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 망치러 온 양아치 전정국
급하게 가방을 챙겨 떡볶이집에서 나왔다. 나는 떡볶이집에서 나오자마자 심장 부근을 손으로 꽉 쥐었다. 심장은 뛰고 있는 개 당연했다. 하지만 이렇게 빠르게 뛰는 건 당연하지 않다는 걸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내가 먼저 나오고 잠깐 뒤, 전정국도 밖으로 나왔고, 전정국이 나오자 나는 급하게 겉모습을 정리했다.
“뭐가 급해서 계산도 안 하고 뛰쳐나가?”
“맞다… 계산…! 얼마야? 내가 절반 줄게.”
“얼마 안 되는데, 뭘.“
”야, 그래도 그렇지. 돈 관련해서는 철저해야 하는 거 몰라?“
“정 그러면 다음에는 네가 사던가.”
자연스럽게 우리의 다음 약속이 잡혔다. 돈 문제는 아무리 친구 사이라도 철저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이기에 다음에는 내가 사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떡볶이와 김말이, 오뎅 국물로 한가득 배를 채운 우리는 나란히 번화가를 걷기 시작했다. 발작하다시피 뛰었던 심장이 아직도 그대로 쿵쿵 거리고 있었고, 나는 이상하다 싶은 심장의 상태를 인정하지 못하는 중이었다. 내가 전정국을 좋아하는 것 같다는 게…
“인정 못 해… 내가 왜 저런……“
절대 인정할 수가 없었다. 같은 학교 학생이건, 선배건, 나를 괜찮게 보는 남자들이건 내 성에 차지 않았던 사람이 다수였다. 물론 그 중에 전정국 같은 양아치는 없었고, 오히려 돈 많은 모범생들 비중이 훨씬 높았다.
“김여주, 또 뭐 하고 싶었던 건 없어?”
전정국의 물음에 발걸음을 늦추고 전정국을 홱 쳐다봤다. 이상했다. 조금씩 사그라들던 내 심장이 다시 발작하기 시작한다. 나는 재빠르게 전정국을 향하던 시선을 거뒀다. 내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고 정면을 응시하자, 전정국은 정신 차리라는 듯 눈 앞에서 손가락을 튕겨 딱-! 소리를 냈다.

“내가 옆에 있는데 어딜 봐.“
“어, 어…?”
정신은 멀쩡한지 오래다. 단지 나는 요동치는 심장을 어떻게 해보고 싶었던 것 뿐이었다. 뭐, 전정국 덕분에 싸그리 망했지만 말이다.
“또 해보고 싶었던 거 없냐고.“
일단은 전정국에 발작하는 심장을 뒤로 밀어두기로 결정했다. 이런 이상한 감정 따위는 언제든지 느낄 수 있겠지만, 지금 이 시간은 언제 돌아올지 전혀 알 수가 없는 일이었기에. 내가 평소에 해보고 싶었던 걸 곰곰히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어릴 때는 하고 싶었던 게 참 많았다. 친구들이랑 놀이터에서 미끄럼틀도 타고 싶었고, 모래밭에서 뒹굴어 보고도 싶었고. 학생이 되서도 마찬가지였다. 학교 앞 문구점에서 불량식품도 사먹어보고 싶었고, 친구네 집에 가서 놀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하고 싶은 게 사라졌다.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말해봤자 묵살 당하는 게 다였어서.
그래서일까? 하고 싶은 것과 해보고 싶은 것들을 묻는 물음 자체에 대한 답이 어렵다. 나는 입술을 살짝 깨문 채 몇 분을 고민했고, 전정국은 내가 입을 열 때까지 기다려줬다.
“음… 나 노래방 가보고 싶어. 코인 노래방!“
“코인 노래방?”
“애들이 그러더라, 코인 노래방 가면 잘생긴 사람들이 진짜 많다고. 노래 부르다가 번호도 따이고 한다던데?“
코인 노래방은 중학생 시절의 내가 그렇게 가고 싶었던 곳이었다. 중학생 때는 한창 꾸미는 거 좋아하고, 남자한테 관심 생기고 할 나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을 거다. 나라고 안 그랬을까? 당연히 그랬다.
애들이 점심시간에 반에서 화장품을 꺼내드는 날은 다같이 코인 노래방을 간다는 말이 대부분이었다. 애들이 하는 말로는 잘생긴 사람들이 번화가에서 제일 큰 코인 노래방에 모인다고 했고, 그 다음 날에는 거의 한 명 꼴로 번호를 따여 남자와 연락을 주고 받고 있었다.
그때는 그런 게 부러웠다. 제 시기에 그런 걸 해보지 못했던, 그 시절에 대한 미련 비슷한 거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허, 지금 네 옆에 누가 있는데 다른 남자를 찾냐.“
코인 노래방을 가고 싶다고 했을 때는 의외라는 눈빛이 강했던 전정국이었다. 그것도 잠시, 그 뒤로 잘생긴 남자 어쩌고가 나오기 시작하자 점점 어이없는 표정으로 변해갔다.
“네가 내 옆에 있는 거랑, 잘생긴 남자한테 번호 따이는 거랑 무슨 상관인데.“
“가서 실망이나 하지 마. 거기 가봤자 나보다 잘생긴 얼굴은 찾기 힘들 거니까.“
“뭐래… 빨리 가기나 하자!”
나는 전정국의 팔에 팔짱을 끼며 전정국을 이끌었고, 전정국은 피식 한 번 웃더니 순순히 나를 따라왔다. 그러다 내가 길을 헤매면 저쪽이라며 길을 찾아줬다. 마치 나만의 네비게이션처럼.

넓고 복잡한 번화가 길을 따라 이리저리 가다 보니 화이트 톤의 엄청 커다란 건물이 하나 보였다. 몇 층으로 된 정말 커다란 코인 노래방 하나가 떡하니 자리잡고 있었고, 나는 넋놓고 그 건물을 쳐다봤다.
“원래 코인 노래방이 이렇게 커…?”
“그건 아니고, 5년 전인가 학생들 겨냥한다 어쩐다 하면서 크게 생긴 코인 노래방인데, 사실 노래방이라기보다 만남의 장소 같은 느낌이지.“
“만남의 장소? 그건 또 뭔데…“
“한 마디로 이 동네 학생들 대다수가 여기에 모인다는 거야.“
전정국의 말을 듣고 보니 약간 쫄리기 시작했다. 학생들이 많이 모이면 번호를 따이는 게 문제가 아니라 싸움이 날 것 같은데…? 침을 꿀꺽 삼켰다. 가본 적 없는 새로운 공간이라는 것에 대한 긴장감이 나를 휘감았다.
“야, 전정국… 여기 좀 무서울 것 같은데…… 막 싸움 붙으면 어떡해…?“
코인 노래방이라는 게 원래 이런 곳인가 싶어 괜히 오자고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가다가 어깨 살짝 스쳤다고 막 뭐라 할 것 같고, 방 안에서 막 패싸움을 한다거나…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내가 별 생각을 다 하는 게 전정국 눈에 보였던 건지, 전정국은 고개를 돌려 웃음을 참는 듯 싶었다. 누구는 심각해 죽겠는데 진짜… 내가 전정국을 노려보기 시작하자 전정국은 흘러내려온 내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며 말했다.
“왜 겁을 먹고 그래. 그런 일 없으니까 겁 먹지 마, 이상한 망상도 그만하고.“
“망상이 아니라 실제로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을 가정해 본 거였거든?!“

”설령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너는 절대 못 건드려.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온 게 아니고서야 감히 누가 내 거를 건드리겠어.“
또 나왔다, 전정국 특유의 자신감 넘치는 눈빛. 전정국과 눈이 마주쳤고, 나는 또 심장이 움찔했다. 이쯤 되면 인정할 법도 하지 않나 싶다. 내가 전정국을 좋아하고 있다는 걸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