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이롭다

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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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롭다


w. 앙탈 

























. 1화 .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비는 하염없이 내리고 나는 하염없이 눈 감고…. 그러던 때, 등 뒤에서 촉감이 느껴져 눈을 떴다. 눈을 떠보니 웬 사람이 비를 다 맞은 채 나를 받치고 있었고 나는 젖은 길바닥에 누워있는 그런 백설공주를 구해준 백마 탄 왕자님의 상황이었다고 볼 수 있었다. 물론 그 남자가 나를 받치고 있었음.






“…!!! 어얼ㄱ!!”






나는 순간 놀라서 주먹으로 그 남자 얼굴 한번 과격하게 날리고 벌떡 일어났다. 일어나 보니 상황 파악이 더욱 빠르게 되었다. 정말 내 우산은 저기 내팽겨져있고, 나와 그 남자 머리는 무슨 샤워한 마냥 젖은 미역줄기가 되어있었고, 난리 블루스가 아니었다.






“……. 아파.”


“아…, 죄송해요. 근데 누구….”


“…너 집 어디야.”


“네…?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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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가깝나?”


“네? 아니 잠깐만….”






뭐지 이 사람. 초면에 다짜고짜 집을 묻는다. 나 좀 당황, 아니 많이 당황. 상황 파악부터 해야 할 참인데, 저 사람으로 인해 상황 파악은 더더욱 느려졌다. 이 사람은 누군지, 왜 붉은 눈을 하고 있는지, 내가 방금 왜 쓰러진 건지 뒤지게 궁금한데…. 그리고 이 사람은 술 취한 사람 치고는 또박또박 잘도 말했다. 술 마신 게 아닌 그냥 또라이 아니야?






“나 다쳤어. 아파.”


“…….”






은근한 여유가 있었나 보다. 우리 저번에 만났던가? 초면인 사이 치고는 오가는 말이 억수로 자연스러웠다. 아, 정정한다. 오는 말만 자연스러웠지, 가는 말은 부자연스러웠네. 난 자연스럽지 않단 말이야. 당황해 죽겠는데.






“말이 없네. 보여줄 테니까 봐.”


“…….”






무슨 이상한 사람이 다 있지 하며 낯선 사람에게 말대꾸도 하지 말라는 우리 여사님의 말씀이 생각나 무시하고 집에 가기로 계획을 세웠다. 사실 계획 세우느라 이 남자가 방금 한 말은 못 들음. 물론 몰래 따라올 수도 있으니까 집으로 향하면 안 되겠지요?

그렇게 완벽한 계획을 머릿속에서 구상해냈는데, 내 계획은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그러게. 왜 무너졌을까. 나도 알고싶네.






“…!!! 잠시만!!! 잠깐잠깜낭잠깐잔가나짠감잠깐잠깐!!!”


“…? 왜. 나 여기 다쳤어. 보이지?”


“아니이…!!! 옷 좀 내려요!!! 알아. 다친 거 아니까 옷 좀….”


“…알았어.”






이제 알겠냐고. 그 남자가 갑자기 자신의 긴 옷을 들어서 다쳤다면서 배에 난 상처를 보여주지 않나. 유교 걸 중에서도 아주 아주 깊은 유교 걸이었던 나는 아주 그냥 기겁을 했다. 하지만 잠깐 봤지만 은근 깊은 상처가 보였다는 점은 넘어갈 수 없겠더라.






“……. 심하게 다쳤네요.”


“오호. 손으로 가렸으면서 봤던 거야? 은근 볼 거 다 보는 스타일인-


“아!!! 좀!!!! …그래서. 왜 그렇게 다쳤는데요….”






우리 진짜 어디서 만난 적 있나? 이제는 가는 말도 자연스러웠다. 처음 만난 사람과 자연스럽게 말이 오가는 것은 나도 처음이었기에 말하면서도 얼떨떨했다.






“…음. 얘기가 조금 복잡하다.”






일단 네 집으로 갈까. 은근 진지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남자다. 내 집을 왜 저리 집착하는지, 이 남자를 더욱 의심하는 계기가 생겨버렸다. 첫 만남에 집을 들이는 건 조금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이 자리를 빨리 벗어나고 싶었고. 이상한 사람이면 어떡해.






“…. 아니 죄송한데…생각을 해보세요. 오늘 처음 본 남자를 내가 뭘 믿고 우리 집에 데리고 오냐고요. 심지어 나 자취하는데.”


“…너 몇 살인데.”


“……. 18살이요. 그러는 그쪽은 몇 살이신데 자꾸 반말을….”


“음. 너보다는 많아. …네가 믿을지 안 믿을지 모르겠지만, 최대한 다 설명해 줄 테니까 나 한 번만 믿고 집으로 갈 수 없을까. 그리고 우리 지금 비 맞잖아. 감기 걸려.”


“…아, 그러네….”






잠시 잊고 있었다. 아직 주룩주룩 비가 온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는 우산도 없이 이렇게 비를 다 맞고 있었던 것을. 솔직히 저 멀찍이 우산이 떨어져 있긴 한데 가기 귀찮았음.






“…그래도. 내가 그쪽을 어떻게 믿고.”


“……. 정 그러면 어쩔 수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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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붙잡아놔서 미안. 신고는 하지 말아 줘.”




라는 말을 남긴 채 자리에서 일어나 내 집의 반대편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는 이 남자. 아니 이런 반응이 올 줄은 몰랐는데. 조금 당황.

솔직히 나쁜 사람 같지도 않고 그리고 나 집에 호신용 기기도 졸라 많아서 딱히 무슨 일 있어도 무찌를 수 있다. 그래서 그냥 들여보내 주려 했는데 이렇게 가버릴 줄은…누가 알았겠냐고.






“……. 아 그냥 와요!!!”






왠지 모르게 아쉬워 내뱉은 이 한마디에 스윽 뒤를 돌아보고는 손으로 큰 하트 사인을 만든 채 내 쪽으로 있는 힘껏 뛰어오는 그 남자였다. 주변이 어두웠지만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바로 웃음이 터져버렸고 왠지 재밌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 정말 그래야 할 텐데. 마음 한켠에서의 걱정은 당연한 것이겠지.






































삑삑 삑삑— 띠로리—



“오…. 완전 신기해. 이 번호 안 찍으면 문 안 열려?”


“…? 네,에……. 아니 한 번도 안 보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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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ㅇ, 아니? 그냥 말한 거야.”





은근 미친놈 같다 이 사람. 아까 1층 현관 누를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이 세상 물건들 다 처음 본다는 듯이 신기해한다. 나 뭔가 이상한 사람 잘못 들여보낸 거 같은데 정말 들여보내도 괜찮은 걸까. 그리고 이 사람 키 졸라 크다. 아까 집 들어올 때 신발장에서 머리 박음. 처음에는 별로 신경 안 썼는데 정말 우리 집 천장만 한 키였다. 190은 족히 넘을 것 같은데 아주 조금 무서워지는 그런 기분인걸.






“일단 여기 앉아 계세요.”


“응. 알겠어.”






일단 이 이상한 남자를 앉혀놓기로 결정해 내뱉은 말인데 돌아오는 그의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무슨 이상한 슈슈슉- 소리가 들리지 않나. 뭐지!!! 하고 곧바로 뒤를 돌아보았지만 보이는 건 그저 다소곳이 앉아있는 큰 남자 한 명뿐. 






“…?”


“…ㅇ, 왜?”


“…. 아니에요. 뭔 이상한 소리 들려서. 일단 상처 좀 보여줘 봐요. 구급상자 있긴 한데….”


“아. 아니야.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와. 난 여기 가만히 앉아있을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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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그렇게 수상한 눈빛 좀 보내지 말아 줄래…나 이상한 뱀파- 아니 사람 아니야….”


“그렇게 말하니까 더 수상한데요.”






온갖 수상한 말 다 해놓고 의심하지 말라니까 더 수상한 이 기분은 뭔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씻고 옷 갈아입고 오기로 했다. 화장도 한 상태라 피부 뒤집어지기 전에 빨랑빨랑 세수해야 하니까. 이미 뒤집어졌으려나. 그렇게 나는 손도 씻고 얼굴도 씻고 옷도 갈아입고 그 남자를 치료해 줄 구급상자도 챙기고 그 남자 앞으로 갔다.






“아까 보니까 팔도 다쳤던데, 팔부터 치료할래요?”


“응…? ㅇ, 아니 그게-


“그냥 주세요. 은근 답답이네.”






아까부터 자꾸 말하기를 망설이는 이 남자에 너무나도 답답해서 그냥 팔을 가져왔다. 은근 쫄보라 무서웠는지 잘게 떠는 손목을 잡고 한쪽 손으로 팔을 걷어 올리니 보이는 이상한 것. 아마도 그가 말하기를 망설인 이유였을까.






“…문신…?”


“…….”






아니 뭔 작은 거 몇 개도 아니고 이상한 글씨체로 이루어진 문신이 팔 한쪽 전체를 다 덮고 있었다. 그리고 상처는 온데간데없어서 반대쪽 팔을 잘못 가져왔나 착각까지 할 뻔했지. 순간 잘못되었다는 걸 느꼈다. 이 사람, 보통 평범한 사람은 아닌 것 같아 보였다. 단순히 기분 탓일까. 팬플러스하면서 자주 봤던 무슨 “조직 보스를 집에 들였습니다.” 실제 상황인가, 생각도 했다. 갑자기 무서워진 이 feeling…. 어쩜 좋아.






“…….”






잠깐의 침묵이 흐를 때, 나는 고개를 들어 이 남자를 바라봤고 이 수상한 남자는 처음부터 나를 계속 보고 있었는지 우리 둘의 눈은 마주치게 되었다. 그에 나는 그냥 눈 마주친 김에 질러버리자, 하고 문신 보자마자 든 생각을 드디어 입 밖으로 꺼내버렸지.























“……. 혹시 조직 보스…세요…?”



























저 질문을 한 나도 정상은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