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도부 전선배

유도부 전선배 07

유도부 전선배

※욕설이 많습니다. 트라우마를 유발시키는 요소가 있을 수 있으니 읽기에 앞서 주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정국이 물구나무 서 있는 여주를 발견한 뒤 훈련장 분위기는 박살났다. 바닥에 누워있는 여주를 본 부과대가 이젠 안 볼 때 꼼수 쓰는 거냐며 똑바로 하라 소리지른 게 시작이었고, 여주가 눈치를 보다 다시 물구나무를 서려던 게 화근이었다.

...하지 마. 여주의 어깨를 잡아 벽에 기대 앉힌 정국이 여주에게만 들릴 만한 크기의 목소리로 나지막히 말했다. 당연히 부과대는 이를 들을 수 없었고, 오히려 여주가 대놓고 뻐기고 있다는 생각에 얼굴을 구겼다.

"야. 너네 지금 뭐하냐? 훈련 중에 연애질 해?"

"...죄송합니다. 이 친구가 많이 힘들어 보여서요."

"힘들어 보이든 말든, 걔는 놓고 넌 너 할 거 해."

"과대 선배한테 말씀은 드렸습니까?"

"뭐?"


"후배 똥군기 잡겠다고, 말씀은 드렸냐고요."

미친.... 여주는 순간 제 앞에 있는 사람이 정국이 맞는지 의심해야 했다. 오래 본 사람은 아니었지만 지금껏 본 정국은 여주처럼 위계질서를 개무시할 위인이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이곳은 체대. 선수 생활 하면서도 여러모로 엮이기 마련인데, 감정이 앞선 섣부른 판단 아닌가 싶었다. 물론, 남이 본다면 여주나 정국이나 도긴개긴이었을 테지만.





"너 뭐야? 17학번은 아닌데, 18학번이냐?"

"18학번 전정국입니다."

"아- 네가 그 전정국이야? 국대 선발전 당일에 잠수 타고 군대 간 새끼?"

"...."

...뭐? 여주의 눈이 크게 뜨였다. 부과대의 말을 들은 이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카더라가 아니었냐, 진짜 있는 줄 몰랐다, 그대로 자퇴하는 줄 알았다 등등. 여주는 덜덜 떨리는 팔을 뻗어 정국의 옷깃을 잡았다. 뭔지는 자세히 모르겠지만, 이렇게 정국에게 시선이 집중된 지금 일을 벌이는 건 위험했다.

"...선배."

"...언제부터 이러고 있었어."

"...."


"몇 시간 동안 이러고 있었냐고."

정국의 매서운 눈빛에 여주는 그만 입을 꾹 다물고 말았다. 본전도 못 찾았다. 되려 혼나는 듯한 기분에 애꿎은 옷깃만 쥐었다 놓았다를 반복하니 정국이 작게 한숨을 쉬며 여주의 손을 붙잡았다. 작게 말아쥔 주먹이 정국의 손안에 들어갔다.

"화내는 거 아니야. 1시간? 2시간?"

"...."

"몇 시간 동안 이러고 있었냐고."

"...3시간, 이요."

"...3시간?"

말하지 말 걸 그랬다. 와락 구겨진 미간을 보자마자 곧바로 후회했다. 어제도 이러고 있었어? 그래서 계속 손 떨었던 거야? 끝난 줄 알았던 질문이 다시 한 번 이어졌다. ...알고 있었어? 여주는 기어코 들켰다는 생각에 답을 하지 못했다. 그 반응이 얼마나 확실한 대답이 되었는지도, 몰랐다.





"시발, 진짜... 이놈의 똥군기는 내가 없애고 가도 계속 나타나네."

"...."

"쉬고 있어. 이따가 얘기하자."

"선배,"


"이따가. 얘기하자고."

정국이 입고 있던 집업을 벗어 여주의 어깨에 걸쳐줬다. 큰 사이즈 탓에 얼떨결에 집업에 파묻힌 여주는 덜덜 떨리는 제 팔을 감싼 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고, 그 모든 과정을 본 부과대는 헛웃음을 뱉으며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였다.

"뭐하냐. 영화 찍니? 혹시 장르는 로맨스?"

"사과하세요."

"뭐?"

"3시간 동안 물구나무 서게 한 거, 사과하시라고요."

"웃긴다, 니. 내가 후배 교육 시킨 것도 잘못했다고 사과해야 해?"

"그놈의 후배 교육. 이 레파토리는 질리지도 않나. 니가 무슨 권한으로 여주를 교육시켜."

반으로 싹둑 잘려나간 정국의 반말에 주위 사람들이 모두 뜨악한 표정을 지으며 뒷걸음질 쳤다. 여기 CCTV 없냐, 과대 불러와야 하는 거 아니냐. 불안감에 동공만 이리저리 굴리며 최대한 그 두 사람과 눈을 안 마주치려 몸을 돌렸다.





"와, 사회 물 좀 먹었다고 이젠 학교 분위기 파악도 못 하나 봐? 아니면 고구려한테 미쳐서 앞뒤 재는 법도 까먹었나?"

"고구려는 뭐야. 또 얘한테 이상한 별명 지어놨어?"

기분 나쁘다는 듯 정국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상하긴 무슨, 가진 거 하나 없고 죄다 구린 게 고구려가 딱인데. 정국의 옷을 입고 앉아있는 여주를 바라보며 비아냥 거리는 말에 정국은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 부과대의 바로 앞까지 다가갔다. 그리고 부과대의 멱살을 거칠게 틀어잡아 한껏 잡아당긴다.

"지금까지 그딴 식으로 애 자존감 갉아먹었어?"

"켁, 켁... 뭐?"

"쟤는 몇 번째 타깃으로 잡은 건데? 여덟 번째? 아홉 번째? 그딴 말로 지금까지 몇 명이나 죽인 건데!!"

"시발, 이 새끼가 뭐라는 거야!!!"

퍽-!!

순식간이었다. 정국의 몸이 바닥에 엎어지고 주위에선 놀란 비명소리가 들렸다. 부과대도 자기가 진짜 때리게 될 줄은 몰랐는지 당황스러운 얼굴로 상황을 살폈다.

학교 내에서 폭행이라니. 옆드려 뻗쳐나 물구나무 서기는 스스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증거가 남지 않지만, 주먹질은 달랐다. 정국이 맞은 뺨의 입가를 슥 닦아내며 턱을 움직여 뼈를 맞췄다. 딱, 딱. 움직이는 대로 들려오는 소리에 부과대의 동공은 이리저리 흔들렸다.

"돌돌아."

"...."

"잘 찍혔냐?"

곧이어 이어진 의미 모를 소리. 하지만 이내 띵- 하고 들리는 동영상 촬영 소리에 자리에 있는 모두가 상황 파악을 마쳤다.

"교육은 이렇게 하는 거야. 병신새끼야."

옷을 툭툭 털어낸 정국이 씨익 웃었다.