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도부 전선배
"야, 벽에 발 닿잖아. 똑바로 안 버텨?"
그러니까, 이게 왜 이렇게 됐냐면... 그것은 약 두 시간 전, 배가 아프다는 신입생의 말로 시작된다. 엎드려 뻗쳐 자세를 잘 유지하는지 일일이 장구채로 허리를 찔러보고 다니던 부과대는 어정쩡한 자세로 거의 바닥에 엎어져 있는 신입생을 발견했다.
"어이. 거기, 너. 무릎 똑바로 안 들어?"
"죄, 죄송합니다...."
"팔도 제대로 버텨야지. 엉덩이 쭉 빼고!!"
"죄, 죄송,"
"지금 반항하는 거야?! 제대로 하려는 의지도 없잖아!!"
일일이 장구채로 짚어주는 부과대의 노력 아닌 노력에도 신입생은 계속 무너졌다. 주위에선 땀을 뚝뚝 흘리며 버티고 있는 사람들이 신음을 내뱉고, 부과대는 배와 허리 팔을 찔러대며 소리만 지르고 있으니. 결국 신입생은 울음을 터트리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죄송, 합니다.... 흑, 제가... 오늘 생, 리가 터져서... 흐읍...."
"그럼 약을 먹고 왔어야지. 기본 준비도 안 돼 있어?!"
"약... 먹긴 먹었는데,"
"먹었으면 버텨! 그거 하나 못 참으면 운동을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한순간에 싸해진 분위기. 아씨... 그냥 좀 빨리 서지. 쟤 하나 때문에 시간 더 길어지잖아. 누군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불만을 내뱉었다. 그 말에 담긴 '쟤'가 생리통으로 주저앉은 신입생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결국 주위 사람들의 눈초리를 받게 된 신입생이 눈물을 훌쩍이며 엎드려 뻗쳐 자세를 취하려는데, 그 사이에서 버티고 있던 여주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붉어진 얼굴과 턱에 맺힌 땀방울이 지금까지 얼마나 힘들게 버티고 있었는지를 드러냈다.
"제가 대신 하겠습니다."
"뭐냐, 넌?"
"쟤 몫까지 제가 대신 하겠습니다."
어처구니 없다는 탄성 소리와 지금 뭐하는 거냐는 동기들의 핀잔이 섞여 들렸다. 야, 너 뭐해...! 옆에서 엎드려 뻗쳐를 하고 있던 다미가 고개만 돌려 여주를 불렀지만, 소용없었다. 여주는 부과대의 앞에 주저앉아있는 신입생을 향해 눈짓했다. 탈의실에 앉아있어. 딱 마주친 시선에 신입생이 눈치를 보며 몸을 일으켰다.
"야. 어디 가. 자세 잡아."
"가. 내 이름 고여주야. 내 라커에 핫팩 있으니까 그거 대고 있어."
"가지 말라고 했다. 선배 말이 말 같지 않아?!"
"가. 훈련 끝날 때까지 나오지 마."
"야!!!!!"
제 말을 무시 당한 것에 기분이 나빴는지 부과대가 성큼성큼 걸어 여주의 앞에 섰다. 그 틈에 신입생은 다리를 움직여 탈의실로 향하고, 여주는 신입생의 모습이 사라지고 나서야 제 앞에 선 부과대를 똑똑히 바라봤다.
솔직히 여주도 자신이 상황을 이렇게까지 만들 줄 예상하지 못했다. 부과대는 워낙 예전부터 소문이 좋지 않았고 과대와도 사이가 좋지 않다고 들었지만, 딱히 직접적으로 부딪힌 적이 없어 지금껏 이 성격을 몰랐었으니까.
부과대가 여주의 멱살을 잡아 위로 끌어올렸다. 차렷 자세를 취하고 있던 여주의 발이 간신히 땅에 닿을 정도로 몸이 둥 떴고, 부과대의 손에 쥐여진 도복은 어김없이 구겨졌다. 그럼에도 여주는 부과대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고여주. 애들한테 전해듣긴 했지만 성질 진짜 못 참는구나?"
"...."
"네가 선배들한테 이따위로 구니까 고구려 소리 듣는 거 아니야. 윤여주보다 구려서."
"...."
빠득, 어금니가 부딪혀 살벌한 소리가 났다. 부과대가 별명의 장본인을 두고 그런 소리를 할 줄 몰랐는지 주위에 있던 4학년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말렸지만, 부과대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여주를 쏘아보며 신경 긁을 말만 했지.
"내가 다른 부 애들을 만나면 어깨를 피질 못해. 윤여주랑 연 닿으면 자랑거리인데 고여주랑 연 닿으면 수치라서."
"...."
"니 작년에도 태권도부 애들이랑 시비 붙어서 그거 처리하느라 선배들이 대신 꼽이란 꼽은 다 먹었다지? 그런 거에 죄책감이나 미안한 마음은 없냐? 어?"
"...."
"뭘 그렇게 꼴아. 왜, 이번에도 나도 그렇게 만들게? 서로 반병신 만들고 유도부 망신 당하자는 거야, 뭐야!!!"
욕짓거리를 내뱉는 부과대에 여주의 미간이 함께 찌푸려졌다. 거칠게 멱살을 내던지는 행동에 여주는 몇 걸음 뒷걸음질 쳤고, 그 옆에 자세를 잡고 있던 동기들만 부딪히지 않으려 몸을 비켜 세웠다.
끝까지 넘어지지도 않는 여주를 본 부과대는 헛웃음을 치며 손을 탁탁 털었다. 독한 년. 작게 중얼거린 말이 여주를 겨냥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다 일어서. 고여주가 너희 몫까지 대신 해 줄 거야."
"...."
"야. 넌 벽쪽으로 가서 물구나무나 서. 중간에 벽에 기대거나 자세 흐트러진 거 보이면 처음부터다."
부과대의 허락이 떨어지자 엎드려 뻗쳐를 하고 있던 1, 2학년들이 재빠르게 몸을 일으켰다. 여주도 한숨을 쉬며 벽쪽으로 걸음을 옮기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척하며 여주의 어깨를 토닥인 다미가 여주의 손목을 가볍게 붙잡다 놓았다. 그러게, 조금만 더 참지 그랬어. 퉁명스러운 말투와 달리 그 속에 담긴 걱정을 알아 여주는 픽 웃는 것으로 대신 답했다.
그렇게 돼서 다시 현재. 여주는 15분에 한 번씩 자세를 검사하러 오는 부과대를 힐끗 보곤 속으로 욕을 곱씹었다. 이대로 한 시간이나 더 있어야 하는데, 이미 두 시간 동안 자세를 유지하고 있어 땀이 쭉 빠졌다. 다친 상처가 터지지 않도록 다른쪽 팔에 힘을 더 줘서 그런 걸수도.
"여주... 어떡해.... 물 줄까? 빨대로라도 마실래?"
"...됐어. 탈의실 가 봤어? 걔 혼자 있을 텐데."
"응, 안 그래도 다미가 몰래 빼내서 밖에 데려다 줬어. 걔 이름 강아진이래. 별명도 강아지라는데, 정말 닮지 않았어? 애가 귀엽게 생겼더라."
"후... 그래. 너 이러다 같이 있는 거 걸리면 혼난다. 가서 혼자 놀아."
"알겠어.... 조금만 더 힘내...! 이따 다시 올게...!"
울상을 지은 유진이 막 사온 생수병을 앞에 두곤 다른 동기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시야가 뿌얘졌다. 머리에 피가 쏠리기도 했고 땀방울이 흘러 눈꺼풀을 가렸기 때문이었다.
고개를 휙휙 돌리며 땀을 눈가 옆으로 흘려보내고 있자 옆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하루 몇 번이나 들었다고 꽤나 익숙해진 발소리. 부과대였다.
"힘들다는 말을 끝까지 안 하네. 아직 버틸 만한 가 봐?"
그럴 리가, 시발.
"내가 네 선배로서 걱정돼서 이러는 거 알고 있지? 밖에서 욕 먹는 것보다 안에서 욕 먹고 행동 고치는 게 낫잖아. 그래도 같은 유도부인데."
마치 자신에게 고마워하라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슬그머니 걸어와 여주의 눈 앞에 있는 생수병을 태연하게 집어가 제 입에 털어넣었다. ...이유진이 준 건데. 아무래도 유진이 생수병을 두고 간 것을 부과대가 본 모양이다.
"됐어, 이만하고 내려. 네 깡따구 하나는 인정해 줄 테니까 앞으로 선배들한테 잘해."
"...괜찮습니다."
"너한테 괜찮냐고 물어본 건 아닌데. 봐주는 것도 더러워서 안 받는다, 뭐 이런 거야?"
"...."
침묵은 곧 암묵적 동의. 부과대는 흔들림 없는 여주의 태도에 콧방귀를 뀌며 생수병을 구겼다.
"이 새끼 진짜 독종이네. 야, 이럴 땐 그냥 감사합니다- 하고 고개 숙이는 거야. 이런 기본적인 사회생활도 내가 다 알려줘야 하냐?"
"...괜찮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 그럼 끝날 때까지 그러고 있던가. 나중에 과대가 뭐라고 해도 난 아무 잘못 없다? 네가 자초한 거야."
"...."
"야! 이제 쉬는 시간 끝! 다들 모여!"
그 말을 끝으로 부과대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하아... 버티는 팔이 부들부들 떨리고 머리가 어지러웠지만 여주는 침을 한 번 삼키는 것으로 꾹 참아냈다.
그렇게, 훈련이 다 끝나고 나서야 여주도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