔래.”



그 순간, 내 옆을 따라오던 발소리가, 내 옆을 따라오던 그 실루엣이 뚝하고 멈췄다. 어차피 따라오겠지 싶어서 몇발자국 더 걷다가 뒤에서 발걸음이 하나도 들리지 않자. 뭐야, 뭔데? 그렇게 생각하며 뒤를 돌아본 순간.



“…김여주, 나 너 좋아해.”



박지민의 뒤로 보이는 별 하나 보이지 않는 하늘과, 그 와중에 밝게 빛나보이는 저 보름달. 세팅은 완벽했다. 오늘따라 더 밝아보이는, 그래서 당장이라도 울 것만 같은 박지민의 저 환하게 웃는 얼굴까지.


“언제부터 좋아했는진 나도 잘 몰라. 그냥 저 달이 떠있는 게 당연하다고 여겨진 그런 것처럼. 그냥 당연한 수순이었던 거겠지.”


어서, 거절해야 하는데. 뜸 들이면 박지민이 더 상처받을텐데. 그러나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진짜 미안, 박지민. 나는… 나는, 너를 좋아하지도 않고, 연애할 생각은 정말 하나도 없어. 무엇보다, 너는 다른 애들한테도 인기가 많고, 내가 너에 비해서 한참 부족한데.”


거절했다. 저 아이를. 달보다 밝게 웃고있어서, 나도 모르게 따라 웃게 될 것만 같은 저 아이를. 


“내가 진짜 너에 비해 한참 부족해서, 설령 너랑 사귀고 싶어도 사귈 수가 없을 것 같아.”


아, 진짜.

직감적으로 느껴졌다. 이 일을 계기로, 우린 전처럼 매우 친하게 지낼 수 없을 것이다.

…만약 다시 고백을 받거나 해서, 사귀는 것 빼곤.

적막만 흐를 뿐이었다. 주변은 마치 핸드폰의 소리를 0으로 맞춰놓은 듯 조용했고, 알람을 다 꺼놓은 듯 아무런 지나다니는 사람이, 지나다니는 게 없었다. 같은 학원 아이들은 벌써 집에 간 거겠지. 

그리고 이 고요함을 깨고 박지민의 입이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